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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평행우주 독식-73화 (73/200)

73화 23장. 판을 키우다

5.

- 척!

“이걸로 한번 실험해 보세요.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군요.”

창수는 에린에게 굵은 실 모양으로 만든 뭉치를 보여 줬다. 홉고블린 힘줄을 마법 처리한 것.

블랙 오크와 와이번도 힘줄이 있으나, 유연한 몸을 가진 홉고블린의 힘줄이 인장강도와 탄성계수가 높다.

게다가 5서클 마법사가 된 고사누가 제대로 된 제조 과정을 거쳐 만든 것이기에 품질도 상급이다.

“힘줄을 가공한 건가요?”

“소재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서로 모른 척하는 것이 좋습니다.”

눈썰미가 좋다. 에린은 본래 형태와 다름에도 단숨에 힘줄이라는 걸 알아봤다. 활시위에 사용할 재료에 관해 연구가 깊다는 걸 나타내는 것이리라.

하지만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에린이 성능 향상을 위해 좋은 소재를 찾는 거라면, 이쯤에서 자중해야 한다.

이 이상 파고들면, 다른 목적이 있다는 의심을 해 봐야 하는 상황.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중요한 건 활용이죠.”

다행이다. 말귀를 알아먹어서.

“결과물은 언제쯤 볼 수 있나요?”

“신소재 물성 테스트 하고, 활시위 교체하는 데 시간이 걸려요. 내일 오후 6시까지는 될 거예요.”

“토요일에도 작업하는 건가요?”

“신소재가 있는데 당장 써 봐야죠. 설마……. 초과근무 수당 아까우신 건 아니겠죠?”

“그럴 리가 있나요? 신기해서 물어본 겁니다. 요새 추세가 일보다 여가를 챙기는 것 아닌가요?”

“여가보다 더 즐거운 일이 있다면, 얘기가 달라지죠.”

“하하하. 알겠습니다. 초과근무 수당 팍팍 드리죠. 즐거운 일 마음껏 하세요.”

에린은 소총을 능가하는 냉병기를 만들기 위해 잘나가는 직장도 그만뒀다. 범상치 않아 보이는 신소재가 눈앞에 보이는데 토요일이라고 집에서 쉴 리가 없다.

볼트23 성능을 향상하는 작업이 최고의 여가다.

여행을 좋아해서 여행사를 경영한 창수는 그녀의 심정을 바로 이해했다.

* * *

앤드류와 에린에게 홉고블린 힘줄을 건넨 창수는 이어서 영업 이사 모리스와 면담했다.

“대단한 판매 성과입니다. 덕분에 월래스가 제 궤도에 오르게 됐습니다.”

“제작이 늘어 판매량이 늘었습니다. 그리고 업무 분담과 책임 소재가 분명한 것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모두 대표님의 지원이 있어 가능한 일입니다.”

훈훈한 덕담이 오갔다.

창수가 자금을 투입하고 회사 체계를 업그레이드한 것이 월래스 정상화의 원동력이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모리스는 창수가 깔아 준 멍석을 바탕으로 역대 최고의 매출을 기록했다. 충분히 서로를 칭찬하고 덕담을 나눌 수 있는 상황.

그러나 창수가 뻔한 사실을 확인하려고 모리스와 면담하는 것일까?

“월래스 임직원 모두가 힘을 합해 성과를 만든 겁니다. 그래서 다음 단계를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다음 단계라면…….”

“월래스 구성원의 능력에 걸맞은 보상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습니다.”

“대표님 말씀이 옳습니다. 하지만 볼트22 시장 규모로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월래스 임직원 대부분이 기존에 받던 임금을 대폭 삭감하고 그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

모리스 자신도 마찬가지, 22만 달러를 받던 연봉이 10만 달러에 불과하다. 그나마 창업자이자 기술 이사인 앤드류와 함께 회사에서 가장 고액 연봉자다.

연봉이 12만 달러 줄어든 것에 모리스가 만족할 리 없다. 그런데도 감수하는 건 월래스의 기업 환경에서는 이것이 최선이기 때문이다.

