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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평행우주 독식-39화 (39/200)

39화 13장. 강 건너 불구경

3.

송본귀금속을 공격한 건 창수였다. 자신을 위험에 빠트린 적에게 응징하는 동시에, 송본귀금속이 흑룡회와 혈투를 벌일 구도를 만들며, 막대한 재물을 탈취했다.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한 것.

그리고 이런 성과는 츠네 타다카게의 도움이 있어 가능했다.

츠네가 주는 정보는 쏠쏠했다. 흑룡회에서 정식 대원으로 11년간 활동한 그는 창수보다 조선에 대해서 아는 것이 월등히 많았다. 곁에 두고 있으니 여러모로 편리했다.

츠네의 지식이 풍부한 것은 조선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이다. 모친은 흑룡회 소속 정보원으로 기방에서 일했고, 부친은 이름 모를 조선인.

- 치이익!

- 투투투!

서대문을 빠져나온 창수와 츠네는 미리 준비한 증기자동차를 타고, 한양을 벗어나려 했다.

조선의 한양은 서쪽으로 마포구까지 확장한 상태. 서대문 인근이 도심은 아니지만, 한양의 중심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지역이라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츠네, 오른쪽 길로 가라. 직진하면 검문당할 수 있어.”

“알겠습니다.”

사대문 정도는 아니나, 곳곳의 검문이 강화됐다. 자칫 포졸을 만나면 귀찮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물론, 포졸이 가진 무력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다. 소란이 발생하면, 창수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전이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있기에 조심하는 거다.

창수는 정찰 드론을 사용해 주변 도로 상황을 확인한 뒤, 최대한 안전한 길을 타고 한양을 빠져나갔다.

“300m 정도 앞에 수레가 놓여 있다. 조심해.”

“시골이라 도로 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 날틀은 정말 대단한 물건입니다. 저것만 있으면 밤길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정찰용이니까 이 정도 성능은 보여야지. 흑룡회에는 비슷한 게 없어?”

“마법물품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탐지 범위가 짧고, 운용 시간이 기껏해야 10분입니다.”

한양을 무사히 빠져나온 창수와 츠네는 파주를 거쳐 개성 방향으로 이동했다.

운전대를 잡은 츠네는 야간 운행의 위험성을 알고 천천히 이동하려 했으나, 정찰 드론의 성능을 본 뒤 생각이 달라졌다.

증기자동차가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는 50km/h. 츠네는 45km/h로 속도를 고정하고, 어두운 도로를 빠르게 질주했다.

“평양에는 언제쯤 도착할 수 있을까?”

“이 속도라면 아침 7시면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평양에서 안주까지는 얼마나 걸리지?”

“1시간 반 정도 걸립니다.”

“그러면 평양에서 아침을 먹고 가도 충분하겠군.”

“예. 시간에 쪼들리지는 않을 겁니다. 평양 시내에서 검문을 강화한다고 해도, 아침 9시부터 하니까요.”

창수의 목적지는 안주. 안주상단 천진우를 만나 압록강을 건너 금나라로 들어갈 요량이다.

창수가 조선을 떠나려는 건 금나라에서 처리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포도청, 흑룡회, 송본귀금속과 엮이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다.

박금래와 동업한 만두가게는 이미 영업을 시작했고, 6개월 치 월세와 운영자금을 지원했다. 당분간 창수가 나타나지 않아도 운영에 문제가 없을 터.

그리고 청계천 판자촌 주민들에게 넉넉한 식량을 지원했으며,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도 만들어 줬다.

창수는 조선에서 벌인 일 대부분의 교통정리를 마치고 유람하는 기분으로 드라이브를 즐기고 있는 거다.

“평양에는 어떤 음식이 유명하지?”

“냉면, 온반, 쟁반국수, 녹두지짐, 숭어 국, 더덕 볶음, 잡채 등 유명한 음식이 많습니다.”

“시간이 모자라 다 먹고 가기 어렵겠군.”

“평양 음식을 제대로 맛보려면, 일주일은 꼬박 지내셔야 할 겁니다.”

“그건 다음에 하고. 아침으로 뭘 먹으면 좋을까?”

“평양에 가 봐야 알 것 같습니다. 아침에 문을 여는 식당이 많지 않으니까요.”

‘흠……. 조선도 한국하고 큰 차이가 없구만. 동남아는 아침부터 문을 여는 식당이 많은데 말이야.’

창수는 여행을 즐기는 중요한 요소 중의 으뜸을 음식이라고 여긴다. 음식에 해당 지역의 모든 것이 녹아 있으니까.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같은 동남아시아 국가를 여행하면, 지역마다 다양한 음식이 존재한다.

