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17장. 슬기로운 미궁 탐험
3.
창수 일행은 미궁에 들어선 이후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이제 와서 미궁 탐험을 중단하고 돌아가라는 건, 기관총을 난사한 뒤에 반창고 붙여 주는 위선과 다를 바 없다.
“마법사님, 다음 함정이 마지막일까요?”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그건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겪었던 것보다 월등히 어려운 시련이 있을 겁니다. 미궁 탐사를 마치고 작성된 보고서에는 예외 없이 마지막 함정을 조심하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석문에 나타난 글을 우롱이라 여겨 분개한 창수와 다르게 마법사 고사누는 담담했다. 그 내용이 사실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급 미궁이라 하더라도 자칫 방심하면, 탐험대가 전멸하는 곳이 마지막 함정이다.
하물며 상급 미궁의 마지막 함정은 어떻겠는가?
오히려 고사누는 위험을 경고한 석문에 친절함과 배려를 느꼈다.
“흠……. 그러면 여기서 탐험을 중단하고 돌아가야 하는 건가요?”
여덟 번째 함정과 아홉 번째 함정을 클리어 하고 받은 풍족한 보상이 호의가 아니라 교활한 심리전일 수도 있다.
미궁 탐험을 위해 1조 원이 넘는 재물을 쏟아부었으나, 하나도 아깝지 않다. 지금 여기서 돌아가도 미궁 탐험이 실패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욕심을 부려 감당할 수 없는 함정에 들어가 죽음을 당하는 것보다 이쯤에서 만족하고 철수하는 것도 선택의 하나일 터.
“아직 크리스털의 목차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크리스털에 담긴 내용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건가요?”
“그럴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여기서 퇴각하면 크리스털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영영 모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법사는 지식에 강한 집착을 보인다. 더구나 마법에 관련된 거다. 고사누는 무리를 해서라도 미궁 탐험을 마치고 크리스털의 봉인을 풀어야 한다고 고집했다.
“츠네, 너는 어때?”
“저는 주군의 판단을 믿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시든 따르겠습니다.”
츠네는 상관의 명령을 무조건 따르는 인물이 아니다. 흑룡회에서 사달이 난 것도 무능한 조장의 부당한 지시를 따르지 않다가 발생한 일이다.
하지만 창수는 다르다. 츠네의 새로운 주군은 항상 합리적인 행동을 했고, 위기에서 해결책을 제시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터.
“좋아. 여기서 포기할 수 없지. 최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진입하자.”
위험이 크면 보상도 크다.
창수는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고 마지막 함정 공략에 나섰다.
* * *
- 스르릉!
고사누가 석문에 나타난 둥근 원에 손바닥을 대자 문이 열렸다.
그리고 투명망토를 가동한 창수 일행이 열 번째 함정에 들어간 뒤, 석문이 저절로 닫혔다.
마치 맹수가 사는 우리에 사람이 들어가자마자 옳다구나 여기고 잽싸게 문을 닫아 버리는 모습.
하지만 창수 일행 누구도 당황하지 않았다. 이미 예견된 일이니까.
- 척! 척!
창수는 침착하게 마법자루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석문에 부착했다.
“대표님, 골렘입니다.”
“흠……. 최악의 마물이군요.”
창수가 작업을 마쳤을 때, 고사누가 함정에 배치된 몬스터를 알려 줬다.
열 번째 함정은 가로세로 100m 크기의 정사각형. 함정 입구 건너편 벽 중간 지점에 석문이 보였고, 그 석문 앞에 2m가 훌쩍 넘어 보이는 골렘이 서 있었다.
창수 일행은 함정에 진입하기 전에 여러 가지 상대를 가정하고 대응 방법을 논의했다.
그중에서 가장 만나기 싫은 것이 골렘.
골렘은 가고일보다 방어력이 강하다. 가고일은 마법 공격에 약하지만, 골렘은 물리공격과 마법공격에 두루 강한 방어력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자체 복원력을 가지고 있어, 타격을 준다고 해도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
골렘의 유일한 약점은 가슴 중앙에 박힌 마나핵이지만, 두툼한 팔로 가리고 있어 직접 공격하기가 쉽지 않다.
“주군, 세 번째 작전을 사용해야 할 듯합니다.”
“어쩔 수 없군. 아래로 이동하자.”
- 사사삭!
