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21장. 응징의 시간
7.
“말귀가 안 통하니, 대사관에 연락할 수밖에 없겠군요. 엄청난 배상금을 지불해야 할 테니 각오하시죠.”
중무장한 타격대 병력 20명이 총구를 겨누고 경고사격까지 했지만, 무레 코신은 당당했다.
일본인의 범죄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한국 공권력의 약점을 파악하고, 과감하게 파고든 것.
- 찰칵! 찰칵!
“사사키 재단 관계자신가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저는 한강신문 기자 박대철입니다.”
“…….”
“사사키 재단이 한국 언론인을 납치하고 폭행한 것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 그건…….”
현장에 기자가 있었다. 박대철이 경찰 타격대 뒤에서 사건을 취재하다가 무레 코신이 강짜를 부리자 등장한 것이다.
사사키 재단은 한국의 정치, 경찰, 검찰을 우습게 여긴다. 두려워하는 건 국민의 여론.
기자는 여론 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경찰에게 고압적인 자세를 보이던 무레 코신은 박대철의 질문에 얼음처럼 굳어 버렸다.
“빨리 구급차 부르고! 범행에 가담한 모든 범법자를 체포해!”
무레 코신이 박대철에게 제압당하자, 경찰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집단 구타로 정신을 잃고 쓰러진 허정철을 병원으로 후송하기 위해 앰뷸런스를 부르고, 납치와 폭행에 가담한 친일 매국노와 사사키 재단 관계자에게 수갑을 채우기 시작했다.
“박 기자님, 이번에 도움이 컸습니다.”
“아닙니다. 기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 덕분에 특종도 잡았고요.”
상황 정리가 끝난 뒤, 현장 지휘를 맡은 수사관이 박대철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박대철은 무레 코신의 건방진 콧대를 꺾은 것에 사의를 표한다고 생각하며, 가볍게 인사를 받았다.
“그런데 어떻게 이 창고 위치를 아신 건가요?”
“예!? 무슨 말씀이신지?”
“아……. 정보원을 보호해야겠죠.”
“정보원이요?”
“아닙니다. 그냥 지나가는 말입니다.”
국가수사본부가 허정철의 집 인근에 병력을 배치하기는 했으나, 사사키 재단의 창고 위치를 알고 있었던 건 아니다.
정확한 창고 위치를 전해 준 건 박대철이다.
수사관은 이제 와서 시치미 떼는 박대철을 의아하게 생각하다가 곧바로 자기가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
기자와 정보원의 관계를 모른 척하는 것이 불문율. 정보원의 존재와 정보 소스를 캐묻는 건 기자와 싸우자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박대철은 수사관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 * *
수사관이 무슨 말을 했든 중요하지 않다. 지금 시급한 것은 다른 언론이 이 사건을 눈치채기 전에 특종을 내야 한다는 점.
<박 기자, 무슨 일이야? 새벽에 전화를 다 하고?>
새벽에, 그것도 토요일 새벽에 직장 부하로부터 전화가 오면, 누구라도 짜증이 날 거다. 박대철의 전화를 받은 천상현도 마찬가지.
<대형 사건이 터졌습니다! 사사키 재단과 뇌물 수수한 22명이 허정철 부장님을 납치해서 집단 폭력을 가했습니다!>
<뭐라고!? 납치? 폭력? 정철이는 어떻게 됐어?>
<지금 정신을 잃고 구급차에 실려 구리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습니다!>
<이런! 미친! 가해자 놈들 어떻게 됐어!?>
허정철이 올바른 삶을 산 인간은 아니지만, 그래도 언론계에서 살아남은 대학 동기다.
천상현은 허정철이 의식을 잃었다는 말에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현장에 있던 31명 모두 체포됐습니다. 허정철 부장님 댁에 이 사실을 알리고 우리는 기사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알았어! 정철이 집에는 내가 연락할 거니까! 박 기자는 헤드라인만이라도 정해서 전송해! 이 기사는 무조건 빨리 올려야 해!>
<5분이면 간략한 내용도 정리할 수 있습니다.>
<오케이! 박 기자 하고 싶은 대로 해!>
허정철의 건강에 집중하는 천상현에게 우회적으로 특종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박대철.
천상현은 박대철의 말이 옳다는 걸 바로 깨닫고 인터넷에 <단독>으로 올리라고 지시했다. 제목만 정해서 속보로 올리면, 다른 언론사에 특종을 빼앗기지 않는다.
