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평행우주 독식-72화 (72/200)

72화 23장. 판을 키우다

3.

창수는 예정대로 홍콩 첵랍콕 국제공항에서 11월 4일 0시 5분에 출발하는 여객기에 탑승했다.

공항 검색대에서 평소보다 깐깐하게 조사했으나, 천즈웨이로 완벽하게 변신한 창수의 출국을 저지하지 못했다.

무탈하게 13시간 30분을 날아간 비행기는 3일 22시 35분에 LA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 것은 홍콩과 LA의 시차가 15시간이기 때문이다.

- 스르륵!

LA 공항의 출국장을 나온 창수는 화장실로 들어간 뒤 투명망토를 가동했다. 누군가가 천즈웨이의 흔적을 추적한다고 해도, 공항에서 멈출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

투명 상태로 은밀하게 LA 공항을 빠져나온 창수는 북쪽으로 4km 정도 떨어진 쇼핑몰로 이동한 뒤, 천즈웨이의 얼굴을 없애 버렸다.

본래 모습으로 돌아온 창수는 택시를 타고 월래스사 인근에 위치한 호텔로 이동했다.

3일간 숨 가쁘게 강행된 작전에 드디어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 * *

[일본 지바현에서 발생한 대형 폭발은 사고가 아니고 테러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누가 테러를 자행한 거죠?]

[믿을 만한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이 주도한 테러일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숙면에 들어간 창수가 눈을 뜬 건 4일 오전 11시. 창수는 룸서비스를 불러 아점을 먹으면서 DMM 뉴스를 시청했다.

글로벌 네트워크 뉴스 DMM은 우시다 제작소로 가장한 미사일 연구소 폭발 사건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처음에는 단순 폭발 사건으로 보도하다가, 점차 테러로 굳어지는 분위기. 이건 DMM이 정보 소스를 잡았다는 걸 의미한다.

‘일본이 미국에 정보를 넘긴 건가?’

DMM은 일본에서 나오는 정보를 신뢰하지 않는다. 미국과 영국에서 나오는 정보를 주로 다루고 사안에 따라 이스라엘에서 나온 정보를 사용한다.

창수는 직감적으로 DMM이 말한 ‘믿을 만한 소식통’이 미국 정보 당국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리고 미국에 정보를 넘겨준 것이 일본이라고 판단했다.

[중국이 배후라면, 무엇을 노린 걸까요? 선박 엔진을 폭파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너무 과한 거 아닌가요?]

[저도 그 점이 의문입니다. 게다가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우시다 제작소 내부에 질산암모늄 5,000톤이 쌓여 있었다고 합니다.]

[레바논에서 폭발한 질산암모늄이 2,750톤이었죠?]

[그렇습니다. 이번 폭발은 레바논보다 81% 더 강했습니다.]

‘쯔쯔쯔. 그놈의 질산암모늄. 질리게도 우려먹는구만.’

질산암모늄? 개가 웃고 소가 웃을 일이다.

폭발의 원인은 일본이 비밀리에 비축한 고체 연료다. 대규모로 비축했기에 전술핵무기급 폭발이 일어난 것.

창수는 DMM이 언급한 질산암모늄이 진실을 은폐하려는 물타기라는 걸 바로 알아봤다.

[일본 정부의 반응은 어떤가요?]

[아직 구체적인 대응은 없습니다. 하지만 내부에서 미국과 협력해서 중국의 위협에 대항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장작이 쌓일 때까지 기다려야겠군. 지금 세상에 알려 봐야 그냥 묻힐 거야.’

DMM에서 노골적으로 중국을 언급할 정도면, 미국이 이번 폭발 사건의 배후로 중국을 지목한 것이 분명하다.

같은 정보라도 공개 타이밍에 따라 효과가 달라진다. 지금 분위기라면, 일본이 비밀리에 공격용 미사일을 개발한 것을 세상에 알려도 큰 이목을 끌지 못할 터.

테러 배후로 찍힌 중국이 반격에 나서고, 분쟁이 격화될 때를 기다려야 한다.

‘일본은 최소 10년간 공격용 미사일을 개발하지 못할 거야. 일단은 이 정도로 만족하자.’

창수는 미사일 개발 연구소 전체를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축적한 기술을 모두 탈취했다.

