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22장. 성동격서
6.
- 뭐지!? 무슨 일이야!?
- 폭탄이 터진 것 같아!
- 폭탄!? 설마 핵폭탄은 아니겠지!
- 야!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여객기 왼쪽에 앉은 승객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창문에서 강한 빛이 들어오더니, 그곳에서 버섯구름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규모로 보면 질산암모늄 2,750톤이 터졌던 레바논 폭발 사고보다 크다. 일부 승객이 핵폭발을 말할 정도.
- 트드득!
- 휘청!
폭발이 발생한 뒤 약 2분이 지날 무렵, 충격파가 여객기에 도달했다. 승객들을 놀라게 하기 충분한 흔들림.
다시 한번 여기저기서 승객들이 웅성거린다.
승객들이 동요하자 안내 방송이 나왔다.
[승객 여러분, 기장입니다. 안심하십시오. 지바현 공장에서 발생한 폭발의 영향으로 조금 흔들렸지만, 모든 기기에 이상이 없습니다. 우리 비행기는 안전합니다.]
- 공장에 뭐가 들어 있었던 거야?
- 질산암모늄이 가득 차 있던 것 아닐까?
- 지바에 큰 비료 공장이 있었나?
- 조금만 기다려 봐. 뉴스를 보면 무슨 얘기가 나오겠지.
창수가 탑승한 여객기는 기내 엔터테인먼트(IFE)의 하나로 글로벌 네트워크 뉴스를 제공하고 있다.
승객들은 폭탄 폭발이 아니라 공장에서 사고가 났다는 기장의 말에 약간 안도하면서도, 자세한 소식을 알기 위해 뉴스에 눈을 돌렸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나오지 않았으나, 화면 자막에 속보가 뜨는 것으로 미루어, 조만간 폭발 사고에 관한 자세한 보도가 나올 거로 생각했다.
‘흠……. 로켓 연료가 얼마나 많이 들었던 거지?’
폭발을 일으킨 당사자, 창수도 조금 놀랐다.
일반 직원 출입 통제 구역에서 정보를 빼낸 뒤, 일본이 비밀리에 제작 중인 공격용 미사일에 시한폭탄을 장착했다.
고체 연료가 담긴 탄도미사일이 있어 여객기에서도 폭발 장면을 볼 수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이 정도로 규모가 클 줄 몰랐다.
‘아티팩트 하나 날린 건가? 아니야. 데이터 빼낸 거로 충분해.’
대규모 폭발에 나카토 코지도 휘말려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 대응을 못 하고 사망했다면, 걸어 다니는 도청 장치가 사라진 꼴이 되고 만다.
매우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세상일이 100% 뜻대로 움직이는 건 아니니까.
‘그나저나 일본 정부의 변명이 궁금하군. 후속 조치는 일본 상황을 봐 가면서 하면 될 거야.’
이제 관건은 ‘일본 정부가 이번 폭발을 어떻게 수습하느냐?’이다.
진실을 감출 것인가? 아니면 사실을 공표하고 응징에 나설 것인가?
일본 정부의 선택에 따라 창수의 행보가 달라질 것이다.
* * *
오전 9시 5분, 폭발이 발생한 지 20분이 지났을 때, 일본 국가 안전 보장국장 호소야 유키치카가 총리에게 긴급 보고를 올렸다
“테러가 분명합니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 거요?”
“CCTV를 확인해 보니, 폭발 지점이 한 곳이 아니라, 세 곳이었습니다.”
“뭐라고!? 폭발 지점이 어디 어디요?”
폭발 초기, 호소야 유키치카는 엔진 시험 도중 발생한 폭발이 연쇄 반응을 일으켜, 미사일 개발 연구소 전체가 폭파됐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20분이 지나지 않아, 폭발의 성격과 폭발 장소가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보고가 바뀌었으니, 상관이 추궁하는 건 당연한 일.
“탄도미사일 격납고, 액체 연료 저장소, 그리고 엔진 테스트실입니다.”
“그러면 모든 건물에서 동시에 폭발이 일어났다는 거요?”
“그렇습니다! 이건 사고나 실수가 아닙니다! 계획적인 테러가 분명합니다!”
“그걸 어떻게 확인한 거요? 연구소가 완전히 파괴됐다고 하지 않았소?”
