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평행우주 독식-51화 (51/200)

51화 17장. 슬기로운 미궁 탐험

1.

마법화살을 쓸 수 없고 총탄은 통하지 않는다. 가고일과의 정면 대결에 승산은 없다.

창수는 맞대응을 포기하고 둔덕 아래로 몸을 숙여 날아오는 몬스터의 공격을 피했다. 힘의 한계를 아는 현명한 선택.

- 슥!

- 치익!

공격 목표가 이동하자, 가고일이 따라 움직이며 갈고리 같은 발톱으로 움켜쥐려 했다.

그러나 붙잡지 못했다. 천잠사로 만들어진 전투복을 착용한 창수의 몸이 미끄러지듯 발톱에서 빠져나왔다.

‘큭! 발톱 힘이 엄청나군! 잘못하면 살점이 떨어져 나가겠어!’

간신히 피하기는 했으나, 통증이 만만치 않다. 만약 창수가 천잠사 전투복을 착용하지 않았다면, 중상을 입었을 거다.

공격을 마친 가고일은 날아오는 속도를 제어하지 못하고 10미터 이상 멀어져 갔다.

한숨 돌린 순간. 그렇다고 위기가 해소된 건 아니다. 창수를 노려보고 있는 가고일이 20마리가 넘었다.

마법물품을 쓸 수 있다면, 가고일 정도는 가볍게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마법 사용이 가능한 지대석은 60m 거리에 있다.

그곳으로 달려가는 동안 가고일 무리가 창수를 가만히 지켜보지 않을 거다.

‘잡놈들! 이거나 먹어라!’

- 척!

- 타앙!

위기에 몰린 창수가 반격을 시작했다. 무리 중앙에 자리 잡은 가고일을 향해 특이한 모양을 가진 권총을 발사한 것.

- 팍!

- 번쩍!

“키에에엑!”

가고일은 AK-201이 발사한 총탄도 버티는 강인한 물리방어력을 가지고 있다. 소총보다 위력이 약한 권총으로 제압할 수 있는 몬스터가 아니다.

그런데도 저격당한 가고일은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했다.

원인은 강한 빛. 창수가 발사한 것은 일반 총탄이 아니라 조명탄이었다.

지하에 만들어진 미궁은 전체적으로 빛이 약하다. 더구나 일곱 번째 함정은 지대석 주위를 제외하고 빛이 매우 미약하다.

어둠에 적응된 가고일의 눈에 밝은 빛이 쏟아져 들어가니 순간적으로 시력을 잃으면서 비명을 지른 것.

<츠네! 지금이다! 가고일 놈들이 정신 차리기 전에 어서 뛰어!>

<알겠습니다!>

- 타다닥!

시력을 잃은 가고일은 한 마리가 아니었다. 날아가는 조명탄의 궤적을 바라본 모든 가고일이 타격받았다.

그리고 이건 안전하게 이동할 기회가 왔다는 걸 의미한다.

창수는 함정 입구에서 마법사 고사누를 업고 있는 츠네에게 지대석으로 달리라고 지시했다.

마력을 잃은 마법사는 신체 능력도 급속히 약화된다. 혼자 달리게 하면 이동 시간이 지체되고 위험이 증가하기에 츠네가 돕는 거다.

구릉지대에서 성인 남자를 업고 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츠네는 훈련받은 정예 요원답게 신속하게 움직였다.

하긴 안주상단 상행에 동행하면서 무게 60kg이 나가는 짐을 지고 다녔다는 걸 생각하면,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 찌익!

지대석에 먼저 도착한 창수는 재빨리 마법자루에서 스크롤을 꺼냈다. 그리고 가고일 무리를 겨냥한 뒤 찢어 버렸다.

- 쫘르르륵!

- 툭!

- 텅!

마법스크롤에서 발사된 건 4서클 공격마법 체인라이트닝. 마치 사슬처럼 연결된 전기 덩어리가 가고일 무리를 휩쓸었다.

아직까지 조명탄 섬광이 만든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몬스터 무리는 마법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전기에 감전돼 경직된 상태에서 바닥으로 추락했고, 암석으로 떨어진 일부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부서졌다.

‘돈값을 하는군!’

마법스크롤은 4서클 마법사 고사누가 주도해서 만들었다. 제작 준비를 모두 마친 뒤, 5서클 마법사를 초빙해, 체인라이트닝 마법을 새겨 넣은 것.

재룟값과 5서클 마법사 품값을 합해 500억 원 가치의 재물이 투입됐다.

완제품을 구매하려면 2,000억 원을 치러야 하는 귀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수는 돈이 아깝지 않았다. 돈보다 자신과 일행의 생명이 더 중요하기에.

“츠네! 너는 왼쪽을 맡아! 내가 오른쪽 놈들을 처리할 거니까!”