게다가 연구 인력 대부분이 폭발에 휘말려 사망했기에, 일본이 공격용 미사일을 개발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 확실하다.

당장 일본을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중국과 긴장 관계를 만들었다는 소득도 있다.

그동안 일본은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도, 중국과 가까워지기 위해 비굴한 물밑 접촉을 이어 왔다. 그것이 이번 폭발로 물거품이 됐다.

창수는 이미 많은 성과를 일구어 냈다. 이제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중국과 일본이 벌일 혈투를 구경하는 것이 현명하다.

4.

작전 성공을 자축한 창수는 느긋한 마음으로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오후 4시 월래스로 이동했다.

“대표님! 정말 대단한 명품이 나왔습니다!”

“볼트23을 말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화살 속도가 무려 초당 250m입니다!”

창수를 본 앤드류가 환호성에 가까운 목소리를 내며 반겼다. 와이번 날개뼈로 만든 볼트23의 성능이 예상을 아득히 능가했기 때문이다.

초당 250m는 음속 0.73에 해당하고 시속 900km에 달한다. 볼트22의 속도 602km/h보다 49.5% 향상된 놀라운 빠르기.

“화살 속도가 SP-5 저격탄보다 조금 느린 거군요.”

“그렇습니다. 초당 40m가 느린 거죠. 하지만 운동에너지는 무려 937J까지 나옵니다!”

“937J이요!? SP-5 저격탄보다 위력이 강한 건가요?”

“예. 화살 운동에너지가 SP-5 저격탄보다 257J 큽니다.”

이번에는 창수가 놀랐다.

SP-5 저격탄은 7.62×39mm 크기를 가진 아음속 총탄이다. 총기 소음을 줄이기 위해 러시아에서 개발한 것으로, 시가전과 같은 근접전에 투입되는 특수부대가 사용한다.

총탄 속도는 290m/s, 100m 이내에서 1cm 두께 철판을 뚫을 수 있다.

그런데 볼트23에서 발사한 화살의 운동에너지가 SP-5 저격탄보다 크다고 한다.

“대단하군요! 그 정도면 볼트23이 소총을 능가하게 된 거 아닌가요?”

“아음속 총탄을 사용하는 소총 중에서 볼트23보다 위력이 강한 건 극히 소수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소총의 운동에너지는 1,700J 이상입니다. 연사 속도와 위력에서 아직 소총에 미치지 못한 거죠.”

‘커험. 이 양반 꼬장꼬장하게 왜 이래? 그냥 그렇다고 하면 될 것을.’

앤드류는 너무 고지식하다. 볼트23의 위력이 아음속 소총을 능가하니, 창수의 말에 맞장구쳐도 무방하다.

그런데 굳이 일반 소총을 끌어들여 좋은 분위기를 깨고 있다.

보너스를 지급하고 싶었던 창수의 마음이 급격히 식었다.

“아니에요! 앤드류 이사님이 잘못 생각한 거예요!”

“무슨 말이에요? 에린?”

“화살 무게를 늘리면 소총을 능가하는 파괴력을 만들 수 있잖아요!”

앤드류의 말이 불편한 건 창수만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연구원 한 명이 불만을 품고 도발적인 지적을 해 왔다.

운동에너지 법칙에 따라, 화살 중량이 증가하면 파괴력도 증가한다. 문제는 속도가 줄어들면 파괴력이 증가하기는커녕 반대로 대폭 줄어들 수 있다는 것.

“그건 이미 실험해 봤잖아요. 활시위가 늘어나는 중량을 감당하지 못해요.”

“지금은 그렇죠. 하지만 신소재가 나오면 달라질 거예요.”

- 슥!

‘어? 뭐야? 부담스럽게 왜 나를 보는 거야?’

‘에린’이라는 이름을 가진 연구원이 ‘신소재’를 언급하며 창수의 얼굴을 바라봤다.

화장기 없는 맨얼굴에 부스스한 머리를 보니 회사 작업실에서 며칠간 밤을 새운 듯하다.

“앤드류 이사님, 이분은 누구죠?”

“에린 오브라이언 연구원입니다. 우리 월래스 후원자 중 한 분이었는데, 이번에 볼트24 개발을 위해 영입했습니다.”

‘큼. 광팬이었군. 어쩐지. 저돌적이라 했다.’

