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22장. 성동격서
1.
박규황을 처단한 창수는 시체를 시체낭에 넣은 뒤, 평행우주 조선 한양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북한산 깊숙한 곳에 마련한 매장지에 박규황의 시체를 묻었다.
매장지에는 박규황 이외에도 일본 대사 기르시 유우고와 총괄 공사 소바라 미치오, 사사키 재단 경제협력단장 타니와 유우시, 그리고 하이퍼 에이전시 대표 강희만 등……. 일본 세력의 주요 인물이 묻혀 있다.
‘나 이외의 생명체는 평행우주를 넘을 수 없어. 나머지 놈들도 여기에 처리하면 되는 거야.’
한국에서도 시체를 처리할 방법이 있으나, 꼬리를 잡힐 가능성이 크다.
살아 있는 개와 고양이, 새를 연달아 실험해 봤다. 모두 평행우주를 넘지 못했다. 이건 창수가 사법 당국의 추적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창수는 평행우주의 또 다른 효용성을 인식하고, 과감한 작전을 시도했다.
[판사 2명 실종! 누구의 짓인가?]
[경찰과 검사에 이어 판사까지 사라졌다!]
[한국 사법 체계 이대로 무너지는 것인가?]
창수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친일파 14명을 추가로 처단했다. 그중에는 고위급 경찰 3명, 검사 3명, 그리고 판사 2명이 포함돼 있다.
학계와 시민 단체에 속한 친일파도 실종됐으나, 사법 체계를 담당하는 전문가들이 당했다는 점에서 언론에 큰 충격을 줬다.
- 사라진 인간들 면면을 보니, 전혀 동정이 안 가는데.
- 맞아. 일본으로 건너가 방사능이나 처먹을 것들이 한국에서 살고 있었어.
- 누가 끌고 갔는지 모르지만, 평생 노예처럼 부리면 좋겠다.
- 일본 돈 처먹고, 뒷감당 못 하니까 잠수 타는 것 아닐까?
- 헐! 그럴 가능성도 있겠네.
언론의 우려와 다르게 국민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실종된 자들의 행적을 따라가 보니, 친일 행위가 진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평소라면 실종자들에게 야유를 보내거나 조롱하지 않을 거다. 그러나 사사키 재단 뇌물 수수 사건과 허정철의 죽음이 반일 여론을 정점으로 만든 상황.
친일과 관련된 누구도 동정받을 수 없다.
* * *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본부장님, 말씀 좀 해 보세요?”
“가용 인력을 총동원해 증거와 정황을 모으고 있습니다. 전문 프로파일러도 다수 투입했지만, 아직까지 사건의 윤곽도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뭐라고 결론 내리기 어렵습니다.”
경찰-검사-판사 실종이 연달아 발생하자 청와대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치안의 최종 책임이 대통령에게 있으니 당연한 일.
민정수석 최한식이 답답한 마음에 국가수사본부장 이영수에게 실종 사건의 해법을 물었으나, 돌아온 답은 ‘알 수 없다’였다.
“검찰 쪽은 어떻습니까? 실마리가 보이기는 하는 건가요?”
“실종자 대부분이 일본에 친근한 자세를 유지한 사람들입니다. 허정철의 죽음에 분노한 세력이 벌이는 테러라는 의견이 대검의 중론입니다.”
“하지만 실종된 박규황 의원은 대표적인 반일 인사 아닙니까? 앞뒤가 안 맞는 결론 아닌가요?”
“범인이 한패가 아니라 대립하는 세력이 있다면, 설명이 됩니다.”
“친일 성향 세력이 박규황 의원을 납치했다는 건가요? 그렇다면, 납치 시작을 친일 세력이 먼저 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 시국에 그게 가능합니까?”
대검차장 김성현이 그럴듯한 가설을 말했으나, 여전히 허점이 많다.
친일 세력이 국민의 눈총을 받는 상황에서 반일의 선봉에 섰다고 알려진 박규황을 납치하면, 타는 불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되고 만다.
“흠……. 좀 더 조사를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차장님 그리고 본부장님, 지금 국정원과 정보사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VIP께서 원하는 답을 그쪽에서 먼저 올리면, 검찰 경찰 모두 눈 밖에 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서로 협력해야 할 때입니다.”
