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11장. 잘살아 보세
5.
“흐미! 동업이라고라? 만두가 을매나 남는다구 사장님과 동업을 한다요?”
박금래는 창수의 제안에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창수가 대단히 부유한 상인이라는 걸 알고 있다. 자기 한 몸 살아가기도 벅찬 작은 장사에 거상이 끼어든다는 것이 말이 되나?
“여기서 장사를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종로 거리로 나가야죠.”
“종로는 월세가 겁나게 비싸 부러요! 한 평에 천 환은 줘야 한당께요!”
종로는 수도 한양을 포함해서, 평행우주 조선 전국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로, 온갖 명품 매장이 몰려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장사하는 건 모든 상인의 열망. 박금래도 과거에 종로에서 상점을 여는 꿈을 꾸곤 했다.
하지만 걸림돌은 상상을 초월하는 월세다. 20평 규모 점포 월세가 2만 환(한화 2,000만 원)에 이른다. 한양 평균 임금 500환(한화 50만 원)보다 40배 많은 금액.
“비싼 만큼 값을 할 겁니다. 오가는 사람이 많아서 만두도 많이 팔 수 있는 거죠. 장사만 잘하면 월세는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이윤을 올릴 수 있습니다.”
“그란가요?”
“저를 믿으세요. 보증금하고 월세는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아주머니는 만두만 만드시면 됩니다.”
“사장님께서 그러코롬 말씀하시면, 저야 좋은디……. 거시기…….”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으면 말씀하세요.”
“지가 맹그는 만두가 얼마 안 되서라.”
“만두소와 만두피 만들 때 도울 사람 5명, 만두 빚을 때 3명, 그리고 찜통 전문 2명, 이 정도면 하루에 얼마나 만두를 만들 수 있나요?”
“아따! 그러코롬 사람이 많이 붙으면 겁나게 많이 맹글 수 있죠! 2,000개도 만들 수 있당께요.”
창수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사업을 직접 해 본 경험에서 나오는 관록.
박금래가 만든 만두는 손님에게 노출만 되면, 모두 팔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나다. 한양에서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종로에 점포를 만들려는 이유가 바로 이것.
그리고 박금래를 도와 만두를 만들고 손님을 맞을 인력도 이미 구상해 놨다.
하루에 만두 1,500개를 팔면, 월 25일을 영업한다고 가정할 때, 월 매출액이 5만 환. 월세와 인건비, 그리고 재룟값을 계산할 때, 얼추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다.
빅금래의 말대로 만두 2,000개를 매일 만들어 팔면, 모든 비용을 제하고도 1만 환에 달하는 이익을 낼 수 있다.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주고, 창수와 수익을 나눈다 해도, 박금래에게 돌아가는 몫은 매월 3,000환 이상. 한양 평균 임금보다 6배 많은 금액이다.
박금래는 창수의 짜임새 있는 계획을 듣고, 저도 모르게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 * *
“그랑께. 만두가게에서 일할 사람을 찾으시는 거구만요. 잉?”
“그렇습니다. 남자 7명 여자 8명이 필요합니다. 점포가 종로통이니, 여기서 출퇴근하기도 편할 겁니다.”
“그라죠. 그라죠.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지라. 그란디 월급은…….”
박금래를 만난 뒤, 창수가 찾아간 곳은 청계천 판자촌. 광주 휘발유 박만수에게 만두가게에서 일할 직원을 소개해 달라고 요청했다.
판자촌에 일자리가 없어 놀고 있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박만수도 그런 실업자의 한 사람. 그는 창수의 말에 눈을 반짝이며, 급료를 물었다.
“경력하고 연배를 봐야겠지만, 최소 월 700환은 될 겁니다.”
“700환 이라고라! 고러코롬 월급이 쎄다면 일할 사람 천지죠! 잉! 저두 일헐 수 있을까요?”
창수가 보장한 급료는 한양에서 받는 평균보다 200환 높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평균이다.
특별한 기술이 없고, 배움이 적어 공사판이나 허드렛일에 나가는 판자촌 사람들이 받는 급료는 250환이 되지 않는다.
박만수가 기대한 월급은 300환 정도. 판자촌 사람들에게 인정을 베푸는 창수이기에 후하게 임금을 줄 거로 생각한 것.
