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20장. 음습한 위협
3.
“태국에서 한국까지 화물기 운임이 kg당 3,500원 아니야?”
“예, 맞습니다. 항공 운임이 암브로시아 공장 출고가보다 75%나 높습니다. 화물기 이용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지출이죠.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창수가 항공운송을 지시하자, 뱌체슬라프가 강하게 반발했다.
오백세건강의 본사는 조세 피난처에 있고, 생산 시설로 태국에 제당 공장 2곳, 캄보디아에 1곳을 두고 있다.
판매망은 현재 태국 지사와 한국 지사 2곳뿐이다. 러시아 지사는 수집상 역할. 그중에서 한국 지사는 독립적인 회계 구조를 가지고 있다.
비용을 많이 사용하면, 한국 지사에 떨어지는 이윤이 그만큼 줄어든다.
“플러스 공장 출고가가 kg당 20달러야. 3,500원을 운임으로 지불해도 84,500원이 마진으로 남아.”
“일반 암브로시아는 다르죠. 2,000원 출고가에 항공 운임을 빼면, 남는 게 14,500원이에요.”
“1kg에 14,500원 마진이 작은 거냐?”
백설탕의 마진은 kg당 500원이 안 될 정도로 박하다. 비정제 원당의 경우도 마진율이 높다고 알려진 제품이 kg당 5,000원 내외.
암브로시아로 kg당 14,500원 마진을 올릴 수 있다면, 할 만한 장사가 아니라 대박 장사다. 84,500원에 달하는 암브로시아 플러스는 말할 것도 없고.
“작은 건 아니죠. 하지만 1,000톤을 화물기로 운송하면, 비용만 35억 원이 나갑니다.”
“왜 비용만 생각하지? 버는 돈이 145억 원이라는 건 생각 안 해?”
“그……. 그건…….”
“뱌프, 네가 주인 의식을 가지고 비용을 아끼려는 거 이해하고 있어. 하지만 한국 지사는 동아시아와 중앙아시아 판매 허브고, 세계 마케팅의 중심이야. 주문받고 10일 이상 배송이 늦으면 암브로시아 전체 판매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해.”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한국에 재고가 쌓일 때까지 화물기를 이용하도록 해. 지금 중요한 건 고객의 수요를 신속하게 맞춰, 전체 판매량을 늘리는 거야.”
“알겠습니다, 대표님.”
뱌체슬라프는 성실하고 유능하다. 창수가 방향만 잡아 주었음에도 한국에서 오백세건강을 번듯한 사업체로 자리 잡게 만든 것이 그 증거이리라.
단점은 시야가 좁고 적은 돈에 민감하다는 것.
연해주에서 태어나고 자랐기에 국제적인 시각이 부족하다. 그리고 생활고에 찌든 삶을 살아서 무조건 아끼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뱌체슬라프의 한계를 파악한 창수는 호통 치기보다 논리적인 설명으로 긴급 수송의 중요성을 깨닫게 했다.
“그리고 행사 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어.”
“순조롭게 진행 중입니다. 지시하신 대로 먹방 너튜버와 음식 블로거들에게 초청장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왜? 걸리는 게 있어?”
“일부에서 협찬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창수는 바이럴 마케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성인 대부분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인터넷 전송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한국에서 바이럴 마케팅만큼 효과적인 홍보 방법이 없으니까.
호텔 연회장을 대여하고 화려한 행사를 여는 목적 중의 하나가, SNS 와 인터넷에서 활약하는 개인 크리에이터들이 담아 갈 멋진 그림을 만들어 주기 위함이다.
그러나 개인 크리에이터들도 영악해지고 기업화하고 있다. 순수한 콘텐츠가 아니라 돈 받고 홍보해 주는 소위 ‘숙제’가 횡행하는 상황.
암브로시아 론칭 행사에도 돈을 요구하는 개인 크리에이터들이 적지 않다.
“협찬이나 뒷광고 요구하는 사람은 모두 초청 명단에서 잘라 버려.”
“유명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느 정도 편의를 봐줘야 하지 않을까요?”
“돈 주고 난 뒤에 그 사람들 입 막을 수 있어?”
“그거야…….”
