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20장. 음습한 위협
5.
9월 30일, 하이퍼 에이전시 대표 강희만이 강남에 위치한 고급 음식점 특실에서 60대로 보이는 남자와 만났다.
“오백세건강은 지금 어떻게 하고 있나?”
“여전히 암브로시아 론칭 행사를 준비 중입니다, 단장님.”
“흠……. 모델을 섭외하지 못한 것이 확실한 거야?”
“그렇습니다. 규모가 작은 에이전시까지 모두 점검해 봤습니다. 그리고 대유제당이 연예 기획사들에 압력을 넣고 있습니다.”
“대유제당이 나섰다면 확실한 건데, 그자들은 무슨 자신감으로 행사를 강행하는 거지?”
“모델 없이 오백세건강 관계자가 행사를 진행할 듯 보입니다.”
“그렇겠군. 그러면 언론을 통해 여론전에 나서야겠어.”
암브로시아 론칭 행사를 방해하려는 배후는 대유제당뿐만이 아니었다.
‘단장’이라고 불리는 자는 언론까지 동원해 오백세건강을 공격하려 했다.
“대응이 너무 과도한 것 아닐까요? 오백세건강은 설립한 지 1년도 안 되는 작은 회사입니다.”
“강 군, 출시 한 달이 지난 지금, 암브로시아 매출이 얼마인지 알고 있나?”
“그건…….”
“우리가 파악한 것만 해도 1조 원이네. 이대로 방치하면, 올해 안에 매출 10조 원이 넘게 될 거야.”
“대기업이 되는 거군요.”
“맞네. 대기업 반열에 오르면 우리가 공략하기 더 어려워져. 그리고 오쿠리는 시장을 잃고 영세기업으로 추락하겠지.”
“설마요? 오쿠리는 세계 최고 기술을 가진 제당 회사입니다.”
“아닐세. 암브로시아의 효능은 오쿠리 연구진도 혀를 내두를 정도네.”
오쿠리는 비정제 원당 전문 회사로 일본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단장이라는 자는 일본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암브로시아 론칭 행사를 방해하고, 더 나아가 언론을 통해 평판 깎아내리기 공작을 벌이려 획책하고 있다.
“그렇다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합니다. 여기에 대유제당을 엮으면, 일석이조가 될 겁니다.”
강희만은 대기업에 갑질당하는 을이 아니었다. 대유제당을 함정에 빠트릴 흉심을 품은 킬러였다.
“크크크. 볼만하겠군. 조센징끼리 싸우다가 공멸하는 꼴을 구경하는 건 언제나 즐겁지.”
“그렇…….”
- 퓩!
- 털썩!
“무……. 무슨 일이야! 이보게, 강 군!”
- 퓩!
“큭!”
강희만과 단장이라 불리는 자가 공작의 결과물을 기대하고 희희낙락했다.
멀쩡한 기업을 위기에 몰아넣을 수 있는 수작을 부리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는커녕, 한국인이 관련된 기업이라는 이유로 조롱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그자들의 즐거운 시간은 길지 못했다.
* * *
- 촥!
“으으……. 여기가 어디야?”
“네가 죽을 장소지 어디겠냐?”
“너! 너는!”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찬물을 뒤집어쓰고 깨어난 강희만은 예상하지 못한 얼굴을 보고 경악했다.
“강희만, 네 진짜 정체가 뭐야? 일본과 어떻게 연결된 거지?”
“모른다!”
“네 정체를 네가 모른다고? 이거 말로는 안 되는 놈이구만!”
- 퍽! 팍!
“으아악!”
강희만을 납치한 상대는 무자비한 손속을 가지고 있었다. 순순히 정보를 털어놓지 않자 매타작을 실행했다.
“끄윽. 끄윽. 김창수! 선량한 시민을 납치하고 폭행하고도 무사할 것 같냐!?”
강남 음식점 특실에서 강희만을 제압한 건 창수였다. 창수는 투명망토를 가동한 뒤 특실에 은밀히 잠입해 단장이라는 자와 강희만이 나눈 이야기를 모두 들었다.
창수는 비지니스적인 방법으로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 판단하고, 두 사람을 마취총으로 제압한 뒤, 아지트로 끌고 왔다.