간단한 작전 회의를 마친 뒤, 창수 일행은 아래쪽 벽을 향해 은밀히 걸어갔다.
그렇게 60m 정도를 걸어간 뒤,
- 꾹!
- 쾅!
- 콰쾅!
창수가 버튼을 누르자, 함정 입구 석문에서 강력한 폭발음이 들렸다.
석문에 부착한 건 C4, TNT보다 1.34배 강한 위력을 가진 폭발물로 1kg의 살상반경이 50m에 달할 정도로 강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 파바박!
- 후두둑!
“석문이 아주 튼튼하군요.”
“고위급 방어마법이 걸린 것이 분명합니다.”
‘역시, 마법의 힘은 놀라워.’
C4 1kg은 5.6MJ에 달하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석문을 부수지 못했다.
C4로 석문을 파괴해 탈출로를 만들려던 창수의 계획이 방어마법에 의해 무산된 것이다.
하지만 창수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폭발물을 견디는 마법의 힘에 감탄했다. 무엇보다 다행인 것은 골렘이 아직까지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 사사삭!
석문 상태를 살펴보기 위해, 츠네가 빠르게 이동했다.
<주군, 석벽이 깨졌습니다. 작은 통로지만, 저는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좋아. 작전대로 실행해. 그리고 항상 은선의 위치를 살피고.>
석문은 멀쩡했으나, 석문과 연결된 석벽은 그렇지 못했다.
석벽도 완전히 바스러지지 않은 걸로 미루어 강화마법이 걸린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C4의 폭발력을 견뎌 낼 정도는 아니었다.
고위급 마법사를 동원해 미궁을 만들었다 해도, 전체에 상위 방어마법을 걸 수는 없었을 터.
츠네는 사람 한 명이 간신히 빠져나갈 수 있는 틈을 발견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언뜻 들으면 츠네 혼자 탈출한다는 소리처럼 들릴 수 있으나, 츠네가 빠져나가는 건 창수가 미리 계획한 작전이다.
- 탕! 탕! 탕!
- 팅! 팅! 팅!
석벽 틈 앞에 도착한 츠네는 투명망토를 끄고, AK-201로 골렘을 공격했다.
가고일에 통하지 않은 총탄이 골렘에게 통할 리 없다. 츠네가 발사한 총탄은 골렘에게 상처 하나 만들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쿠워워워!”
- 쿵쾅! 쿵쾅!
츠네를 발견한 골렘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뒤뚱거리며 달리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으나, 속도가 만만치 않았다.
시속 60km, 100m 거리를 6초 만에 주파하는 속도.
츠네는 예상보다 빠른 골렘의 질주를 의외라고 생각하면서도, 침착함을 잊지 않고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 쾅! 쾅!
자기를 공격한 침입자를 놓친 골렘이 발광하며 석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방어마법이 걸린 석문을 부술 수 없었다.
골렘의 팔도 멀쩡한 것을 보면, 석문과 골렘의 몸이 유사한 방어력을 가진 것이 분명하다.
골렘은 C4가 통하지 않는 몬스터다.
- 후드득!
포기를 모르는 골렘이 계속해서 석문을 두드렸고, 충격을 버티지 못한 석벽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폭발로 석벽에 틈이 생긴 것과 유사한 상황.
- 쾅!
지지하던 석벽이 파괴돼 헐거워지자, 석문이 버티지 못하며 통로 안으로 쓰러져 버렸다.
- 탕!
- 팅!
그때, 츠네의 사격이 다시 시작됐다. 그의 위치는 아홉 번째 함정의 미로가 끝나는 부분.
통로 너머에 있는 골렘과 약 30m 떨어진 지점이다. 골렘이 순식간에 달려갈 수 있는 거리.
공격당한 골렘이 다시 한번 괴성을 지르며 달려갔다.
통로 천장의 높이 3m, 뛰어가는 골렘의 머리가 천장에 닿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골렘의 키는 2.2m 정도 돼 보였다. 몸통 넓이 1.5m, 두께 1m 정도.
골렘이 달려오자, 위험을 느낀 츠네는 미로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골렘은 목표물을 놓치지 않기 위해 미로 속으로 따라 들어갔다.
“쿠워워워!”
- 쾅! 쾅! 쾅!