재정난에 허덕이던 월래스가 파산하지 않고 근근이 연명한 건, 리버스드로우 컴파운드크로스보우에 열광하는 충성도 높은 고객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창수가 월래스를 인수한 이후에도 그들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기회만 되면 다니던 직장도 버리고 월래스로 이직할 사람이 수두룩하다.

에린 오브라이언도 그중에 한 명.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브라이언 연구원.”

“그냥 에린이라고 부르세요, 대표님.”

“알겠습니다. 그런데 에린, 활시위를 바꾸면 정말 볼트23의 성능을 향상할 수 있는 건가요?”

“예. 향상할 수 있어요. 대표님이 주신 신소재로 만든 활대는 이론적으로 1,000그레인(64.8g)이 최적이에요. 지금처럼 463그레인(30g)을 사용하는 건 능력 낭비죠.”

“케블라 인장강도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걸 능가하는 신소재가 있을 거라 생각하나요?”

활대 못지않게 활 성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활시위다. 과거 모시풀 같은 천연 섬유를 이용해 활시위를 만들었지만, 현재는 인장강도와 탄성이 높은 폴리아미드 계열 화학섬유 케블라를 사용하고 있다.

“실험해 보니 대표님이 주신 신소재의 인장강도가 케블라보다 30% 높았어요. 탄성계수는 5배나 높고요.”

“그러면 신소재를 잘라서 활시위를 만들자는 건가요?”

“그건 최후의 방법이고요. 제 생각에는 대표님께서 더 좋은 신소재를 가지고 있을 것 같아요.”

‘흠……. 보통내기가 아닌데.’

에린의 말에는 확신이 있었다. 적의가 보이지 않았으나, 창수의 비밀에 불쑥 치고 들어왔다는 점이 매우 위협적이다.

거리를 둬야 할까? 아니면 믿어야 할까?

“개발팀에 합류하기 전에 어떤 일을 했었죠?”

“AI를 연구했어요.”

“AI요? 그쪽 지식이 볼트24 개발과 연관이 있나요?”

“있어요.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볼트23의 발사 속도가 한계예요. 재장전 속도를 높이는 일, 안전성을 강화하는 일, 조준 시간을 단축하는 일, 그리고 명중률을 높이는 것에 AI가 필요해요.”

‘커커커. 이 사람들 뭐지? 볼트24를 최첨단 무기로 만들려고 작정한 건가?’

예상치 못한 에린의 말에 속으로 웃음이 절로 나온다.

앤드류는 볼트24 발사 속도를 소총 수준으로 높이는 것도 모자라 ‘스마트 저격총’처럼 만들 계획인 거다.

스마트 저격총에는 센서, 트래킹 스코프, 연산장치가 부착돼 있다. 목표를 지정한 뒤, 탄환 무게, 풍향, 기온을 입력하면, 컴퓨터가 알아서 사격을 통제하는 시스템.

훈련받지 않은 사람이라도 1km 떨어진 목표물을 정확히 맞힐 수 있다.

앤드류는 볼트24를 스마트 저격총처럼 만들 생각으로 AI 전문가 에린을 영입했고, 에린은 앤드류의 구상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며 합류한 것이다.

“볼트24가 아무리 뛰어나도 시장에 한계가 있습니다. AI 전문가가 몸담기에 너무 작은 분야 아닐까요?”

“돈벌이로만 보면 그렇죠. 하지만 컴파운드보우가 소총을 능가하는 병기라는 걸 제 손으로 증명하고 싶어요.”

“마음가짐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말하세요. 가능한 한 모두 지원하겠습니다.”

월래스에서 연구원이 받는 연봉은 5만 달러. 미국 대졸 초임 평균이 42,000달러라는 걸 고려하면, 고소득 직장이 아니다.

AI 전문가 연봉은 박하게 줘도 20만 달러다. 에린은 소득이 1/4로 줄어드는 걸 감수하고 월래스에 입사한 거다.

이런 사람을 믿지 않으면 누구를 믿을 수 있을까?

창수는 에린에게 가지고 있던 의심을 누그러트리고, 확실한 지원을 약속했다.

“말씀 감사합니다, 대표님. 그런데…….”

“망설이지 말고,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세요.”

“활시위로 사용할 신소재 가지고 있는 거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