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평행우주 독식-50화 (50/200)

50화 16장. 보라색 크리스털의 정체

6.

“독이 가라앉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지금 속도로 보면 3일은 걸릴 것 같습니다.”

“탐험을 늦출 수밖에 없는 건가?”

창수 일행이 맹독을 피해 미궁 밖으로 후퇴했으나, 작은 벌새 드론은 독에 꿋꿋이 버티면서 귀중한 영상을 보내고 있었다.

츠네는 녹색 연무가 바닥으로 가라앉는 정도를 보고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거라고 예상했다.

독이 바닥에 깔리면, 서울에서 준비한 장화를 신고 천천히 이동할 계획이다. 준비한 장화가 하나뿐이기에 창수가 츠네와 고사누를 업어 날라야 하지만, 그 정도 수고는 감수할 만하다.

걸림돌은 부득이 탐험 일정이 연기될 수밖에 없다는 점. 창수의 머릿속에 야영과 보안 유지 관련 문제가 빠르게 떠올랐다.

그러나 고사누의 판단은 달랐다.

“대표님, 독이 가라앉는 걸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함정 안에 독을 품고 있는 단지가 5개 더 있습니다. 그걸 모두 처리해야 미궁 탐사를 할 수 있습니다.”

“흠……. 저것이 독 단지 인가요?”

“그렇습니다. 가장 앞쪽에 있는 것이 터졌습니다. 우리가 다시 진입하면, 다른 단지가 연달아 폭발할 겁니다.”

첩첩산중이다. 함정 속 독 단지는 모두 6개였다. 고사누의 말대로 윗부분이 날아간 단지와 유사한 모양을 가진 것이 5개나 더 있었다.

6개 중에서 하나가 터졌는데도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만약, 이대로 함정 안으로 진입한다면, 독 단지 5개가 모두 터질 거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

“독을 제거할 방법이 있나요?”

“정화 마법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 능력으로 저 독은 무리일 거 같습니다.”

“정화 마법 이외에 다른 방법은요?”

“블로우 마법으로 함정에서 독을 빼내는 방안이 있습니다. 마법진을 사용하면 하루 만에 독 제거가 가능합니다. 나머지 독 단지 5개도 하나씩 터트리면서 독을 빼내면 6일 뒤에 탐사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6일은 너무 깁니다. 보완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군요.”

독을 제거할 방안이 있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미궁 문을 연 상태에서 6일을 보낸다는 건 너무 위험하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품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까.

미궁 내부에 변화가 있을 수 있고, 사사키 재단 병력이 접근할 수 있다는 걸 고려해야 한다.

창수는 독 제거 시간을 단축하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 위이잉!

- 툭!

“독 단지가 터지지 않는군요. 돌로 깨트리기는 무리였나 봅니다.”

“재질이 돌이라 기본적인 방어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생명체가 함정에 들어올 때 반응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마음 놓고 폭탄을 설치할 수 있겠군요. 마법사님, 수고해 주십시오.”

“맡겨 주십시오.”

창수는 함정에 정찰 드론을 투입했다. 1kg이 넘어가는 묵직한 돌을 독 단지에 떨어트렸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정찰 드론을 사용해 독 단지를 터트리려는 계획이 실패한 것이다. 하지만 창수는 실망하지 않았다. 플랜 B가 있기 때문이다.

창수는 정찰 드론 바닥에 C4와 소이탄 다발을 부착한 뒤, 독단지 인근에 떨어트릴 계획이다.

걸림돌은 정찰 드론에 물자 수송 기능이 없다는 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사누의 도움이 필요하다.

마법으로 폭발물을 정찰 드론에 부착한 뒤, 독 단지 인근에 사뿐히 착지시키는 것이 고사누가 해야 할 일.

- 위이잉!

- 착!

“대표님, 폭발물 설치가 모두 끝났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마나 유지기 앞에 빙벽 마법을 걸어 주십시오. 열기가 여기까지 나올 수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현명한 판단입니다.”

고사누는 4서클 마법사답게 정교한 마법 컨트롤로 C4와 소이탄 다발을 정확한 지점에 무사히 안착시켰다.

폭파 준비를 마친 창수는 미궁에서 정찰 드론과 벌새 드론을 빼낸 뒤, 아이스 월 마법 시전을 요청했다. 미궁 입구에서 5m 떨어진 마나 유지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 쾅!