츠네는 골렘을 틈이 좁은 쪽으로 유인했다. 격벽 사이의 간격이 90cm에 불과한 지점.
골렘은 눈앞의 목표물을 보고도 한 발짝도 전진할 수 없었다.
광분해서 격벽을 후려갈기고 있으나, 격벽의 강도는 석문과 유사하다. 골렘의 힘으로 부술 수 없는 대상.
<주군, 골렘을 가뒀습니다.>
<수고했다. 은선 회수하고 통로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어.>
<기회를 잘 잡으면, 골렘의 마나핵을 파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거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지정된 위치에서 처치하지 못하면, 다른 골렘이 등장할 수 있어. 일단 우리를 공격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에 집중해야 해.>
<알겠습니다.>
현재 골렘은 양팔을 사용해 격벽을 미친 듯이 두드리고 있다. 가슴 중앙에 박힌 마나핵을 보호할 수 없는 상황.
츠네는 이 틈을 노려 골렘을 사냥하려 했으나, 창수의 설명을 듣고 생각을 바꿨다.
골렘을 미로로 유인한 것은 편법이다. 편법이 용인될 가능성이 있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이런 경우 확실한 방법을 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츠네는 창수의 명령에 따라 길 안내가 될 수 있는 은선을 회수하고 우회로를 따라 통로 입구로 갔다.
* * *
- 척! 척!
“폭탄의 양이 너무 많은 것 아닐까요? 석문 안에까지 피해가 갈 수 있습니다.”
“문이 어느 쪽으로 열리는지 모르니, 확실하게 처리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리고 폭약을 석벽에 설치하면, 통로 안까지 피해가 가지는 않을 겁니다.”
츠네로부터 골렘을 가뒀다는 보고를 들은 창수는 고사누와 함께 골렘이 처음 서 있던 석문으로 이동했다.
그는 석문이 아니라 석문 좌우 석벽에 C4를 하나씩 부착했다. 석문이 좌측으로 열리는지 우측으로 열리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 꾹!
- 쾅! 쾅!
- 콰쾅! 콰쾅!
“대표님의 말씀이 옳았군요. 우리가 생각한 반대쪽으로 열리는 문이네요.”
“이 미궁을 설계한 사람은 매우 영악하고 심리전에 능한 자입니다. 애매할 때는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최고죠.”
“흠. 그렇군요.”
창수는 골렘이 석문을 두드리는 과정을 벌새 드론이 보낸 영상을 통해 자세히 살폈다.
그리고 석벽에서 석문이 나오는 쪽이 월등히 튼튼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처음 폭발처럼 C4를 석문에 부착하는 방법도 있으나, 강화 외골격을 착용하고 있는 창수는 츠네가 지나갔던 좁은 틈으로 이동할 수 없다.
석문이 나오는 방향을 알 수 없던 창수는 좌우 양쪽을 모두 노렸고, 석문 우측에 자신이 여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 냈다.
창수의 선택이 정확히 들어맞은 것.
<츠네, 이쪽으로 이동해.>
열 번째 함정을 정상적으로 공략하면, 크리스털 봉인을 해제할 수 있는 장소로 들어가는 석문이 자동으로 열린다.
창수는 골렘을 파괴하지 않고 편법으로 그곳에 들어가려는 거다.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기에 어떤 돌발 변수가 나타날지 모른다. 창수는 츠네를 불러들여 완벽한 전투태세를 갖추려 했다.
- 슥!
창수 일행은 투명망토를 가동한 채 넓은 응접실로 진입했다. 크기는 가로세로 30m. C4 폭발에 파손된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것이 다행이다.
“샹들리에 아래에 보이는 것이 크리스털 봉인을 해제하는 장치입니다.”
“크리스털을 앞쪽에 끼우고, 저 원에 손바닥을 대면 되는 거죠?”
“그렇습니다.”
꽤 넓은 공간이지만,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고사누가 단번에 목표물을 찾아냈다.
이제 크리스털 봉인만 풀면, 길고 힘들었던 미궁 탐험이 일단락된다. 정상적인 클리어가 아니기에 보상이 깎일 수 있으나, 이미 충분한 보상을 확보했다.
크리스털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만 알아내면 대만족.
창수는 힘찬 걸음으로 봉인 해제 장치 쪽으로 걸어갔다.
- 슉!
“이런 방법으로 골렘을 처리할 줄 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