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19장. 먹는 장사가 최고다
3.
“암브로시아라고 합니다.”
- 척!
“뭐야 이거!? 흔해 빠진 설탕이잖아?”
태국은 세계 4위의 설탕 생산국이다. 백설탕이 주류지만, 외국인과 하이소(상류층)를 중심으로 비정제 원당 붐이 일어나 쇼핑몰과 인터넷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김근홍도 여친들의 요구로 비정제 원당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고작 몇 달러짜리 감미료가 4,000캐럿이 넘는 초대형 다이아몬드보다 더 중요하단다.
김근홍의 목소리에 황당함이 가득하다.
“암브로시아는 보통 원당이 아닙니다. 칼로리가 일반 원당의 1/3밖에 안 되는 건강식품입니다.”
“1/3이라고? 맛은 어떤데?”
“직접 확인해 보세요.”
- 슥!
“오! 맛이 좋아! 엄청 좋아! 이거 대량생산 할 수 있는 거야?”
설탕보다 칼로리가 낮다는 건 큰 강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상품성이 있는 건 아니다. 칼로리가 낮더라도 맛이 없다면 소비자에게 외면받는다.
그러나 암브로시아는 달랐다. 단맛이 일반 설탕보다 강하면서도 더 깊은 풍미를 가졌다. 입맛이 매우 까다로운 김근홍이 만족할 정도로.
그는 암브로시아에 회의적이던 자세를 급격히 바꾸고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당연하죠. 대량생산을 못 하면 의미가 없는 거죠.”
“생산 단가는 어느 정도야? 5~6배 비싼 거 아니야? 너무 비싸면 수익성이 떨어져서 별 볼 일 없어.”
“아닙니다. 일반 원당보다 20% 정도 비용이 더 들어갑니다.”
“고작 20%!? 커커커! 완전히 갈색 황금이구만!”
암브로시아가 시중에 판매된다면, 프리미엄 설탕 시장을 석권할 수 있다.
세계 설탕 생산량은 연간 1억 8,000만 톤. 이 중 프리미엄 시장 규모를 1% 180만 톤으로 키운다면, kg당 10달러만 받아도 180억 달러라는 만만치 않은 금액이 나온다.
게다가 설탕을 넘어 다이어트 식품 업계 전체 판도를 바꿀 수 있을 터.
국제기구의 조사에 따르면, 체중을 줄이기 위해 연간 사용하는 돈이 1조 4,000억 달러를 넘는다고 한다.
이 중 식품이 차지하는 비율은 30%, 4,200억 달러 규모의 다이어트 식품 관련 시장이 있다. 암브로시아에게 메이저급 시장이 열려 있는 것이다.
세계 DRAM 반도체 시장 규모가 1,000억 달러, 플래시 램 시장 규모가 800억 달러, 그리고 파운드리 시장 규모가 740억 달러다.
DRAM과 플래시 램을 포함한 메모리 반도체가 한국 경제를 견인하고, 파운드리가 대만 경제의 기둥이라는 걸 생각하면, 암브로시아가 국가 경제를 떠받드는 핵심으로 떠오를 가능성도 존재한다.
경제 분야에 탁월한 식견을 가진 김근홍은 암브로시아에 국가 핵심 산업급 가치가 있다는 걸 단숨에 파악해 냈다.
“일단 정부 공인 기관에서 성분 분석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겠지. 5일만 기다려. 확실한 결과가 나올 거니까.”
“5일이요? 생각보다 빠르네요.”
“내가 누구냐? 여기서 이 정도는 충분히 컨트롤할 수 있어.”
태국에서 제대로 된 성분 검사를 받으려면, 한 달 이상 걸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운이 없어 나태한 공무원을 만나면, 6개월 걸려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김근홍은 그 기간을 5일로 단축하겠다고 말했다.
이건 김근홍이 태국 고위층과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고, 영향력이 강하다는 걸 나타낸다.
창수가 김근홍을 찾아온 건 개인적인 친분이 깊기 때문이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일 처리 능력이다.
창수 혼자 힘으로 5일 만에 암브로시아 성분 검사를 마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 * *
“창수야! 잭 팟이다!”
“실험 결과가 좋은가 보네요.”
김근홍이 장담한 대로 5일 만에 암브로시아 성분 검사표가 나왔다. 대박을 말하는 걸 보니, 칼로리가 낮은 것이 확실한가 보다.