“우리는 신생 기업이야. 사소한 거라도 돈 문제로 걸리면 치명상을 당해. 차라리 홍보가 덜 된다고 해도, 돈 요구하는 사람들 제외하는 게 나은 선택이야.”
암습을 조심해야 한다. 바이럴 마케팅에 들어가는 돈은 별거 아니다. 그러나 돈 받은 개인 크리에이터들이 ‘숙제’를 안 하고 외부에 공론화하면, 암브로시아를 제대로 팔지도 못하고 한국 사법 당국의 표적이 될 수 있다.
창수는 태국 정부와 부유층의 견제를 몸소 경험했다. 한국이라고 다를 리 없다. 신생 기업과 신제품을 음해하려는 음습한 움직임이 분명히 있을 터.
감당할 수 없는 일은 애초부터 시작을 안 하는 것이 상책이다.
창수는 단호한 어조로 돈 요구를 거절하라고 지시했다.
4.
뱌체슬라프와 론칭 행사 세부 사항에 관해 논의를 마친 창수는 저녁을 먹으러 한정식 전문점 가마골에 갔다.
식사를 같이하려 했으나, 뱌체슬라프가 점검할 것이 있다 하여 창수만 이동한 것.
‘역시. 한국인 입맛에는 한정식이 최고야.’
오랜만에 한국 전통 음식을 맛본 창수는 만족한 상태에서 느긋한 기분을 가지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 띵띠리~
<무슨 일이야?>
<대표님, 모델들이 행사 참여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무슨 이유로 모델들이 출연을 거부해? 너 혹시 모델들에게 집적거렸냐?>
<아닙니다! 절대로 그런 일 없습니다! 장인어른에게 맞아 죽는 꼴 보려고 그런 말 하세요!?>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암브로시아 한국 론칭 행사를 주도할 모델들이 어깃장을 놓은 것.
창수는 뱌체슬라프가 모델들에게 흑심을 품고 들이대다가 사달이 났을 가능성을 생각했다. 유부남에 아이가 둘이지만, 아직 28세이기에.
그러자 경기를 일으키며 부인하는 뱌체슬라프.
뱌체슬라프의 장인은 러시아 레슬링 97kg급 국가 대표 출신으로, 올림픽에 출전해 은메달을 딴 엘리트 체육인이다.
뱌체슬라프가 약골은 아니지만, 곰과 스파링 한 경험이 있는 장인의 눈 밖에 나면 끔찍한 육체적 고통이 가해질 거다.
<그러면 원인이 뭐야? 뭐라고 하면서 리허설에 못 나오겠대?>
<그게 석연치 않습니다. 내일 리허설 준비를 위해 모델들에게 연락했는데, 3명 모두 개인 사정으로 참석할 수 없다고 합니다.>
<에이전시에 연락해 봤어?>
<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도 확실히 대답을 못 하고 있습니다. 모델들이 거절하면 자기들도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정말 무책임한 인간들입니다.>
행사 모델의 경우 연예 기획사가 아니라 모델 에이전시를 통해 섭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모델 에이전시는 케스팅 디렉터 역할을 담당하며, 다른 연예 기획사 연예인과 소속사 없는 모델 섭외를 대행하는 곳이다.
다양한 모델을 소개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모델에 대한 장악력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리허설 불참이면 본 행사에도 안 나오겠다는 거야?>
<모델들은 모르겠다고 하고, 에이전시는 확답을 안 해 줍니다.>
<그것들이 시간을 끌겠다는 거군. 뱌프, 변호사에게 연락해서 모델들하고 에이전시 모두 법적 조치 밟아.>
여행사를 경영한 창수는 모델 에이전시를 통해 여러 번 홍보 행사를 가진 경험이 있다. 그리고 에이전시가 부리는 깽판 수작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다.
정말 피치 못할 사정으로 모델이 스케줄 펑크를 낼 때가 있다. 이 경우 에이전시는 어떻게 해서든 대책을 마련해 준다.
하지만 지금처럼 나 몰라라 하는 건, 다른 흑심이 있다는 걸 나타낸다.
