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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평행우주 독식-53화 (53/200)

53화 18장. 뜻밖의 횡재

1.

봉인 해제 장치 앞에 도착한 창수는 마법자루에서 보라색 크리스털을 빼냈다. 미궁 탐사 목적을 달성하기 바로 직전에 도달한 상태.

그리고 그때 응접실 안에 괴한이 나타났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어떻게 나타났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신출귀몰한 등장이었다.

돌발 상황에 츠네는 반사적으로 볼트22를 겨눴고, 고사누는 마법 캐스팅 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창수는 동요하지 않았다. 침착하게 크리스털을 마법자루에 집어넣으며, 난입한 괴한을 자세히 살폈다.

‘흠……. 나이를 알 수 없군.’

10대 중반, 많아야 20대 초반, 괴한은 소년과 청년의 중간 나이 정도로 보였다.

하지만 앳돼 보이는 얼굴과 달리 깊은 연륜이 나타난 눈을 가졌다. 30대도 안 된 사람이 저런 눈을 하고 있다면 광인이 분명하다.

게다가 몸에서 나오는 기도가 범상치 않다. 츠네와 고사누가 적대적인 자세를 보이는데도 흔들리지 않고 여유로운 자세로 창수에게 말을 건넸다.

“미궁 마스터십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죠?”

“상급 미궁에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기는 미궁에서 가장 깊고 중요한 곳이죠.”

“하지만 마스터라 하기에 제가 너무 어려 보이지 않나요?”

“미궁을 만든 고위급 마법사라면, 외양으로 연배를 따지는 건 무의미합니다.”

“그렇군요. 합리적인 추론입니다. 맞습니다. 제가 이 미궁을 만들었습니다.”

창수는 71개국을 여행하고, 여행사를 운영하면서 숱하게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 경험이 미궁 마스터의 정체를 알아보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짐짓 굳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을 회피하던 미궁 마스터는 창수의 논리적인 지적에 자신의 진면목을 인정해야 했다.

“미궁 마스터가 친히 등장하는 건 매우 희귀한 일이라 알고 있습니다.”

“그렇죠. 그리고 기록으로 보고된 적이 없을 겁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탐험자가 중대한 과실을 저질렀을 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미궁 마스터가 탐험자를 제재했기 때문에 기록이 남지 않았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등골이 으스스한 말이다. 미궁 마스터는 창수가 문제를 일으켜 등장했다는 걸 숨기지 않았다.

게다가 제재를 언급했다. 이건 창수를 공격할 수 있다는 의미.

상급 미궁을 만든 실력이라면, 창수와 일행이 모두 전투에 참가해도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승률이 10%도 안 될 거다.

“다른 이유는 없나요?”

“다른 이유가 있어야 하나요?”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만약 다른 이유가 없다면, 저와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을 거니까요.”

“하하. 정말 못 당하겠군요. 이게 어른들의 관록인가요?”

미궁 마스터가 창수를 제재하려고 결심했다면, 이미 공격했을 거다. 그렇지 않다는 건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걸 의미한다.

“경험이 있어서 하는 말입니다. 마스터께서 복잡한 심경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맞습니다. 제가 이 미궁을 만드는 데 50년이 걸렸습니다. 교활한 탐험자가 나타나 야비한 방법으로 깨 버리니 가슴이 아픕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235년 만에 모든 함정을 통과한 탐험자가 나타난 것이 기쁘기도 합니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생각해 주십시오. 편법 없이 우리 실력으로 이 미궁의 시련을 극복할 수 없었습니다.”

미궁 마스터의 말이 사실이라면, 적어도 300살이다. 그러나 창수는 마스터의 말투에서 성인이 아니라 청소년의 감성을 느꼈다.

‘교활한’같이 상대방을 도발하는 용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건, 사회화가 덜 됐다는 걸 나타낸다.

창수는 마스터의 거친 언사에 발끈하지 않고, 오히려 띄워 주면서 원만한 수습에 나섰다.

“흠……. 하긴 그런 면도 있겠네요. 좋습니다. 미궁 탐험을 처음 완주한 분이니, 나쁜 기억은 모두 잊어버리죠.”

“그러면 이제 크리스털 봉인을 해제해도 되는 건가요?”

