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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평행우주 독식-45화 (45/200)

45화 15장. 마법사 고사누

2.

“와르카 님, 후퇴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뭐야!? 무슨 개소리야!?”

창수가 볼트22 재장전에 들어갈 때, 마법사 고사누가 와르카에게 퇴각을 조언했다.

무장 칸에 막혀 창수를 공격하지 못해 울화통이 터진 와르카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만약 판누와 같은 부하가 유사한 조언을 했다면, 쌍욕과 함께 주먹이 나갔을 거다.

“와르카 님이 가진 전력으로 저 사람을 상대할 수 없습니다. 마법방어구는 물론이고 천잠사로 만들어진 방어구까지 착용하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사용하는 무기도 위력이 매우 뛰어납니다.”

“천잠사라고…….”

“지금 저 사람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는 화염탄뿐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죠.”

고사누는 실력이 뛰어난 마법사다. 단순하게 위치만 탐색한 것이 아니라, 창수의 무장 상태를 대략적이나마 파악했다.

창수가 공격을 중단한 것 역시,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더 강력한 공격을 위한 준비라는 걸 알아차렸다.

“원하는 게 뭐야?”

“원하는 거라니요?”

“네 마법이라면 저 악귀 놈을 죽일 수 있을 거 아니야? 원하는 게 있으면 뭐든지 말해! 저놈만 죽여 준다면, 뭐든지 줄 수 있어!”

천잠사는 마법물품은 아니지만, 총탄에도 뚫리지 않는 탁월한 방어력을 가지고 있다. 와르카가 입수하려고 애썼으나 손에 넣지 못한 귀물.

천잠사와 마법방어구를 동시에 착용하면, 원소 공격과 마법 공격 이외에 달리 상대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와르카는 창수를 제거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 고사누라 생각하고, 질척거리며 매달렸다.

“판단이 흐리시군요. 제가 원하는 건 구아이가 안전하고 편안한 삶을 누리는 겁니다. 와르카 님이 저에게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면 나에게 후퇴하자고 말하는 이유는 뭐지? 장난치는 건가?”

“마지막 통보입니다. 제 충고를 듣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저는 구아이를 데리고 지금 이곳을 떠날 겁니다.”

고사누의 관심사는 온통 구아이의 안위에 쏠려 있다. 그는 마적단이 이 전투에서 패배할 거라 예상하고 늦기 전에 발을 빼려는 거다.

“우리가 망하든 말든 네 여자만 챙기면 그만이라는 거냐!? 비열한 짓을 내가 용납할 것 같아!?”

“저는 약속대로 탐색 마법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유용한 정보도 대가 없이 넘겨드렸습니다. 이제 와르카 님이 약속을 지킬 차례입니다.”

“약속을 못 지키겠다면, 어떻게 할 건데!?”

“와르카 님은 저를 막을 수 없습니다. 부하들을 총동원해도 안 됩니다. 만약 저를 막으면, 약속을 어긴 대가로 몰살당할 겁니다.”

“뭐……. 뭐라고!”

창수와 츠네가 마적단 조장 3명을 처단하는 시점에서 힘의 균형이 무너졌다. 고사누는 단독으로 마적단 전체를 상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몰살이라는 섬뜩한 단어를 사용했다.

금나라 수도 선양 일대를 주름잡던 와르카는 고사누의 폭언에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어떤 반론도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고사누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 저벅! 저벅!

고사누는 와르카에게 여유를 주지 않았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마적단 두목을 지나쳐 구아이가 배치된 장소로 걸어갔다.

“잠깐! 고사누 법사! 나와 거래합시다! 무례하게 군 것도 사과하겠소!”

“거래요? 와르카 님에게 받을 것이 없다고 이미 말했습니다만.”

“나를 무사히 성채로 데려다주면, 중급 마나석 2개를 사례로 주겠소.”

“병력을 철수하지 않고 와르카 님 혼자 빠져나간다는 건가요?”

“아니요. 후퇴 명령을 내릴 거요. 하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하니 나를 경호해 주시오.”

극적인 심경 변화가 생겼다. 동생의 복수에 눈이 멀었던 와르카는 마적단의 상태가 괴멸 직전이라는 걸 깨닫고 도주를 선택했다.

그리고 안전한 탈출을 위해 고사누에게 신변 보호를 청했다.

“좋습니다! 의뢰 받아들이죠!”