“출입 통제 구역에 생존자가 있었습니다. 엔진 연구 개발팀장 나카토 코지 박사가 폭발 충격으로 정신을 잃었다가 조금 전 깨어나 연락해 왔습니다.”
창수가 아티팩트를 심어 놓은 나카토 코지는 죽지 않았다. 8시 30분에서 9시 사이에는 안전한 장소에서 대기하라는 암시가 효과를 발휘한 것.
연구소 출입 통제 구역은 강철로 만든 박스 구조로 되어 있다. 외부 침입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한 설계.
강철로 만들어진 두툼한 외벽에 틈새가 없어, 폭발의 물리적 파괴력과 연이은 화염을 견뎌 냈다.
나카토 코지는 출입 통제 구역 중에서도 내부에 위치한 탕비실에 있었기에, 치명적인 충격파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나카토 박사가 죽지 않아서 다행이오! 즉시, 병력을 투입해 안전을 확보하시오!”
“구조팀에게 출입 통제 구역으로 진입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좋소. 나카토 박사를 신속하게 구출하고 다른 생존자가 있는지 살펴보시오.”
비밀리에 공격용 미사일을 개발하던 연구소가 완전히 파괴됐다는 첫 보고에 절망했다. 연구 자료, 전문 인력, 설비가 하루아침에 사라져, 복구하는 데 20년은 족히 걸리기 때문이다.
불행 중 다행이다.
출입 통제 구역이 파괴되지 않았고, 연구소를 실질적으로 이끈 나카토 코지도 생존해 있다. 수습만 잘하면, 복구 기간을 단축할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
물론, 나카토 코지에게 사보타지 마인드 컨트롤이 걸렸다는 걸 모르는 낙관적 생각이지만.
“알겠습니다. 그리고 테러범을 색출해야 합니다.”
“누구 소행이라고 보는 거요?”
“아직은 모릅니다. 하지만 테러범 행적을 쫓다 보면 정체를 알 수 있을 겁니다.”
“연구소는 극비 시설이오. 단순 사고로 처리하는 것이 좋지 않겠소?”
“단순 사고라고 하기에 폭발 규모가 너무 큽니다. 도쿄만 너머 요코스카 미군 기지의 창문이 파괴될 만큼 강력한 위력입니다.”
“아니오. 그럴수록 더 비밀을 유지해야 하오. 선박 엔진 공장을 테러할 이유가 마땅치 않소. 설령 테러했다고 해도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저런 위력이 나올 수 없는 거요.”
“이유를 만들겠습니다. 그동안 공항과 항만을 봉쇄해야 합니다.”
“음……. 좋소. 테러범을 추적하시오. 하지만 조용히 움직여야 하오.”
“알겠습니다, 총리님.”
창수의 예상이 맞았다. 일본 정부는 미사일 개발 연구소의 실체를 밝힐 수 없다. 국제적인 비난을 받는 건 기본이고, 선제공격당하는 빌미가 될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 응징을 포기할 수 없는 일.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 어정쩡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7.
- 뭐야!? 출국 업무 중단!? 공항이 막혔다는 거잖아!
- 공항을 막을 정도면 보통 일이 아니야. 혹시……. 공장 폭발이 테러 아닐까?
- 테러가 벌어졌다면, 일본 정부에서 공식 발표를 했겠지.
- 그렇기는 한데, 테러가 아닌데 공항 폐쇄는 너무 나간 일이야.
- 흠……. 그 말도 그러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홍콩행 여객기에 탑승한 승객들이 뉴스 속보를 보고 술렁이기 시작했다.
나리타 공항과 하네다 공항 같은 국제공항을 포함해, 일본 전역에 위치한 공항이 일시에 봉쇄됐다.
출국 수속이 중단된 것은 물론이고, 여객기에 탑승한 승객들도 다시 내려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미 이륙한 비행기에 회항하라는 지시가 내려지지 않은 것.
30분만 늦게 출발했어도, 꼼짝없이 일본에 발이 묶여야 했다.
승객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도, 일본에서 벌어진 대형 사건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노력은 가상하군. 그런데 너무 뻔한 대응이야.’
30분도 안 되는 시간에 출구를 막은 건, 예상보다 빠른 조치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기민한 행동은 창수가 예상한 범위를 넘지 못했다.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창수는 느긋한 마음으로 좌석에 기대며, 향후 일정을 생각했다.
