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14장. 또 덤비냐?
3.
펑창을 떠나 선양으로 가던 열차가 평야 지대로 접어들 때, 강한 폭발음이 들리면서, 운행이 중단됐다.
“선로에 폭탄이 터져 열차가 탈선한 것 같습니다.”
“마적단의 짓일까?”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퇴로를 끊고 포위 섬멸하는 작전입니다.”
“하지만 이 열차는 무장 칸이 3개나 있어. 섬멸이 가능해?”
선양행 열차는 본래 무장 칸 2개를 가지고 있었다. 기관차 뒤에 그리고 열차의 가장 후미에. 3개로 늘어난 것은 창수가 와르카 마적단의 공격을 막아 낸 이후다.
열차 경비책임자 애쿠렌은 마적단이 열차 가운데를 집중 공격했다는 것에 주목하고, 5번 객차와 6번 객차 사이에 무장 칸을 한 개 더 증설했다.
무장 칸 하나는 마적단 100명을 능히 상대할 수 있다. 더구나 무장 칸 3개가 서로 협력하면, 마적단이 500명을 동원한다고 해도 물리칠 수 있다.
창수는 마적단이 치고 빠지는 게릴라전이 아니라, 포위 섬멸에 나선다는 츠네의 말에 의문을 가졌다.
“가능성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마적단이 압도적으로 많은 인원을 동원할 경우입니다. 다른 하나는 마적단이 무장 칸을 무력화할 무언가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입니다.”
“무장 칸 무력화라……. 4번 객차로 뛰어!”
- 타다닥!
- 투다닥!
“여러분도 모두 여기를 벗어나야 합니다! 어서요!”
츠네와 대화를 나누던 창수는 차창 밖에 나타난 무언가를 보고, 황급히 5번 객차를 떠나 4번 객차로 이동하라고 말했다.
츠네는 이유를 묻지 않고 창수의 지시를 따랐다. 창수가 다급하게 말할 때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고 여긴 것.
갑자기 창수가 소리를 지르고 4호차 쪽으로 달려가자, 5호차에 있던 다른 승객들도 덩달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승객들이 모두 4호 객차로 들어갔을 때 폭발이 일어났다.
- 쾅!
- 터텅!
- 화르르!
창수가 발견한 건 대포였다. 대형 증기화물차가 끄는 트레일러 위에 155mm 곡사포보다 2배는 족히 커 보이는 대포가 놓여 있었다.
창수는 대포가 5호차와 연결된 무장 칸을 공격하리라 생각하고, 4호 객차로 대피한 것이다.
창수의 직감대로 대포에서 발사한 포탄이 무장 칸을 직격했다. 무장 칸은 두툼한 장갑으로 둘러싸여 있어 단번에 파괴되지 않았다.
하지만 포탄이 터지면서 발생한 강력한 충격이 5호차와 6호차의 창문을 부수고, 그 사이로 화염이 들어왔다.
만약 창수가 발 빠르게 대피하지 않았다면, 큰 화상을 입었을 거고, 승객들 상당수가 치명상을 당했을 거다.
간신히 위기를 넘긴 승객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며, 창수에게 감사를 전했다.
“투명망토를 켜고 열차를 빠져나가자. 여기 있다가 개죽음당한다.”
“알겠습니다. 앉아서 당할 수는 없죠.”
4호차라고 안전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마적단의 포탄이 언제 날아올지 모르니까.
마적단이 강력한 화기를 사용하는 상황에서, 피할 장소가 없는 열차 안은 함정과 다를 바 없다.
창수와 츠네는 슬그머니 투명망토를 가동해 몸을 감춘 뒤, 5호차 객차로 돌아가, 깨진 창문을 통해 열차 밖으로 나왔다.
“내가 왼쪽 외곽을 공격할 테니, 너는 오른쪽으로 돌아가며 공격해.”
“대포를 먼저 공격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와르카 마적단에 마법방어구를 착용한 놈이 10명이 넘어. 게다가 마법검도 소유하고 있는 놈들이지. 정면 대결은 무리야.”
일반적인 전투 경험과 지식은 츠네가 창수보다 압도적으로 많지만, 와르카 마적단에 한정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창수는 와르카 마적단과 맞서 82명을 처단한 전투 경험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오늘 같은 재충돌을 대비해, 와르카 마적단 정보를 꼼꼼히 모아 뒀다.