중급 마나석은 1개에 1천억 원을 호가하는 귀물이다. 아무리 물욕이 없는 마법사라도 마나석을 외면할 수 없다.

아니 오히려 마법사이기에 중급 마나석에 집착이 간다.

고사누는 고고한 학과 같은 모습에서 3일 굶은 독수리로 자세를 바꾸고, 와르카의 제안을 낚아채듯 받아들였다.

* * *

<츠네, 마적 놈들이 도주하려 한다.>

<추적할까요?>

<아니야. 함정에 걸릴 수 있으니, 무장 칸을 벗어나지 마.>

정찰 드론으로 마적단을 감시하던 창수는 대포를 견인하려는 움직임을 포착했다.

마적단이 점차 수세에 몰리는 상황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를 빼내는 건 후퇴의 징조가 분명하다.

하지만 창수는 섣부르게 나서지 않았다. 화염탄을 발사하는 대포가 재장전을 마쳐 이동하면서 발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 쉐에엑!

- 지지직!

“크아악!”

그렇다고 창수가 손 놓고 마적단이 후퇴하는 걸 지켜본 것은 아니다. 허점을 보이는 마적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표적이 된 건 후퇴를 지휘하던 조장.

마적단 조장들은 후퇴하는 병력의 후미를 지켰다. 마법방어구와 함께 방패를 들었기에, 물리공격은 물론이고 마법화살 공격도 막을 수 있다고 자신한 것.

그러나 리버스드로우 컴파운드크로스보우 볼트22는 차원이 다른 냉병기였다. 각궁보다 7.5배 강한 위력을 가진 화살이 날아와 단번에 방패를 뚫어 버린 뒤, 마법방어구도 무력화했다.

방패가 없을 때보다 위력이 줄어들었으나, 목표를 제거하기에 충분한 파괴력을 보였다.

창수가 조장 한 명을 처단하자, 츠네가 뒤이어 화살을 발사했다. 방패를 믿고 있던 조장들은 아무런 반항도 못 해 보고 그대로 쓰러졌다.

- 타다닥!

- 파바박!

위기를 느낀 나머지 조장 3명이 엄폐물을 찾아 이동했다.

하지만 사람의 발보다 날아가는 화살의 속도가 월등히 빠르다. 창수와 츠네는 마법자루에서 장전된 터보22를 꺼낸 뒤 추가로 마적단 조장 2명을 처단했다.

이제 와르카 마적단에서 살아남은 조장은 단 한 명뿐이다.

- 탕! 탕! 탕!

“으악!”

“크아악!”

조장들이 제거되자 퇴각하는 마적단 후방의 조직력이 급격히 약화됐다. 방패를 들고 동료의 후퇴를 지원하던 마적들이 자기 살길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 것.

조직력이 와해되자 빈틈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사이를 창수와 츠네가 발사한 AK-201 총탄이 파고들었다.

총알이 날아오고 동료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자, 마적들이 패닉에 빠져 무질서하게 뛰어가기 시작했다.

<마적 놈들이 도주한다! 추격하라!>

마적단이 전의를 상실한 것을 지켜본 열차 경비책임자 애쿠렌이, 경비병에게 추격전을 지시했다.

전투에서 가장 많은 전공이 나오는 때가 도주하는 적을 쫓아 주살하는 추격 과정이다.

힘과 힘이 맞부딪치는 정면 대결에서 힘겹게 올리는 전공보다 몇 배의 성과를 단기간에 올릴 수 있다.

경험 많은 애쿠렌이 이 기회를 놓칠 리 없다. 그리고 지금 마적들을 가능한 한 많이 처단해야 와르카 마적단의 힘을 약화할 수 있다.

애쿠렌의 지시는 합리적이라 평가받을 만하다.

- 우르르!

- 탕! 탕!

애쿠렌의 명령을 받은 경비병들이 무장 칸에서 뛰어나와 마적들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방어에 집중하다가 반격을 하게 된 경비병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다. 마적을 죽이고 받을 수 있는 현상금을 생각하니 피곤함도 깨끗이 사라졌다.

마치 진수성찬이 차려진 밥상을 받는 느낌.

그러나 세상일에 수월한 것이 있을까?

- 쾅!

- 콰쾅!

- 화르르!

“커억!”

“쿠악!”