“음…….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총장님께 합동 수사를 추진하도록 건의하겠습니다.”
“합동 수사에 저도 찬성합니다. 이 황당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힘을 모아야 하니까요.”
검경 수사권 조정의 갈등이 아직도 남아 있다. 경찰과 검찰의 관계가 좋지 않은 상황.
그러나 수사가 먼저다. 그리고 정보기관에서 넘어온 수사의 주도권을 지켜야 한다.
오월동주. 서로 감정이 안 좋은 상대라도 위기의 순간이 오면 힘을 합쳐야 한다.
김성현과 이영수는 지금이 그때라는 걸 알고 합동 수사에 합의했다.
* * *
“석 팀장, 일본 낭인들 움직임 알아봤어요?”
“국장님, 사망자가 60명 이상 난 것 같습니다.”
“어머! 그렇게나 많이 죽었다고요?”
국정원 해외정보국장 김경화는 동아시아 3팀장 석연오의 보고에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국정원에 몸담은 지 30년, 산전수전 다 겪었지만, 한국에서 단일 사건으로 60명 이상이 죽은 건 손에 꼽힌다.
“일본 내각정보실에서 한국에 급파한 인원만 30명입니다. 게다가 시체를 반출할 때 사용하는 냉장 컨테이너가 2대나 들어왔습니다.”
“컨테이너가 2대면 120명도 담을 수 있는 거잖아요.”
“그렇습니다. 사망자가 100명을 넘을 수도 있습니다.”
“음……. 이유가 뭐죠? 우리 국민의 분노에 눌려 쇼크사한 건 아닐 거고, 우리 회사나 정보사에서 병력을 보낸 것도 아니잖아요.”
창수에 의해 수도권에 있던 일본 내각정보실 인원 대부분이 몰살당했다.
지방에도 내각정보실 인원이 있지만, 111명에 달하는 시체를 일본으로 빼돌리는 작업을 맡기에 역부족.
내각정보실은 사체 처리 전문팀과 수송 전문팀을 한국에 급파했다. 그리고 동시에 시체 120명을 실어 나를 수 있는 냉동 컨테이너 2대를 한국으로 보냈다.
보고를 들은 김경화는 일본 측 피해가 예상보다 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의문은 ‘훈련받은 요원을 누가 대량 살상 했느냐?’이다.
“좀 더 연관성을 캐 봐야 하겠지만, 일본계 대부업계에서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열무머니를 말하는 건가요? 그 회사는 지금 신규 대출을 안 하고 있잖아요.”
“열무머니가 러시아 마피아와 접촉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혼자가 아니라 다른 업체들도 함께 움직이고 있습니다.”
일본계 대부업체 3곳에서 27명이 죽었다.
아라츠 모리무네는 부하들을 살해한 무기가 내각정보실이 해외 작전에서 사용하는 것과 동일하다는 보고를 받았다.
심복들이 비참하게 죽고, 대대손손 일 안 하고 먹고살 수 있는, 3조 원 이상을 강탈당한 상황에서 그저 손 놓고 있을 수 없었다.
클로버머니와 해바라기머니도 같은 자에게 당했다고 하니, 러시아 마피아 킬러를 고용해, 응징에 나선 거다.
“그것들이 미쳤나!? 감히 대한민국 영토에서 마피아 장난을 하다니!? 대테러부대를 준비해야겠어요!”
“그래야죠. 그런데 대부업체들 움직임을 보니, 거기서도 사망자가 꽤 나온 것 같습니다.”
“일본계 대부업체와 일본 정보기관이 충돌했다는 거예요?”
“그런 정황이 보입니다.”
“정황 가지고는 안 돼요. 좀 더 확실한 증거를 확보해야 하고, 충돌한 이유를 알아야 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력 보강이 필요합니다.”
“알았어요. 2팀하고 4팀에서 필요한 인원을 차출하세요.”
동아시아 3팀은 한국에서 활동하는 일본 세력의 움직임을 감시하는 곳이다. 국정원에서 일본의 움직임을 가장 빨리 알아내고 민감하게 반응한다.
팀장 석연오는 내각정보실과 일본계 대부업체가 충돌한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고, 본격적인 증거 수집을 위해 인원 충원까지 받았다.
