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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평행우주 독식-40화 (40/200)

40화 13장. 강 건너 불구경

5.

안주상단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장교 1명과 군졸 5명이었다. 이들이 가진 무력이 안주상단과 비교해 보잘것없지만, 관을 상대로 전투를 벌일 수 없는 일.

천진우는 예상하지 못한 마찰에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오면서도 좋은 말로 해결하려 했다.

“무언가 오해가 있는 것 같군요. 우리는 안주상단입니다.”

“안주상단이 어떻다는 거요? 태천에 출입하려면 반드시 짐 검사를 받아야 하오.”

“장교님께서 태천이 처음인 것 같군요. 다른 분과 얘기할 수 있을까요?”

생판 초짜가 검문에 나서서 풍파를 일으키고 있다. 재수 없는 일이다. 평소에 안면이 있는 장교라면 이런 식으로 안주상단을 대할 리 없다.

천진우는 최대한 감정을 죽이고, 고참 장교와 대면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본관이 있는데. 누구를 찾는단 말인가?”

“안주상단은 태천 관아와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른 분과 이야기하면, 모든 일이 순리대로 풀릴 거라 봅니다.”

“어허! 이 자가 망령된 행동을 하는구만! 정녕 관아에 끌려가 치도곤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릴까!?”

“그것참……. 우리가 아무리 비천한 상인이지만, 해도 너무하는군요.”

“뭐야!? 여봐라! 당장 이놈을 포박하라!”

신임 장교는 행상에 불과한 천진우가 자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말대꾸하는 데 분노했다. 저런 자는 관아로 끌고 가 곤장 치고, 물건을 압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초짜의 착각이자 만용이다.

만약 포졸이 움직이면, 안주상단은 무력행사에 나설 거다. 일단 초짜 장교와 군졸들을 제압하고 난 뒤에, 더 윗선과 만나 수습하는 방법이 있으니까.

- 주춤! 주춤!

천진우의 날카로운 눈빛을 본 군졸들이 장교의 지시를 이행하지 않고,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건들지 말아야 할 대상이라는 걸 알고 있는 듯하다.

“명령을 따르지 않고, 뭐 하는 것이냐!?”

“장교님, 이분은…….”

“저 장사치가 건방을 떠는 이유가 있었구나! 네놈들이 한패였어! 좋다! 오늘 본관이 국법의 엄함을 가르쳐 주마!”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신임 장교는 천진우에게 존칭을 사용하는 군졸들의 자세를 보고, 부정부패에 연결된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태천에 부임한 지 2일 만에 제대로 된 건수를 잡았다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행상과 군졸이 뇌물을 주고받은 일을 적발하면, 인사고과에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보게! 그만하게!”

“선배님, 그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자네 귀먹었나? 상인들 그만 괴롭히고 관아로 돌아가라는 말이야!”

하지만 초짜 장교는 자기 뜻을 이룰 수 없었다. 태천의 실력자 중 한 명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선배님도 저 장사치와 한패입니까? 이건 부정부패입니다!”

“부정부패? 자격도 안 되는 자네가 재물을 얼마나 써서 태천에 부임했지? 누가 부패한 건지 한번 따져 볼까?”

“그건…….”

“여러 소리 하지 말고 관아로 돌아가. 아니면 군졸로 강등당하든가.”

“…….”

일반적으로 조선시대 지방관청에 배치된 장교는 1명이다. 하지만 21세기 조선은 돈과 뒷배경으로 장교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초짜 장교가 그런 케이스.

고참 장교 이덕행은 신임 장교가 벌이는 난장판을 단숨에 잠재워 버렸다.

천진우는 이덕행이 제때 나서 줘서, 불필요한 충돌을 피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했다.

“장교님, 도움을 줘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행수님. 시절도 하 수상한데, 상행을 번거롭게 해 제가 미안합니다.”

지방 관아는 재정이 넉넉지 못하다. 태천도 마찬가지.

이덕행은 안주상단이 매달 보내오는 자금을 받고 있다. 뇌물을 수수한 것이지만, 자신의 주머니 속에 넣는 것은 아니다.

