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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평행우주 독식-49화 (49/200)

49화 16장. 보라색 크리스털의 정체

4.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고 3시간이 지났을 무렵, 고사누의 말대로 해가 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인샨드에 매복하고 있던 인원 중 2명이 소형 증기자동차를 타고 창수 일행 쪽으로 다가왔다.

“자동차가 고장 난 거요?”

“그렇소. 갑자기 똥차가 퍼져서 수리하는 중이오.”

츠네는 창수의 지시에 따라 화물차가 고장 나 애먹고 있는 운전자를 연기했다. 얼굴에 구슬땀이 흐르고 흙먼지를 뒤집어쓴 모습이 제법 그럴듯하게 보였다.

“그런데 이 험한 길을 혼자 다니오?”

“돈벌이가 시원찮은데, 화물차 하나에 여럿이 붙을 수 있겠소?”

현재 창수와 고사누는 투명망토를 가동해 몸을 숨기고 있다. 이에 맞춰 정찰병도 한 명이 자동차에 대기하고 한 명이 츠네와 상대했다.

만약 창수와 고사누가 몸을 숨기지 않았다면, 정찰병 2명이 모두 자동차에서 나왔을 거다.

“하긴 그렇겠군. 어떤 화물이 실렸는지 봅시다.”

“뭐요? 당신이 무슨 권리로 남의 화물을 들춰 보겠다는 거요?”

- 척!

“검색 명령서요! 요새 불손한 무리가 준동하고 있어, 족장님이 특별 명령을 내린 거지! 순순히 검색받는 것이 당신 신상에 좋을 거요!”

정찰병 사카야 시게오는 사인샨드를 지배하는 엔흐빌렉의 인장이 찍힌 명령서를 꺼내 츠네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위조한 명령서일까? 아니면 족장을 매수한 것인가?

당장 진위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정찰병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여기서 전투를 벌여야 하고, 결과적으로 창수의 행적이 드러날 거다.

그렇다고 화물을 보여 주면, 상행위가 아니라 미궁 탐사에 나섰다는 걸 들킬 수 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

- 퉷!

“젠장! 별 시답잖은 일로 사람 귀찮게 만드네! 보고 싶으면 실컷 보시오!”

츠네는 불량스럽게 땅바닥에 침을 뱉고 마음대로 하라는 몸짓을 보였다.

사카야 시게오는 츠네의 행동에 발끈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검색에 들어갔다. 이미 여러 번 겪은 일이다.

- 스슥!

“어! 이건…….”

화물을 덮은 포장을 열자, 예상하지 못한 물품이 보였다. 평범한 상인이 가질 수 없는 탐험 장비.

사카야 시게오는 평범하게 보이던 츠네가 수상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체포해서 무슨 목적으로 이 장비를 운반하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는지? 알아봐야 한다.

- 퓩!

“음……. 이상 없군! 협조해 줘서 고맙소! 수리 잘하고 안전 운행 하시오!”

츠네를 제압하려는 마음을 가졌던 사카야 시게오가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마치 탐사 장비가 눈에 안 보이는 듯, 없는 것처럼 말하고, 츠네에게 덕담까지 건넸다.

사카야 시게오는 아무 일 없다는 걸 선언한 뒤 소형 증기자동차에 탑승하고, 무리가 매복한 곳으로 돌아갔다.

* * *

“마법물품의 효과가 확실하군요.”

“그렇습니다. 상대가 방심해서 쉽게 이식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저자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건가요?”

“마나량에 제한이 있어 하루 이상은 못 합니다. 그 대신 저 사람 주위의 대화를 우리가 감청할 수 있습니다.”

‘오! 도청 기능이 있군! 돈값은 하겠는데!’

사카야 시게오가 마음을 바꿔 그냥 돌아간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화 500억 원의 가치를 가진 마법물품의 힘이다.

마법사 고사누는 마인드 컨트롤과 도청 기능이 있는 아티팩트를 사카야 시게오의 뒤통수 안에 삽입했다.

육안으로 보거나 머리를 감는 것으로 아티팩트의 존재를 알아낼 수 없다.

“츠네, 우회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냥 도로를 타고 가면 돼.”

“다른 자가 검색하지 않을까요?”

“아니야. 저놈들 인력이 모자라 자동차를 한 번만 검색하고 있어. 잠시 후에 출발하면, 이상 없이 통과할 거야.”

“그렇군요. 떠날 준비 하겠습니다.”

창수는 정찰 드론이 보내오는 정보를 제대로 활용하고 있다.

