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21장. 응징의 시간
9.
“누구냐!?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 정체를 밝혀라!”
이곳은 내각정보조사실이 관리하는 안전 가옥. 경비와 유지를 위해 배치된 인원 모두 일본 총리 직속 정보기관 소속이다.
총괄 공사 소바라 미치오는 가면을 착용한 창수가 등장하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반사적으로 신분을 물었다.
그러나 어리석은 물음이다. 가면까지 쓴 침입자가 정체를 밝힐까?
- 퓩! 퓩! 퓩!
“큭!”
대답은 총알 세례. 창수는 소음기가 달린 권총으로 소바라 미치오를 단번에 살해했다.
- 꾹!
대사 기르시 유우고는 놀랐지만,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총괄 공사가 눈앞에서 죽는 걸 보면서도, 침착하게 창수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눌렀다.
“그거 아무리 눌러 봐야 소용없어.”
“전파 방해를 하는 건가?”
“아니. 경비하는 놈들이 다 죽어서, 너를 도와줄 똘마니가 하나도 없다는 거지.”
“흠……. 그러면 나도 죽인다는 말이군.”
내각정보실은 일본 최고 정보기관이다. 예산만 따지면 미국 CIA에 이어 세계 2번째로 규모가 크다.
이곳은 내각정보실이 건설한 안전 가옥 중에서 상급에 속하는 보안 시설과 경비 병력을 갖추고 있다. 기르시 유우고가 실질적인 집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장소.
안전 가옥 위치를 알아낸 정보력, 20명에 달하는 경비 병력을 뚫고 내실까지 진입한 무력을 생각하면, 창수의 손아귀를 벗어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터.
기르시 유우고는 담담하게 죽음을 이야기했다.
“당연히 너는 여기서 죽는다. 그동안 친한파 행세를 하던 가증스러운 네놈의 인생도 오늘로 끝나는 거지.”
“행세를 한 것이 아니다. 나는 한국의 안전과 발전을 바라고 있다.”
“아. 그러셔? 그런 놈이 한국 전역을 타격하는 공격 미사일 개발에 앞장섰군.”
“한국의 번영은 일본의 발전과 함께해야 한다. 지금처럼 한국의 힘이 과도하게 강하면, 양국이 협력할 수 없게 되는 거다.”
“하하하. 양국의 협력? 협력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네놈이 말하는 협력은 한국이 일본 가랑이 사이로 기어 들어가 머슴 역할을 하는 거겠지.”
“…….”
“왜 잘난 입으로 대답을 못 하지?”
일본에서 친한파라 분류되는 인물 상당수의 속내는, 일본이 형 노릇 하고 한국이 아우 역할을 맡아 화목(?)하게 지내자는 것이다.
기르시 유우고도 마찬가지. 한국이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며, 경제-군사-문화에서 일본을 추월하는 상황이 오자, 친한파의 탈을 벗고 음흉한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대국이다. 한국은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일본이 언제부터 대국이었지? 산과 쓸모없는 땅으로 이뤄져, 세종 때만 하더라도 조선 경작지의 25%밖에 없었다. 만성적인 식량난으로 조선에 쌀 수출해 달라고 애걸하던 소국이 일본이란 걸 모르나?”
“그……. 그건…….”
“임진왜란 이후에 늪과 펄이던 간토평야를 개간해, 1800년대에 가서야 경작지를 두 배로 늘렸지. 그런데도 일본 경작지는 조선의 60%에 불과했어. 일본의 경작지가 조선과 대등하게 된 건, 홋카이도를 본격적으로 개간한 메이지유신 이후다. 일본이 정말 역사적으로 대국이냐?”
평행우주 너머 일본은 홋카이도를 손에 넣지 못해 국토 면적이 29만km²에 불과하다. 게다가 개간 사업으로 간토평야를 완성한 것도 불과 20년 전이다.
아직까지 조선에서 식량을 수입하는 상황.
창수는 조선에서 발행한 많은 서적을 통해, 일본이 역사적으로 한국에 의존한 약소국가라는 걸 잘 알고 있다.
한국과 조선의 기록을 비교하며, 일제와 친일파들이 왜곡한 한국과 일본의 진정한 역사를 알고 있는 창수에게 역사를 들먹이는 건 공자 앞에서 문자 쓰는 격이다.
“어쨌든! 일본은 한국보다 대국이다! 이 사실은 변하지 않아! 그리고 대국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 반드시 공격 미사일이 필요해! 누구도 우리를 막을 수 없어!”