“좋은 정도가 아니야. 네 말대로 칼로리가 127밖에 안 돼. 그리고 폴리코사놀이 사탕수수보다 20배나 많이 들어 있어.”
“폴리코사놀이요? 그게 뭐죠?”
“나쁜 콜레스테롤 제거하는 거잖아! 너 폴리코사놀이 뭔지도 모르고 암브로시아라고 말한 거냐?”
뜻밖의 희소식이다.
폴리코사놀은 녹차, 새싹 보리, 사탕수수에서 추출하는 식물성 왁스를 말한다.
혈관을 막는 LDL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혈관을 청소하는 HDL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여서, 혈액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미국 식품 의약품 안전청(FDA)이 심혈관계 질환 예방 효과가 있다고 발표한 뒤, 일부 국가에서 폴리코사놀 생산과 판매를 국책 사업으로 밀고 있다.
현대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질병의 선두에 위치한 것이 심혈관 질환. 김근홍은 불멸을 의미하는 ‘암브로시아’라는 이름이 높은 폴리코사놀 함유량 때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창수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아. 들어 본 것 같네요. 그런데 효과를 보려면 섭취를 많이 해야 하지 않을까요?”
“암브로시아에 폴리코사놀이 kg당 50mg 들어 있어. 매일 100g을 먹으면 나쁜 콜레스테롤을 낮출 수 있는 거지.”
“칼로리가 127밖에 안 되지만, 매일 100g은 무리 아닐까요? 잘못하면 당뇨가 올 가능성도 있고요.”
사탕수수 1kg에는 2.5mg의 폴리코사놀이 함유돼 있다. FDA가 권장한 하루 복용량은 5~20mg. 효과를 보려면 사탕수수 2kg을 매일 먹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
반면, 암브로시아를 하루에 100g만 먹어도 LDL을 낮추는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창수는 암브로시아를 매일 100g씩 먹는 것에 부정적이다. 건강식품이 건강을 해치는 식품으로 바뀌는 것을 원하지 않기에.
“야! 너 일부러 이러는 거지?”
“예? 일부러라고요?”
“암브로시아 성분 이미 다 알고 나 떠보는 거 아니야?”
“무슨 말씀이세요?”
“암브로시아 혈당 지수가 21이야! 토마토하고 양배추보다 낮은데, 100g 먹었다고 당뇨에 걸릴 것 같아!?”
혈당 지수(Glycemic Index)는 음식물을 먹을 때 혈당이 올라가는 속도를 말한다.
백설탕의 혈당 지수가 109, 물엿 93, 초콜릿 90, 꿀이 88이다. 혈당 지수가 높은 식품은 인슐린을 과잉 분비 시키고, 지방 축적을 촉진한다. 게다가 췌장을 혹사하는 부작용도 있다.
일반적으로 55 이하를 혈당 지수가 낮은 식품이라고 칭한다.
토마토가 30, 양배추가 26이니, 혈당 지수가 매우 낮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암브로시아의 혈당 지수는 21에 불과하다. 당뇨 식단에 사용하는 가지, 송이, 부추, 브로콜리, 오이보다도 낮다.
김근홍은 창수가 극적인 효과를 위해 일부러 암브로시아의 성분과 효능을 모른 척한다고 생각했다.
‘컥! 엄청난 건강식품이구만! 대박! 초대박이야!’
솔직히 놀랐다. 금나라에서 고사누가 성분 검사할 때, 혈당 지수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
그도 그럴 것이 혈당 지수가 도입된 건 1981년으로, 평행우주 너머 세상에는 알려지지도 않았다.
창수는 예상을 넘는 암브로시아의 효능에 속으로 감탄사를 연발했다.
“커험. 아무튼, 실험 결과가 잘 나와서 다행입니다. 선배님, 이제 생산 이야기를 해 보죠. 비정제 원당을 취급하는 공장을 인수해야 하는데, 쓸 만한 곳이 있나요?”
“제당 공장이야 찾아보면 많지. 그런데 회사를 인수하면, 얼마 후에 암브로시아를 생산할 수 있는 거야?”
“공장에 시설물을 설치하고 시범 운전 하는 기간을 다 합해도 일주일이면 충분합니다.”
“고작 일주일!? 너 마법 쓰냐?”
“생산 관련 사항은 절대 비밀입니다. 서로 모르는 것이 안전합니다.”
“까칠하기는. 알았다, 알았어. 생산 비밀은 철저히 지키마.”