사인샨드에 매복한 인원은 고작 9명. 금나라와 명나라보다 교통량이 적은 곳이지만, 교통의 요충지이기에 오가는 차량이 적지 않다.

저들은 중복 검색 할 여유가 없다.

- 치치치칙!

<저기 화물차가 하나 오는군.>

<그냥 놔둬. 방금 전에 내가 살펴본 거야.>

<뭐가 들어 있었어?>

<싸구려 생필품이야. 우리가 찾는 것과 아무런 연관이 없어.>

잘 들린다.

창수 일행이 탄 화물차가 다가가자, 매복한 자들이 검색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다.

창수는 아티팩트와 연결된 조종기를 통해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모두 들을 수 있었다.

살아서 걸어 다니는 도청 장치가 만들어졌다.

5.

사인샨드를 무사히 빠져나온 창수 일행은 별다른 위협 없이 순탄하게 이동해, 으슥쾰 호수에 도착했다. 선양을 떠난 지 17일 만에 목적지에 도달한 것이다.

“대표님, 저쪽이 미궁 입구입니다. 마나 유지기는 입구 앞에 세우는 것이 좋습니다.”

“너무 눈에 띄지 않을까요?”

“공간 왜곡 마법을 사용하면, 하루 정도 가릴 수 있습니다.”

“흠……. 시간이 촉박하군요.”

미궁에는 마나를 고갈시키는 함정이 있다. 일반 미궁에는 드물지만, 등급이 높은 미궁에 빈번하게 나타난다.

창수 일행이 들어가야 할 미궁은 상급 미궁. 만약 마나 유지기가 없으면, 마법사가 전력에서 이탈하게 된다.

그리고 마나 유지기는 퇴각로를 지켜 주는 역할도 한다. 실처럼 가는 은사로 마법사와 연결돼 있어 복잡한 미궁에서도 길을 잃지 않게 도와주기에.

미궁 탐험에 필수적인 것이 마나 유지기다.

하지만 동시에 탐험을 번거롭게 만드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부피가 너무 커서 마법자루에 수납 못 하는 것이 단점이다. 창수가 개조된 화물차를 사용한 이유가 마나 유지기를 운반하기 위해서다.

게다가 마나 유지기는 큰 덩치 때문에 외부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고사누가 마법으로 마나 유지기를 가린다고 해도 시간 제약이 있다.

창수는 시간에 쫓기면서 미궁 탐험 하는 것이 탐탁지 않았다. 서두르다가 사달이 날 수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주군, 제가 마나 유지기를 은폐할 수 있습니다.”

“그래? 시간은 얼마나 걸려?”

“2시간이면 충분합니다.”

“좋아. 마나 유지기를 설치한 뒤 바로 작업을 시작해.”

창수의 고민을 풀어 준 건 츠네였다.

츠네는 나무와 낙엽, 그리고 흙을 사용해 마나 유지기의 존재를 가려 버렸다. 사전에 정보가 없다면, 5m 인근에 접근해도 마나 유지기의 존재를 알 수 없을 거다.

‘궁합이 맞는 팀이야. 어쩌면 운명의 안배일 수도 있고.’

마법사는 미궁 탐험의 난이도를 좌지우지하는 핵심 전력이다. 그리고 함정이 도사린 미궁에서 탐색 능력을 가진 팀원은 마법사 못지않게 소중한 전력이다.

츠네는 탐색뿐만 아니라 은폐에도 뛰어났다. 이건 그가 흑룡회 부조장 출신이기 때문이 아니다. 흑룡히 타격조는 무력이 높지만, 닌자 훈련을 받지 않는다.

츠네에게 탐색과 은폐 기술을 가르친 당사자는 그의 모친이다.

창수는 츠네의 가정사를 생각하며, 미궁 탐험에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

* * *

- 철컥!

- 스르륵!

모든 준비를 마친 뒤, 창수가 미궁 입구에 열쇠를 꽂아 넣었다. 열쇠는 제자리를 찾은 듯 경쾌한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그리고 입구가 열렸다.

“입구를 교묘하게 만들었군요.”

“그렇습니다. 미궁 입구가 열려도 외부에서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미궁을 만든 사람의 은폐 기술은 츠네보다 한 수 위였다. 평평한 바닥이 꺼지면서 열린 미궁 입구는, 주위 환경과 어우러져 완전히 동화됐다.

입구가 열리는 과정을 지켜보지 않은 사람은 바로 옆에 와도 미궁 입구의 존재를 알지 못할 거다.

“그럼 탐험을 시작하죠.”

- 위이잉!

