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14장. 또 덤비냐?
1.
“어이 부르시는 둥?”
“강을 건너고 싶소. 사례는 후하게 하리다.”
“후시에 나가는 행상입네까?
“그렇소. 우리는 후시꾼이오.”
“관아가 무서워 못 하갓시오. 이해하시라우요”
창수의 예측대로 안주상단은 의주에서 2시 방향으로 25km 떨어진 지점에서 뗏목을 만났다.
천진우는 유벌공 5명 중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남자에게 도움을 청했으나, 단번에 거절당했다. 아마도 그는 밀무역과 엮이기 싫은 것이리라.
“떼몰이 한 번에 벌이가 얼마나 되오?”
“거저 입에 풀칠할 정도입네다.”
“구체적으로 얼마 정도요?”
“기리니끼니, 은자 3냥 정도 될 겁네다.”
“800환이 조금 안 되는구려.”
“기렇디요.”
“우리를 건네 주는 품삯으로 일 년 벌이를 지불하겠소. 황금 10냥 어떻소?”
“고거이 참말입네까!?”
“그렇소. 우리가 뗏목에 타면 바로 지불하겠소.”
“날래! 날래! 타시라요!”
돈은 관에 대한 서민의 두려움도 약하게 만든다.
벌목한 나무를 하류로 운송하는 떼몰이는 매우 힘들고 위험한 작업이다. 크고 작은 부상이 일상이고, 자칫 방심하면 급류에 휘말려 죽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유벌공 5명이 일 년 내내 떼몰이로 버는 돈이 20,000환이 안 된다. 분배하면 개인당 4,000환(한화 400만 원)미만.
그래도 떼몰이를 하는 건 다른 일보다 수입이 좋기 때문이다.
서북 지역 서민들의 생활상을 잘 아는 천진우는 26,250환(한화 2,625만 원)에 달하는 금액을 단 한 번의 도강 비용으로 제시했다.
유벌공에게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자, 하늘이 내려 준 돈벌이 기회이기도 하다.
- 슥! 스윽!
- 턱!
“빨리 뗏목에 올라타라! 발은 젖어도 상관없다! 등짐이 물에 젖지 않도록 확실히 지켜라!”
유벌공이 강변으로 뗏목을 가져다 붙이자, 안주상단 짐꾼들이 신속하게 움직여 뗏목에 올라탔다.
현재 시각 새벽 3시, 군졸의 눈에 띌 시간은 아니지만, 조선 전역에 비상령이 내려진 걸 고려하면, 가능한 한 빠르게 강을 건너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 척!
“약속한 대금이오.”
“고맙습네다! 고맙습네다!”
1년 치 벌이를 능가하는 재물이 손에 들어오자, 고참 유벌공의 손이 저절로 떨리면서,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그는 천진우에게 폴더 인사를 하며 연신 감사를 표했다. 너무 과해 천진우가 말릴 정도.
유벌공들은 안주상단이 믿을 만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뗏목을 움직여 압록강을 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안주상단을 태운 뗏목이 강 중앙으로 100m 정도 진입할 무렵,
“행수님, 군졸들이 이쪽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목표로 오는 것이오?”
“그렇습니다. 달려오는 품새를 보니, 우리가 도강하는 걸 눈치챈 것 같습니다.”
창수가 군졸들의 이동을 감지했다. 방심하지 않고 계속해서 정찰 드론으로 압록강 주변을 감시했기에 가능한 일.
인근 초소에서 비상이 걸린 듯 군졸들이 튀어나왔고, 병장기를 들고 뗏목 방향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어떤 방법으로 뗏목의 위치를 찾아 냈는지 알 수 없으나, 목표가 안주상단인 것이 분명하다.
“뗏목을 북쪽으로 더 트시오!”
“고거이…….”
“어차피 노형들과 우리는 한배를 탄 몸이오! 군졸들에게 붙잡히면, 생사를 장담할 수 없소!”
“맞습네다. 글치만 우리는 도망갈 데가 없지 않습네까?”
군졸이 몰려오는 낌새를 알아차린 유벌공들이 엉거주춤한 자세를 보이자, 천진우가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밀무역하려고 국경을 넘는 상황에서 군졸에게 체포당하면, 홍삼을 빼앗기는 정도가 아니라, 중형을 받을 수 있다.
