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22장. 성동격서
3.
미국에 도착한 창수가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볼트22를 생산하는 월래스였다.
와르카 마적단과의 전투에서 놀라운 공격력을 보여 준 볼트22. 물리공격을 막는 방어구와 마법이 존재하는 평행우주 너머 세상에서 AK-201보다 더 강력한 무기다.
지난번 구매한 11정으로 다수의 적을 상대하다가 수량 부족 문제를 절감했다. 가능한 한 많이 확보해야 한다. 이것이 미국에 온 주요 목적의 하나.
“앤드류 이사님, 얼굴이 훤해지셨네요.”
“모두 대표님 덕분입니다. 판매에 신경 안 쓰고 연구와 생산에 집중하니, 이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월래스를 설립하고 운영했던 앤드류는 골치 아픈 판매를 영업 이사 모리스에게 맡기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생활에 여유가 생기니, 얼굴에 화색이 도는 건 당연한 일.
“잘됐습니다. 적성에 맞는 일을 해야 몸과 마음이 편하고 성과도 좋은 거죠.”
“맞습니다. 저도 그렇고, 생산 직원도 그렇고,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니 생산량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월 생산량이 얼마나 되나요?”
“10월에 500정을 생산했습니다.”
“계획보다 200자루가 많군요. 판매는 어떤가요?”
“모리스 이사의 활약으로 470정을 팔았습니다.”
창수는 월래스 주식 80%를 소유하고 있다. 투자한 금액은 2,000만 달러. 그런데도 경영에 간섭하거나, 업무 보고를 받지 않았다.
리버스드로우 컴파운드크로스보우에 대해 깊은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간섭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판단이 옳았다. 볼트22 생산량이 예상보다 60% 향상됐고, 생산량 94%를 판매했다.
이제 월래스는 추가로 자금을 지원하지 않아도 운영이 가능한 정상적인 회사가 됐다.
“재고는 얼마나 되나요?”
“100정입니다. 대표님이 오실 걸 대비해서 물량을 남겨 뒀습니다.”
“좋습니다. 제가 모두 구매하죠.”
창수가 월래스를 인수한 이유는 볼트22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함이다, 앤드류는 그걸 인지하고 창수 몫을 특별히 보관하고 있었다.
볼트22 판매가 너무 잘돼서 물량 확보가 어려울 가능성을 염두에 두던 창수의 걱정이 단숨에 사라졌다.
“포장을 지시하겠습니다. 그리고 볼트23 시제품이 나왔습니다.”
“볼트23이면, 발사 속도를 향상한 제품을 말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예산이 충분해서 연구 시간이 단축됐습니다. 당장 판매할 정도는 아니지만, 테스트를 계속해 개선해 나가면, 올해 안에 공식 판매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오! 역시 돈이 돈값을 하는군!’
예상 밖의 희소식이다. 앤드류는 2022년 말까지 1분에 화살을 6발 발사하는 신제품을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창수는 12월 말까지 기본적인 기능을 갖춘 프로토타입만 나와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판매를 언급할 수준의 시제품이 나왔다.
창수가 태스크 포스팀을 구성하고, 1,000만 달러 예산을 지원한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시제품을 봐야겠군요.”
“그러시죠! 살펴보시고, 시험 발사도 해 보십시오!”
앤드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수개월 동안 밤잠을 설쳐가며 만든 성과를 자랑하고 싶은 신명 난 얼굴을 보이며.
“이건 탄창인가요?”
“맞습니다. 화살 10발이 들어 있습니다.”
볼트23 시제품 아래에 긴 박스 모양의 통이 달려 있다. 창수는 직감적으로 그곳에 화살이 담겨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소총이 그러하듯 한 발씩 장전하고 쏘는 방식으로는 발사 속도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
탄창 역할을 하는 화살통을 채용한 건 실용적이면서 합리적인 선택.
“어떻게 작동하는 건가요?”
“손잡이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모터가 활시위를 당깁니다. 곧바로 화살이 올라오고, 활시위와 오늬(화살 후방)를 밀착하게 만들어 고정합니다. 이때 화살을 발사하면 됩니다. 나머지 9발은 이 과정의 반복입니다.”
‘음……. 조금 복잡한데.’
매우 불친절하다. 초보자에게 볼트23을 주면 제대로 활용하지 못할뿐더러 망가트릴 가능성이 있다.