미궁 안으로 가장 먼저 들어선 건 창수가 아니었다. 그는 벌새를 닮은 초소형 정찰 드론을 미궁 안으로 날려 보냈다.

“첫 번째 함정은 화살입니다.”

“우리가 가진 방어구를 믿고 밀고 들어가면 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화살로 마법방어구와 천잠사를 동시에 뚫을 수 없습니다.”

고사누는 벌새 드론이 전송한 화면을 보고, 곧바로 정체를 알아냈다. 미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기본 함정.

- 슝! 슝! 슝!

- 틱! 틱! 틱!

- 저벅! 저벅!

화살 함정은 미궁으로 진입하는 탐험자의 실력을 가리는 척도다. 화살을 막을 능력이 없거나, 화살에 맞아도 견디는 방어구가 없으면, 큰 피해를 본다.

준비 없이 미궁에 도전한 초보자들이 넘긴 힘든 벽이 화살 함정이다.

그러나 창수 일행은 물리방어력에 특화된 방어구를 두 종류 보유하고 있다. 그들은 비 오듯 쏟아지는 화살을 무시하고 그대로 직진했다.

- 스르릉!

“끝인가요?”

“예. 화살 함정을 무사히 돌파했습니다.”

‘흠. 너무 싱거운데. 준비를 너무 빡세게 했나?’

너무 과하게 준비한 것일까? 창수 일행은 산책하듯 함정을 넘어 복도에 도착했다.

그러자 건너편 복도 끝에 있던 석문이 저절로 열렸다. 아마도 다음 단계로 진입하는 관문이리라.

창수는 예상외로 싱거운 함정에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상급 미궁에 대비한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준비하다 보니, 비용이 한국 돈으로 1조 원 이상 들어갔다.

재물은 쉽게 얻을 수 있기에 부담이 덜하다고 해도, 준비 과정에 갈아 넣은 심력과 시간은 회복하기 어렵다.

‘아니야. 아끼면 똥 되는 거야. 아무리 함정이 쉬워도 최선을 다해 준비한 것이 옳아. 단 1%라도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

일종의 정신 승리일까? 아니면 대국적인 시각을 가지게 된 걸까?

창수는 헛고생했다는 삿된 마음을 가라앉히려 합리적인 이유를 가져다 붙였다.

- 치이익!

“주군! 독입니다! 출입구 쪽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 타다닥!

창수가 미궁 난이도 문제로 생각에 잠겼을 때, 열린 석문 안쪽에서 독가스가 뿜어져 나왔다.

이것이 두 번째 함정일 터.

탐색 능력이 뛰어난 츠네는 뿜어 나오는 독의 행태로 보아, 해독하기 어려운 맹독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미궁 밖으로 도주하자고 말했다.

츠네의 다급한 충고에 경각심이 든 창수는 가타부타 묻지 않고 신속하게 입구로 달려갔다.

- 슝! 슝! 슝!

- 칙! 칙! 틱!

창수 일행이 빠르게 이동했으나, 공기를 타고 오는 독의 확산이 더 빨랐다. 비록 독이 희석돼 약해졌다 해도, 중독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자 신체가 급속히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면서 달리는 속도가 대폭 느려졌다.

게다가 독에 중독된 상태이기에 마법방어구가 제 기능을 못 하게 됐다. 천잠사로 만들어진 중급 전투복을 착용하지 않았다면, 화살에 큰 피해를 봤을 거다.

- 헉! 헉!

“함정 두 개가 한 묶음이었군요.”

“죄송합니다. 제가 미처 그걸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닙니다. 경험해 보지 않으면, 누구도 알 수 없는 악랄한 함정이었습니다. 역시, 상급 미궁답게 만만치 않군요.”

미궁 입구까지 간신히 빠져나온 창수 일행은 해독약을 사용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지친 몸과 마음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뒤, 고사누가 이중 함정을 간파하지 못한 것에 사과했다.

그러나 창수는 고사누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했다. 마법사가 만능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미궁의 이중 함정은 심리전의 특성을 포함하고 있다.

먼저 상대방을 안심시키고 우쭐하게 만든 뒤, 깊숙한 함정으로 끌어들여 후퇴를 못 하도록 만드는 전술.

만약 츠네가 독가스 배출을 조금만 늦게 알아차렸어도, 세 명 모두 큰 위기에 빠졌을 거다.

‘음……. 저 독을 해결하지 못하면 미궁 탐험은 불가능이야.’

호기롭게 과도한(?) 준비 과정을 후회하던 패기는 이제 어디에도 없다.

창수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며, 미궁 초입부를 통과할 방안을 찾는 데 심력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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