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21장. 응징의 시간
3.
<박 기자, 암브로시아 론칭 행사 어때?>
<아주 순조롭게 진행 중입니다. 예상보다 사람들 반응이 좋습니다.>
<모델이 없다며? 직원들이 나와서 홍보한 거야?>
<아닙니다. 태국 모델들을 섭외해 홍보하고 있습니다.>
<태국 모델? 그렇게 해서 한국 사람들에게 통해?>
<통하고도 남습니다. 미모도 뛰어나고, 한국어와 영어에 능통해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허어……. 이거 얘기가 다르잖아.>
<예? 얘기가 다르다고요?>
암브로시아 론칭 행사를 취재하러 나온 한강신문 기자 박대철은 경제부를 담당하고 있는 부장 천상현에게 중간보고를 올렸다.
박대철은 행사 참석자들의 높은 호응도를 보며, 창수의 태국 모델 기용이 성공했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자신이 직접 암브로시아와 암브로시아 플러스를 맛보니, 대박 아이템이라는 말이 저절로 떠올랐다.
박대철은 천상현에게 취재한 내용을 자세히 전달하려 했다. 하지만 천상현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다.
<아……. 아니야. 취재 마쳤으면 사무실로 들어와.>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제대로 된 기사를 쓰려면, 행사 끝나고 관계자를 만나야 합니다.>
<지금 암브로시아가 문제가 아니야. 빨리 들어와!>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정양일보에 내 동기 있는 거 알지?>
<허정철 부장님 말하는 건가요?>
<맞아. 그 친구가 대형 사고 쳤어.>
<그 양반 출세했군요. 재경부로 가는 겁니까? 아니면 청와대로 가나요?>
4대 일간지 중 정양일보는 경제 분야에서 독보적이다.
박대철은 ‘대형 사고’가 허정철이 정부 요직에 스카우트된 것이라 생각했다.
언론인들이 ‘정치로부터의 자유’를 외치지만, 이율배반적으로 적지 않은 사람이 정부에 등용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동료가 한자리를 차지하면 ‘사고 쳤다’라고 칭하기도 한다. 박대철은 직장 상사가 허정철의 출세를 전한 것이라 여겼다.
<정부 입각을 말하는 게 아니야. 언론인 뇌물 수수 사건을 터트렸어.>
<예? 자폭했다는 말인가요?>
허정철은 언론인 사이에서 ‘자판기’로 불린다. 돈을 넣으면 기사가 나온다는 의미.
뇌물 수수를 공론화했다는 건, 허정철이 자신의 죄를 공개하고 고해성사라도 한다는 말일까?
<박 기자!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어! 정철이가 사사키 재단에서 금품을 받은 언론인 25명을 공개했다고!>
<헉! 사사키 재단이면, 일본 아닌가요? 어떻게 25명이나…….>
<25명도 신출내기 기자가 아니야. 모두 10년 차 이상 베테랑이야. 지금 국장님이 기자들 총동원령 내렸어. 암브로시아 취재 어느 정도 했으면, 빨리 사무실로 튀어와!>
<알겠습니다! 빨리 돌아가겠습니다!>
창수는 허정철에게 25명의 금품 수수 내용을 기자 수첩에 적게 했다. 그리고 허정철의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은 뒤 신문사, 방송사, 주요 인터넷 뉴스 매체에 배포했다. 이때가 오후 2시.
처음 허정철이 보낸 내용의 진위를 가리지 못해 엉거주춤하던 언론사들은 곧바로 정신 차리고 검증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폭로가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고 결론 내렸다. 혐의 내용이 구체적인 데다가, 일부 확인한 결과가 폭로 내용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수습기자도 진위를 알 정도.
현재 허정철의 스마트폰과 집 전화는 수많은 연결 요구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러나 단 한 명도 허정철과 통화하지 못했다.
이제 남은 건 허정철이 갈 만한 곳에 인력을 파견하는 일.
한강신문 편집국장이 박대철을 비롯해 기자 전원을 불러들이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 * *
같은 시각, MSPC 방송국 뉴스국장 차진수는 보도본부장 이태섭의 호출을 받고 집무실에 들어섰다.
“차 국장, 이게 어떻게 된 거요? 금품 수수라니?”
“본부장님! 모함입니다! 저를 음해하는 세력이 거짓 폭로를 한 겁니다!”
