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평행우주 독식-44화 (44/200)

44화 15장. 마법사 고사누

1.

“아무리 그래도. 마법으로 사람을 죽일 수 없습니다.”

와르카 마적단을 공격하는 인물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악명 높은 범죄 집단과 싸우는 사람을 마법으로 공격하는 건 내키지 않는 일.

사랑하는 구아이를 당장 구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고사누는 이성으로 감정을 억누르며, 와르카의 달콤한 유혹을 거부했다.

이건 고사누가 마법사로 수양이 잘돼 있음을 나타내고, 동시에 인간 됨됨이가 반듯하다는 걸 알려 준다.

“마법사답지 않게 배포가 큰 줄 알았더니, 쫄보였군!”

“생명은 소중한 것입니다.”

쫄보면 어떤가? 이 정도 야유는 여유롭게 받아들일 수 있다.

고사누가 올곧은 모습을 보이자 와르카의 얼굴이 점점 험악해졌다.

“젠장! 더러워서 못 해 먹겠구만! 구아이를 그냥! 콱! 죽여 버릴까? 네가 원하는 게 그거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만약 구아이에게 이상이 생기면, 당신들도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

“말하는 꼬라지 보소! 우리 목숨은 하찮고! 네가 점찍은 계집의 목숨은 존귀하다 이거냐!?”

“모든 목숨이 소중하다는 겁니다. 적당히 하시죠.”

“후우! 후우! 먹물하고 입씨름하는 내가 미친놈이지!”

와르카의 인내가 임계점을 넘어 폭발했다. 달콤한 유혹에 고사누가 넘어오지 않자, 성질을 참지 못하고 흉성을 터트리기 시작한 것.

그러나 고사누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산미치광이라 불리는 호저처럼 쉽게 공격할 수 없는 상대.

현재 와르카 마적단은 전면에서 열차 경비대와 전투를 벌이고 있고, 좌우 양면에서 창수와 츠네로부터 게릴라성 공격을 받고 있다.

본대에서 고사누와 전투를 벌이면, 응징은 고사하고 마적단이 궤멸할 가능성이 크다.

얄미워도 손댈 수 없는 존재.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목의 가시 같은 존재가 고사누다.

“좋아! 존귀한 마법사 나으리! 내가 마지막 제안을 하지! 이것도 무시하면 이판사판이야!?”

“그게 뭡니까?”

“너는 탐지 마법만 사용하면 돼. 쥐새끼 처리는 우리가 알아서 할 거야. 그리고 대가로 구아이에게 휴가를 주도록 하지. 아주 자유로운 휴가.”

“구아이를 데리고 어디로든 가도 된다는 겁니까?”

“그래. 어디로 데려가든, 무슨 짓을 하든 네가 알아서 해.”

와르카의 ‘마지막’ 제안을 들은 고사누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구아이를 마적단에서 분리만 하면 된다. 그 뒤 마적단이 추적한다고 해도, 충분히 따돌릴 자신이 있다.

와르카도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즉, 이 제안은 사실상 구아이를 풀어 준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좋습니다. 탐지 마법을 사용하도록 하죠. 지속 시간은 30분입니다. 그리고 명심하세요. 만약 약속을 어기면, 참혹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겁니다.”

“쯔쯔쯔……. 누가 먹물 아니랄까 봐! 더럽게 꼬장꼬장하게 나오는군! 잔소리 말고 마법이나 실행해! 약속은 반드시 지킬 거니까!”

얻어 내는 대가가 실질적으로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치러야 할 대가가 대폭 경감됐다. 마치 정가 100만 원인 스마트폰을 10만 원에 구매하게 된 느낌.

결국, 고사누는 와르카의 ‘마지막’ 제안을 받아들였다. 마적단을 공격하고 있는 이름 모를 누구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을 가지며.

* * *

- 팟!

‘뭐지? 이건?’

고사누가 탐색 마법을 사용하자, 창수는 무언가 불길함을 느꼈다. 탐색에 포함된 마나를 미미하게나마 감지한 것.

그리고 마적단의 비정상적인 움직임을 목격하게 된다.

- 스르륵!

‘대포가 나를 노리는 건가? 내 위치를 어떻게 알고? 혹시…….’

현재 창수가 몸을 숨긴 장소는 마지막으로 총탄을 발사한 곳에서 50m가량 떨어진 지점이다.

공격할 마적을 찾지 못해 한참을 이동했기에, 평균적으로 움직이던 20m보다 배 이상 먼 거리를 이동했다.

