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평행우주 독식-55화 (55/200)

55화 18장. 뜻밖의 횡재

3.

“츠네, 또 한 무더기 몰려온다.”

정찰 드론이 보내온 영상에 차량 9대가 등장했다. 소형 증기자동차 3대와 화물차 6대. 화물차 3대에는 짐이 실려 있고, 다른 3대에는 중무장한 병력이 타고 있었다.

대략 70명으로 보이는 무장 병력이 창수 일행이 탄 화물차를 향해 달려오고 있는 거다.

“복장으로 봐서 일본인은 아닌 듯합니다. 그냥 지나갈까요?”

“아니야. 저 속에 세작이 섞여 있을 수 있어.”

“그렇군요. 둔덕 뒤로 이동하겠습니다.”

한두 번이 아니다. 창수 일행이 교통량이 적은 후레(울란바토르) 방향으로 가고 있음에도, 중무장한 병력과 연달아 조우하고 있다.

그중에 사사키 재단과 흑룡회 병력으로 보이는 무리가 있었으나, 그렇지 않은 무리도 여럿 보였다.

창수는 귀찮음을 느끼면서도 모든 무장 병력을 피해 갔다. 포위망을 벗어난 지 오래됐고, 추격자도 없기 때문이다.

조금 시간이 걸려도 보안을 유지하며 움직이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 * *

“게르 숫자가 엄청나네요.”

“후레 인구 팔 할이 게르에서 살고 있어. 많은 것이 당연하지.”

“저도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보니 장관이네요.”

“게르 안에 들어가면 더 좋아. 집하고 다를 바 없어.”

2022년 6월 23일 목요일, 창수 일행이 후레 인근에 도착했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는 인구 145만 명에 달하는 대도시다. 국가 전체 인구의 45%가 모여 살고 있다.

후레는 울란바토르의 예전 이름이고, 평행우주 원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다. 인구는 30만 명. 약 5만 개에 달하는 게르에 24만 명이 살고 있다.

게르는 몽골인이 사용하는 원형 천막이다. 본래 용도는 초원에서 가축을 키우는 유목민의 이동식 거처지만, 후레와 같은 도시 지역에서 저렴한 거주지로 사용한다.

“게르촌에 들어가면 눈에 띄지 않겠군요.”

“그렇지. 게르 모양이 비슷해서 깜빡하면 자기 숙소를 못 찾고 길을 잃는 경우도 있어. 보안을 유지하면서 휴식을 취하기 좋은 곳이야.”

창수가 원나라 후레에 들른 것은 처음이지만, 몽골 울란바토르는 7번 방문했다.

부동산을 가지지 못한 몽골 수도 인구 절반이 게르에서 살고 있다. 게르에 여러 번 머문 적이 있는 창수는 그 기능과 가치를 잘 알고 있다.

창수는 지속적인 야영 생활로 몸과 마음이 지친 일행에게 휴식을 줄 최적의 장소가 게르라고 생각했다.

- 치지직!

“이게 뭔가요?”

“허르헉이라는 거야. 불에 달군 돌에 양고기와 야채를 넣고 익히는 음식이지.”

“번거로워 보이는군요. 굳이 이런 방식을 쓰는 이유가 있나요?”

“조금 있다가 먹어 보면 알겠지만, 허르헉은 양고기 잡내가 하나도 없어. 그리고 오래 익힐수록 고기가 부드러워지지. 유목민의 지혜가 담긴 음식이야.”

창수 일행은 어렵지 않게 임대 전용 게르촌을 찾아냈다. 그리고 식사로 원나라 전통 음식 허르헉을 주문했다.

허르헉은 원나라 사람들이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 내오는 음식이다. 요리 시간이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으나, 버덕과 함께 원나라 음식 중 최고라 할 수 있다.

- 우적! 우적!

“정말 맛있네요! 금나라에서 먹은 것과 급이 다릅니다!”

“마법사님 입맛에 맞아서 다행입니다. 식기 전에 많이 드세요.”

“저 혼자 먹는 것 같아 미안하군요.”

“걱정하지 마세요. 모자라면 더 주문하면 됩니다.”

허르헉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인 건 마법사 고사누였다.

금나라 여진족도 유목민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고사누는 수도 선양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선양에도 허르헉과 유사한 음식이 있지만, 유목민 전통 방식으로 만든 것과 맛과 풍미에서 큰 차이가 난다.

고사누는 오리지널 허르헉을 먹으면서, 잊고 있었던 여진족의 야성을 깨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하하. 엄청나게 먹어 대는구만. 입이 짧아서 걱정했는데 허르헉을 좋아하니 다행이야.’