의주 인근을 경비하는 군관에게 뇌물을 먹이기는 했으나, 여기서 포박당하면 나 몰라라 할 가능성이 크다.
안주상단은 무조건 금나라로 넘어가야 한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유벌공의 처지는 다르다. 뗏목을 처리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성가시게 됐군.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일 수 없는 일이고.’
창수가 가진 무력으로 유벌공 5명을 손쉽게 처단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살인마가 아니다. 불가항력 상황에서 갈등하는 유벌공을 제거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만행이다.
- 슥! 슥!
하지만 유벌공을 걸림돌로 여긴 건 창수만이 아니었다. 천진우의 설득이 먹히지 않자, 안주상단이 실력행사를 준비했다.
유벌공들도 그 낌새를 알아차리고 입을 앙다물었다.
압록강에서 싸늘한 대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뗏목을 버리고 가죠.”
“예!? 고거이 무슨 말씀인디…….”
“우리 모두 뗏목에서 내려 금나라로 가는 겁니다. 그러면 군졸들은 빈 뗏목만 보게 될 겁니다.”
발상의 전환. 창수는 유벌공들이 떼몰이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800환 가치에 불과한 짐 덩이를 버리면 그만인 거다.
“글티만, 우리는 금나라에서 머물 데가 없습네다.”
금나라는 도시 지역을 제외하고 산적과 마적이 활개 치는 위험한 곳이다. 유벌공들은 힘없는 자신들이 금나라 영역에서 버틸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상단하고 같이 움직이면 됩니다. 금나라에서 일 마치고 돌아올 때, 다시 뗏목을 만들면 일거양득이죠.”
- 짝! 짝! 짝!
“묘안이오! 묘안! 역시 김 사장이오! 그리고 유벌공 노형들 안전은 우리가 책임지겠소. 우리하고 같이 움직입시다. 돌아오는 길에 강을 건너게 해 준다면, 황금 10냥을 추가로 주겠소.”
창수의 말을 들은 천진우가 기뻐하며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나섰다.
유벌공들에게 등짐을 지우지 않는다면, 상단 행렬에서 낙오하지 않을 거다, 그리고 펑청에서 홍삼을 매각한 뒤, 조선으로 돌아올 때 유벌공의 힘을 빌려 도강할 수 있다.
어쩌면 이번에 만난 인연으로 유벌공들과 장기 계약을 맺을 수도 있는 일.
창수의 제안은 안주상단에게 필요한 것들을 동시에 채워 주는 묘안이었다.
“글타면, 이깟 뗏목 버리갓시오!”
유벌공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대안은 없다.
고참 유벌공이 마음을 정하고, 급하게 키를 북쪽으로 돌렸다.
- 척! 척! 척!
“당장 뗏목을 남쪽으로 돌려라! 그렇지 않으면 발포하겠다.”
뗏목이 금나라 쪽으로 200m 정도 이동했을 때, 군졸 10명이 도착해 도강을 중단하라고 소리쳤다.
소리만 치는 것이 아니라, 소총을 들어 발사하려는 자세를 보니, 총탄을 날리려는 듯 보였다. 평소와 다르게 살벌하다.
“방패 들고 벽을 만들어! 이 거리에서 소총을 쏴 봐야 별거 없어!”
군졸들이 사용하는 소총의 확실한 살상 거리는 100m에 불과하다. 200m 거리면 총탄에 맞아도 즉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노련한 천진우는 안주상단 짐꾼들과 유벌공들이 겁먹지 않도록 시의적절한 명령을 내렸다.
- 탕! 탕! 탕!
- 획! 획! 팅!
뗏목이 경고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금나라 방향으로 이동하자, 군졸 10명이 일제히 소총을 발사했다.
하지만 명중률이 낮아 뗏목으로 날아오는 총탄의 수가 3발에 불과했다. 게다가 제대로 날아온 총알도, 방패에 가로막혀 맥없이 떨어졌다.
군졸들은 빠르게 재장전을 마치고 연속해서 사격했으나, 갈수록 벌어지는 거리에 아무런 성과를 올릴 수 없었다.
2.
뗏목이 북쪽 강변에 도착하자, 안주상단 일행은 미련 없이 뗏목을 버리고 울창한 산림 안으로 들어갔다.
군졸들이 뒤늦게 배를 구해 와 추격했으나, 그들이 발견한 건 텅 빈 뗏목 9칸뿐이었다.