대포를 운용하는 마적이 어림짐작으로 조준할 수 없는 거리 차이가 난다. 포신이 창수를 향해 이동한다는 건 정확한 위치를 파악했다는 걸 의미한다.

창수는 직감적으로 위기를 느끼고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 쾅!

- 콰쾅!

- 화르르!

‘휴! 조금만 늦었어도 불에 당할 뻔했어! 후후후. 그래도 스릴은 있군.’

화염 폭탄이 창수가 몸을 숨기던 장소로 날아왔다.

간발의 차이였다. 만약 0.1초만 늦게 움직였다면, 창수의 몸이 화염 속에 잠겼을 거다.

위기 상황이지만 두렵지 않다. 머리가 쭈뼛해지면서 짜릿한 감각이 등뼈를 타고 전신으로 퍼졌다.

‘어디로 움직여야 하지? 대포 사정거리 밖으로 후퇴해야 할까?’

대포를 발사하는 마적들의 자세가 달라졌다. 어눌하던 조금 전과 달리,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일사불란하게 재장전하고 있다.

여기서 어물거리면, 포격에 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저 대포 사거리가 최소 1km는 될 거야. 너무 먼 거리로 나가면 마적단을 막을 수 없어.’

도주가 위험을 피하는 최고 방법이다. 하지만 전투를 포기해야 하는 딜레마를 가지고 있다.

위험을 감수하고 마적단을 처단해야 하는가? 아니면 마적단 일부를 제거한 것에 만족하고 안전을 택할 것인가?

창수에게 결단의 시간이 왔다.

<츠네! 전투 멈추고, 기관차 쪽 무장 칸 후방으로 이동해! 우리 위치가 노출됐다!>

<마적단이 마법을 사용한 건가요?>

<그럴 가능성이 높아. 내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대포를 발사하고 있어.>

<알겠습니다! 즉시 이동하겠습니다!>

창수가 선택한 건 현 위치에서 교전이 아니고 후퇴도 아니었다. 열차 무장 칸을 방패 삼아 교전을 계속하는 방법을 택했다.

마적단이 중간 무장 칸에 집중적인 포격을 가했음에도 상당 시간 버텼다는 걸 생각하고 내린 결단.

창수는 열차 후방 무장 칸으로 이동하면서, 츠네에게 열차 전방 무장 칸으로 이동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달려가는 창수와 츠네에게 마적단이 일제히 사격을 가했으나, 마법방어구를 착용한 두 사람에게 아무런 피해도 줄 수 없었다.

* * *

탐지 마법에 걸린 창수가 열차 쪽으로 이동하자, 대포 포신도 따라 움직였다. 마치 세상 끝까지라도 쫓을 것 같은 집요함이 느껴진다.

창수는 대포가 자신을 겨냥하는 걸 지켜보면서 후미 무장 칸 뒤쪽으로 몸을 완전히 숨겼다.

- 쾅!

- 추륵!

1분 40초 만에 재장전을 마친 대포에서 포탄이 발사됐다. 공격 목표는 당연히 창수가 위치한 무장 칸.

하지만 포탄은 단단한 무장 칸의 장갑을 뚫지 못했다. 게다가 무장 칸 외부가 마법처리 된 상태이기에 화염도 크게 발생하지 않았다.

오히려 타격을 받은 건 무장 칸과 연결된 10호 객차였다. 다행히 승객들이 모두 9호차로 대피해 사상자는 나오지 않았다.

‘역시, 대응이 중요하다니까. 무장 칸 방어력을 눈여겨봐 두길 잘했어.’

평행우주에 진입한 이후 여러 번 전투를 치렀다. 죽느냐? 죽이느냐?의 갈림길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정보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창수는 이번 전투에 정찰 드론 4대를 투입해 전투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마적단이 보유한 대포의 위력과 발사 속도, 그리고 성과를 세세히 파악한 상황.

무장 칸을 엄폐물로 삼은 것은 화염 폭탄을 막아 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판단은 정확히 맞아 들어갔다.

‘아상연후살타라고 했지. 어디 죽어 봐라, 마적 놈들!’

마적단의 공격을 무사히 넘긴 창수가 반격에 나섰다.

- 쉐에엑!

창수가 사용한 무기는 AK-201이 아니라 볼트22였다. 공격 대상은 마법방어구를 착용한 마적단 조장.

