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21장. 응징의 시간
5.
10월 1일 밤 11시, 종편(종합 편성 채널) C채널 보도본부장 최관수가 사사키 재단 한국 지부장 무레 코신을 만났다.
“도대체 어떻게 일 처리를 했기에 내 이름이 드러난 겁니까?”
“죄송합니다. 저희도 어떻게 회원 명단이 유출된 것인지, 조사하고 있습니다.”
“허정철이 그놈이 범인 아닙니까? 무슨 조사가 필요하다는 거죠?”
“허정철 부장이 알고 있는 회원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무레 코신도 어안이 벙벙한 상황이다. 금품 수수 사건을 폭로한 허정철이 알고 있는 사사키 재단 회원은 고작 3명. 나머지 22명 명단이 어디서 유출된 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타니와 단장은 어디에 있습니까?”
“단장님은 업무 수행 중입니다. 저희도 소재를 알지 못합니다.”
“후……. 여러 가지로 일이 꼬이는군요. 아무튼 책임 있는 분이 나서서, 이 사태를 빨리 해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에서 일한 관계를 중요시하는 참언론인의 씨가 마를 겁니다.”
사사키 재단에서 경제협력단장 타니와 유우시는 권력 서열 7위 안에 드는 핵심 인물이다.
최관수는 타니와 유우시가 가진 힘으로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해소하려 했으나, 이미 창수에게 처단당한 시체가 도와줄 리 만무하다.
“우려하시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 올립니다. 가능한 한 빠르게 조치하겠습니다.”
답답하기는 무레 코신도 마찬가지. 감당하기 어려운 대형 사건이 터졌는데, 자기보다 많은 권한과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타니와 유우시와 연락이 안 된다.
그렇다고 최관수와 같은 부역자에게 답답함을 토로할 수도 없다.
무레 코신은 이전에 면담한 매국노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영양가 없는 말을 던지며 곤혹스러운 자리를 벗어났다.
* * *
[충격! 사사키 재단에서 돈 받은 언론인들!]
[한국 언론 수치의 날! 수백억대 금품 수수!]
[25명의 닌자! 한국 언론을 죽였다!]
부역자들이 기사화를 막으려고 사력을 다했으나 역부족이었다. 평소 그들을 눈엣가시로 본 경쟁자들이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에 정보를 흘린 것.
친일 매국노들이 수수한 금액과 사용처가 알려지자, 분노와 응징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활화산처럼 분화한 핫이슈를 외면하게 되면, 해당 언론사가 한 패거리라는 손가락질을 받게 될 상황.
누구보다 여론에 민감한 언론사들이 인터넷 홈페이지와 SNS 계정에 빠르게 기사를 올리며 25명을 질타했다.
- 25명 전부 한가락 하는 놈들이군!
- 평균 수수 금액이 13.5억 원? 시파 몸값 졸라 높구만!
- 아무리 돈이 좋다지만 저 정도 지위에 있는 놈들이 일본에 붙어먹은 거야?
- 매국노들에게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있겠어?
- 모두 처벌해야 해! 사사키 재단 놈들도 다 잡아 족치고!
국민들의 반응은 험악했다. 친일 행각을 물타기하던 당사자들이 걸려들었기에, 부역자들의 매국 행각이 여과 없이 드러나면서 반응이 더 격해진 것.
도덕적인 비판은 물론이고, 형사 처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허정철! 이놈! 어디에 짱박혀 있는 거야!?”
“정말 개쓰레기죠! 자기도 돈 받아 처먹었으면서, 우리만 죽일 놈 만들고! 당장 찾아내서 세상에 진실을 알려야 합니다!”
여론이 격화되자, 친분 있는 부역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대책을 논의했다.
믿었던 사사키 재단에서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유일한 해법은 폭로 당사자 허정철을 찾아내 회유하는 것.
“관수야! 네 동기 중에 경찰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예. 치안정감이 제 친구입니다.”
“그 친구에게 허정철이 잡아 달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시도해 봤죠. 그런데 안 된다고 합니다.”
“왜 안 된다고 하는데?”
“융통성이 없는 고지식한 친구입니다. 허정철이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이상, 추적하거나 체포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쯔쯔쯔……. 어려울 때 도와야 진짜 친구인데…….”