“예. 봉인 해제하세요.”

‘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옆에 두니 조마조마하구만. 빨리 봉인 해제하고 여기를 떠야겠어.’

마스터의 심리를 파악해 간신히 파국을 막았으나, 곧바로 사달이 나도 이상하지 않다.

창수는 마법자루에서 보라색 크리스털을 꺼낸 뒤, 신속하게 봉인 해제에 들어갔다.

<헉! 이건…….>

<왜 그러십니까, 마법사님?>

<전부 5서클 마법입니다.>

봉인이 해제된 크리스털에 수많은 목차가 나타났다. 룬어를 알지 못하는 창수는 복잡하다는 생각을 가지며 덤덤한 반응을 보였으나, 고사누는 경악의 반응을 보였다.

크리스털에 담긴 마법을 익히면 5서클 마법사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마탑도 세울 수 있다.

보라색 크리스털은 국보급 귀물이다.

“핵심적인 5서클 마법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열심히 연구하면, 20년 안에 5서클 마스터 경지에 오를 수 있을 겁니다.”

“마스터님, 마법을 익히지 않은 사람도 5서클 마법사가 될 수 있는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최소 4서클 마법사는 돼야 익힐 수 있습니다.”

“제가 익히는 건 불가능이군요.”

미궁을 ‘교활한’ 방법으로 파훼한 창수에게 복수하는 것일까?

미궁 마스터의 설명이 창수의 가슴을 후벼 팠다.

창수의 나이 35세. 지금부터 마법을 집중적으로 배운다 하여도 4서클에 도달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보라색 크리스털은 마법사를 위한 보물이고, 창수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물론, 고사누가 마법을 익혀 5서클 마스터에 오르면, 창수에게 큰 힘이 될 거다. 하지만 타인의 성취를 기다리기에, 20년이라는 세월은 너무 길다.

창수는 미궁 탐험에 투입된 자금과 노력이 충분히 보상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크리스털이 담고 있는 5서클 마법에서 소외된 신세. 뻥 뚫린 것처럼 마음이 허전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그렇다고 너무 실망하지 마십시오. 첫 번째 통과 기념으로 마법 하나를 익히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마나를 모르는데 마법을 사용할 수 있나요?”

“인간은 누구나 마나를 가지고 있습니다. 단지 너무 미약해 느끼지 못할 뿐이죠. 그리고 부족한 마나는 마나석을 사용해 보충할 수 있습니다.”

창수가 실망하는 모습을 보고 동정심을 느낀 것일까? 아니면 애초부터 마법을 가르치려고 작정한 것일까?

마스터의 생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법을 익히고 사용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대만족.

<어떤 마법이 좋을까요?>

<전투에 유용한 보조마법이나, 신체 강화 마법이 좋을 듯합니다. 공격마법은 마나석을 사용해도 큰 위력을 내기 어렵습니다.>

창수는 마법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5서클 마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허비할 수 없기에, 고사누에게 조언을 청했다.

고사누는 실전에서 효용이 높은 마법을 권유했다. 공격마법이 화려해 보이지만, 마법사가 아니라면 제대로 써먹기 어렵다.

<츠네처럼 헤이스트를 배울까요?>

<그것도 좋습니다. 다른 대안은 블링크 마법이 있습니다.>

<공간 이동 하는 마법인가요?>

<그렇습니다. 5서클 블링크 마법을 사용하면, 5장(약 15m) 거리를 단숨에 이동할 수 있습니다. 마법을 1각(15분) 뒤에 재사용할 수 있으니, 활용도가 높은 마법이죠.>

<마나 소모량은 어떤가요?>

<중급 마나석 하나면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군요. 블링크가 좋겠습니다.>

미궁 마스터는 창수와 츠네에게 마법을 전수해 주겠다고 말했다. 고사누의 경우 보라색 크리스털에 담긴 5서클 마법을 독점할 가능성이 높기에, 특별 혜택을 주지 않았다.

창수가 선택한 블링크는 점멸이라고도 불리는 마법으로, 벽과 같은 장애물도 통과할 수 있다.

게다가 기습을 당할 경우, 순식간에 회피할 수 있기에 원거리 무기를 사용하는 창수에게 안성맞춤이다.