하지만 창수는 제시한 것은 기대치를 한참 넘어선 금액이다.
“당연하죠. 그리고 반장님이 주도해서 15명을 모아 주세요.”
“고맙고만요! 사장님! 진짜루 고맙고만요!”
“하하하. 별말씀을 다 하시네요.”
“아니지라! 아니지라! 매달 양식을 주시는 것두 모자라서, 이러코롬 좋은 일자리를 주시는데 인두껍을 쓰고 고마움을 모르면 안 되지라!”
박만수는 창수가 자신에게 힘을 실어 주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정기적으로 기증받는 쌀과 소고기를 분배하는 주체가 박만수다. 이번에 월 10,500환 이상을 받는 인원 선발도 박만수가 전담한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창수의 호의에 감사하는 건 당연한 일.
“어려울 때 서로 돕고 사는 거죠. 그리고 이곳에 공부방을 만들려고 합니다. 아이들 숫자를 알아봐 주십시오.”
“흐미……. 아그들 공부방까졍…….”
이왕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 한다. 단순히 판자촌에 식량을 지원하는 것으로 빈곤의 악순환을 끊기 어렵다.
전쟁의 폐허에서 70년 만에 세계 10대 경제 대국에 오른 한국의 힘이 교육에서 나왔다.
창수는 판자촌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는 동시에 아이들을 교육하는 병행 전략을 세웠다.
박만수는 창수의 깊은 뜻을 알아차리고, 목이 메어 제대로 말도 못 했다. 가난하고 절망에 찬 판자촌에 미래의 희망이 보였기에.
6.
“영감, 김의방이라는 자가 청계천 인근에 나타났습니다.”
“그동안 어디에 숨어 있다가 지금 나타난 거지?”
“행적이 신출귀몰합니다. 포교들을 풀어서 조사하고 있지만, 거처를 찾지 못했습니다.”
김의방은 창수가 구매한 호패의 원주인 이름이다.
창수가 박금래와 판자촌 사람들을 위해 바쁘게 움직일 때, 좌포도종사관 박시우가 좌포도대장 최상민에게 창수의 등장을 보고했다.
조사하려고 시도한 지 2주째, 한양에서 종적을 찾을 수 없던 창수가 갑자기 등장하자, 상관에게 급히 달려온 것.
“그자가 월랑부대원을 살해한 범인일까?”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화약 터지는 소리가 난 인근에서 그자를 보았다는 증인이 3명이나 됩니다. 당장 체포해서 취조해야 합니다.”
“아니야. 확실한 증거 없이 섣불리 건드리면, 우리가 역으로 당할 수 있어. 그자를 비호하는 세력이 만만치 않아.”
“한양 사대문 안에서 무려 27명을 살해한 자입니다. 도대체 누가 비호한다는 말입니까?”
“자네는 알 것 없네. 아니. 알면 다쳐. 그리고 그자가 왜인을 죽인 것에 환호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는 걸 알아야 하네.”
“하지만 영감. 우리는 치안을 유지할 책임이 있습니다. 외압에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이보게, 박 종사관. 포도청 관리로서 직무를 다하려는 자네의 자세를 존중하네. 하지만 여기는 조선이고 우리는 조선인이야. 가뜩이나 왜인이 설치는 걸 막지 못한다고 비난받는 처지야. 왜인 편에 섰다는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이면, 우리 좌포도청은 끝장날걸세.”
수사를 주도하는 종사관과 전반적인 민심을 고려해야 하는 포도대장이 이견을 보였다.
박시우는 평소처럼 용의자의 신병을 확보해 자백 받아 내려 했으나, 최상민이 허가하지 않았다.
조선 고위 관리 중에 친일파들이 상당수 있지만, 반대로 일본의 활동을 고깝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박시우가 확보한 증거로는 반일 세력의 반발을 피할 수 없다.
“우리는 법 집행에 엄정할 뿐입니다. 일본인을 두둔한다는 건 터무니없는 중상모략입니다.”
“어허! 이 사람! 내가 그걸 모르나!? 왜 말귀를 못 알아먹어!?”
“죄…….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흥분해서…….”