“사사키 재단으로부터 받은 돈이 모두 33억 원이고, 그 돈을 어디에 사용했는지 자세히 나와 있는데, 그래도 발뺌할 거요?”
3대 방송국 뉴스국장의 위상은 허정철보다 한참 높다. 사사키 재단이 건넨 돈이 2배를 넘었다.
그리고 차진수가 사용한 33억 원의 내역이 15개 항목으로 자세히 기록돼 세상에 공개됐다.
“그 돈은 전부 빌린 겁니다!”
“빌렸다고? 사사키 재단에 차용증 써 줬소?”
“구두로 약속한 겁니다.”
“참 대단하구만! 차용증도 없이 33억 원을 빌려주고 받고. 당신과 사사키 재단의 관계가 정말 돈독해!”
“본부장님, 말이 지나칩니다!”
“뭐가 지나쳐! 비리를 저질렀으면, 최소한 반성하는 기미라도 보여야 할 것 아니야!? 지금 뭘 잘했다고, 바락바락 대드는 거지!?”
“대드는 것이 아닙니다! 음해 내용만 믿지 말고 소명 기회를 달라는 겁니다!”
“소명은 수사관에게 해! 그리고 지금 이 시간부로 당신은 직무 정지야! 빈 책상에 앉아서 그럴듯한 변명이라도 생각해 봐!”
33억 원을 차용증도 없이 빌렸다고?
급한 김에 마구잡이 변명을 한다고 해도 너무 뻔뻔하지 않은가?
보도본부장 이태섭은 자숙하는 자세를 보이지 않고, 거짓말과 변명을 일삼는 차진수에게 철퇴를 내렸다.
차진수는 MSPC 뉴스국장이라는 막강한 지위를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이제 경찰과 검찰에서 눈치 보지 않고 차진수를 조사할 터.
MSPC에 기대서 위기를 모면하려던 차진수의 얼굴이 흙색으로 변해 갔다.
“단순한 억측으로 저를 핍박하면 노조에서 좌시하지 않을 겁니다. 노조와 척지면 본부장님께서 사장직에 오르기 어려울 겁니다.”
“노조에 뿌린 5억 원으로 위기를 모면해 보겠다, 이건가?”
“그……. 그건…….”
“내가 가만히 있으니, 꿔다 놓은 보릿자루인 줄 알았나 보지? 하지만 말이야. 당신이 노조 간부와 무슨 짓을 꾸미는지 다 알고 있었어. 조용히 MSPC에서 떠나. 그렇지 않으면 지옥 맛을 보게 될 거야.”
“…….”
이태섭은 차진수가 돈을 살포하며 내부 정치에 몰두한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잠자코 있던 건 오늘과 같은 기회가 오기를 기다린 거다.
차진수는 이태섭이 날린 강력한 노림수에 맥없이 당하고 말았다.
4.
“대표님, 최종 결과가 나왔습니다. 암브로시아 711kg, 암브로시아 플러스 857kg입니다.”
“예상보다 2배가 넘게 판매됐군.”
“그렇습니다. 오늘 론칭 행사 대박 났습니다!”
오후 5시, 한국 언론이 갑자기 떨어진 핵폭탄으로 아비규환 상황에 빠질 때, 암브로시아 론칭 행사가 막을 내렸다.
결과는 대성공.
행사 참석자들이 암브로시아에 보인 반응이 폭발적이었고, 태국 모델들 덕분에 현장 판매도 기대 이상이었다. 태국에서 열린 론칭 행사 때보다 2배 이상 판매된 것.
“크리에이터들 반응은 어때?”
“거기도 대박이죠. 관심이 폭발해서 스태프들이 대응하느라 곤란한 지경입니다. 아주 열성적입니다.”
“가능한 한 성실히 대응해야 해. 오늘 진짜 주인공은 그 사람들이야. 돈을 지급하는 건 안 되지만, 다른 요청은 웬만하면 들어줘야 해.”
“알겠습니다, 대표님.”
현장 판매보다 중요한 건 바이럴 마케팅. 물론 양자 간에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창수는 개인 크레이터들에게 더 신경 썼다.
한국 언론이 당분간 암브로시아에 관심을 가질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한국 언론이 암브로시아를 음해할 여력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창수는 한국 언론이 암브로시아에 눈을 돌리기 전에, 소비자의 눈도장을 찍으려 했다.
그리고 그 계획의 중심에 개인 크레이터들이 있다.