일반적인 환경이라면, 4서클 마법으로 가고일 무리를 전멸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일곱 번째 함정은 마나를 흡수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체인라이트닝의 위력이 대폭 낮아지면서 살상력도 줄었다.

창수는 고사누를 업고 지대석에 도착한 츠네와 함께 본격적인 공격을 시작했다. 마법자루에서 볼트22를 꺼낸 것.

지대석 밖에서는 마력이 빨려 나가 무용지물이지만, 지대석 위에서는 마법화살을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 쉐에엑!

- 팍!

“케륵!”

물론, 지대석 밖으로 날아가는 마법화살도 함정의 영향을 받아 위력이 약화된다. 그러나 이동 속도가 워낙 빠르기에 가고일에 적중할 시점에서 본래 위력의 60%가 남았다.

게다가 볼트22로부터 받은 400J에 달하는 운동에너지를 담고 있다.

마법화살이 가고일의 단단한 외부를 뚫고, 거기에 운동에너지가 더해져 몸속 깊숙이 박혔다. 이어서 공격마법이 발생하니 가고일이 버티지 못하고 파괴됐다.

마법과 리버스드로우 컴파운드크로스보우의 조합이 까다로운 몬스터를 손쉽게 처리한 것이다.

가고일은 지능이 높다. 위기를 느낀 가고일 무리가 흩어지면서 함정 외곽으로 도망갔으나, 볼트22의 사거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꾸에엑!”

- 쿵!

백발백중. 창수와 츠네는 장전된 볼트22를 모두 사용해 가고일 11마리를 처단했다.

그러나 아직도 살아남은 가고일이 7마리. 전부 제거하려면, 볼트22를 재장전해야 한다.

창수와 츠네가 공격을 멈추자 교활한 가고일 무리가 반격을 시작했다.

창수는 방패를 들고 가고일 잔당을 막으면서 츠네에게 재장전을 지시했다.

“대표님! 뒤로 물러나십시오! 지대석이 마물의 힘을 약화할 수 있습니다!”

몬스터의 이목을 끌기 위해 지대석 가장자리로 이동하는 창수를 본 고사누가 큰 소리로 제지했다.

고사누는 마나 유지기와 연결된 은실로부터 미약하나마 마나를 받았다. 함정의 영향으로 정상 수치의 10%에 불과한 적은 양이지만, 중앙 탑을 가동하기 충분한 수준.

탑이 기능을 발휘하자 마력을 빨아먹던 일곱 번째 함정의 저주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지대석의 힘이 강해져 몬스터를 약하게 만드는 기능까지 생겼다.

전세 역전.

이제 창수 일행을 억누르던 페널티가 사라지고, 반대로 몬스터에게 불리한 환경이 만들어졌다.

가고일이 지대석을 깊게 넘어올수록 상대하기 수월해진다.

-텅! 텅!

고사누의 말이 맞았다. 가고일이 공중에서 공격함에도, 지대석 경계를 넘자 공격력이 급속히 약화됐다.

이에 더해 예상 밖의 호재는 가고일 7마리 중 4마리가 지대석 넘기를 주저하고 있다는 점이다.

높은 지능이 가진 부작용이리라.

- 푸슝!

- 팍!

홀로 가고일 3마리를 상대하며 고군분투하는 창수를 고사누가 도왔다.

마나 유지기를 통해 제대로 된 마나를 공급받은 뒤, 매직미사일을 사용해 가고일을 처단한 것.

창수를 공격하던 동족 3마리가 허무하게 죽자, 나머지 가고일 4마리가 한참 우왕좌왕하면서 갈피를 잡지 못하더니, 갑자기 고사누를 향해 돌진했다.

겁쟁이들의 눈이 붉게 물든 것으로 보아, 무언가 특별한 작용이 있는 듯하다.

- 화르륵!

“끼에엑!”

하지만 몬스터가 지대석을 넘어온 건 자살과 다를 바 없다. 고사누가 발사한 화염에 4마리 모두 잿더미가 돼 버렸다.

“수고하셨습니다. 마법사님 덕분에 정리가 빨랐습니다.”

미궁 탐사에 마법사가 필수적인 이유를 알게 된 창수. 고사누가 없었다면, 일곱 번째 함정을 무탈하게 처리하지 못했을 거다.

그리고 고사누의 조언으로 준비한 마법물품과 미궁에 대한 방대한 지식도 클리어에 큰 역할을 했다.

가고일 무리를 소탕한 후 창수는 순수한 마음으로 고사누에게 사의를 표했다.

“가고일 소탕은 대표님 덕분입니다. 발광탄과 석궁이 있어 마물을 쉽게 처리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츠네 이사님이 아니었다면, 제시간에 탑을 가동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조명탄으로 가고일의 시야를 빼앗지 않았다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지대석으로 이동하기 어려웠을 거다.

방어력이 뛰어난 가고일을 마치 꿩처럼 만들어 버린 볼트22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츠네가 고사누를 업고 뛰지 않았다면, 지대석을 강화하는 시간도 그만큼 늦어졌을 터.