최상민이 알아들을 만큼 설명해도 고집을 꺾지 않던 박시우. 그는 불호령을 듣고야 자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서 입씨름해 봐야 아무런 소용 없네. 나가서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오게.”
결국, 최상민이 축객령을 내렸다.
박시우는 상관의 심기가 매우 불편하다는 걸 알고, 군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에혀. 더러워서 못 해 먹겠어.”
“나으리, 무슨 일인데 그렇게 한숨을 쉬세요?”
“네가 알 일 아니다.”
박시우가 창수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마치 절벽을 만난 듯 정보 단절을 목도했을 뿐.
울화가 치민 박시우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기방을 찾았다. 하지만 술을 마셔도 기분이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피. 우리 사이에 비밀이 어디 있다고…….”
“어허, 국향아. 가뜩이나 머리가 아픈데 너까지 속을 긁는 거냐?”
“속 긁는 게 아니에요. 나으리 홀로 속앓이를 하시니, 안쓰러워서 그렇죠.”
“그래. 내가 미안하구나. 꽃다운 네가 이 좋은 술을 따라 주는데도 한숨만 쉬고 있으니.”
“속에 담아두면 화병만 생긴대요. 무슨 일이에요?”
“흠……. 국향아, 너는 일인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악한 자들이니 처단해야 할까?”
“글쎄요. 일본 사람 중에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지 않나요?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맞는 말이다. 요새 일인들이 건방을 떨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죽을죄를 지은 건 아니지. 그것도 27명이나 몰살당할 만큼 말이다.”
박시우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좌포도청 관할 구역에서 치안을 유지하는 것이다.
일본 세력이 확장하면서 크고 작은 충돌이 일어나지만,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 안이라 여기고 있었다.
이런 평화로운 그림에 난입한 것이 창수.
박시우는 월랑부대가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받은 것이 일종의 ‘반칙’이라고 생각했다. 월랑부대가 좌포도청의 눈치를 보고 일부러 무장을 소홀히 하고 다니다가 당했다고 판단한 거다.
“저번에 죽은 사람들을 말하시는 거군요. 그 사건 이후 손님들도 불안하다고 해요. 도성 안이라고 해도 안전하지 않으니까요.”
“일인들 잘 죽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고?”
“거의 없어요. 하루빨리 범인을 잡기를 바라고 있어요. 그리고 범인이 홍길동처럼 신출귀몰해서 좌포도청…….”
“좌포도청이 어떻다는 거냐? 얘기해 보거라.”
국향이 전하는 기방의 여론은 다른 곳과 사뭇 결이 달랐다.
박시우가 직접 탐문한 민심은 월랑부대 궤멸에 환호하며 창수를 열렬히 응원하는 반응이었다.
기방에 출입할 정도로 부유한 사람들의 생각은 다른 것일까?
박시우는 국향의 말에 귀 기울이며, 이야기를 계속하라고 재촉했다. 기방 손님들이 좌포도청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알고 싶기에.
“좌포도청이 범인을 잡기는커녕 단서도 못 찾을 거라고 했어요.”
“헛소리! 이미 범인의 정체를 알아냈어!”
“어머! 그래요? 그런데 왜 나으리 표정이 안 좋으세요?”
“커험……. 너무 깊이 알려고 하지 말거라.”
“아이참. 범인을 알고도 잡지 못한다니 더 무섭네요. 당분간 집 안에만 틀어박혀 살아야 하는 건가요?”
“그건 아니다. 청계천 판자촌 인근에만 안 가면, 위험한 일은 없을 거야.”
“세상에……. 판자촌 사람들이 그렇게 무서운 사람들일 줄이야…….”
“판자촌 무지렁이들이 뭐가 무섭겠느냐? 그 배후가 위험한 거지. 아무튼, 그쪽은 가지 말거라.”
한두 잔 마신 술에 취기가 오르자 공명심이 생겼다. 정분이 있는 기녀의 입에서 좌포도청의 평판이 형편없으니, 진실을 알려 줘야 한다고 느낀 것.
자세한 정보는 아니지만, 박시우는 창수의 존재와 소재에 대해 언질을 줬다. 자신과 좌포도청이 결코 무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바라며.
이런 마음이 통한 것일까?
박시우는 밤새도록 국향의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 * *
“대표님! 월랑부대를 암습한 자의 정체를 알아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