마적단 조장들은 물리공격을 막아 내는 마법방어구를 착용하고, 전면에서 전투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창수는 그중에서 가장 선두에 선 조장을 향해 화살을 발사했다.

- 팍!

- 지지직!

“크아악!”

400J에 달하는 운동에너지를 가진 화살이 마법방어구를 뚫고 마적의 심장에 깊숙이 박혔다.

마적단 조장은 감전된 것처럼 온몸을 떨면서 앞으로 꼬꾸라졌다.

- 뭐야!? 조장님이 왜 쓰러져!? 무슨 일이야!?

- 화살에 맞은 것 같아!

- 겨우 화살에 맞고 쓰러진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총탄도 막아 내는 조장님을 화살이 어떻게 쓰러트려!?

용맹을 자랑하던 조장이 갑자기 쓰러지자, 마적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조장을 쓰러트릴 수 있는 건 마법무기뿐이다. 열차 경비대가 마법무기를 사용하고 있으나, 가장 긴 사정거리가 50m에 불과하다.

조장은 열차에서 70m 거리에 있었다. 조장을 쓰러트린 무기가 도대체 무엇이라는 말인가?

창수가 발사한 화살의 존재를 파악한 마적은 소수에 불과했다. 예견되지 않은 기습 공격으로 대다수 마적이 상황 판단을 못 한 것이 원인.

그리고 소수의 의견은 큰 목소리에 치여 밀려났다.

“우아악!”

“크아악!”

마적들이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조장 2명이 추가로 쓰러졌다. 창수의 두 번째 공격과 츠네의 첫 번째 공격이 만들어 낸 결과물.

그리고 조금 전과 다른 반응이 나타났다.

- 마법화살이다!

- 맞아! 마법화살이야! 비겁한 굼벵이 놈들이 암수를 쓴 거다!

- 미친! 마법화살을 진짜로 사용하는 무식한 놈이 있을 줄이야!

전투 경험이 풍부한 마적들이 곧바로 정신 차리고, 조장들을 쓰러트린 무기의 정체를 알아냈다.

물리방어에 특화된 마법방어구의 천적이 마법무기. 대표적인 것이 마법검이지만, 화살촉에 마법이 새겨진 마법화살도 마법방어구에 치명적이다.

그렇다. 창수와 츠네가 와르카 마적단 조장들에게 사용한 무기는 전격 마법이 담긴 마법화살이다.

- 저놈들이 우리 약점을 치고 들어온 거야!

- 대책을 세워야 해!

- 방패로 막으면 돼! 조장님에게 방패 드려!

마법방어구를 무력화할 수 있음에도 실전에서 마법화살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활의 위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현재 금나라에서 사용하는 활 중에서 가장 뛰어난 성능을 가진 것은 조선에서 수입한 각궁이다.

운동에너지 53J을 만들 수 있는 각궁은 금나라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방패 앞에 무용지물이다.

방패가 100m 거리에서 200J에 달하는 위력을 가진 총탄을 막아 내는 방어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법화살은 마법물품답게 개당 한화 1,000만 원에 달하는 고가다. 효율에 비해 비용이 엄청난 극악의 가성비를 나타낸다.

마적들은 전장에서 외면받은 지 오래된 마법화살을 대비하지 못한 것이 기습당한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조장들이 방패를 사용하기 시작하면, 마법화살 정도는 충분히 막아 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 척!

이제 살아남은 조장은 모두 5명. 그들은 재빨리 방패를 챙긴 뒤 몸을 보호했다.

<주군, 적이 방패를 들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마법방어구 착용한 놈들이 앞으로 나와서 설칠 때까지 대기해. 그동안 우리는 석궁에 재장전하면서 기다리면 된다.>

창수는 후방으로 대피한 마적단 조장들이 조만간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렇지 않으면 마적단이 열차 경비대의 힘을 누를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창수가 가지고 있는 볼트22는 6개, 츠네는 5개. 미리 장전해 놓고 마법자루에 집어넣었다가 빼내서 사용하고 있다.

이미 발사한 볼트22는 창수가 4개, 츠네가 3개다. 아직 장전된 것이 4개 남아 있으나, 그것으로 마적단 조장들을 모두 처리하기 어렵다.

지금 섣불리 조장들을 공격하는 것은 하책. 그자들을 전방으로 유인한 뒤, 볼트22 11개를 모두 장전해 놓은 상태에서 전투를 벌이는 것이 상책이다.

창수는 공격을 포기한 모습으로 가장하며,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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