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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평행우주 독식-36화 (36/200)

36화 12장. 원펀치 쓰리강냉이

3.

4월 24일 일요일, 송본귀금속 대표 노리오카 히가시에가 흑룡회 조선 지부장 이바라키 아키오를 만났다.

“큰소리 떵떵 치더니 작전에 실패했군요. 흑룡회에 실망이 매우 큽니다.”

“실망이요? 그건 송본귀금속이 할 말이 아니라 보는데요.”

창수의 신병을 인도받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던 의뢰인 노리오카 히가시에는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이바라키 아키오를 힐난했다.

조직의 힘을 비교하면, 송본귀금속은 흑룡회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런데도 고압적인 자세로 나오는 것은, 막대한 비용을 지불한 의뢰인이기 때문이다.

조직이 가진 힘의 우열을 떠나서 의뢰를 완수하지 못하면, 의뢰인에게 사죄해야 한다.

하지만 흑룡회 지부장은 사과하지 않았다. 게다가 오히려 송본귀금속에 책임을 묻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송본귀금속에서 중요한 정보를 사전에 주지 않았기에 작전에 실패한 겁니다.”

“뭐라고요? 우리는 김의방에 대한 모든 정보를 흑룡회에 넘겼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우리가 어떤 정보를 주지 않았다는 겁니까?”

“표적 김의방은 이전에 접하지 못했던 강력한 위력을 가진 소총을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작전에 투입된 병력이 대비를 못 하고 심각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무슨 이유로 정보를 숨긴 겁니까?”

대화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노리오카 히가시에는 의뢰인의 권리를 행사하기는커녕, 오히려 흑룡회로부터 추궁을 받게 됐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억지입니다. 김의방이 무력이 만만치 않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충분히 경고했습니다.”

“신형 소총이 김의방을 강하게 만들었다는 건 쏙 빼먹었죠.”

“소총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게 없습니다. 그리고 설령 그자가 강력한 화력을 가진 무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그 정도는 흑룡회가 알아서 처리해야 할 일입니다.”

“월랑부대원 27명이 그 소총에 의해 죽었는데, 존재를 모른다고요?”

“우리는 정보단체가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사살이 아니라 생포하라고 의뢰했군요. 그건 우리 흑룡회를 사지로 밀어 넣으려는 음흉한 공작입니까?”

“말이 지나치군! 의뢰 실패를 이런 식으로 얼버무리는 거요!?”

침착하던 노리오카 히가시에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바라키 아키오가 행하는 논리적 비약을 막지 않으면, 책임을 뒤집어쓸 상황이니까.

“당신이나 말조심해! 김의방을 생포하라는 말 같지 않은 의뢰를 실행하다가, 우리 대원이 몇 명이나 희생당한 줄 알아?”

“그건 흑룡회가 무능한 탓이지! 나를 우습게 보는 모양인데, 본국에 흑룡회의 추태를 보고하겠소!”

“할 수 있으면 해 봐! 그리고 분명히 알아 둬! 이번 작전 실패는 송본귀금속 탓이야! 의뢰금 완납하고, 배상금 지불해! 그렇지 않으면, 송본귀금속 관련자 전원이 무사하지 못할 거야! 알아들어!?”

“이……. 이런…….”

노리오카 히가시에가 목소리를 높인 것이 잘못된 선택이었다. 화가 나더라도 조용한 대화로 해결해야 했다.

흑룡회 지부장 이바라키 아키오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높은 목소리로 맞받아쳤다. 게다가 섬뜩한 위협까지 덧붙였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기가 막힌 노리오카 히가시에는 할 말을 잃었다.

* * *

“지부장님, 면담 결과는 어떻게 됐습니까?”

“송본귀금속 그놈들이 일부러 신형 소총에 대한 정보를 숨긴 것이 분명하오.”

“역시 그렇군요. 대놓고 우리에게 불가능한 의뢰를 맡긴 겁니다.”

“참 가당치 않은 일이오. 27명을 홀로 처단한 괴물을 생포하라고 하다니.”

면담을 마치고 흑룡회 본거지로 돌아온 지부장 이바라키 아키오는 아직도 분이 안 풀렸는지 송본귀금속을 성토했다.