“어리석은 놈. 일본이 공격 미사일을 비밀리에 개발할 가능성이 사라졌다는 걸 모르냐?”
궁지에 몰리니 본성이 드러난다. 위기에서도 점잖게 대응을 하던 기르시 유우고는 창수에 의해 진실이 까발려지자, 목소리 톤을 높여 망상과 열망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러나 창수는 기르시 유우고의 강변을 가볍게 무시하고, 섬뜩한 말을 이어 갔다.
“무슨 헛소리야!?”
“네놈이 일본 공격 미사일 정보를 나에게 알려 줄 거니까. 나는 그 정보를 세계에 공표할 거다.”
“칙쇼! 개소리하지 마! 조센징이 협박한다고 내가 입을 열 것 같아!?”
“후후후. 걸려들었군. 역시 일본 놈들은 머리가 나빠. 조건 충족 완료.”
“뭐……. 뭐라고!?”
- 슥!
- 찌익!
“크윽!”
창수는 자백마법 스크롤을 사용해 기르시 유우고가 알고 있는 공격 미사일 정보를 모두 뽑아냈다.
이어서 안전 가옥에 있는 비밀금고를 깨끗하게 턴 뒤, 기르시 유우고를 처단했다.
- 슥!
- 척!
창수는 시체낭에 기르시 유우고와 소바라 미치오를 담은 후, 마법자루에 집어넣었다.
그 뒤 경비병들이 가지고 있던 무기와 소지품을 모두 수거하고, 안전 가옥에 설치된 보안 장비와 기록물을 처리했다.
2시간에 걸친 작업을 꼼꼼하게 마친 창수는 다음 목표를 향해 이동했다.
10.
창수는 서울과 경기도에 위치한 내각정보실 안전 가옥 5곳을 기습해 추가로 91명을 처단하고, 정보와 장비, 그리고 재물을 확보했다.
창수가 노린 다음 대상은 일본계 대부업체였다.
IMF 사태 이후 한국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일본계 대부업체는 한때 66%에 달하는 법정이자 상한을 활용해 한국에서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다.
점차 한국 경제가 안정을 찾으면서 이자율이 낮아지고 코로나 창궐로 영업 환경이 나빠지면서, 일본계 대부업체의 활동이 잠잠해졌다.
그러나 20년 이상 쌓아 놓은 막대한 부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사……. 살려 주십시오! 뭐든지 하겠습니다!”
창수는 사사키 재단 경제협력단장 타니와 유우시와 일본 대사 기르시 유우고로부터 뽑아낸 정보를 통해, 한국에 일본계 대부업체의 실질적인 소유자들이 거주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일본이 방사능에 오염된 상황에서, 안전한 곳을 찾아 한국으로 기어들어 온 것.
창수는 열무머니 명예 회장 아라츠 모리무네의 자택을 기습해, 경호원 10명을 처단했다.
아라츠 모리무네는 무자비한 괴한의 살행을 보고, 바지에 오줌을 지리며 목숨을 구걸했다.
“비밀금고 안을 보고 결정하마. 내용물이 시원치 않으면 너는 죽은 목숨이야.”
“즉시 열겠습니다!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 드륵! 드륵!
- 덜컹!
“이게 전부냐?”
“그……. 그렇습니다!”
“칙쇼! 이 버러지 같은 놈! 시로(내각정보조사실)를 뭐로 보고 거짓말을 해!”
- 팍! 팍!
“크아악!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아라츠 모리무네가 연 비밀금고에는 제법 값나가는 귀중품과 골동품들이 들어 있었으나, 열무머니가 긁어모은 재물을 생각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비밀금고 털이에 익숙한 창수는 아라츠 모리무네가 거짓말하고 있다는 걸 단번에 알아차리고, 주먹을 들어 두드려 패기 시작했다.
창수의 지능적인 폭력에 저항 의지를 모두 잃은 아라츠 모리무네는 가지고 있는 전 재산을 내놔야 했다.
“커커커. 많이도 모아 놨군!”
“…….”
“아까워하지 마라. 이 재물은 모두 대일본국의 영광을 위해 바쳐질 거니까.”
“하이! 하나도 아깝지 않습니다!”
창수는 평행우주 너머 조선에서 송본귀금속과 흑룡회를 상잔시킨 방법을 그대로 재활용했다.
통역마법을 사용해 내각정보조사실 요원인 것처럼 꾸민 것.
물론, 아라츠 모리무네 같은 산전수전 다 겪은 사채업자가 쉽사리 함정에 빠질 리 없다.