마법사답게 까다로운 입맛을 가지고 있는 고사누. 창수와 츠네가 맛있게 잘 먹는 음식을 탐탁지 않게 여긴 것이 여러 번이다.

창수는 인간관계 유지에 음식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다.

고사누에게 보라색 크리스털을 맡기고 5서클 마법을 익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좋은 관계를 이어 가기 위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먹거리를 찾는 것이 필요한 상황. 바로 그 순간에 허르헉을 만난 것이다.

이것 또한 예상 밖의 소득이라 할 수 있다.

4.

창수가 게르에서 진미를 맛보며 휴식을 취하고 있으나, 방심한 건 아니다.

게르촌 상공에 정찰 드론 2대를 띄워, 혹시 있을 위협에 대비했고, 벌새 드론을 동원해 인근 게르 동정을 살폈다.

게르는 중앙에 난로를 설치하고 천장 가운데 위치한 투노로 연기를 배출하는 난방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벌새 드론은 투노 인근에 머물면서 게르 투숙객의 목소리를 창수에게 전달했다.

<으슥쾰에서 큰일이 벌어졌다는 소문이 있던데, 이야기 들어 봤어?>

<당연히 알고 있지! 으슥쾰 호수 인근에 미궁이 나타나서 치고받고 난리도 아니야!>

<미궁이라고? 똥파리들 엄청 꼬이겠네.>

<똥파리 정도가 아니야. 발견한 건 왜국인데, 명나라, 러시아, 무굴, 오스만에서도 군침을 흘리고 있어.>

‘헐! 러시아, 무굴, 오스만이 개입해!?’

생각보다 일이 커졌다. 창수는 으슥쾰 미궁으로 사사키 재단과 흑룡회 병력이 모이고, 원나라와 명나라 일부 세력이 관심을 가질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예측과 다르게 주변 강대국들의 주의를 끌게 됐다.

러시아는 시베리아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으나, 천산산맥 인근까지 영토를 넓혔다.

무굴은 영국에게 지배당하지 않고 살아남아, 티베트 지역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오스만 역시, 쇠퇴하지 않고 중앙아시아 이슬람 국가의 종주국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 으슥쾰 호수 미궁은 지구 반대편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코앞에 나타난 이벤트다.

<어떤 미궁인데 대국들이 나서는 거지?>

<상급 미궁이래. 그것도 만든 지 200년이 넘은 곳이라는 거야.>

<설마? 전설의 3대 미궁?>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

<우리 같은 잔챙이는 얼씬도 안 해야겠군.>

<당연하지. 벌써 수백 명이 넘게 죽었어. 우리 정도는 불나방도 안 되는 거야.>

창수의 계산대로 사사키 재단 병력과 흑룡회 병력이 정면으로 충돌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게다가 강대국에서 보낸 정찰대와 한탕을 노리는 군소 세력이 뒤엉켜, 으슥쾰 미궁 인근에서 피 튀기는 살육전이 벌어지고 있다.

“생각보다 정보가 빠르게 퍼지는군요.”

창수는 벌새 드론을 이동시켜 다른 투숙객들이 나누는 내용을 수집했다. 게르 10곳을 도청한 결과 3곳에서 미궁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놀라운 것은 단순히 흘러가는 소문 수준이 아니고, 고급 정보가 다수 담겨 있다는 점.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리라.

“전설의 미궁은 대륙 전체에서 유명합니다. 그중 하나가 나타났으니 들썩일 만하죠.”

“보안에 힘을 쓴 보람이 있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시간과 재물을 아끼려고 보안을 소홀히 했다면, 지금 우리는 수많은 세력에게 쫓기고 있을 겁니다.”

상급 미궁 중에서 존재한다고 알려졌지만,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곳이 6개다. 그중에서 200년 이상 발견되지 않은 곳을 ‘3대 미궁’이라 부른다.

고사누는 보라색 크리스털을 연구한 뒤, 으슥쾰 호수 미궁이 3대 미궁의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창수가 탐사 준비로 1조 원에 달하는 거금을 사용한 이유가 바로 이것.

츠네는 과하다는 의견을 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막대한 금액을 투자한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다.

“전설의 미궁을 누군가가 털어먹었다는 게 알려지면 볼만하겠네요.”

“피의 광풍이 일어날 겁니다. 그래서 걱정입니다. 자칫 우리가 말려들 수 있습니다.”