“선배님은 검찰에 줄이 있지 않습니까? 검사장이라고 했나요?”
“있기야 있지. 하지만 검경 수사권 조정 때문에 개입하기 어렵다는 거야.”
“뇌물 관련된 건 검찰이 직접 수사하는 것 아닌가요?”
“그건 우리가 받은 혐의고, 허정철을 추적하려면 경찰이 수사를 시작해야 해.”
C채널 보도본부장 최관수와 MSPC 뉴스국장 차진수는 검찰과 경찰 고위급 인사와 친분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뛰어난 정보력을 가진 조직. 국민적인 관심을 받는 사건에 친분이 있다고 뛰어들 불나방이 아니다.
최관수와 차진수의 지인들은 이번 사건이 심상치 않다 여기고 한발 뺀 거다.
“허정철이가 받아먹은 걸 고발하면 어떨까요?”
“맞아! 그 방법이 있었어! 허정철 그놈이 우리에게 한 짓을 그대로 되돌려 주면 되는 거야!”
“재단 지부로 가시죠! 증거가 있을 겁니다!”
“좋아! 어서 가자고!”
부역자들은 허정철 역시 사사키 재단에서 적지 않은 돈을 수수했다는 걸 알고 있다. 그 기록과 사용 내역을 사사키 재단이 가지고 있을 터.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허정철을 고발하면, 검찰과 경찰 고위직에 있는 지인들이 외면하지 못할 거다.
최관수와 차진수는 목을 죄어 오던 압박에서 한 줄기 숨통이 트이는 기분을 느꼈다.
* * *
<박 기자! 무슨 소리야? 정철이 집에 경찰이 들이닥쳤다고?>
<예. 수사 본부 수사관들이 영장을 들고, 자택 압수 수색을 시작했습니다.>
<무슨 소리야, 그게!? 사사키 재단 돈 받은 놈들을 내버려 두고, 공익 제보자를 먼저 털어!?>
한강신문 경제부장 천상현이 극대노했다. 대학 동기 허정철이 수사 대상에 올랐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한 것.
허정철이 문제가 많은 인물이라는 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사사키 재단 뇌물 사건을 터트린 상황에서, 제보자를 수사하는 건 부당한 외압으로밖에 볼 수 없다.
허청철과 친분이 있는 사람으로서, 더 나아가 언론인의 한 명으로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
<저도 기가 막혀서, 수사관들에게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뭐야? 뜸 들이지 말고 빨리 얘기해!>
<허정철 부장님도 사사키 재단의 돈을 받은 듯합니다.>
현장에 나가 있는 박대철도 압수 수색에 격분해, 흥분한 얼굴로 수사관에게 자초지종을 따져 물었다.
피의 사실 공표가 불법이기에 자세한 이야기를 하진 않지만, 수사관은 담담하게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말을 건넸다.
취재기자 중에서 고참급에 속하는 박대철은 무언가 있다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그리고 친분 있는 법조팀 기자들을 통해, 허정철이 사사키 재단에서 15억 원을 수수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공익 제보가 아니고, 내부 투쟁의 유탄이라는 거야?>
<구체적인 판단을 내리기는 이릅니다. 다만, 허정철 부장님이 사사키 재단과 깊숙한 관계가 있다는 건 확실한 거 같습니다.>
<흠……. 이거 일이 이상하게 꼬이는군. 박 기자, 현장에서 정보를 더 모아. 나도 자초지종을 알아볼 거니까.>
허정철이 가진 탐욕과 씀씀이를 보면 누구로부터 불법 자금을 수수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 누군가가 사사키 재단이라면?
천상현은 흥분했던 머리를 차갑게 식히고, 금품 수수 사건을 입체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6.
사사키 재단 관련 언론인 뇌물 수수 사건이 한국의 주요 뉴스를 장악했지만, 당사자라 할 수 있는 허정철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고 2022년 10월 7일 밤 11시, 허정철이 자기 집 인근에 나타났다.
- 두리번! 두리번!
잔뜩 긴장한 허정철은 한참 동안 주위를 살피더니, 조용히 자택으로 걸어갔다.
- 부우웅!
- 끼이익!
허정철이 대문 인근에 도착할 무렵, 정체 모를 검은 승합차가 빠르게 달려와 허정철의 앞을 가로막았다.
