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19장. 먹는 장사가 최고다
1.
“아그들아! 뭐 하냐? 손님 기다리는디 싸게싸게 움직여야제?”
“쉬엄쉬엄 하자고요! 이러다가 사람 잡겄소. 잉!”
2022년 8월 8일 월요일, 조선의 수도 한양에서 가장 번화한 종로 거리 상점에서 심상치 않은 기 싸움이 벌어졌다.
주인공은 만두가게 공동대표 박금래와 광주 휘발유 박만석.
“이눔아! 넘의 돈 먹기 쉬운 줄 알어?”
“아따! 우리 아짐 사장님 다 돼 부렀네!”
“이눔! 말하는 거 보소! 나가 니 당고모여! 어따 대구 아짐이래?”
“7촌잉께 아짐이죠!”
“그럼 재당고모라 불러! 주댕이로 또 아짐이라고 부르면 당장 짤라 버릴 텡께! 알것냐!?”
“크흠…….”
박금래 58세, 박만수 55세. 조선이 장유유서가 통하는 사회라도, 50대 중년의 3살 차이는 서로 존대하는 것이 예의다.
하지만 박금래는 거침없이 박만수를 하대했다. 6촌 오빠의 아들이 박만수이기 때문이다.
불같은 성질을 가진 박만수지만, 항렬이 밀리기에 박금래의 횡포(?)를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했다.
“인원을 더 늘려야겠네요. 직원이 힘들면 좋은 접객이 나올 수 없습니다.”
“오매! 사장님 오셨네요! 이게 얼마 만인가요? 잉!”
궁지에 몰린 박만수를 거들고 나선 건 창수였다.
금나라 선양을 떠나 한양에 도착한 뒤 만두가게 현황을 살피던 창수. 그는 직원들에게 과부하가 걸린다는 걸 지적했다.
이건 박금래가 박만수에게 무리한 작업 지시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박금래는 창수가 말한 내용에 집중하지 않고 창수를 만난 것 자체를 기뻐했다.
“3달이 좀 넘었죠. 그동안 장기 출장을 가는 바람에 들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손님이 많군요.”
“감당이 안 된당께요! 사장님 오기를 목 빠지게 기다렸어라!”
“하루에 매상이 얼마나 나오나요?”
“4만 환이요! 만두가 3,000개씩 나간당께요! 고거두 징허게 맹근 거구만요!”
‘흠……. 판매가 폭발적이군. 당연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지.’
창수는 만두가게를 창업하면서, 하루에 만두 1,500개 판매, 매출 2만 환을 손익분기점으로 잡았다.
초기에 손익분기점을 유지하고, 차츰 입소문이 나면 6개월 안에 수익을 낼 수 있을 거라 예상한 것.
하지만 개업한 지 불과 100일이 지나는 시점에서, 손익분기점을 아득히 뛰어넘는 판매량이 나온다고 한다.
창수는 박금래가 박만수를 무리하게 부려 먹는 이유와 자신을 반긴 이유를 알게 됐다.
“직원 숫자를 두 배로 늘려야 합니다. 그래야 장사도 잘되고 몸도 편해집니다.”
“사람 많이 쓰다가, 장사가 안되면 우짜죠?”
직원을 두고 장사한 경험이 없는 박금래는 추가 고용에 막연한 공포감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창수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직원을 늘리자고 말했다면, 욕을 한 바가지 했을 거다.
“판매는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입소문이 돌아 매출이 떨어질 일은 없을 겁니다. 그리고 늘어나는 직원 고용 비용은 하루에 만두 400개만 더 팔면 메울 수 있습니다.”
“흐미! 그러코롬 된다면, 당장 사람 써야죠!”
박금래는 장사 경험이 많다. 하지만 그건 자신과 가족이 포함된 소규모. 지금처럼 덩치가 커진 사업에 과거 경험은 도움이 아니라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다행인 건 박금래에게 경험 많은 동업자가 있다는 것.
창수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박금래는 오랜 세월 가졌던 고정관념을 깨고 직원 확충에 동의했다.
“인원 모집은 이번에도 반장님이 나서야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잉! 일헐 사람들 쌔고 샜으니께요!”
창수는 박만수에게 직원 모집을 일임했다. 만두가게를 연 이유 중의 하나가 판자촌 주민에게 고정 수입을 만들어 주기 위함이다.
지시받은 박만수는 뛸 듯이 기뻐했다. 월 기본급만 700환(한화 70만 원)을 받을 수 있는 만두가게는 판자촌 사람들에게 꿈의 직장이다.