“선량한 시민? 일본 세력과 손잡고 건전한 기업 활동을 방해하고 있는 놈이 선량해? 게다가 한국 기업과 이간질도 하려 했지.”
“작은 이익에 서로 물고 뜯고 싸우는 것이 조센징의 본성이다!”
“어쭈! 이 새끼 말하는 꼬라지 보소!”
- 팍! 퍽!
“크아악!”
강희만은 반성이나 후회를 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철저한 일본 추종자의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상대를 잘못 골랐다.
창수는 강희만의 친일 성향이 갱생 불가능한 중증이라 여기고 무자비한 폭력을 가했다.
“제발! 제발! 그만하세요!”
매에는 장사가 없다. 처음 굳건하게 버티며 만만치 않은 입담을 보이던 강희만이 30분이 넘는 구타를 견디지 못하고 굴복하고 말았다.
그 모습이 역겨울 정도로 비굴하다.
“다시 묻지, 너 정체가 뭐야?”
“사사키 재단 한국 지부 회원입니다.”
‘헐! 사사키 재단 놈들이 여기서도 날뛰는 건가?’
창수는 광대한 영토를 가진 평행우주 조선을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사사키 재단과 흑룡회 같은 일본 세력의 준동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모델 에이전시 1위 업체의 대표가 사사키 재단의 똘마니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고 그 똘마니가 한국 경제를 망치려고 분탕질을 치고 있다.
“사사키 재단과 관련된 모든 걸 말해!”
“모……. 모두 털어놓으면 살려 주는 겁니까?”
영악한 강희만은 창수가 살심을 품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토록 무자비한 폭행을 가한 후, 뒤처리 방법으로 죽여서 입을 봉하는 것이 가장 쉽다는 걸 경험으로 알기에.
강희만은 자신이 가진 정보와 목숨을 바꾸는 거래를 시도했다.
“정신 나간 놈이군. 너 같은 암 덩어리를 어떻게 살려 줘?”
“뭐!? 나를 죽이겠다고!? 그러면서 협조를 바라!? 절대로! 단 하나의 정보도 줄 수 없어!”
예상치 않은 창수의 강공에 당황하는 강희만.
살심을 품은 창수에게 목숨을 애걸한다 하여 살아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살려 준다는 약속을 받아 봐야 지켜진다는 보장도 없다.
그런데도 매달리는 것은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잡으려는 몸부림이리라.
하지만 창수는 작은 희망의 여지도 남기지 않았다. 악에 받친 강희만이 강하게 반발하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
“너 따위가 협조하든 말든 상관없어. 이미 발동 조건이 완성됐으니까.”
“뭐라고!? 무슨 소리야!?”
- 슥!
- 찌익!
“큭!”
창수는 마법자루에서 스크롤을 꺼낸 뒤, 강희만을 바라보며 찢었다. 그리고 강희만의 입에서 작은 신음 소리가 나왔다.
“사사키 재단 한국 지부 회원 명단을 말해라.”
“내가 말할 것… 크아악!”
“이름!”
“허……. 허정철, 박시준, 정대수…….”
창수가 사용한 건 자백마법 스크롤이었다. 스크롤을 제작한 고사누가 5서클 비기너이기에 아직은 불완전한 면이 있다.
그걸 보완하기 위해 강희만에게 뽑아낼 정보를 명확히 인식시켰다. 제대로 마법에 걸린 강희만이 정보를 실토하지 않고 버틸 방법은 없었다.
“쓰레기들 수두룩하구만!”
“모두가 대일본국과 한국의…….”
“닥쳐! 누가 너보고 주둥이를 나불거리라고 했어!?”
“…….”
강희만은 자백마법에 걸렸음에도, 친일 행각을 옹호하려는 언동을 보였다. 그만큼 골수에 친일의 뿌리가 박혀 있다는 걸 나타낸다.
하지만 창수가 그걸 좌시할 리 없다. 간단하게 호통 한 번으로 입을 닫게 했다.
“저기 처자는 단장이라는 놈 정체가 뭐야? 한국말을 아주 잘하던데, 외교관 출신인가?”
“아닙니다. 경제 전문가입니다. 이름은 타니와 유우시, 사사키 재단의 경제협력단 단장입니다. 7개 국어를 능통하게 할 수 있습니다.”