- 화르륵!

C4와 소이탄 다발이 터지자 두 번째 함정 내부가 불바다가 됐다. 그리고 그 열기가 첫 번째 함정을 넘어 미궁 입구로 뿜어져 나왔다.

아이스 마법으로 열기를 막지 않았다면, 마나 유지기에 타격이 갈 수도 있는 상황.

“주군, 독이 거의 사라진 것처럼 보입니다.”

“폭탄으로 독을 없앤 거야? 그게 가능한 일인가?”

폭발물을 터트린 뒤 1시간이 지나자, 창수가 함정에 벌새 드론을 투입했다. 내부 상황을 살펴봐야 하니 당연한 일.

아직 열기가 가시지 않아 함정 내부 온도가 섭씨 42도에 이르렀으나, 드론 운용에 지장은 없었다. 작지만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드론이다.

벌새 드론이 보내온 영상을 본 츠네는 독 단지가 모두 파괴됐음에도 맹독 연무가 보이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이건 독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창수는 녹색 연무가 보이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폭발물로 독을 제거했다는 걸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악랄한 함정을 가진 미궁이라면, 독의 색을 없애는 장난질도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독 기운이 약해졌습니다. 정화 마법을 사용하면 독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습니다.”

“원인이 무엇일까요?”

“강력한 화기가 독을 파괴한 것 같습니다.”

소이탄을 대량 사용한 것이 최고의 선택이었다. 고사누의 말대로 열기가 맹독을 제거한 것이다.

독은 생성 주체에 따라 화학합성, 광물성, 그리고 생물성으로 나눌 수 있다. 그중에서 맹독은 생물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흔히 보톡스라 불리는 보툴리눔 톡신은 세균에서 추출한 맹독으로, 400g으로 70억 명을 독살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다.

지구에서 발견되거나 개발된 독극물 중 상위 6위가 모두 생물성이다. 간신히 7위에 VX가 랭크될 정도로 생물성이 지독하다.

생물성 독은 대부분 단백질과 연관돼 있다. 그리고 단백질은 열기에 매우 약하다.

두 번째 함정에 배치된 생물성 맹독이 소이탄에서 발생한 강한 열기를 버티지 못하고 소멸한 것이다.

7.

고사누가 정화 마법과 냉각 마법을 사용하며 길을 열자, 창수 일행이 손쉽게 함정 두 개를 돌파했다.

그리고 세 번째 석문이 열렸다.

“블랙 오크입니다. 마법에 강한 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두머리 블랙 오크 전사는 근접전에 강하고 방어력도 뛰어납니다.”

벌새 드론으로 살펴본 세 번째 함정에는 수백 마리에 달하는 오크 무리가 진을 치고 있었다.

신장 2m에 달하는 키와 통나무 같은 몸매에서 나오는 기세가 제법 위압적이다.

“마법사를 상대하기 위한 함정이군요.”

“그렇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함정을 통과한 탐험자가 마법사라 가정하고 만든 겁니다.”

상급 미궁답게 영악한 배치. 앞선 함정을 통과한 팀은 마법사가 주축일 가능성이 크다. 마법사를 노리고 블랙 오크를 세 번째 함정에 넣은 거다.

“마법사님, 투명망토를 가동하고 후방에서 방어에 집중하세요.”

“제가 전투에 참여해야 하지 않을까요?”

“괜찮습니다. 저놈들은 저와 츠네가 처리할 수 있습니다.”

마법사는 귀중한 전력이다. 창수는 고사누가 마법사의 천적과 충돌하지 않도록 배려했다.

- 타타타탕!

- 팍! 팍! 팍!

“키엑!”

“쿠아악!”

그리고 시작된 일방적인 학살.

창수와 츠네는 투명망토를 가동한 채 세 번째 함정에 진입한 뒤, AK-201을 연속 발사 모드로 전환하고 난사를 시작했다.

축구장 크기만 한 세 번째 함정은 엄폐물이 하나도 없는 완전한 평지였다. 연속해서 날아오는 총탄을 피할 대책이 없다.

<츠네, 소총 교환하고 단발 모드로 사격해.>

연속으로 420발을 발사하니, AK-201 총열이 달아올랐다. 창수와 츠네는 마법자루에서 예비 소총을 꺼낸 뒤, 단발 사격을 시작했다.