이미 박만수에게 50명이 넘는 주민이 취업 청탁을 해 온 상황에서 15명을 고용하는 건 땅 짚고 헤엄치기보다 쉬운 일.
“제 몫으로 나오는 배당금은 식량 구매하고, 공부방 지원하는 데 사용하세요. 이건 박 사장님과 상의해서 처리해야 합니다.”
“그라문 사장님헌티 남는 게 없는 거인디…….”
“사람들 먹고, 아이들 공부하는 게 남는 거죠. 제 걱정은 마십시오. 사업이 잘돼서 돈 많이 벌고 있으니까요.”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랑가 모르것네요…….”
박만수는 거친 사내지만, 의리와 도의를 알고 있다. 그는 창수가 판자촌 사람들을 위해 아낌없이 퍼 주고 있다는 생각에 감격해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은혜가 아닙니다. 도움을 서로 주고받는 거죠. 지금은 제게 여유가 있어 도움이 되지만, 앞으로 반장님과 청계천 주민 여러분에게 도움을 받을 일이 있을 겁니다.”
“아따! 말씀만 하시쇼! 잉! 불구덩이라두 뛰어들탱께요!”
같은 돈을 들여도 누구에게, 어떤 때,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효과가 달라진다.
창수가 판자촌 사람들에게 투입한 돈은 만두가게 창업 비용을 다 합쳐도 30만 환(한화 3억 원)이 되지 않는다.
창수가 가진 천문학적인 재물에서 빙산의 일각도 안 되는 소소한 금액. 그런데도 박만수로부터 충성 맹세에 가까운 반응을 이끌어 냈다.
이건 창수 자신이 곤궁한 상황에 빠졌던 경험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2.
한양에서 만두가게 관련 일을 마친 창수는 평행우주를 넘어 서울로 돌아왔다.
아직까지 반지하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 우편물 상자를 따로 마련했으나, 100일 만에 돌아오니 상자가 가득 차서 넘쳤다.
‘영양가 있는 건 하나도 없구만.’
여행사를 경영했기에 여기저기서 보내온 우편물이 많다. 확인 안 하고 다 버리자니, 간혹 반드시 체크해야 할 우편물이 끼어 있다.
불필요한 우편물은 안 받고 싶지만, 대놓고 거절하기도 쉽지 않다.
‘빨리 이사해서 귀찮은 거 다 끊어 버려야지.’
대안은 새집으로 이주하는 것. 꼭 필요한 곳에만 주소 변경을 알리면, 나머지 우편물 배달이 저절로 중단될 터.
창수는 간단하게 집 정리를 마친 뒤 경동시장으로 갔다.
“형님! 어디 갔다가 이제 오는 거예요!? 연락도 안 되고!”
“야! 너 짤리고 싶어! 사무실에서 형님이라 부르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죄송합니다, 대표님.”
창수가 찾은 곳은 외투법인 ‘오백세건강’의 사무실이다. 상호가 무척 촌스럽지만, 해외에서 건강식품을 수입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주기 위해 선택했다.
보스가 장기간 자리를 비운 사이 실질적으로 오백세건강을 운영하는 뱌체슬라프가 창수에게 볼멘소리를 냈다.
서울, 속초, 블라디보스토크를 오가며 까다로운 일들을 처리할 때, 창수와 연락이 안 돼 짜증이 난 것.
그러나 창수가 누구인가?
뱌체슬라프의 불평 정도는 간단히 제압할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창수는 말꼬리를 잡아 가볍게 부하 직원을 굴복시켰다.
“그동안 실적은 어때?”
“잘되고 있습니다. 3개월간 매출이 11억 원이고, 순이익은 1억 원 정도 됩니다.”
“매출은 정상인데 수익률이 형편없군. 이렇게 해서 언제 돈 벌 거야?”
사실은 아주 좋은 실적이다. 창수가 예상한 매출은 3억 원, 수익은 손익분기점을 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창수가 툴툴거리는 것은 대가 센 뱌체슬라프의 기를 누르기 위해서다.
“개업 3개월 만에 이 정도 성과면, 좋은 성적입니다. 업계에서 칭찬도 자자하고요.”
- 척!
“흰소리 말고. 이거 수입 통관절차 진행해.”
“응? 비정제 원당이잖아요? 형… 대표님! 이미 레드오션이에요!”