그 돈으로 병장기를 마련하고, 군졸들 살림을 돌보고 있다.

이덕행이 안주상단에게 제공하는 편의는 검문 없이 길을 터 주는 것이다. 신임 장교의 행동은 안주상단과 암묵적으로 맺은 신사협정을 위반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장교님께서 미안할 것까지야 있습니까. 신임이 객기를 부리는 것을요.”

“초짜라고 다 저러는 건 아닙니다. 돈으로 관직을 산 주제에 공명심이 가득한 자라서 그러는 거죠. 게다가 한양에서 난리가 나는 통에 강짜가 더 심해진 것 같습니다.”

“한양에서 큰일이 벌어졌나요?”

“왜인들끼리 살인 사건을 벌였는데, 모르십니까?”

“그건 알지요. 하지만 그게 태천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일인가요?”

천진우도 송본귀금속에 관한 소문을 들었다. 수도 한양에서 일본인들이 패싸움을 벌여 26명이 죽었다는 내용.

하지만 일본인끼리 벌인 이권 다툼에 태천이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일까?

“왜인이 아주 귀중한 물건을 탈취당한 것 같습니다. 선이 닿는 중신들을 움직여, 태천뿐만 아니라 조선 전체에 대대적인 검문검색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허허. 조선의 관군이 왜인 뒤치다꺼리나 한다는 건가요?”

“말세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려는지 한심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부화뇌동해서 아무나 붙잡고 검문하려는 자들이 있으니, 더 한심합니다.”

이덕행의 말을 들은 천지우는 초짜 장교가 설친 이유를 알게 됐다. 겉으로 법을 내세웠으나, 실상은 일본인의 청부에 움직이는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갈 길이 먼데 두렵군요. 검문소마다 사달이 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안주상단은 수월한 길을 가는 겁니다. 해안가 쪽은 난리도 아닙니다. 검문에 통행이 지체될 정도라고 합니다.”

현재 조선에서 바다로 빠져나가는 길목에 빠짐없이 병력이 배치돼 검문검색을 실시하고 있다.

기차는 더 심하다. 승차하는 모든 역에서 철저하게 짐 검사를 하고, 이동 중간에 병력이 올라타 반복해서 검문한다. 그리고 하차하는 역에서도 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천진우에게는 숨통이 막히는 소리다.

안주와 태천을 벗어나면, 천진우와 안주상단이 가진 영향력이 미미하다.

검문에 걸려 짐 수색 당하면, 홍삼을 압수당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무력으로 대항한다면, 수습이 어려워 수배령이 내려질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상행을 중단할 수 없는 일.

천진우의 고민이 깊어졌다.

6.

“모두 왼쪽으로 간다! 길이 험하니 조심하도록!”

태천 주막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 5시경 떠나려 했던 계획은 취소됐다.

안주상단은 저녁까지 먹은 뒤, 해가 완전히 떨어진 후 태천을 나섰다. 바뀐 것은 출발 시간만이 아니다. 이동 경로도 인적이 드문 우회로로 바꿨다. 강화된 검문검색을 피하기 위해서.

당초 예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지만, 상행을 성사시키려면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자초지종을 들은 짐꾼들도 군말 없이 천진우의 지시를 따랐다.

이렇게 북서쪽으로 5시간을 걸어가자, 인구 15만을 가진 도시 구성이 나왔다. 본래라면 여기서 하룻밤 묵고 가야 하나, 지금은 피해야 한다.

태천 장교 이덕행과는 달리 구성의 관원들이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구성에 들어가면, 검문을 빌미로 안주상단이 보유한 홍삼 전체를 빼앗으려 할 거다.

천진우는 우회로를 선택해 구성을 비껴가려 했다.

“행수님, 저 언덕 너머에 검문소가 있습니다. 피해서 가야 할 듯합니다.”

“허허. 샛길까지 틀어막고 있을 줄이야……. 무엇을 찾는지 몰라도 아주 작정한 것 같소이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무식한 방법 아닐까요?”