금나라로 진입한 일행은 순조롭게 이동해 5월 8일 밤 11시에 펑창에 도착했다.
창수는 지난번처럼 안주상단이 마련해 준 숙소에서 숙면을 취한 뒤, 다음 날 휼기아귀금속을 방문했다.
“어머!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환대 감사합니다.”
“호호호. 큰손이신데 환영하는 건 당연하죠. 그리고 이번에 대단한 모험을 하셨다고요? 재미있는 이야기 들려 주세요.”
천옥금이 창수를 반갑게 맞이했다. 아마도 삼촌 천진우와 이미 이야기를 나눈 듯하다.
“재미라니요? 고생만 진탕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조선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요? 압록강 군졸들이 그렇게 끈질긴 줄 처음 알았습니다.”
“엄청난 포상금이 걸려서 그래요.”
“포상금이요? 누가 포상금을 걸었나요?”
“송본귀금속 대표 노리오카가 아주 귀중한 징표를 강탈당했다고 해요. 사사키 재단으로 보낼 건데, 흑룡회가 가로챈 거죠. 그 물건에 걸린 현상금이 무려 5억 환(한화 5,000억 원)이에요.”
“5억 환이요? 그 정도 거금이면, 관군들도 눈이 돌아갈 정도겠네요.”
“그렇죠. 지금 후시에 나섰다가 낭패 본 상단이 한두 개가 아니에요. 관군들이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니니, 엉뚱한 사람들이 피해 보고 있는 거죠.”
천옥금은 지난 4일간 압록강을 성공적으로 넘어온 밀무역 상단이 2개에 불과하다는 걸 알려 줬다.
덕분에 펑창에 유입되는 홍삼 공급량이 대폭 줄어, 안주상단이 대박을 터트리게 됐다는 말도 덧붙였다.
‘여기서 물품을 내보일 수 없겠어. 번거롭더라도 선양까지 가야 해.’
천옥금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송본귀금속의 배후가 사사키 재단이라는 건 잘 알려지지 않은 고급 정보에 속한다.
그리고 창수가 탈취한 열쇠와 크리스털이 ‘징표’라는 것은 창수와 츠네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런 정보력은 천옥금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증거이지만, 동시에 펑창에 조선과 연결된 정보 흐름이 존재한다는 걸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만약 창수가 천옥금에게 열쇠와 크리스털을 보여 주면, 그녀에게 송본귀금속과 흑룡회의 마수가 뻗칠 가능성이 매우 크다.
- 척!
“고순도 은 150kg입니다.”
“어머! 이번에도 이렇게 많은 귀물을 가지고 오셨네요!”
“값을 후하게 쳐주시니, 당연히 휼기아귀금속과 거래를 해야죠. 그리고 대금 중 절반으로 마법물품을 살 겁니다.”
“그래 주시면 너무 좋죠. 마법물품은 1할 할인해 드릴게요.”
창수는 고급 정보를 전해 주는 천옥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다.
그녀를 도와주는 최고의 방법은 99.99% 은을 매각하고 마법물품을 구매해 실적을 올려 주는 거다.
송본귀금속에서 빼앗은 중급 마나석과 귀중품들을 거래하지 못해 아쉽지만, 그것이 그녀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기에 자제해야 한다.
창수는 본래 계획한 수준에서 매매를 마치고 휼기아귀금속을 나왔다.
* * *
- 칙칙칙칙!
- 뿌웅!
“이 열차는 마적단의 표적이나 다름없어. 언제든지 전투할 수 있는 태세를 유지해야 해.”
“명심하겠습니다. 금나라 마적단은 만만치 않은 강자니까요.”
2022년 5월 10일, 펑창에서 볼일을 마친 창수는 츠네와 함께 선양행 열차에 올라탔다.
지난번처럼 휼기아귀금속이 기차표를 예매해 줘 안전한 5호차 복도 쪽에 자리 잡은 창수. 그는 맞은편 좌석에 앉은 츠네에게 주의하라고 경고했다.
창수가 평행우주를 넘어온 뒤 만난 적 중,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상대가 와르카 마적단이다.
츠네가 흑룡회 타격조 부조장이었으나, 마적단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츠네는 창수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금나라 마적단의 악명은 흑룡회에서도 알 정도로 유명하다.
- 쾅!
- 콰쾅!
- 끼이익!
“뭐지!?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