그중 대부분이 마적단에 원한을 가진 아오툰산업 대표 언치엉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창수는 축적된 정보를 바탕으로, 츠네에게 무엇 때문에 마적단의 외곽을 먼저 공격해야 하는지 이유를 알려 줬다.
“대단한 전력이군요. 혹시 저자들이 공격 마법도 사용할까요?”
“그건 확인하지 못했어. 하지만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 해. 챙겨 놓은 마법물품이 어마어마한 놈들이니까. 그리고 공격하다가 위험을 느끼면 즉시 퇴각해. 1차 집결지는 저 둔덕이다.”
“알겠습니다. 주군도 조심하십시오.”
- 사사삭!
작전 회의를 마친 창수와 츠네는 각자 맡은 구역으로 은밀하게 이동했다.
- 탕! 탕! 탕!
왼쪽으로 이동해 자리를 잡은 창수가 공격을 시작했다. 마적단 외곽 병력과 거리는 약 150m.
- 팍! 팍! 팍!
“크아악!”
“우아악!”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날아온 총알에 당황한 마적들. 신속한 대응을 못 하고 우왕좌왕하면서 맥없이 쓰러졌다.
그리고 동시에 오른쪽으로 이동한 츠네도 공격을 시작해, 연거푸 마적들을 쓰러트렸다.
삽시간에 와르카 마적단이 양면에서 포위된 형태가 됐다.
‘츠네 사격 솜씨가 기대 이상이군. 단시간에 이 정도로 적응할 줄 몰랐어.’
창수가 목숨을 구한 이후, 츠네는 자신을 가신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청했다. 창수는 츠네의 속마음을 알 수 없어, 부하로 받아들이지 않고 정보를 전해 주는 협력자로 여겼다.
하지만 츠네의 아버지가 조선인이라는 것과 흑룡회에 강한 증오심을 가지고 있다는 걸 고려해, 잠정적인 부하로 받아들였다.
창수가 츠네를 완전히 믿게 된 건, 노리오카 히가시에의 저택을 기습한 이후다.
그리고 안주에 도착한 이후, 츠네에게 AK-201을 비롯해 여러 가지 무기와 장비를 지급했다.
‘나도 뒤질 수 없지. 대한민국 육군 병장의 자존심이 있으니까. 아무튼, 양동작전이 한결 수월해지겠어.’
창수가 천진우와 함께 안주의 토속 음식과 술을 즐길 때, 츠네는 주군으로부터 받은 무기에 적응하기 위해 연습에 몰두했다.
이제는 창수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명사수.
창수는 츠네의 사격 실력에 든든함을 느끼면서도,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4.
“두목! 김창수라는 쥐새끼가 분명합니다!”
“그놈이 어떻게 열차를 빠져나온 거야!? 너는 뭐 하고 있었어! 멍청한 놈아!”
“죄송합니다. 워낙 신출귀몰한 놈이라…….”
창수는 5발을 연사하고 지그재그로 자리를 이동한 뒤, 다시 사격하는 움직임을 반복하고 있다.
게다가 투명망토를 작동한 상태이기에, 마적단이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 데 애를 먹는 상황.
공격대장 판누는 속수무책으로 마적단의 피해가 가중되자, 창수가 개입됐다는 걸 알아차렸다.
“우리의 가장 큰 목표는 김창수라는 악귀 놈에게 복수하는 거다. 조장들 모두 투입해서, 그놈의 목을 가져와!”
“하지만 조장들을 빼면 전선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악귀 놈이 빠져나왔는데, 열차를 공격해서 무슨 소용이야!?”
“굼벵이 놈들 화력이 만만치 않습니다. 교전 중에 조장들이 사라지면, 역공당할 수 있습니다.”
마적단 두목 와르카가 오늘 열차 공격을 감행한 것은 창수가 승차했다는 첩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비참하게 죽은 친동생 크루카의 복수를 위해 광분하고 있는 와르카. 마법방어구를 착용한 조장들을 모두 창수에게 투입하려고 했으나, 전투 상황이 녹록지 않다.
열차 경비책임자 애쿠렌이 사전에 충실한 준비로 위협적인 반격을 가하는 것이 원인.
“빌어먹을! 병력을 뺄 방법이 없는 거야!?”
“대포로 후미 무장 칸을 공격하면, 그쪽에 투입된 병력을 후퇴시킬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중간 무장 칸에 공격을 중단하면, 저놈들에게 복구할 시간을 주게 됩니다. 조금 기다리는 것이 어떨까요?”