* * *
[승객 여러분, 기장입니다. 기내에 보안 요원이 탑승할 예정입니다. 모두 자리에 앉아 침착하게 협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객기는 예정대로 홍콩 첵랍콕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그러나 입국 과정은 예사롭지 않았다.
승객들을 여객기에서 내리지 못하게 만든 상황에서, 검문검색을 실시한 것.
- 우리가 범죄자야? 보안 요원이 왜 올라와? 정말 기분 나쁜데.
- 테러 용의자가 우리 비행기에 탄 게 아닐까요?
- 그럴 리가 있나요? 비행기가 이륙할 때 폭발했어요.
- 원격 장치를 썼을 수도 있죠.
- 먼 거리에서 원격 폭파가 되나요?
- 휴대폰으로 된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아요.
승객들은 바보가 아니다. 여객기를 공항 램프에 붙이지도 않고, 한적한 곳으로 끌고 가는 건, 승객 중에 공장 폭발과 관련된 인물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그러나 그들이 출발한 하네다 공항은 폭발 장소에서 직선거리로 30km 이상 떨어진 곳이다.
공장을 폭파하고 단숨에 30km를 이동하는 건 불가능한 일. 만약 그런 능력자라면 굳이 비행기를 탈 이유가 없을 거다.
그래서 많은 승객이 보안 검사를 쓸데없는 짓이라 생각했다. 반면, 일부 승객은 스마트폰을 사용한 원격 폭파 가능성을 말했다.
정확히 맞힌 건 아니지만, 제법 그럴듯한 추론.
“조나단 창! 출입국 관리법 위반으로 당신을 체포합니다.”
여객기에 중무장한 보안 요원 5명이 올라탔다. 그리고 그들은 창수의 자리로 빠르게 이동한 뒤, 소총을 겨눴다.
이미 목표를 지정하고 체포 작전을 실행한 것이다.
“무……. 무슨 소리요! 나는 조나단 창이 아니라 캐빈 린이오!”
“쓸데없는 잔머리 굴리지 마! 우리가 지금 장난하는 줄 알아!?”
“정말이오! 내 여권을 펼쳐 보시오!”
- 척!
“어! 캐빈 린…….”
승객이 말이 맞다. 그는 조나단 창이 아니었다.
캐빈 린이 거짓말하고 있다고 여겼던 보안 요원은 여권을 보고 당혹감을 느껴야 했다.
“이 자리는 분명히 조나단 창이 예약한 자리요. 어째서 당신이 여기에 앉아 있는 거지?”
“그 사람은 비즈니스로 업그레이드했단 말이오! 생사람 잡지 말고 그쪽으로 가 보시오!”
- 타다닥!
보안 요원을 이끄는 팀장은 캐빈 린의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는 일.
즉시, 부하 2명에게 신호를 보내, 조나단 창이 좌석을 업그레이드했는지 알아보게 했다.
<맞습니다! 조나단 창이 비즈니스 좌석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빌어먹을! 빨리 그 자리로 이동해!>
일본에서 보내온 좌석 배치도만 믿고 있다가 한 방 먹었다. 여객기 운항 중에 기내에서 좌석을 변경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한 거다.
약이 오른 보안 요원들은 얼굴이 벌게진 상태로 비즈니스 좌석이 배치된 곳으로 이동했다.
어차피 독 안에 든 쥐, 잔꾀를 부려 봐야 소용없다. 여객기 출입구에 이미 2명이 배치돼 있고, 밖에도 13명이 비행기를 둘러싸며 감시하고 있다.
“뭐라고요!? 조나단 창이 이코노미 좌석 쪽으로 갔다고요?”
“비행기가 착륙한 뒤에, 본래 좌석에 두고 온 것이 있다고 하면서 가셨습니다.”
“이런…….”
하지만 보안 요원들은 조나단 창을 체포하기는커녕 모습도 볼 수 없었다.
‘후후후.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하지. 아닌가? 능력이 없으면 몸이 고생하는 건가?’
보안 요원들이 여객기 안에서 난리 블루스를 추고 있을 때, 창수는 투명망토를 가동하고 블링크 마법을 사용해 조용히 비행기 밖으로 빠져나왔다.
조금 걸어가니 비행기 쪽으로 중무장한 병력이 달려오고 있다.
창수는 그들에게 썩은 미소를 날리며, 유유히 갈 길을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