그리고 동남아는 아침을 집에서 해 먹지 않고, 식당에서 해결하는 문화가 있기에, 시간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창수의 입맛에 가장 맞는 것이 한식이지만, 아침에 들를 수 있는 식당이 많지 않다는 것이 단점이다. 조선도 마찬가지.

4월 30일 오전 6시 50분, 평양에 도착한 창수와 츠네는 평양 시내를 20분간 돌아다니다가, 아담한 크기를 가진 음식점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음식점의 주력 메뉴가 어복쟁반.

“어복쟁반? 저건 어떤 음식이지?”

“소고기를 삶아 얇게 편을 뜬 것에, 삶은 달걀과 배를 곁들여 육수에 끓여 먹는 음식입니다. 간장, 마늘, 파, 고춧가루로 양념장을 만들어 함께 먹으면, 담백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납니다.”

“오! 좋았어! 아침은 저거로 하자!”

여행자에게 새로운 음식을 발견한다는 건 기쁨이다.

창수는 샤브샤브를 아득히 뛰어넘는 어복쟁반의 맛에 빠져, 중짜 한 판에 더해 대짜 한 판을 추가로 주문했다.

옆에서 창수의 먹성을 지켜보던 츠네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창수는 개의치 않았다.

한양에 폭탄을 던져 놓고, 여행을 즐기는 창수에게 남의 시선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4.

거하게 아침을 먹은 창수는 오전 8시 30분에 평양을 떠나 안주로 향했다. 츠네의 말처럼 중간에 검문은 없었고, 오전 10시경 무탈하게 안주에 도착했다.

“김 사장! 오랜만이오! 신수가 훤하구려!”

“행수님도 여전하십니다. 상행은 어떻습니까?”

“김 사장이 길을 잘 닦아 준 덕분에 아주 편안하게 다니고 있소.”

안주에서 안주상단을 찾는 건 매우 수월했다. 지역을 대표하는 상단이라, 길을 두 번 물어보고 바로 찾아올 수 있었다.

상단 안에 들어서니 마침 물품 점검을 하던 천진우가 바쁜 걸음으로 달려와 창수를 맞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창수 덕분에 홍삼 밀무역이 대박을 터트리고 있기 때문이다.

“산적들은 어떤가요?”

“톄쟈방하고 원만하게 잘 지내고 있소.”

“통행료를 뜯어내지는 않고요?”

“그자들도 입에 풀칠해야 하니 공짜로는 어렵소. 대신 합의금을 1할로 정했소. 이게 다 김 사장 덕분이오.”

톄쟈방은 부두목 퉁기야의 배신으로 세력이 꺾이는 듯했으나, 두목 호이파의 능력으로 이전보다 강한 전력을 가지게 됐다.

안주상단이 압록강을 넘어 펑창까지 가려면, 톄쟈방의 간섭을 받아야 하는 상황.

그런데도 안주상단이 통행료를 10%만 지불하도록 원만한 합의를 본 것은 전적으로 창수의 공이다.

호이파가 창수를 단주급 체탐인이라 여기며 안주상단과 충돌을 회피한 것이 원인.

“그렇다면, 굳이 그자들을 혼내 줄 필요는 없겠군요.”

“맞소이다. 톄쟈방이 사라지면, 다른 산적들이 기어들어 올 거요. 그때마다 드잡이하고 싸우는 것보다 지금 조건으로 상행위를 하는 것이 백번 낫소.”

금나라는 도시 지역을 제외하고 실질적으로 무법 지대와 다를 바 없다.

안주상단이 천하무적의 절대 무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한, 산적과의 공생이 필수적이다. 이런 측면에서 톄쟈방은 최상의 파트너라 할 수 있다.

“행수님, 다음 상행은 언제 시작하나요?”

“4일 뒤에 시작하오. 김 사장, 이번에 같이 갈 생각 있소?”

“예. 저도 상행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직원도 한 명 함께할 겁니다.”

“김 사장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오!”

“흔쾌히 받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하하. 우리 사이에 무슨 인사를. 자! 이러지 말고, 좋은 곳으로 가서 약주나 한잔합시다!”

창수가 상행에 참석한다는 말에 천진우가 뛸 듯이 기뻐했다.

창수가 주기적으로 얼굴을 보여야, 호이파가 딴마음 품을 가능성이 줄어들기에.

- 챙!

- 챙!

“위하여!”