창수가 김근홍을 찾은 또 다른 이유는 누구보다도 비밀을 잘 지킬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
의문점이 한둘이 아니지만, 김근홍은 호기심을 누르고 사업에 집중했다.
“이 분석표를 수출에 사용해도 되는 거죠?”
“당연하지. 공식 인증이니까. 그런데 내수보다 수출을 먼저 하려는 거야?”
“예. 태국 시장은 한계가 있습니다. 일단 한국에 수출한 뒤, 전 세계로 판매망을 늘릴 계획입니다.”
“좋은 생각이야. 입맛 까다로운 한국인에게 통하면, 세계 어디를 가도 성공할 수 있으니까.”
한국에서 암브로시아를 만들려면, 사탕수수를 해외에서 수입해야 한다. 제조 단가가 올라가고, 원료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연간 1,100만 톤에 달하는 사탕수수를 생산하는 태국에서 양질의 사탕수수를 저렴한 가격에 매입할 수 있다.
태국에 생산 시설을 만드는 건 합리적인 판단.
반면, 세계 10위권의 경제와 수준 높은 문화 역량, 그리고 까다로운 소비자를 가진 한국은, 국제적인 판매 테스트 베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창수는 이 점을 인지하고, 암브로시아 판매를 한국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4.
<대표님, 관세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테스트용 암브로시아를 보내 달라고 합니다.>
<무슨 소리야? 성분 검사 시작할 때, 암브로시아 안 보냈어?>
<당연히 보냈죠.>
<그러면 또 달라고 하는 이유가 뭐야?>
<그것이……. 암브로시아 성분이 이상하게 나왔다고 합니다. 재검증이 필요하다고 추가로 달라고 하는데요. 참 이상한 일입니다.>
‘후후후. 한국에서도 난리가 났나 보군.’
태국 수판부리에 위치한 제당 공장을 인수한 뒤, 마법진을 설치하고 암브로시아 시범 생산에 들어갔다.
2일이 지날 무렵, 서울에서 뱌체슬라프가 전화를 걸어왔다. 내용은 성분 검사 실험을 위해, 관세청에 추가로 암브로시아를 보내야 한다는 것.
통관 업무를 담당한 뱌체슬라프는 얼떨떨해하는 목소리를 내며 난감함을 표현했다.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벌어졌으니까.
하지만 창수는 놀라지 않았다. 왜냐하면, 태국에서도 유사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김근홍이 성분 검사표를 받아 온 다음 날, 검증 기관에서 추가 검사를 요청해 왔다.
김근홍은 ‘장난하냐?’며 화를 냈지만, 상대방이 애걸복걸하는 바람에 추가로 암브로시아 샘플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바로 어제, 검증 기관 소장이 수판부리 제당 공장에 직접 찾아와 3번째 암브로시아 샘플을 가져갔다.
[상상을 뛰어넘는 효능을 가지고 있어, 생산부터 전반에 걸친 정밀 재검사가 필요합니다.]
평소 김근홍의 성깔을 알고 있던 소장은 두려워하며 말을 꺼내면서, 세 번째 검사의 당위성을 설득하려 노력했다.
암브로시아가 제당 공장에서 정상적인 절차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실험실에서 연구용으로 만들어진 거라면, 성분 인증을 해 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김근홍은 [이런 일이 반복되면 옷 벗고 실업자 될 줄 알라]고 경고하면서, 마지막 성분 검사라는 것을 확실하게 못 박았다.
<관세청에 암브로시아 샘플 줘 봐야 소용없어.>
<예!? 수입 통관절차를 중단하라는 말이에요?>
<아니. 지금 방식으로는 답이 없다는 거야. 암브로시아 샘플을 추가로 보내 줘도, 재검증을 다시 하자고 반복할 것이 뻔해.>
<그러면 어떻게 해요?>
<일단 추가 샘플을 특급 우편으로 보낼 거니까, 관세청에 줘. 그리고 3차 검증이 필요하면, 태국 공장으로 인원을 직접 파견하라고 전해. 여기서 생산되는 암브로시아 샘플을 가지고 가야, 확실한 결과가 나올 거라고 얘기하면 알아들을 거야. 비용은 우리가 모두 댄다고 말하고.>
창수는 한국 검증 기관도 태국 검증 기관과 유사한 상황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암브로시아는 감미료업계의 판도를 완전히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검증 기관에서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상황.
창수는 화내지 않고 그들의 고충을 이해하면서, 최단기간에 인증받아 내는 길을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