모리스를 비롯해 임직원에게 합당한 월급을 지불하면 월래스는 적자 회사가 될 거다.

“볼트22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사업부가 필요합니다.”

“볼트24를 전투용으로 판매할 계획이신가요?”

모리스가 영업을 전담하고 있으나, 근본은 리버스드로우 컴파운드크로스보우 마니아다.

앤드류가 이끄는 개발팀이 획기적인 신제품 볼트23을 넘어 볼트24 연구에 착수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볼트24가 성공적으로 만들어지면, 소총 못지않은 위력과 연사력을 가지게 될 터.

모리스는 창수가 볼트24를 군사용 무기로 활용해 매출을 늘릴 거라 생각했다.

“볼트24가 어떤 성능을 보일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게다가 개발되려면 적어도 1년은 걸릴 겁니다. 불확실한 가능성을 새로운 사업으로 상정하는 건 위험한 일이죠.”

“저도 대표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업을 염두에 두신 건가요?”

“암브로시아를 판매할 계획입니다.”

“암브로시아라면……. 요즘 유행하는 감미료를 말하시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월래스를 암브로시아 북미 판매 거점으로 삼을 겁니다.”

창수는 볼트24를 전투용 무기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사용처는 미국이 아니고 평행우주 너머 세상이다.

볼트24가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려면 와이번 날개뼈와 홉고블린 힘줄 같은 특수 재료가 필요하다.

근본적으로 대량생산이 어렵기에 외부에 판매하지 않고 창수가 전량 매입할 거다.

문제는 볼트24 생산 규모가 작아 월래스 임직원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기 어렵다는 것. 한 자루에 1억 원 이상을 지불하는 방법이 있지만, 의심받을 가능성이 크다.

대안으로 창수는 암브로시아를 판매해서 얻는 수익금을 월래스 임직원에게 분배하려 했다.

“암브로시아 글로벌 판매권을 가지고 계신 건가요?”

“전 세계 판권은 아니지만, 미국과 캐나다에 판매할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놀랍군요. 요즘 가장 핫한 아이템을 주도하는 분인지 몰랐습니다.”

암브로시아가 미국에 공식 판매된 것은 아니나, 한국과 유럽을 거쳐 상당량이 유입됐다.

모리스도 사교 행사에서 암브로시아가 첨가된 요거트를 먹었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맛과 풍미에 저절로 감탄사가 나왔던 기억이 뚜렷하다.

게다가 낮은 칼로리와 혈당 지수를 보이며, 인체에 유익한 성분이 다량 함유된 건강식품.

의심의 여지가 없는 슈퍼 아이템이다. 한번쯤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요동치는 건 자연스러운 일.

그런데 눈앞에 보이는 한국인 보스가 암브로시아 판매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실력자란다.

월래스를 그만두지 않고도 암브로시아 코인을 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월래스에서 암브로시아를 판매하면, 구성원 모두에게 능력에 맞는 보상을 줄 수 있습니다.”

“매출과 수익을 보면 차고도 넘칩니다. 하지만 암브로시아가 월래스와 접점이 없다고 봅니다. 독립 법인을 만드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비정제 원당과 스포츠용품 전문 회사 월래스가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인가?

모리스는 암브로시아에 편승하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사업성을 평가했다.

“아닙니다. 암브로시아를 미국에 판매하려면 월래스의 힘이 필요합니다.”

“예? 월래스의 힘이 필요하다고요?”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설탕 수입 금지 법안을 유지하고 있는 국가입니다. 그 벽을 넘으려면 강력한 우군이 있어야 합니다.”

미국은 1930년 설탕 산업 보호법(US Sugar Program)을 제정해 사탕수수 재배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있다.

내용은 미국 설탕값을 국제 시세보다 높이기 위해, 미국 정부가 관세 장벽과 쿼터 제도를 운영해야 하고, 미국 내 생산량이 많아지면, 수매해서 가격을 부양해야 한다는 것.