이로써 특별한 변수가 나오기 전까지 국정원에서 창수에게로 눈을 돌리는 일은 없을 거다.
창수의 노림수가 제대로 먹히고 있다.
2.
10월 28일 금요일, 뱌체슬라프가 창수에게 업무 보고를 올렸다.
“대표님, 10월 암브로시아 주문 마감 결과가 나왔습니다.”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나?”
“정신없이 뛰다 보니 한 달이 지난 거죠. 하하.”
“수고했다, 뱌프. 그래, 주문량이 얼마야?”
“암브로시아 11,515톤, 암브로시아 플러스 11,745톤입니다.”
“판매량이 태국보다 많군.”
“당연하죠. 한국은 1인당 GDP 3만 달러가 넘는 선진국입니다. 태국 시장과 비교할 수 없죠.”
태국 지사에서 판매한 암브로시아 플러스의 양은 대략 11,500톤이다. 지난달에 비해 2,000톤 상승한 것으로 빠른 성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지사 판매량은 기대를 월등히 넘고 있다. 총량에서 태국 지사의 2배가 넘고, 암브로시아 플러스만 따로 봐도 태국 지사 판매량을 넘었다.
뱌체슬라프는 판매량 폭발의 원인을 한국의 경제력에서 찾았다.
“태국 지사 판매에서 태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5%에 불과해. 중동 산유국이 가장 큰손이고 유럽 국가 판매 비중도 25%야. 한국 시장만으로 태국 지사의 2배를 판매하는 건 어려워.”
“그러면 누가 사 가는 걸까요?”
“아무래도 중국에서 주문을 내는 것 같아.”
한국 지사 10월 판매액은 1조 5,000억 원이 넘는다. 이 금액에 단순히 12를 곱하기만 해도, 연간 매출액 18조 원이 나온다.
단숨에 대기업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수준.
암브로시아가 대박 아이템이기는 하지만, 론칭 첫 달에 기록적인 판매량를 올린 것은 한국 시장의 힘만으로 불가능하다.
창수는 한국의 유행을 따르는 중국인 일부가 암브로시아를 구매했다고 생각했다.
“그럴 수 있겠네요. 이참에 중국에 지사를 내는 건 어떨까요?”
“아니야. 지금이 좋아.”
“왜요? 소비자에게 가까워질수록 판매가 증가한다고 대표님이 말하지 않았나요?”
“그랬지. 하지만 그건 일반 상품이고, 암브로시아는 명품이야.”
“어떤 차이가 있는 거죠?”
“명품 가방을 생각해 봐. 같은 브랜드에 같은 품질을 가진 가방을 중국에서 팔고, 이탈리아에서 팔 때, 소비자가 어디를 선호할까?”
“아하! 제품의 스토리를 보는 거군요.”
“맞아. 그리고 중국이 짝퉁 천국이라는 걸 생각해야 해.”
“하긴 가짜 쌀도 만들어 내는데, 가짜 암브로시아도 만들어 내겠죠. 하지만 지금도 중국에서 짝퉁을 만들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그럴 가능성이 커. 그래서 중국에 지사를 만들면 안 되는 거야. 만약 중국에서 짝퉁 암브로시아가 나오면, 중국에서 유통되는 암브로시아는 모두 가짜라고 말하면서 수습할 수 있으니까.”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창수는 중국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한 경험이 있다. 그리고 중국 시장에 멋모르고 들어갔다가 패가망신한 사람을 여럿 봤다.
중국 시장이 커 보이지만, 사업을 파탄 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함정이 수두룩하다.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가 골치 아픈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창수는 중국인이 한국에서 암브로시아를 사 가는 것이 장기적으로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
“그건 그렇고. 다음 주 화요일에 미국 출장 갈 거니까. 월요일에 처리할 기안 다 올려.”
“미국에 지사 만들 생각이세요?”
“가서 상황을 보고 결정할 거야.”
암브로시아 대량 생산 기반을 마련하고, 판매가 궤도에 오르자 미국행을 결정한 창수.
미국은 세계 최대 소비 시장이다. 암브로시아 판매량 확대를 위해 미국에 지사를 내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리라.
그리고 창수가 미국에서 할 일도 여럿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