현시점에서 상품화하기 어려운 진입 장벽이 있는 시제품.
- 꾹!
- 위이잉!
- 달깍!
창수가 손잡이 버튼을 누르자, 앤드류의 말대로 화살이 발사 준비 상태가 됐다. 걸린 시간은 5.5초.
- 쒜에엑!
- 팍!
‘위력이 그대로군!’
발사 속도가 빨라져도 발사된 화살의 위력이 낮으면, 효용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볼트23에서 발사된 화살의 위력은 볼트22와 같았다.
일단은 합격.
- 달깍!
- 쒜에엑!
- 팍!
“대표님! 대단하십니다! 연속 발사 신기록입니다!”
볼트23은 화살 10발을 99.5초에 발사하도록 설계됐다. 첫 번째 장전이 5.5초, 재장전 시간이 6초, 장전 후 목표물 조준 시간이 4초.
그러나 창수는 화살 10발을 78초에 발사해 모두 과녁에 정확히 맞혔다. 목표물 조준 시간을 2초 이하로 줄였기에 가능한 일.
앤드류는 볼트23의 성능을 알아보기 위해, 직원 대부분에게 사격 연습을 시켰다. 그리고 10발을 가장 빨리 발사한 속도가 89초였다.
“사격 연습을 꾸준히 해서 적응이 빠른 겁니다. 완전히 익숙해지면, 70초도 가능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분당 8.5발이군요. 분당 12발이 넘으면 일반 소총과 견줄 수 있습니다.”
“재장전 시간을 4초로 낮추면 가능합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해 보겠습니다! 오늘 대표님 사격을 보니, 앞으로 가야 할 목표가 확실하게 보입니다!”
소총으로 목표물을 조준하고 발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적으로 5초.
앤드류는 볼트22의 재장전과 발사 속도를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소총에 버금가는 발사 속도는 감히 생각해 보지도 못했다.
그 고정관념이 오늘 창수에 의해 깨진 것이다.
“2,000만 달러를 투입하겠습니다. 예산 걱정하지 말고 볼트24를 개발하십시오. 앤드류 이사님이라면 충분히 개발할 수 있을 겁니다.”
“지원 감사합니다! 반드시 소총에 버금가는 제품을 만들어 내겠습니다!”
“성공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볼트23은 추가 개발을 중단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볼트24를 개발하는 데 중복 투자 하는 건 효율이 떨어지죠.”
창수를 만나기 전까지, 앤드류에게 볼트23은 애지중지 아끼는 보물이었다. 그러나 보다 높은 목표가 정해진 지금, 관심을 줄 여유가 없다.
“볼트23 제작에 들어가는 재료가 얼마나 남아 있나요?”
“대략 5정 정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 볼트23 5자루를 먼저 만드세요. 시제품은 샘플로 회사에 보관하고, 5자루는 제가 구매하겠습니다.”
“굳이 그러실 필요 있을까요?”
“비록 적은 양이라도 개발을 했으니 생산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볼트23 자체도 명품입니다.”
“그렇군요. 대표님 말씀이 옳습니다. 개발에 900만 달러가 들어간 제품을 그냥 죽일 수는 없죠.”
볼트23이 비록 상업적인 가치가 떨어지지만, 뛰어난 성능을 가진 무기다.
볼트24가 개발될 때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 분명하다. 그때를 기다리며 명품 무기를 사장시키는 건 어리석은 일이리라.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 미들급 무기로 볼트23이 필요할 수 있다.
- 척!
“볼트23 활을 이것으로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요?”
“동물의 뼈인가요?”
“탄성이 강화된 신소재입니다. 볼트22 활과 똑같은 크기입니다.”
“탄성이 좋은 신소재라면 언제든지 환영이죠! 볼트23의 성능을 향상할 겁니다!”
“5자루 언제까지 제작이 가능할까요?”
“4일까지 될 겁니다.”
창수는 활대 모양으로 성형한 와이번 날개뼈 5개를 앤드류에게 건네주고, 볼트23을 제작하게 했다.
상급 미궁에서 획득한 제작 재료가 성능 좋은 무기로 변하는 선순환 구조가 시작되는 상황.
그리고 창수는 탄창 역할을 하는 화살통을 최대한 많이 제작하라고 주문했다. 그래야 볼트23의 연사력을 극대화할 수 있으니까.
4.
“조나단 창 씨……. 중국인인가요?”