하지만 준비를 마친 박대철은 간략하나마 내용도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천상현은 특종을 잡은 후배의 의견을 존중했다. 지금 이 시점에서의 주인공은 박대철이니까.
[<단독> 납치와 집단 폭행 자행한 사사키 재단.]
박대철의 기사가 특종으로 한강신문 홈페이지에 나오자, 불타는 금요일 밤을 보내고 토요일 새벽을 지키던 많은 한국인의 시선을 단숨에 끌었다.
한강신문 역대 최다 조회 수 기록을 갈아 치우고, 서버가 언제 터질지 불안에 떨어야 하는 상황.
- 쳐 죽일 일본 놈들! 한국에서 언론인을 납치하고 폭행해!?
- 한국에 친일파들이 득실거리니 일본 놈들이 한국을 우습게 보는 거야!
- 일본 돈 받아먹은 매국노 놈들 모두 사형시켜야 해!
- 맞아! 뇌물을 받아먹은 것도 모자라서 고발한 사람을 구타하다니! 말도 안 되는 짓이야!
특종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어이없음’과 ‘분노’였다.
세계적으로 치안이 좋기로 손꼽히는 한국에서 납치 사건이 발생했다. 그것도 뇌물 수수 사건으로 눈총을 받는 일본 사사키 재단이 벌인 일이다.
더 기가 막힌 건 뇌물 수수 혐의가 있는 22명이 제보자를 집단 구타 했다는 점. 이건 한국과 한국 치안을 우롱하는 도전 행위다.
격앙한 일부에서 납치와 폭행에 가담한 전원을 극형에 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단독> 집단 폭행 당한 허정철 씨 사망.]
박대철이 특종기사 후 보강 기사를 연속해서 올리고 있을 때, 경제부장 천상현에게 구리병원에서 울음 섞인 전화가 왔다.
허정철이 내장 파열로 사망했다고 그의 부인이 알려 온 것. 그녀는 천상현에게 남편의 죽음을 세상에 알려, 가해자들을 응징해 달라고 부탁했다.
천상현은 대학 동기의 죽음을 특종으로 잡고 싶지 않았으나, 미망인의 간곡한 소망을 저버릴 수 없었다.
천상현은 담당 의사의 조언을 받아 폭행당한 허정철이 어떤 경로로 고통스럽게 죽었는지 설명하는 기사를 작성했다.
제3자가 봐도 가해자들에게 치가 떨리도록 만드는 기사였다.
- 죽이자! 다른 방법은 사치야!
- 맞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했어! 폭력으로 사람을 죽인 놈들에게 똑같은 형벌을 내려야 해!
- 똑같으면 안 된다! 피해자보다 10배는 더 고통스럽게 죽여야 해!
- 화형이 최고야! 죽으면서 극악의 고통을 느끼니까!
이제 단순히 처벌하자는 목소리는 사라졌다.
가장 무섭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매국노 22명과 사사키 재단 관계자를 처단해야 한다는 여론이 생겼다.
8.
“소바라 공사! 사사키 재단 일 처리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거요!?”
“조센징들이 벌인 일입니다. 우리는 허정철에게 위협만 가하려 했습니다. 폭력을 휘두른 건 조센징들입니다.”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 거요!? 한국인들이 다혈질이라는 걸 알면서, 왜 원한이 있는 사람끼리 만나게 한 거냔 말이오!?”
허정철의 죽음은 일본 정부를 긴장시켰다. 가뜩이나 적대감을 유지하는 한일 양국 관계가 파국으로 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주한 일본 대사 기르시 유우고는 총괄 공사 소바라 미치오를 안가로 불러들인 뒤 심하게 추궁했다.
소바라 미치오는 사사키 재단 한국 지부에서 고문 역할을 겸임하고 있다.
“불만이 쌓인 조센징들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그게 아니지. 한국인들이 허정철을 구타할 때, 구해 주는 척하면서 협조를 강요하려 했던 거겠지.”
“커험…….”
“왜? 내 말이 틀린 거요?”
“맞는다고 하시죠!”
너무 뻔한 잔머리 굴리기. 기르시 유우고는 발뺌하는 소바라 미치오에게 돌직구를 날렸다.
사사키 재단은 뇌물 수수 사건이 모두 허정철의 자작극이라는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허정철의 협력을 구할 수 없기에, 죽음을 느끼는 고통의 이벤트를 마련한 것이다.