암브로시아 론칭 행사를 파투 내려고 작정한 거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다른 에이전시를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하이퍼 에이전시가 한국에서 가장 평판이 좋은 곳이야. 거기서 틀어 버린다는 건 다른 곳을 접촉해도 마찬가지라는 소리야. 시간 낭비할 필요 없어. 모델은 내가 구할 거니까, 너는 나머지 준비에 집중해.>
오백세건강은 모델과 에이전시에게 3억 원의 용역 계약을 맺었다. 지금처럼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면, 계약서상 손해배상금만 9억 원이다.
이에 더해 행사 취소로 오백세건강이 받는 피해를 고려하면, 수십억 원의 배상을 물어야 한다.
그런데도 대놓고 행사를 방해하는 건 무언가 큰 뒷배가 있다는 걸 의미한다.
창수는 어쭙잖은 미련을 버리고, 특단의 대책을 선택했다.
* * *
<실장님, 오백세건강에서 사법 대응을 시작했습니다.>
<강 대표님, 장사 한두 번 하나요? 시간을 좀 끌어야지, 이렇게 쉽게 결론을 내게 하면 어떻게 합니까?>
<저희는 속도 조절을 했습니다. 하지만 저쪽 행동이 너무 강경하고 빠릅니다.>
<흠……. 미련 없이 법적 대응을 시작했다는 건 다른 에이전시와 연결됐다는 건가요?>
창수의 판단이 옳았다. 하이퍼 에이전시의 농간으로 행사 모델들이 집단 보이콧 한 것이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실장이라 불리는 자가 있었다. 그는 창수의 빠른 행동에 당황하면서, 추가 조치를 모색했다.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습니다. 약속대로 50억 원을 지급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대로 일 처리 한 건 아니죠. 최소 30일까지는 시간을 끌었어야 하는 겁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오백세건강의 대응을 우리가 조절할 수 없으니까요.>
<아니죠. 밀당을 잘해야 했는데, 그걸 못해서 타초경사만 만든 꼴이죠.>
<말씀이 지나치시네요. 우리는 실장님을 믿고 고객과 약속까지 저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책임을 못 지겠다고 하는 겁니까?>
<책임 못 지는 것이 아니라, 의뢰한 일을 수행하지 못했으니 하는 말입니다.>
<어쩌자는 겁니까?>
<일단 9억 원을 지급하죠.>
<그걸로는 위약금밖에 처리하지 못합니다!>
<당장 필요한 것이 위약금 아닌가요? 일단 급한 불 끄고 나머지는 대표님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린 겁니다.>
<하……. 대유제당의 신의가 이것밖에 안 되는 겁니까?>
<신의가 아니라 일 처리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나태한 벤더의 응석을 들어주는 회사가 아닙니다.>
배후 인물은 대유제당 비서실장 고진석. 재벌의 사냥개답게 갑질에 능하다.
음습한 방해 공작을 벌이면서도 하수인에게 약속한 대금을 후려치는 교활한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나온다면, 암브로시아 론칭 행사 그대로 진행시킬 수 있습니다.>
<이보세요, 강 대표님. 우리 힘으로 당신 하나 찍어 누르지 못할 것 같나요?>
<찍어 누를 수 있겠죠. 그러나 나오는 비명 소리를 막을 순 없을 겁니다.>
하이퍼 에이전시 대표 강희만도 만만한 인물이 아니다.
위약금 9억 원만 확보한 상태에서 오백세건강과 소송전을 벌이면, 회사가 거덜 날 수 있다는 걸 인식하고 강경하게 나갔다.
죽더라도 혼자 죽지는 않겠다는 결의.
<그런 자세로 최선을 다했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 아닙니까?>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단지, 오백세건강의 반응이 빠른 것뿐입니다. 그 책임을 우리에게 지라는 건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후……. 좋아요. 25억 원으로 하죠. 나머지 대금은 당신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겁니다.>
독사와 전갈의 싸움이 팽팽한 균형을 찾았다. 애초 약속한 대금의 절반.
강희만이 25억을 챙기면, 손해배상 판결이 나도 파산은 면할 거다. 고진석은 나머지 대금 25억 원을 지렛대 삼아 강희만을 컨트롤할 수 있다.
서로 만족한 건 아니지만, 받아들일 수 있는 합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