“뒤통수친 놈들에게 당장 본때를 보여 줘야 합니다. 이대로 좌시할 수 없습니다.”

“맞는 말이오. 송본귀금속에 응징해야지. 하지만 그놈들을 우리 단독으로 처리할 수 없소. 본부에 보고하고 훈령을 기다려야 하오.”

지부장의 분노에 동감한 흑룡회 타격대장 카리베 테루스미가 실력행사를 건의했으나, 아직은 시기상조.

송본귀금속은 일본 경제 침탈의 핵심으로 든든한 배후를 가지고 있다. 흑룡회가 섣부르게 건들 수 없는 상대.

“알겠습니다, 지부장님. 그리고 타격 5조의 상벌을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귀중한 정보를 가지고 온 코무라 큐사로에 포상하시오.”

“알겠습니다. 조장의 명령에 불복하고 동료 구출을 거부한 츠네 타다카게는 어떻게 처리할까요?”

“음……. 그게 좀 애매하오. 츠네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불가피한 면도 있는 것 같소.”

현재 흑룡회 타격 5조 부조장 츠네 타다카게는 숙소에서 연금 중이다.

그는 신설동에서 벌어진 작전 과정을 소상히 설명하며, 자신이 규정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카리베 테루스미를 비롯해, 흑룡회 조선 지부 대부분은 츠네 타다카게를 배신자 취급했다.

그나마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건, 지부장이 중립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부장님, 코무라가 세운 공의 대부분은 사실상 이케바 조장의 것입니다. 아무리 규정을 따랐다고 해도, 상관의 명령을 어기고, 그것도 모자라 죽음으로 내몬 츠네 타다카게의 배신을 묵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긴……. 이케바의 죽음에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겠지.”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자칫 대원들의 사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알겠소. 츠네 타다카게를 제명 처리하시오.”

제명은 조직에서 축출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흑룡회에서 제명은 죽음을 의미한다. 비밀 무력단체의 특성상, 살아서 조직을 나갈 수 없다.

지부장은 츠네 타다카게를 구명하고 싶었다. 그러나 송본귀금속에 대한 의심이 깊어진 뒤 생각이 바뀌게 됐다.

온몸을 던져 유용한 정보를 얻은 타격 5조장 이케바 토미오의 분투를 높게 평가하기 시작한 것.

4.

- 철컹!

- 끼이익!

4월 25일 새벽 2시, 남산과 인접한 필동정미소 뒷문이 열리면서 12명이 빠져나왔다.

‘응? 저것들이 뭐 하는 거지?’

인적이 없는 새벽이지만, 필동정미소를 감시하고 있던 창수의 이목을 피하지 못했다.

필동정미소는 흑룡회 조선 지부의 본거지. 창수는 군용 정찰 드론으로 1분대원 코무라 큐사로를 추적해 이 장소를 알아냈다.

창수는 정미소에서 500m 떨어진 곳에 거점을 마련한 뒤, 전자광학 영상 장비와 정찰 드론을 사용해 24시간 감시 중이다.

‘저자를 처형하려는 거구만. 흑룡회 놈들 살벌한데.’

입에 재갈이 물린 상태에서 양손이 뒤로 묶인 남자를 11명이 끌고 남산으로 가고 있다.

창수는 이것이 흑룡회의 처형식이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끌려가는 남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기에 유추할 수 있었다.

그자는 흑룡회에서 츠네라고 불리던 부조장이다.

‘꽤 똘똘한 놈이던데, 흑룡회에서 자발적으로 제거해 주면 땡큐지.’

창수는 츠네 타다카게가 뛰어난 상황 판단 능력을 가진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마법통신구 감청을 통해 내린 결론.

적으로 상대하기 귀찮은 대상을 흑룡회가 알아서 처단하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안심이 됐다.

‘가만……. 저놈을 살려서 정보를 뽑아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아니야, 너무 위험한가?’

러시아에서 생산된 첨단 감시 장비를 사용하고 있지만, 흑룡회 내부 정보를 아는 데 한계가 있다.

부조장의 지위에 있던 자라면, 좀 더 자세하고 유용한 정보를 알고 있을 터.

하지만 중무장한 흑룡회 11명을 상대하는 것이 부담스럽다.

창수는 츠네 타다카게를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에 잠겼다.