기르시 유우고의 예상처럼 허정철의 죽음에 사사키 재단이 처음부터 끝까지 관여했다.
“지금 한국인들 사이에 일본인을 모두 죽이자는 말까지 나오고 있소.”
“잘됐네요. 이참에 누가 강한지 전쟁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전쟁이 나면 한국 해군은 전멸할 거고, 한국 육군은 바다를 넘어오면서 몰살당할 겁니다.”
“쯔쯔쯔……. 이런 판단력으로 총괄 공사를 담당하다니……. 우리 일본도 한계가 온 것 같소.”
“대사님! 저를 모욕하는 건 참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일본국을 폄훼하는 건 좌시할 수 없습니다!”
“한국은 현무 미사일 3,000발을 가지고 있소. 더구나 현무 미사일은 이스칸다르 미사일처럼 M 자 기동을 하면서 요격미사일을 피할 수 있소.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일본이 한국을 이긴다는 거요?”
“그깟 미사일 1만 발이 있어도 우리 대일본국을 이길 수 없습니다! 기껏해야 땅에 기스나 내고 말 겁니다.”
기르시 유우고는 한국이 보유한 현무 미사일의 위력을 높이 평가하며, 한국과의 정면충돌을 두려워하는 자세를 보였다.
반면 소바라 미치오는 현무 미사일을 폭죽 정도로 여기며 위력을 낮잡아 봤다.
“현무 미사일로 우리 레이더기지, 통신망, 발전소, 유류 저장소, 공업 시설, 비행장, 항구에 정박 중인 전투함을 공격한다면, 어떻게 될 것 같소?”
“그……. 그건…….”
“우리 일본은 전쟁에서 패할 뿐만 아니라, 산업 기반이 무너져 수십 년간 가난에 허덕여야 할 거요. 이래도 현무 미사일의 위력이 별거 아니오?”
“현무 미사일 사거리는 기껏해야 800km입니다. 도쿄와 수도권만 지키면 대일본국에 승산이 있습니다.”
“관서 지방이 초토화되는데 우리에게 승산이 있다고 말하는 건 국가 경제 시스템을 모르는 무지한 소리지. 게다가 한미 미사일 지침 폐지로 현무4의 사거리가 이미 1,000km로 늘었소. 울산 인근에서 발사하면, 도쿄를 포함해 수도권 전체가 사정거리 안에 들어간단 말이오.”
“조센징들은 제대로 된 군사위성이 없습니다. 사거리 늘려 봐야 헛일입니다.”
“한국은 3년 전에 원자 스핀 자이로스코프를 독자 개발했소. 군사위성 도움 없이도 공산오차 2m 이하 정밀한 타격을 할 수 있소.”
“그러면 어쩌자는 겁니까!? 한국이 무례하게 나와도 고개를 숙이고 참아야 한다는 겁니까!?”
“당분간 쓸데없는 분란을 만들지 말라는 거요.”
“당분간이요!?”
“한국 전역을 공격할 수 있는 미사일을 우리가 만들기 전까지 극단적인 충돌을 피해야 한다는 거요.”
일본은 오래전부터 현무 미사일의 위력과 물량을 두려워했다.
전범국이기에 공격 미사일을 가질 수 없던 일본은 방어 미사일 시스템 구축에 투자를 집중했다.
그러나 비용이 과도하고 이스칸다르형 미사일처럼 궤적을 변경하는 미사일에 취약점을 드러냈다.
일본은 현무 미사일에 대항하기 위해 유사한 공격 미사일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비밀리에 개발 중이다.
명분은 일본을 공격하려는 적 기지를 예방적으로 타격하는 방어 미사일을 만든다는 것. 그러나 실제는 상대방을 먼저 타격할 수 있는 공격 무기.
“정말 그런 프로젝트가 진행 중입니까?”
“그건 말해 줄 수 없소. 그리고 오늘 여기서 나눈 이야기는 밖에 흘려서는 안 된다는 거 명심하시오.”
“음……. 알겠습니다. 당분간 자중하는 방향으로 사사키 재단의 중지를 모으겠습니다.”
소바라 미치오는 기르시 유우고의 설명을 듣고 생각을 바꾸게 됐다. 한국과 감정싸움을 할 것이 아니라, 공격 미사일이 개발될 때까지 충돌을 피해야 한다.
- 슥!
“역시! 일본 놈들은 간사스럽기 짝이 없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