“내 말이 그 말이오. 그나저나 번번이 고맙소. 김 사장.”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조용한 길을 찾는 건 저에게도 필요한 일입니다.”

웬만하면 군졸들은 밤에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깜깜한 밤에, 그것도 인적이 드문 길목에 배치됐다는 건, 상부의 엄명이 있다는 증거이리라.

‘이거 장난 아닌데……. 열쇠와 크리스털에 무슨 비밀이 있기에 이렇게 집요한 거지?’

창수는 조선 전역에 내려진 검문 열풍이 자신이 탈취한 물품 때문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아마도 송본귀금속 대표 노리오카 히가시에와 연결된 조선 고위 관리가, 전국적인 검문을 지시했을 터.

하지만 이런 방식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다. 게다가 조선인들이 느끼는 피로도가 증가하는 만큼,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반감도 커질 것이 분명하다.

이 사실을 노리오카 히가시에가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리한 전국 검문검색을 강행하는 건, 그만큼 열쇠와 크리스털의 가치가 높다는 걸 의미한다.

‘도대체 이것이 무엇이기에 광분하는지, 금나라에 가서 알아봐야겠군.’

금나라에 도착하면, 창수를 도와줄 인물이 여럿 있다. 휼기아귀금속의 천옥금, 아오툰산업의 언치엉, 그리고 아이신 타무가 그들이다.

창수가 금나라로 갈 이유가 또 하나 생겼다.

* * *

창수 덕분에 촘촘하게 깔린 병력 사이를 무사히 빠져나간 안주상단은 밤새도록 걸어 압록강을 25km 남겨 둔 지점에 도달했다.

상단 사람들은 그곳에서 식사와 수면을 취한 뒤, 다시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행수님, 압록강에 대기시켜 놓은 배도 위험하지 않을까요?”

“음……. 나도 사실 그걸 걱정하던 참이오.”

압록강 얼음은 오래전에 녹았다. 빙판을 넘어가던 지난번과 달리 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 한다.

안주상단은 상행을 시작하기 전에 배를 가지고 있는 어부들을 섭외해 놨다. 하지만 조선 내륙 지방까지 검문을 철저히 한다면, 압록강의 배들도 감시받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천진우도 그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했다.

“어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뗏목을 만드는 건 어떨까요?”

“뗏목이라……. 아! 그렇지! 김 사장. 날틀로 어느 정도 거리까지 정찰할 수 있소?”

“100리까지 가능합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오. 압록강 상류 쪽으로 날틀을 보내, 뗏목을 찾아봐 주시오.”

“압록강에 뗏목을 띄우는 사람들이 있나요?”

“그렇소. 유벌공이 압록강 상류에서 벌목한 뒤 뗏목을 만들어 하류로 운반한다오.”

“알겠습니다.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혼자보다 두 명의 머리가 낫다.

천진우는 창수가 뗏목을 언급하자마자, 바로 압록강 떼몰이를 생각해 냈다.

떼몰이는 뗏목을 여러 개 만들어 기차처럼 붙여 수송하는 방법을 말한다. 그들을 찾으면, 손쉽게 압록강을 넘을 수 있으리라.

- 위이잉!

창수는 정찰 드론을 압록강으로 보낸 뒤 상류로 거슬러 올려 보냈다.

“행수님, 삭주 인근에서 뗏목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크기가 얼마나 되오?”

“뗏목이 9칸입니다.”

“됐소! 그 정도면 충분하오! 어서 움직입시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뗏목과 우리가 만나는 지점을 계산해 보겠습니다.”

창수가 뗏목을 발견한 위치는 북한의 수풍발전소 위치보다 조금 아래쪽이다. 의주까지 약 40km 떨어진 거리.

정찰 드론에 나타난 뗏목의 이동 속도는 2km/h. 안주상단이 이동할 수 있는 속도를 고려하면, 의주에서 25km 떨어진 지점에서 만나는 것이 최적이다.

- 저벅! 저벅!

계산을 마친 창수가 목표 지점을 정해 주자, 안주상단이 바쁘게 이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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