이제 블랙 오크의 숫자가 50마리 이하로 줄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몬스터들이 죽은 동족의 사체에 의지해 몸을 숨기고 있다. 난사보다 조준 사격이 효과적이다.

- 탕! 탕!

- 팍! 팍!

백발백중. 창수와 츠네는 100m 이내에 산개한 블랙 오크를 한 마리씩 처단했다.

블랙 오크들이 숨는다고 하나, 조준경을 보유한 창수와 츠네의 조준 사격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쿠워워!”

- 쿵쾅! 쿵쾅!

보이지 않는 적으로부터 생소한 무기로 공격당한 블랙 오크 전사.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 당황하다가, 부하들이 전멸할 지경에 이르자, 총탄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무작정 달려들었다.

- 쉐에엑!

- 팍!

“케에에엑!”

하지만 헛된 몸부림.

블랙 오크 전사의 돌진을 본 창수는 마법자루에서 볼트22를 꺼낸 뒤, 가볍게 방아쇠를 당겼다.

빠르게 날아간 마법화살이 단단한 블랙 오크 전사의 피부를 뚫고 가슴 깊숙이 파고들었다.

끈질긴 생명력으로 즉사한 것은 아니나, 마법화살 한 방으로 블랙 오크 전사가 움직일 수 없게 됐다.

- 쉐에엑! 쉐에엑!

- 팍! 팍!

“끅!”

그리고 이어지는 공격.

결국, 블랙 오크 전사는 창수와 츠네가 발사한 추가 마법화살 두 발을 견디지 못하고 절명했다.

마법사의 천적 블랙 오크가 마법사 얼굴도 보지 못하고 몰살당했다. 미궁을 만든 사람이 이 광경을 봤다면, 울화통이 터졌을 거다.

“대표님, 블랙 오크 송곳니는 중요한 무기 제작 재료입니다. 그리고 블랙 오크 전사 가죽으로 방어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챙기도록 하죠.”

몬스터를 처단하는 시간보다 부산물을 적출하는 시간이 길었다. 하지만 몬스터 사냥의 꽃이 전리품이다.

시간과 노력이 들더라도 전혀 아깝지 않다.

창수 일행은 즐거운 마음으로 사냥 수확물을 거뒀다.

* * *

세 번째 함정 이후, 스켈레톤, 홉고블린, 와이번이 배치된 함정이 차례로 등장했지만, 위협이 되지 못했다.

창수 일행은 미리 준비한 장비와 마법물품으로 몬스터들을 학살하며, 부산물을 차곡차곡 챙겼다.

난관에 봉착한 건 일곱 번째 함정.

“가운데 보이는 지대석까지 지속적으로 마나가 빠져나갑니다. 투명망토와 마법방어구의 기능도 정지됩니다. 벗어서 마법자루에 넣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마법화살과 마법물품도 사용할 수 없나요?”

“그렇습니다. 마법에 관련된 건 지대석 밖에서 모두 무용지물입니다.”

“까다로운 함정이군요.”

“중급 이하 미궁에서 이런 함정이 나오면, 대부분 탐험을 중단합니다. 상급 미궁에서는 거의 필수적으로 나옵니다.”

일곱 번째 함정은 가로세로 150m 길이를 가진 정사각형 구릉지였다. 중앙에 15m 높이의 탑이 서 있고, 밑에 지름 10m의 원형 지대석이 깔려 있었다.

고사누는 지대석에 올라가기 전까지 마법사용은 물론이고 마법물품도 사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심지어 마법자루도 열 수 없단다.

창수 일행의 주요 장비가 마법과 연관된 것이라는 걸 생각하면, 치명적인 페널티라 할 수 있다.

- 펄럭! 펄럭!

“꾸익!”

창수 일행이 일곱 번째 함정에 들어서자, 가고일 무리가 나타났다.

가고일은 석상이 변신한 비행 몬스터로 마법 없이 상대하기 매우 어렵다.

- 탕! 탕! 탕!

- 팅! 팅! 팅!

가고일에게 사격을 가했으나, AK-201 총탄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창수가 보유한 주요 무기 하나가 이렇게 쓸모없게 됐다.

- 위잉!

총알을 가볍게 튕겨 낸 가고일이 얼굴에 비웃음을 띠며, 창수를 향해 날아왔다.

날아오는 속도를 보면 충돌만 해도 부상당할 것처럼 위협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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