“경제 전문가가 언어에도 능하다고?”
“한국, 대만,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베트남과의 경제협력을 총괄하는 책임자입니다.”
“경제협력이 아니라 경제 침공이겠지.”
“그건…….”
- 퓩!
“큭!”
강희만에게 정보를 뽑아낸 창수는 소음 권총을 뽑아 든 뒤 가차 없이 총알을 발사했다.
정보를 준 강희만을 죽인 것이 너무하다는 생각도 할 수 있으나, 뼛속까지 친일에 물든 자를 살려 둘 수 없다. 오히려 고통이 적은 방법으로 처단한 것이 인정을 베푼 거다.
* * *
- 촥!
“으으…….”
강희만을 처단한 창수는 마취총에 맞아 기절한 타니와 유우시를 깨웠다.
60대 나이 탓인지 곧바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비몽사몽.
- 짝! 짝!
“크윽!”
“언제까지 자빠져 잘 거야! 당장 일어나지 못해!?”
“여……. 여기가? 헉! 강 군! 강 군을 어떻게 한 거요!”
창수가 뺨을 후려갈기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는 타니와 유우시. 쓰러진 강희만의 시체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뭘 어떻게 해? 한국을 배신하고 일본의 첩자가 된 놈을 처단한 거지!”
“당……. 당신 어디 소속이오? 우리 사람을 이렇게 대하면, 크게 후회하게 될 거요!”
“쯔즈쯔. 이거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구만! 그깟 사사키 재단 경제 단장 주제에 나를 위협해?”
“그……. 그걸 어떻게……. 설마… CIA?”
놀라움의 연속. 타니와 유우시는 자신의 정체를 정확히 알고 있는 창수에게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게다가 일본 정치, 외교, 경제에 큰 영향력을 가진 사사키 재단을 동네 양아치 취급 하고 있다. 사사키 재단을 이렇게 폄훼하는 걸 보면 미국 정보원일까?
“그건 네놈이 알 것 없다. 사사키 재단과 관련된 한국 기업과 경제인 명단을 말해라.”
“나는 모른다!”
“몰라? 잠시 기억상실증에 걸린 거군. 그렇다면 정신이 번쩍 들도록 치료해 주지.”
- 퍽! 퍽!
“끄아아악!”
비협조적으로 나올 걸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창수는 이러쿵저러쿵 시간 낭비 안 하고 곧바로 매타작에 들어갔다.
“말하겠습니다! 다 말하겠습니다!”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른 지 10분 만에 타니와 유우시가 백기를 들었다.
왜소한 일본인답게 체력이 약한 것일까? 아니면 강희만의 시체를 보고 기가 죽은 것일까?
타니와 유우시는 창수가 원하는 정보를 술술 불었다.
“지금까지 말한 것이 모두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거짓이 하나도 없습니다!”
“좋아. 그러면 마지막 시험을 하지. 여기서 통과하면 널 살려 주겠다.”
“어떤 시험이든지 자신 있습니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타니와 유우시는 사사키 재단과 협력한 한국 기업은 물론이고 정치인, 언론인, 대학교수, 법조계 인사, 시민 단체 인사 등……. 방대한 수의 친일 매국노 이름을 줄줄이 나열했다.
만약 녹음하지 않았다면, 창수가 온전히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숫자.
예상보다 수월하게 많은 정보를 얻게 된 창수는 흡족한 마음에 타니와 유우시 처단을 미룰 생각을 가지게 됐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 창수는 자백마법 스크롤을 사용해 정보의 진위 파악에 나섰다.
- 슥!
- 찌익!
“미래자동차가 사사키 재단과 협력한다는 것이 사실인가?”
“사실입… 끄아아악!”
타니와 유우시는 교활하면서도 뛰어난 연기력을 가진 자였다.
명단의 90%는 부역 기업과 부역자가 맞지만, 나머지 10%는 사사키 재단과 대립하는 한국 기업과 인물을 끼워 넣었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공작을 멈추지 않은 것.
하지만 타니와 유우시는 창수에게 거짓말을 파악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흥! 거짓말이군! 어쩐지 술술 불더라니!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타니와 유우시는 강희만보다 심한 고통을 맛보며,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털어놔야 했다.
그리고 정보가 뽑힌 뒤, 강희만과 같은 처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