“마법사님, 그건 걱정 안 해도 될 겁니다.”

“예? 대안을 가지고 있으신가요?”

“상황이 그렇습니다. 미궁 마스터의 능력을 생각해 보세요. 미궁 입구가 열릴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우리가 진입했다는 걸 알 방법이 없는 거죠.”

“하긴 그렇군요. 그분은 6서클 마스터가 분명합니다. 재정비하기 전에 미궁 진입을 허용할 리 없죠.”

“설령 미궁이 열린다고 해도, 우리를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겁니다.”

“으슥쾰 호수에 모인 다른 세력을 의심할 거라는 건가요?”

“맞습니다. 그리고 의심을 받는 첫 번째 대상이 흑룡회가 되겠죠. 입구에 남은 흔적이 흑룡회의 목을 졸라맬 겁니다.”

“그렇군요. 대표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고사누는 으슥쾰 호수 미궁을 둘러싼 과열 경쟁에 두려움을 느꼈다. 언제 불똥이 튈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그러나 창수의 생각은 달랐다. 3대 미궁이라는 전설을 만든 마스터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의도하지 않은 행운도 있었다. 츠네가 시간에 쫓겨 마나 유지기 은폐 흔적을 완전히 지우지 못한 것이 화가 아니라 복이 됐다.

흔적을 최초로 발견한 사사키 재단 병력은 흑룡회가 미궁에 작업을 시도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강대국이 파견한 정찰대도 같은 생각.

미궁에 어떤 일이 벌어져도, 흑룡회는 자유로울 수 없다.

‘휴식하면서 상황 파악을 좀 더 해야겠군.’

창수 일행은 후레에서 3일간 더 머물렀다. 쌓인 피로를 풀고 으슥쾰 미궁에 꼬여 든 병력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 위해서.

그리고 사사키 재단이 교통로 검문검색을 포기했다는 소식을 알게 됐다.

이미 미궁의 위치가 알려진 상태고, 흑룡회와 정면충돌하면서 대규모 전력 손실을 봤기에, 소득 없이 흩어진 병력을 회수한 거다.

가벼운 마음으로 귀환 길에 오른 창수 일행은 2022년 7월 4일, 금나라 수도 선양에 도착했다.

미궁 탐험을 시작한 지 5주 만에 완벽한 성공으로 일정을 마무리한 것이다.

* * *

“대표님, 성취가 있었습니다.”

“5서클에 오르신 건가요?”

“그렇습니다. 오늘 아침에 유난히 끌리는 마법이 보였습니다. 시험 삼아 구동해 봤는데 단번에 실행이 됐습니다.”

물 만난 물고기.

선양으로 복귀한 고사누는 보라색 크리스털에 담긴 마법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주일 만에 5서클 마법사가 됐다.

본래 뛰어난 마법사이기는 했으나, 성취가 비정상적으로 빠르다. 이건 크리스털에 담긴 수많은 마법 중에 고사누와 궁합이 맞는 마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다른 방법으로 5서클 마법을 접했다면, 고사누가 이처럼 빠르게 5서클 마법사가 되는 일은 없었을 거다.

“하하하! 축하합니다! 마법사님! 이제 마탑을 세워도 되겠네요!”

“아닙니다. 고작 5서클 비기너일 뿐입니다. 최소한 익스퍼트는 돼야 마탑을 이끌 자격이 됩니다.”

“조만간 5서클 익스퍼트가 되실 거라 믿습니다. 마법 연구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말씀하세요.”

“대표님 덕분에 모든 것이 풍족합니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훈훈한 덕담이 이어졌다.

창수는 5서클 주요 마법이 수록된 국보급 보물을 고사누에게 맡기는 배포를 보여 줬다.

이에 화답하듯 고사누도 겸양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 줬다. 5서클 마법사는 국왕 앞에서도 뻣뻣한 자세를 유지한다는 걸 생각하면, 고사누가 가진 인품을 판단할 수 있으리라.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 그런데 어떤 마법을 성공시켜 5서클에 오르신 건가요?”

“아……. 그게 쓸모가 없는 것이라…….”

“5서클 마법에 쓸모없는 것이 있을 리가요? 그리고 우리 사이에 숨길 것이 무언가요? 그냥 말해 보세요.”

“음식물이 가진 열량을 낮추는 마법입니다.”

“예!? 영양소를 파괴하는 마법이라고요?”

“모든 영양소는 아닙니다. 탄수화물과 일부 지방을 제거해 버립니다. 정말 형편없는 마법입니다.”

‘헐!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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