“지금 중간이 문제야!? 당장 후미에 포격 실시해!”
마적단이 보유한 대포는 2분에 1발 발사된다. 현재 상태에서 3~4발만 더 공격하면, 중앙 무장 칸을 무력화할 수 있다.
판누는 중앙 무장 칸을 파괴한 이후에 후미 무장 칸을 공격하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했으나, 와르카의 불호령만 들었다.
두목의 엄명을 들은 판누는 어쩔 수 없이 비효율적인 작전을 실행해야 했다.
- 탕! 탕! 탕!
- 틱! 툭! 틱!
마적단이 후미 공격대에서 빼낸 조장은 모두 4명, 그중 2명이 창수에게 달려갔다.
창수가 거침없이 다가오는 적을 정확히 저격했으나, 아무런 타격을 줄 수 없었다.
‘자신만만하게 달려온 이유가 있군. 두 놈 모두 마법방어구를 착용한 거야.’
껄끄러운 적이 등장했다. 지난번 전투에서 타무가 독검으로 마적들을 중독시켰기에, 비교적 손쉽게 조장급을 처단할 수 있었다.
지금 창수도 마법검을 소유하고 있으나, 두 명을 상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틈틈이 롱소드 검술을 익히고 있지만, 칼질을 업으로 삼아 온 마적들과 비교하면,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다.
- 척! 척!
창수가 발사한 총탄은 마적들을 저지하지 못했을 뿐더러, 위치를 노출하는 치명적인 부작용을 만들었다.
창수의 위치를 알아낸 마적단 조장들이 마법검을 뽑아 들고 직선으로 달려왔다. 투명망토를 가동하지 않은 건 창수의 공격을 유도하는 잔꾀였다.
이제 창수에게 남은 선택은 두 가지. 마법검을 들고 두 명과 근접전을 벌이든가. 아니면 다른 장소로 이동하든가.
‘꼴에 있을 건 다 있구만!’
조장들이 손에 쥔 건 마법검만이 아니었다. 다른 손에 투명망토 감지기도 들고 있었다. 그들은 빠르게 달려오면서도 감지기로 창수가 엄폐물로 삼은 돌무더기 인근을 정확히 비췄다.
‘모기들이 달려온다는 데 말릴 이유가 없겠지.’
창수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 그러나 창수는 긴장하는 대신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자포자기 심정이 된 것일까?
- 슈에엑!
- 팍!
- 지지직!
“쿠아악!”
선두로 달려오는 마적단 조장이 50m로 접근한 지점에서 창수가 치명적인 공격을 가했다.
마법자루에서 볼트22(리버스드로우 컴파운드크로스보우)를 꺼낸 뒤, 앞서 달려오는 마적을 향해 발사한 것.
발사된 화살은 빠르게 날아가 마적단 조장의 가슴에 박혔다. 그리고 저격당한 마적은 마치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 멈칫!
갑작스러운 동료의 비명에 두 번째 조장이 화들짝 놀라며 멈췄다. 그리고 서둘러 투명망토를 가동하려 했다.
베테랑 마적답게 본능적으로 위기를 느끼고 방어에 나선 거다.
- 지지직!
- 끄아아악!
그러나 헛된 몸짓이었다. 창수가 발사한 두 번째 화살에 직격당한 뒤, 동료 조장과 같은 처지가 됐다.
호기롭게 달려오던 마적단 조장 2명이 창수와 제대로 된 전투도 못 해 보고 그대로 절명했다.
* * *
“판누! 어떻게 된 거야!? 왜 조장 놈들이 쓰러지고 지랄이야!?”
“암습에 당한 것 같습니다!”
- 퍽!
“크윽!”
“이 새끼야! 내가 지금 그걸 물어본 거야!? 무엇에 당한 거냐고!?”
화살에 맞고 쓰러진 건 창수 쪽 마적만이 아니었다. 츠네 쪽으로 달려갔던 마적단 조장들 역시, 화살 공격을 받고 맥없이 쓰러졌다.
마적단이 졸지에 핵심 전력 4명을 잃었다.
이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던 두목 와르카는 엉뚱한 화풀이를 공격대장 판누에게 해 댔다. 자신도 원인을 모르면서 부하를 탓한 것.
“즉……. 즉시 알아보겠습니다!”
계급이 깡패다. 판누는 억울하게 공매를 맞았음에도 눈 한번 흘기지 못하고, 와르카의 비위를 맞춰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