“아닙니다. 여권에 나와 있는 것처럼, 저는 미합중국의 시민입니다.”
11월 2일 오후 7시, 일본 나리타 국제공항에서 조나단 창이라는 미국인이 입국 심사를 받았다.
출입국 심사관은 조나단 창에게 껄끄러운 질문을 몇 개 던졌다. 중국계이기에 미덥지 않게 여긴 것.
이에 조나단 창은 유창한 영어로 자신이 미국인임을 강조했다.
“음……. 그렇군요. 좋은 관광되시기 바랍니다.”
“글쎄요, 공항부터 대접이 시원찮은데 즐거운 관광이 될까요?”
“…….”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의 전승국이고 일본은 패전국이다. 감히 패전국 공무원이 승전국 시민을 중국인으로 여기다니?
조나단 창의 말에 노기가 섞여 있었다.
그리고 출입국 심사관은 겸연쩍은 얼굴을 보이며 미국 시민권자의 눈길을 피했다.
‘휴……. 중급 통역 반지를 가져오길 잘했어. 자칫하면 들통날 뻔했네.’
조나단 창의 정체는 창수다. 마법스크롤을 사용해 얼굴을 바꾸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위조 여권을 사용해 일본에 잠입한 거다.
미국 여권을 소지한 여행객은 도장만 찍고 대충 보내 주는 것이 나리타 공항의 일반적인 풍경이다.
지금처럼 취조하듯 나서는 건, 조나단 창이라는 이름이 중국과 연관돼 있기 때문이리라.
미국과 중국이 무역 전쟁을 벌이면서, 시민권을 가진 중국계 미국인도 눈총받는 풍조가 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창수는 한국어, 중국어, 만주어, 몽골어, 일본어만 통역할 수 있는 하급 통역 반지 대신 중급 통역 반지를 착용하고 있다.
중급 통역 반지는 영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독일어, 프랑스어를 포함해 주요 30개 언어를 통역할 수 있다.
상대방이 마법사가 아니라면, 통역마법 사용을 눈치채지 못하기에, 창수가 수월하게 출입국 심사를 통과할 수 있었다.
만약, 하급 통역 반지를 가지고 있었다면, 공항에서부터 한바탕 활극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 * *
“훗쓰시에 중요한 일이 있으신가요?”
나리타 공항에서 공유 택시를 부른 창수에게 택시 기사가 신기한 듯 물어본다. 나리타 공항에서 지바현 훗쓰시까지는 62km, 택시비만 2만 엔 이상 나온다.
간혹 나리타 공항에서 도쿄 시내로 택시를 타고 가는 손님이 있기는 하지만, 훗쓰시 같은 변두리로 장거리 주행 하는 건 처음이다.
돈 벌어서 좋기는 한데, 궁금증이 절로 생겨 질문을 던졌다.
“거기 사는 친구가 몸이 아프다고 해서요. 급하게 가야 합니다.”
“아! 그렇군요! 신속하고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중국인인가? 아니면 혼혈? 일본말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창수에게 호감을 느낀 택시 기사는 뛰어난 운전 솜씨를 보이며, 90분 걸리는 길을 75분 만에 주파했다.
“저쪽에 세워 주세요.”
“어라. 저기는 일반 주택이 없는 곳입니다.”
“친구가 공장 내부에 있습니다.”
“아하. 그렇군요.”
훗쓰시에 도착한 창수는 주택가와 멀리 떨어진 대형 공장 인근에 내려 달라고 말했다. 친절한 택시 기사가 착오가 있을 가능성을 얘기했으나, 창수의 설명을 듣고, 곧바로 납득했다.
‘떡밥은 이 정도 뿌렸으면 됐고, 이제 저 안으로 들어가면 되는 거군.’
우시다 제작소라는 간판을 가진 공장 인근에 내린 창수는, 멀어지는 공유 택시를 바라보며, 사람을 잘 만났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창수의 목적지는 우시다 제작소 내부.
정문은 언뜻 한가해 보이지만, 삼엄한 경비가 펼쳐져 있었다. 정문 안쪽에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고, 소총으로 무장한 경비병 10명이 지키고 있었다.
장갑차 수준의 무력을 동원하지 않는다면, 정면 돌파가 불가한 상태.
게다가 레이저 감지 장치까지 붙어 있어, 투명망토를 가동해도 내부로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블링크!’
- 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