* * *

- 푹! 척!

- 빠가야로! 구덩이를 제대로 파라! 네놈이 누울 자리 아닌가?

- 입만 살아 나불거리더니, 삽질도 못하는군.

- 조장을 배신한 놈에게 구덩이는 사치지, 그냥 죽여서 짐승 밥으로 남겨야 해!

츠네 타다카게 처형을 담당한 건 흑룡회 타격 4조. 그들은 츠네 타다카게를 남산 으슥한 장소로 30분 이상 끌고 간 뒤, 스스로 죽을 자리를 파라고 강요하면서 조롱했다.

타격 4조와 타격 5조는 평소 치열한 경쟁 관계였다. 5조장이 작전 중에 부조장의 배신으로 죽고, 그 배신자를 처리하는 역할을 담당하니 통쾌한 기분이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만! 이제 삽질 멈춰!”

- 슥!

가슴 높이 정도 구덩이를 팠을 때, 4조장이 죽을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다. 츠네 타다카게는 군말 없이 지시를 따랐다.

반항해야 소용없고, 오히려 죽을 때 고통만 증가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할 말 없나?”

“저는 흑룡회 규정에 따라 최선의 대응을 했습니다. 그것이 잘못이라면, 어쩔 수 없겠죠. 다만, 안타까운 것은 제 운명이 기구해 흑룡회 일원이 됐다는 겁니다.”

- 퍽!

- 꽈당!

“칙쇼! 더러운 놈! 죽는 순간까지 개소리해 대는구나!”

죽기 전 마지막 발언 기회를 주면, 모든 걸 내려놓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츠네 타다카게는 자신과 흑룡회를 탓했다. 그만큼 억울한 것이리라.

그의 발언은 4조장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바로 시작된 처벌.

4조장의 발길질을 얼굴에 맞은 츠네 타다카게는 구덩이 속으로 빨려 가듯 쓰러졌다.

“그냥 산 채로 묻어 버려!”

“알겠습니다!”

- 슥! 삭!

- 툭! 툭!

4조장의 지시에 따라 4조원들이 구덩이에 흙을 채우기 시작했다. 단번에 처리하지 않고 서서히 고통을 주며 공포스럽게 죽이려는 요량.

츠네 타다카게는 의식을 잃지 않았으나 일어나지 않았다. 이대로 죽는 것이 그나마 편한 길이라 생각했기에.

그리고 자신을 덮어 가는 흙에서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 탕! 탕!

- 팍! 팍!

“크악!

“우악!”

모든 것을 체념한 츠네 타다카게의 귀에 이질적인 총성과 4조원의 비명이 들렸다.

- 슥!

본능적으로 생존할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 츠네 타다카게. 그는 자신을 덮고 있는 흙을 헤치고 일어난 뒤, 구덩이 밖으로 고개를 살짝 들어 올리며, 상황 판단에 들어갔다.

구덩이 주위에 타격 4조원 2명이 중상을 입고 쓰러져 있었고, 나머지 조원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적과 교전을 벌였다.

- 푸욱!

“큭!”

자신을 감시하는 눈이 없다는 걸 알게 된 츠네 타다카게는 쓰러진 자의 품에서 단검을 탈취한 뒤, 그 무기로 2명의 숨통을 끊어 버렸다.

- 스르륵!

그리고 죽은 시체 하나를 구덩이로 끌어들인 후, 중급 전투복과 무기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천잠사로 만들어진 전투복을 입으면, 소총 공격에 버틸 수 있다. 위기 상황에서 침착함을 잃지 않는 냉철한 상황 판단 능력이 돋보인다.

- 사사삭!

- 푹!

“컥!”

완전무장을 마친 츠네 타다카게는 투명망토를 가동했다. 그리고 왼손에 투명망토 탐지기를 들고 오른손에 수리검을 든 채 4조원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손쉽게 당할 자들이 아니지만, 지금 창수와 교전을 벌이는 중이라 츠네 타다카게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츠네 놈이 날뛰고 있다! 제거해!”

츠네 타다카게가 5명을 처단한 시점에서, 4조장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주위를 감지기로 살피다가 죽은 줄 알았던 츠네 타나케게가 살아 있다는 걸 알게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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