자유 시장 경쟁을 권장하는 미국 경제 시스템에 어울리지 않는 법률이지만, 9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유지되고 있다.

그 이유는 사탕수수 주 재배지가 공화당과 민주당이 팽팽하게 맞서는 경합주(스윙 스테이트)라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월래스의 고객을 설득해 설탕 업계의 견제를 막자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암브로시아 판매에서 나오는 수익금이 볼트22 개량과 볼트24 개발에 투입된다는 것을 알리면, 협조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흠……. 월래스의 고객이라면 분명히 암브로시아 판매에 큰 도움을 줄 겁니다. 하지만 사탕수수 농가의 피해가 걱정이군요.”

모리스는 창수가 월래스가 가진 진정한 힘을 제대로 사용하는 것에 머리를 가격당한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볼트22를 구입하고 월래스에 투자한 골수팬 중에 정치인과 언론인이 상당수 존재한다. 월래스를 위해 잘나가는 직장을 그만둔 모리스처럼, 그들은 월래스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행동할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월래스를 위해 92년간 지속된 설탕 산업 보호법을 폐지하자고 나설지도 모른다.

모리스는 창수의 계획이 미국 설탕 산업을 붕괴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보수적이면서 애국자인 그에게 달갑지 않은 일.

“사탕수수를 재배하는 농민에게 가는 피해는 거의 없을 겁니다.”

“판매량이 적을 거로 보시는 건가요?”

“판매량은 아직 모릅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수입할 암브로시아 가격이 10달러에 판매가가 20달러입니다. 암브로시아 플러스는 50달러에 수입해서 100달러에 판매할 겁니다. 암브로시아로 인해서 미국 설탕 가격이 하락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암브로시아가 팔리는 만큼 설탕 소비가 줄어들지 않을까요?”

“약간의 영향이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비정제 당을 생산하는 공장을 인수하고, 미국에서 암브로시아를 직접 생산하는 것도 추진해야 합니다.”

“대표님, 아주 바람직한 방향입니다. 그런데 국내에서 암브로시아를 생산할 계획이라면, 굳이 고객들의 도움이 필요할까요?”

“설탕 산업 보호법과 설탕업계 상황을 보면, 설탕 수입 못지않게 어려운 것이 제당 공장 인수입니다.”

“그럴 리가요?”

“제당 공장을 해외 기업이 인수하면, 설탕 가격 유지가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 공격을 견제하는 데 월래스 고객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고인 물은 썩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에 어울리는 곳이 미국 설탕업계.

가격 경쟁력을 가지거나 품질 향상에 힘쓰지 않고, 92년이라는 세월 동안 보호법이 가져다 주는 안락함에 안주하며, 배타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

미국 제과업계와 소비자 단체에서 줄기차게 보호법 폐지를 요구하고 있으나, 정치적인 특성을 사용해 꿋꿋하게 철 밥통을 지키는 상황.

외국 자본이 들어간 제당 공장은 그들이 가진 파이를 나눠 주는 것이기에 온갖 수단을 동원해 막고 있다.

창수는 암브로시아 론칭 이후 미국 설탕 산업에 관해 자료를 모으면서, 어처구니없음을 수차례 느꼈다.

현재 모리스도 유사한 심정.

“호의가 지속되니 권리라고 착각하는 거군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런데 90년 이상 가진 기득권이라는 걸 고려하면, 그 사람들이 권리라고 여기는 것도 이해할 만한 점이 있다고 봅니다.”

“자유로운 경쟁은 미국을 유지하는 근본입니다. 불공정 행위는 반드시 사라져야 합니다. 암브로시아 판매를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설탕업계에 새바람을 만들겠습니다.”

“모리스 이사님이 나서 준다면 더 바랄 게 없죠.”

암브로시아에 시큰둥하던 모리스의 태도가 바뀌었다. 상식에 맞는 창수의 주장이 힘을 발휘한 것.

이제 모리스는 월래스의 고객은 물론이고, 자기 인맥을 사용해 암브로시아에 걸림돌이 되는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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