일곱 번째 함정은 정말 위험했다.

피해 없이 전투를 승리로 마친 건 팀원 세 사람이 제 역할을 다했기 때문이다.

2.

힘겹게 전투에 승리한 창수 일행은 지대석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여덟 번째 함정은 퍼즐. 마법사 고사누의 활약으로 손쉽게 처리하고 보상으로 금은보화를 챙겼다.

아홉 번째 함정은 미로였다. 가로세로 200m 넓이에 격벽이 빽빽이 들어차 있고, 좀비와 구울이 수시로 등장했다.

창수와 츠네가 은으로 만들어진 검과 은화살로 언데드를 처리하고, 고사누는 마나 유지기와 연결된 은실로 길 표시를 하며, 손쉽게 클리어 했다.

- 덜컹!

“응? 뭐야? 이게?”

미로의 끝에 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여덟 번째 함정에서 발견한 보물이 쏟아졌던 상자와 비교해서, 격이 더 높아 보이는 범상치 않은 자태.

창수는 직감적으로 이것이 보물 상자라 여기고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발견한 건 손바닥 크기만 한 깃털 한 개.

창수의 입에서 황당함과 실망감이 동시에 나왔다.

“대표님, 봉황의 깃털입니다.”

“봉황이면, 신수를 말하는 건가요?”

“신수 정도는 아니지만, 전설적인 새인 건 분명합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이 깃털은 어디에 쓰는 거죠?”

“마법자루 성능을 10배 향상할 수 있습니다.”

‘헐! 대박! 아니! 초대박이다!’

창수는 많은 보물과 마법물품을 가지고 있다. 대형 다이아몬드, 황금, 마법방어구, 천잠사 전투복 등등.

그중에서 1~2위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투명망토와 마법자루.

투명망토는 공격과 방어의 핵심이고, 마법자루는 보급과 돈벌이의 핵심이다.

현재 창수가 사용하는 마법자루는 가로-세로-높이 1m 크기에, 무게를 1/10로 줄여 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크기와 무게 양면에서 부족함을 느끼는 상황.

만약 성능이 3배 상승한 마법자루가 있다면, 지금 가지고 있는 전 재산을 주고라도 확보했을 거다.

그런데 성능이 10배 상승한 마법자루를 만들 수 있단다. 기대를 월등히 뛰어넘는 보상에 초대박을 생각한 건 당연한 일이다.

- 슈우욱!

마법자루 기능을 향상하려면 봉황의 깃털 이외에 고순도 은과 강한 마력이 필요하다.

고순도 은은 창수가 항상 가지고 다니는 흔한 물품. 그리고 중급 마나석 8개를 사용해 마법진을 만들면, 충분한 마력을 끌어낼 수 있다.

모든 준비가 갖춰진 상태에서 실행을 늦출 필요가 있을까?

창수는 고사누에게 마법자루 업그레이드를 요청했다.

“내부를 확인해 보십시오.”

- 슥!

“오! 안이 정말 10배 정도 넓어졌네요!”

“그럴 겁니다. 그리고 무게 감소도 1/10에서 1/100로 향상됐습니다.”

“하하하! 정말 귀물 중의 귀물이 됐군요!”

고사누의 실력이 뛰어나기에 업그레이드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새로운 마법자루를 열어 본 창수는 저절로 탄성을 질렀다. 가로 2.5m, 세로 2m, 높이 2m에 달하는 널찍한 수납공간이 생겼기 때문이다.

게다가 100kg을 집어넣어도 1kg의 무게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현재 창수는 강화 외골격을 착용하고 있어 95kg까지 무난하게 나를 수 있다.

업그레이드한 마법자루에 무게 9,500kg을 넣어도 된다는 의미.

이 정도 성능이면 한국에서 만들어진 첨단 장비와 러시아에서 생산한 무기 상당수를 운반할 수 있다.

창수가 격찬한 것은 과장이나 허언이 아니다.

- 뚜벅! 뚜벅!

“석문이 열리지 않는군요.”

“대표님, 제가 살펴보겠습니다.”

대박 보상을 챙긴 창수는 열 번째 함정으로 이동하려 했다. 그러나 이전 함정들과 다르게 열 번째 함정과 연결된 석문이 자동으로 열리지 않았다.

창수는 전투 준비를 마치고 일행과 함께 석문 앞으로 이동했다.

- 척!

- 스르륵!

“문자가 나타나는군요. 저게 뭐죠?”

고사누가 석문을 살피려 손을 대자, 생소한 형태의 문자가 나타났다.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룬어입니다.”

“뭐라고 쓰여 있나요?”

“해석하면, ‘그대들의 용기와 지혜에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다음 시련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만족함을 알고 돌아가라’라는 의미입니다.”

‘큼! 축객령을 내린 거야? 젠장! 진저리 나도록 친절한 미궁이구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