하지만 창수는 완벽한 일본어를 구사하며 내각정보조사실 요원이 사용하는 무기로 경호원들을 처단했다.
눈에 보이는 증거가 명확한 상황에서 아라츠 모리무네가 창수의 큰 그림을 알아차릴 가능성은 매우 낮다.
- 퍽!
“큭!”
창수는 아라츠 모리무네를 기절시킨 뒤, 비밀금고 3개에 담겨 있는 달러, 금, 보석, 골동품, 무기명채권, 그리고 각종 서류를 모두 챙겼다.
대충 계산해도 3조 원이 넘어가는 거금.
열무머니 이외에도 일본계 대부업계 두 곳을 더 습격한 창수는 2조 원에 달하는 재물을 추가로 챙겼다.
일본계 대부업체가 한국에서 벌어들인 수익 상당 부분이 창수의 손에 들어온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재물을 확보했다는 것을 넘어, 일본 자금의 한국 경제 침탈에 치명타를 가했다는 의의를 가진다.
* * *
“너 누구야!? 나 박규황이야! 감히 집권 여당의 4선 의원을 납치해!?”
“4선 의원이면 뭐 하나? 친일파 매국노에 불과한 걸.”
“무슨 소리냐!? 그게!? 나는 일본이 가장 싫어하는 대한민국 정치인이야!”
한국에 침투한 일본 세력의 핵심을 제거한 창수는 다음 단계로 친일 매국노 청산에 나섰다.
친일파가 워낙 광범위해서 단번에 처단하지 못하고, 가장 악질적이면서도 한국에 해가 되는 친일파를 골랐다.
그중 악질 중의 악질이 집권 여당 중진 의원 박규황이다.
“나도 깜짝 놀랐다. 타니와 유우시와 기르시 유우고가 너의 실체를 알려 주지 않았다면, 평생 네놈을 항일 투사로 알고 있었을 거야.”
“타……. 타니와…….”
“많이도 해 처먹었더군. 무려 700억 원. 역시 거물이라 다른가?”
이 말은 진심이다. 창수는 박규황의 이름을 타니와 유우시로부터 들었을 때, 정보 공작을 벌인다고 생각했다.
자백마법도 완전하지 않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기르시 유우고가 같은 말을 하자, 박규황이 항일을 가장한 악랄한 친일파 거두였다는 걸 깨닫게 됐다.
“모든 것을 해명할 수 있다!”
“뭘 해명한다는 거지? 700억 원을 사용해 친일파를 양성한 너의 무용담이라도 말하고 싶은 거냐?”
“대한민국이 일본 국력의 70%를 따라가기 전까지, 우리는 일본에 도전해서는 안 된다! 나는 그 속도 조절을 한 거다!”
“개소리하고 자빠졌네! 한국은 이미 경제-군사-문화에서 일본을 추월했어! 일본에게 남은 건 동남아에 꽂은 빨대뿐이야!”
“아니야! 아직도 일본은 세계 3대 경제 대국이다! 그리고 대외 순자산만 3조 4,000억 달러에 달하는 강력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다!”
“대외 순자산이 모두 일본 정부 돈이냐?”
“그건…….”
“일본 정부가 가진 순자산은 1조 4,000억 달러에 불과해. 나머지는 일본 기업과 개인이 가진 자산이다. 게다가 일본 정부는 12조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부채를 가지고 있지. 일본 경제는 빛 좋은 개살구야. 그리고 그 개살구가 미국과 맺은 무한정 통화 스와프로 유지되는 거지. 이래도 일본 경제가 강하다고 말하는 거냐?”
“…….”
박규황은 창수의 논리적인 주장에 입을 다물어야 했다.
사실 경제 지식에서 상대가 안 된다. 창수의 주장은 금융 공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김근홍이 전해 준 지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제 선택해라. 네놈의 친일 행각을 스스로 밝히고 원죄를 씻으며 살아가든가, 아니면 내 손에 죽든가.”
사실 창수는 박규황을 평행우주 너머 금나라로 끌고 가 마법으로 혹독한 고문을 가하려 했다. 이런 악질을 쉽게 죽여 줄 수 없기에.
그러나 기절한 박규황을 평행우주로 이동시킬 수 없었다. 평행우주 이동에 제약이 있던 것.
은원이 분명한 창수는 박규황으로 인해, 평행우주의 비밀 하나를 알게 됐다 여기고, 마지막 기회를 줬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 그리고 내 삶은 틀리지 않았다.”
“뼛속까지 매국노군! 그래 네 소원대로 죽여 주마!”
- 퓩! 퓩! 퓩!
“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