- 덜컹!
“다……. 당신들 누구야!?”
그리고 승합차에서 건장한 남자들이 내리기 시작한다.
직감적으로 위기를 느낀 허정철의 목소리가 떨리면서 높아졌다.
- 와락!
- 질질!
그러나 승합차에서 내린 괴한들은 가타부타 말없이 허정철을 제압하고 승합차로 끌고 들어갔다.
허정철이 발버둥 치며 벗어나려 했으나, 숫자와 완력에서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 * *
“허정철! 개쓰레기 놈! 나를 끌어들여 놓고 뒤통수를 쳐!?”
허정철을 납치한 건 사사키 재단이었다.
구리시 인근 한적한 창고로 끌려간 허정철은 20여 명의 눈이 자신을 노려보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그리고 C채널 보도본부장 최관수로부터 쌍욕을 들어야 했다. 사실 최관수를 사사키 재단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한 것이 허정철이다.
“선배님! 아닙니다! 오해입니다!”
“뭐가 오해라는 거야!? 우리 명단 뿌린 게 네놈이 아니라는 거야!?”
“제가 한 거 맞습니다! 하지만 협박당한 겁니다!”
“무슨 협박? 우리를 배신하면 100억 원이라도 준다고 협박했냐?”
“아닙니다! 아니에요! 저를 죽이고 가족도 죽인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협조한 겁니다!”
입만 열면 거짓말이 술술 나온다. 창수가 허정철을 협박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매장한다고 했지, 죽인다고 말한 적은 없다. 더구나 가족은 언급도 안 했다.
그런데도 허정철이 협박을 과장하는 이유는, 지금 닥친 위험을 회피하기 위함이다.
“그래? 너를 협박한 놈이 누구야? 누구길래 가족을 죽인대?”
“그……. 그건…….”
“왜! 말을 못 해, 이 쓰레기야!?”
“가면을 쓰고 있어서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그놈 근거지가 어디야?”
“눈을 가리고 끌려가서 어딘지 모릅니다!”
“네놈이 납치범에게 협조하고, 무사히 풀려났을 때, 확인했을 거 아니야!?”
“그때도 눈을 가렸습니다.”
“뭐라고!? 너 지금 나를 놀리는 거야!?”
- 퍽! 팍!
“크윽!”
최관수는 본래부터 성급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허정철에게 이미 분노한 상황에서 변명에 급급한 말들이 쏟아지자, 참지 못하고 폭발하고 말았다.
- 저 배신자 죽여 버립시다!
- 맞소! 이미 버린 몸 복수라도 합시다!
- 쳐 죽여! 쓰레기 놈!
폭력에는 전염성이 있다. 최관수가 폭행을 시작하자, 모여 있던 친일 매국노들이 집단 구타를 시작했다.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잘못했습니다! 살려 주세요!”
20명이 넘는 인원에게 폭행당하는 허정철이 애절한 목소리로 선처를 호소했으나, 복수의 쾌감을 느낀 매국노 무리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무질서한 폭행이 20분간 지속됐다.
- 덜컹!
“국가수사본부다! 모두 동작 멈추고 머리에 손 올려!”
허정철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 아무 말도 못 하는 상황에서 경찰 병력이 창고 문을 열고 진입했다.
“경찰이 낄 자리가 아니오. 괜히 일 꼬이게 하지 말고 물러나시오.”
“뭐라고!? 범죄자들이 국가 공권력을 우습게 봐!?”
“우리에게는 한국 법이 적용되지 않소. 국제 외교 문제 만들지 말라는 거요.”
친일 매국노들이 위기에 빠지자, 사사키 재단 한국 지부장 무레 코신이 수습에 나섰다.
사사키 재단의 힘을 과시하며, 압력을 가한 것.
- 탕!
“헉! 이게 무슨 짓이오!”
“닥쳐! 조금이라도 반항하면, 즉결 처분 하겠다!”
국가수사본부는 완전무장한 타격대 20명을 동원했다. 사사키 재단 한국 지부 무력으로 막을 수 없는 상대.
더구나 국가수사본부는 ‘사사키 재단에 알아서 긴다’는 여론의 지탄을 받고 있다. 아니라는 걸 증명해야 할 상황.
무레 코신의 오만한 대응이 일을 키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