츠네가 선택한 헤이스트는 10분간 이동 속도와 공격 속도를 높여 주는 마법이다. 하루에 한 번 사용 가능하다는 제약이 있지만,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 줄 히든카드가 될 수 있다.

“블링크와 헤이스트라…….”

“마법에 문외한이라 달리 선택할 것이 없었습니다.”

“아닙니다. 아주 좋은 선택입니다. 동행한 법사님의 안목이 대단하군요.”

선수는 선수를 알아본다. 미궁 마스터는 창수와 츠네가 효과적인 마법을 골랐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선택을 가능하게 한 고사누의 조력을 높이 평가했다.

“따로 준비해야 할 것이 있나요?”

“아니요. 필요한 물품은 모두 준비돼 있습니다. 다만, 전수 때 고통이 심합니다. 각오해야 할 겁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조금 겁이 나는군요.”

“죽을 정도는 아닐 겁니다.”

“그러면 견뎌야죠.”

마법 전수 과정은 마법스크롤 제작과 유사하다. 인체에 마법을 새겨 넣는 것으로 극심한 고통을 피할 수 없다.

미궁 마스터가 이 점을 경고했으나, 여기서 겁먹고 물러설 수 없다. 마법에 첫발을 내디딜 수 있는 너무나 소중한 일생일대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5서클 마법을 전수하려는 미궁 마스터는 최소 6서클 마도사 경지에 오른 실력자다. 대형 마탑에도 소수만 존재하는 귀인.

게다가 전수 과정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마일리 스톤은 개당 한화 1조 원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미궁 마스터는 창수와 츠네에게 2조 원에 달하는 거금과 자신의 마력을 주려고 한다. 고통 때문에 포기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

- 지이잉!

“크윽!”

‘젠장! 죽을 만큼 아프구만!’

미궁 마스터의 경고는 거짓이 아니었다. 블링크 마법이 몸에 새겨지는 동안 창수는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강렬한 고통을 느껴야 했다.

죽는 것보다 한 뼘 아래지만, 혼이 나갈 정도로 극심한 고통.

“이제 마음속으로 시동어를 떠올려 보세요.”

‘블링크!’

- 파박!

“정말 공간 이동이 되는군요! 감사합니다! 마스터님!”

마법 이식 후 2시간 정도 지나자, 미궁 마스터가 마법을 사용해 보라고 말했다.

그리고 창수는 간단한 시동어를 사용해 15m를 단숨에 이동했다. 평행우주 너머 다른 세상으로 이동한 뒤 마법을 여러 번 접해 봤으나, 실제로 사용하니 감회가 새롭다.

“이식된 마법은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강해질 수도 있고 약해질 수도 있습니다. 체력 단련 하는 것처럼 꾸준히 사용해야 능력이 유지됩니다.”

“고언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스터님의 성함을 알 수 있을까요?”

“저는 이름을 버린 지 오래됐습니다. 굳이 알려고 하지 마세요.”

“그러면 거처라도 알려 주십시오. 보답하고 싶습니다.”

“마법을 전수한 건, 미궁 탐험에 대한 보상입니다. 저에게 보답할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다시 온다고 해도 저를 만날 수 없을 겁니다.”

“미궁을 폐쇄하실 건가요?”

“아닙니다. 재정비에 들어갈 겁니다. 실력 미달 탐험자를 통과시킨 허술한 장애물을 모두 폐기하고, 새롭게 만들어야죠.”

미궁 마스터는 감정 기복이 심했다. 창수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다가도, 자신이 만든 미궁이 어이없게 뚫렸다는 생각이 들자, 분함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마스터는 창수가 편법으로 통과한 함정들을 전면적으로 개편할 계획이다. 그것에 수십 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해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번 기회에 고위급 마법사와 친분을 쌓으려는 창수의 기대가 무너지는 상황.

“좋은 성과 있으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장애물을 모두 폐기하실 거면, 저희가 돌아가는 길에 챙겨도 될까요?”

“이 방에 있는 물품을 제외하고 무엇이든 가져가세요. 완주한 탐험자에게는 그럴 권리가 있으니까요.”

‘커커커! 이게 웬 횡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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