창수가 낮술을 즐기는 건 아니지만, 연배가 높은 사람이 대접하는 걸 마다할 수 없었다. 이렇게 창수는 3일간 천진우의 손에 이끌려 안주의 토속 음식과 술을 즐겼다.

안주는 청천강 하류에 위치한 인구 30만의 중규모 도시. 평안도라는 이름이 평양과 안주에서 따온 것에서 알 수 있듯, 역사가 깊다.

한양과 평양 같은 대도시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지역 문화를 형성하고 있고, 평야, 산, 강, 바다에서 나오는 싱싱한 식재료가 넘치는 곳이다.

창수는 3일 동안 평행우주 조선에서 가장 호화롭고 풍성한 음식 문화를 즐길 수 있었다. 만족도를 따지면, 금나라 선양에서 벌어진 잔치도 이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끝나지 않는 잔치는 없는 법.

2022년 5월 4일 오전 5시, 안주상단이 금나라 펑창으로 가는 상행을 시작했고, 창수와 츠네는 30명으로 구성된 일행에 합류해 안주를 떠나야 했다.

- 터벅! 터벅!

- 후아! 후아!

“신입들 힘내라! 조금만 더 가면 태천주막이다!”

안주에서 의주로 이동하는 경로는 정주를 거처 서해안을 따라가는 길과 태천을 거쳐 내륙 산지로 가는 길,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안주상단이 택한 것은 내륙을 통과하는 길. 밀무역의 특성상 사람들 이목을 적게 받는 것이 좋으니, 비교적 한적한 경로를 선택한 거다.

안주상단은 아침부터 부지런히 이동해 정오 무렵 태천 인근에 도착했다.

일부 신입 짐꾼이 7시간 만에 35km를 이동하는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고 거친 숨을 쉬자, 천진우가 그들을 독려했다.

“지금까지 온 길은 평지와 다름없다! 여기서 퍼지면 상단 짐꾼으로 실격이야! 점심 먹고 해가 기울어질 때까지 쉬어 갈 거니, 이를 악물고 따라와!”

- 저벅! 저벅!

- 후! 후!

천진우의 호령이 통한 것일까? 치진 기색이 역력하던 신입 짐꾼들이 힘을 내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행수님, 휴식시간에 여유가 넘치는군요.”

“쉴 땐 쉬어야 하오. 지금처럼 뜨거운 햇볕에 이동하면, 큰 사달이 날 수 있소. 김 사장이야 그런 거 모르겠지만, 평지에서 놀던 약골들은 다르다오.”

“날씨가 더 더워지면, 상행이 어렵겠네요.”

“그렇소. 6월에 들어서면 밤에만 이동할 수 있소. 장마가 끝난 이후 한 달 정도는 아예 상행을 하지 못하오.”

창수는 천진우가 주막에서 최소 5시간을 머문다는 말에 의아한 생각을 가졌다.

하지만 대화를 나눈 뒤 장기 휴식이 베테랑의 노련한 선택이라는 걸 알게 됐다. 천진우는 날씨와 환경을 고려해 이동 일정을 조절하는 지혜를 보유하고 있었다.

‘역시, 저임금 일꾼들은 사는 게 고달파. 나야 외골격이 있어 아무렇지도 않지만 말이야. 그런데 츠네도 만만치 않은데, 전혀 힘든 기색이 안 보여.’

창수는 안주상단과 똑같은 복장을 하고 같은 무게의 짐을 지고 있다. 지난번 상행과 다른 모습.

그런데도 창수가 전혀 지치지 않은 것은 로스토프 민병대로부터 구매한 강화 외골격(Powered Exoskeleton)을 착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화 외골격은 기계적 장치로 인체의 힘과 지구력을 강화한다.

창수가 착용한 것은 최신형으로 가격이 15만 달러에 달한다. 하반신은 야구의 포수가 착용하는 장비와 유사하고, 상반신은 등뼈와 같은 지지대를 기반으로 갑옷과 유사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배터리를 8시간마다 갈아 줘야 하는 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자체 무게를 제외하고 70kg에 달하는 무게를 감당할 수 있다.

지금 등에 지고 있는 40kg은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진다. 여기에 더해 마법자루에 담은 물품 무게 30kg도 끄떡없다.

창수는 무거운 등짐에 허덕이는 안주상단 짐꾼들을 동정했다. 그리고 60kg에 달하는 짐을 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처럼 쌩생한 츠네의 체력에 감탄했다.

* * *

- 척!

“정지! 모두 멈추고! 짐을 내려놓으시오!”

순조롭게 진행하던 상행에 문제가 발생했다. 태천으로 진입하는 입구에서 제지당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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