* * *
[암브로시아는 정말 초대박 원당입니다! 시청자 여러분! 제가 입맛 까다롭다는 거 아시죠? 그런데 암브로시아 들어간 음식을 먹으니 투정을 부릴 수 없는 거예요!]
- 헐! 대파리? 무슨 짓이야! 네가 음식 칭찬을 다 하고?
- 맞아. 하던 짓 안 하고 반대로 하면 불치병 걸린대. 몸조심해.
- 아니야. 이미 불치병 걸린 거야. 혀가 고장 났나 봐.
구독자 110만 명을 보유한 먹방 너튜버 대파리는 독설로 유명하다.
평범한 외모에 말주변도 좋지 않은 그가 너튜브의 귀족이라 불리는 골드 버튼을 달게 된 것은, 기상천외한 ‘모두 까기’ 행각 때문이다.
대파리는 맛있다고 소문난 음식을 직접 시식하고, 온갖 핑계를 대며 비방했다.
[이거 먹고 나니 자살하고 싶어졌어요.]
[지옥을 지키는 똥개가 오바이트한 토사물보다 맛이 없을 거예요.]
[저기 위에 뿌린 거 쥐똥인가요? 보기만 해도 지리네요.]
분노한 음식점 주인들에게 고발당한 것만 10건이 넘는다.
구독자들은 대파리의 기행을 비판하면서도, 오늘은 어떤 참신한 방법으로 음식을 비방할지 기대감(?)을 가지고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대파리에게 [먹고 죽을 정도는 아니네요] 정도의 맨트를 받은 음식이 나오면 화제가 될 정도였다.
그런데 암브로시아 론칭 행사장에 간 대파리가 독설이 아니라 극찬을 하고 나섰다.
구독자들이 귀를 의심하고, 대파리의 건강을 들먹이는 상황.
- 대파리! 저거 돈 받았구만!
- 악당이지만 소신은 있는 줄 알았는데, 돈에는 별수 없구나.
- 얼마나 받으면 사람이 저렇게 변하지?
일부 구독자들은 금품 수수 의혹을 거론하기도 했다. 평소 대파리가 돈에 초탈한 것처럼 말했는데, 그 위선이 오늘 깨졌다고 생각한 것.
[저 멀쩡합니다. 그리고 오백세건강에서 1원짜리 동전 하나 받은 적 없습니다. 제가 암브로시아를 칭찬하는 건, 아무리 노력해도 깔 게 없기 때문입니다. 암브로시아 맛본 분 중에서 비판거리를 주시는 분이 있다면, 제가 형님 누님으로 모시겠습니다.]
- 저 뻣뻣한 놈이 저 정도로 말하는 걸 보면, 암브로시아 맛이 대단하기는 한가 봐?
- 나는 대파리 말 이해해. 암브로시아는 천상의 맛이야. 대파리 욕하는 사람들도 암브로시아 먹어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야.
- 하긴 사우디 왕가에서 2,000톤을 사 갈 정도면 인정해야지.
처음에 대파리의 말이 장난이라고 생각하며 극적인 반전을 기다리던 구독자들. 시간이 지나면서 대파리가 진심으로 암브로시아의 맛에 감탄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여전히 ‘대파리가 돈 받았다’는 반응을 보이는 구독자가 남아 있으나, 구독자 대부분이 암브로시아의 맛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됐다.
이런 변화를 이끈 건, 실제로 암브로시아를 맛본 사람들이다.
처음에는 눈치를 보며 한두 명이 암브로시아의 진하면서 깊은 단맛을 칭찬하더니, 연이어 칭송하는 글이 채팅창을 메웠다.
이제 방송의 주인공은 대파리가 아니라 암브로시아가 됐다.
* * *
- 암브로시아 맛이 정말 좋은가 봐요. 론칭 행사에 나갔던 너튜버들이 칭찬하기 바빠요.
- 대파리하고 짠이가 칭찬할 정도면, 믿을 만할 것 같아요.
- 가격이 조금 세기는 한데, 조금만 사 볼까요?
- 저는 2만 원 버리는 셈 치고, 1kg 주문했어요.
- 그러네요. 1kg 정도면 시험 삼아 써도 될 것 같아요.
행사에 참여한 개인 크리에이터의 파급력은 너튜브에 국한하지 않았다. 가정주부를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를 비롯해, 인터넷과 SNS 곳곳에 영향을 미쳤다.
바이럴 마케팅이 급격한 속도로 활성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