창수가 건넨 건 갈색을 띠는 원당이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백설탕은 정제 과정을 거쳐 사탕수수에서 당분만을 추출한 것이다.
반면 비정제 원당은 사탕수수를 압축해 나온 즙을 가열해 만든 것으로, 칼슘, 철분, 마그네슘, 칼륨, 비타민, 폴리코사놀 등……. 인체에 유익한 성분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
뱌체슬라프는 비정제 원당이 ‘오백세건강’이라는 회사의 이름에 걸맞은 제품이라는 걸 알고 있다.
문제는 가격. 한국에 비정제 원당이 소개된 초기, kg당 20,000원에 팔렸던 것이 요즘 3,000원까지 떨어졌다. 치열한 경쟁이 원인.
백설탕이 kg에 1,500원이라는 걸 고려하면, 비정제 원당을 수입해서 판매하는 건 비효율적이고 적자를 유발하는 일이다.
“어허! 감히 암브로시아를 일반 비정제 원당과 비교해!?”
“암브로시아요? 신이 먹는다는 불사의 음식 말하는 거예요?”
“알긴 아는구만! 바로 이것이 원당 세계의 암브로시아야! 앞으로 너를 부자로 만들어 줄 귀물이니, 알아서 모셔!”
“헐…….”
황당하다. 뱌체슬라프는 목구멍에서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요.’라는 말이 올라왔지만, 감히 내뱉지 못했다.
창수의 심기를 건드려 1차 경고를 받은 상태에서, 또다시 나섰다가 진짜 해고당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뱌체슬라프는 창수가 주는 고액 급료의 달콤함에 이미 중독돼 있다. 그깟 자존심 개나 줘 버리고, 일자리를 지키려 했다.
“그리고 본사에서 10억 원 정도 송금이 올 거야. 저번에 봐 뒀던 주택 매입해.”
“드디어 이사하는군요! 반지하는 대표님 격에 안 맞는 곳이죠! 이사 날짜 알려 주세요! 직원들 데리고 가겠습니다!”
“뱌프야, 오버하지 마라. 요새 시절이 어느 때인데 직원을 사적으로 부려 먹냐?”
“직원들 모두 고려인이라 이해할 거예요.”
“아니야. 그럴수록 한국 기업 문화를 따라야 해. 짐 정리는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내가 말한 거 처리해. 그리고 경고하는데, 암브로시아 통관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너 진짜 자를 거야. 알겠냐?”
“알겠습니다. 더 복잡한 것도 다 해냈는데, 이거 못 하겠어요?”
수입 식품 통관절차는 만만치 않다.
먼저 관세청에 신고한 뒤, 실물 검사를 받아야 한다. 검사에는 다시 성분 검사와 검역과 같은 세부 항목이 있고, 모든 검사를 마친 뒤 수입 신고 확인증을 받아야 정상적으로 수입할 수 있다.
이 과정을 여러 번 마친 뱌체슬라프는 비정제 원당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미 한국에 수십 가지가 넘는 수입 비정제 원당이 팔리고 있으니, 검사가 깐깐하지 않을 거라 판단한 것이다.
* * *
뱌체슬라프에게 업무 지시를 마친 창수는, 태국으로 출국해 김근홍을 만났다.
“선배님, 생각보다 건강해 보이시네요.”
“왜 미라라도 볼 줄 알았냐?”
“조금 걱정이 되기는 했습니다.”
“커커커. 돈이 좋더구나. 영약을 골고루 먹으니, 몸이 아주 거뜬해.”
“커험. 그런 거군요. 난 또 건전한 생활을 하는 줄 알았죠.”
“나에게는 이게 건전한 생활이야. 그건 그렇고, 큰 건이 있다고 그랬지? 혹시 슈퍼노바보다 더 큰 다이아몬드냐?”
김근홍이 창수를 마지막으로 본 건 3월 12일. 3,527캐럿 세계 최대 다이아몬드를 33억 달러에 매각한 날이다.
그 후로 5개월이 다 돼 가는 상황에서, 창수의 전화를 받은 김근홍은 또 다른 다이아몬드 거래를 머리에 떠올렸다.
“다이아몬드 거래는 올해 안에 하지 않을 겁니다.”
“말 돌리지 말고 대답해 봐. 슈퍼노바보다 큰 게 있는 거야, 없는 거야?”
“4,000캐럿 넘는 게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오늘 선배님을 만난 건 더 큰 사업을 논의하려는 겁니다.”
“뭐라고!? 40억 달러 거래보다 더 중요한 사업이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