대형 증기화물차에 의해 견인되던 대포가 화염탄을 발사했다. 창수가 경계하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차체가 흔들리는 상태이기에 정확도가 다소 떨어지지만, 경비병이 다수 모여 있는 곳에 포탄이 떨어졌다.

순식간에 주위가 불바다가 되면서 경비병 7명이 화염에 휘말렸다. 그중 5명이 즉사하고 2명이 중화상을 입었다.

만약 창수가 추격전을 시도했다면, 심각한 피해를 당할 수 있었다.

<추격을 중지하고, 무장 칸으로 후퇴하라!>

추격전은 양날의 검이다. 작은 노력으로 큰 전공을 얻을 수 있는 반면, 적의 노림수에 걸리면 큰 피해를 당할 수 있다.

애쿠렌은 자신이 마적단의 계략에 넘어갔다고 판단하고, 추격 중단 명령을 내렸다.

3.

“고사누 법사! 고맙소! 덕분에 무사히 복귀할 수 있었소!”

“의뢰를 받았으니 지킨 것뿐입니다.”

마적단 근거지로 돌아온 숫자는 고작 57명. 투입된 병력이 400명이라는 걸 생각하면 완벽한 패배다. 더구나 핵심 전력인 조장도 11명이나 잃었다.

그런데도 와르카는 기뻐하며 고사누에게 사의를 표했다.

아직도 재물이 많이 남아 있다. 잃어버린 전력은 돈을 써서 영입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가진 것.

반면, 인사를 받는 고사누는 떨떠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마적단의 후퇴를 돕기 위해 대포에 안정화 마법을 건 것이 경비병 다수를 죽였기 때문이다.

“얼굴 좀 펴시오! 그리고 잔치를 열어 진하게 한잔합시다! 오늘 고사누 법사의 진정한 실력을 알게 돼 아주 기쁘오!”

“마음만 받겠습니다. 저는 지금 구아이와 함께 떠나겠습니다.”

잔치 참여는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나, 결과적으로 마적단의 살인에 참여하게 된 고사누. 그는 가능한 한 빨리 마적단의 소굴을 벗어나고 싶었다.

“커험! 뭐가 그리 급하다고? 좋소. 구아이를 데리고 떠나시오. 약속이니 지켜야지.”

“그럼. 저는 이만 가 보…….”

“잠시만 기다리시오. 구아이에게 노잣돈을 줘야 하니까.”

“그건 없어도 됩니다. 저에게 충분한 재물이 있습니다.”

“어허. 여자도 돈이 있어야 하는 거요. 구아이를 고사누 법사에게 의지하도록 만드는 건 좋은 일이 아니오.”

“그거야 그렇기는 하죠…….”

고사누는 의뢰금으로 약속된 중급 마나석 2개를 이미 받았다. 그리고 수중에 수십 년을 놀고먹어도 충분한 재물을 가지고 있다.

구아이가 받을 노잣돈을 포기하고, 능글능글한 마적단 두목과 빨리 인연을 끊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하지만 여자도 재산을 가져야 한다는 와르카의 말이 이치에 맞다. 고사누는 어쩔 수 없이 구아이가 재물을 받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구아이, 수고 많았다. 이건 내가 주는 혼인 선물이다.”

- 척!

“어머! 황금 10관에 귀한 패물까지! 너무 감사합니다!”

“껄껄껄. 뭐 이 정도를 가지고. 고사누 법사와 아들딸 낳고 행복하게 살도록 하거라.”

“예! 백년해로할게요!”

와르카가 구아이에게 준 것은 푼돈이 아니라, 황금 37.5kg과 진귀한 장신구였다. 이 정도 재물이면, 구아이 홀로 평생을 안락하게 살 수 있을 터.

구아이가 기뻐하는 건 당연한 일. 그리고 고사누도 와르카에게 가졌던 경계심을 약간은 풀게 됐다.

“구아이, 이제 그만 길을 떠납시다. 우리가 빨리 가야 돕는 겁니다.”

“예. 알겠어요.”

와르카의 통큰 선물에 감동한 것일까? 구아이가 시간을 지체하자, 고사누가 나섰다. 호의를 보여 줘도 마적단은 마적단이니까.

- 슥!

고사누에게 다가간 구아이는 손을 내밀었다. 잡아 달라는 의미.

사랑하는 여인이 내민 손을 누가 뿌리칠 수 있을까? 고사누는 기쁜 마음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

- 퓩!

“끄아아악!”

그리고 마법사 고사누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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