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평행우주 독식-32화 (32/200)

32화 11장. 잘살아 보세

3.

던지니스크랩을 먹다가 창수의 뇌리에 불현듯 스친 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즐기던 킹크랩.

블라디보스토크를 10번 이상 방문했다. 그때마다 빠지지 않고 먹었던 진미가 킹크랩이다.

던지니스크랩이 단맛과 버터향을 낸다면, 킹크랩은 내장과 내장 주변 살에서 나오는 고소함이 일품이다.

둘 다 빼어난 먹거리지만, 굳이 순위를 따지면 킹크랩이 반수 위.

창수는 조만간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연이어 연해주의 특산물을 떠올리게 됐다.

차가버섯, 자연산 송이버섯, 그리고 목청.

‘건강식품을 수입하는 거야! 그러면 충분히 자금을 돌릴 수 있어!’

차가버섯은 베타글루칸을 다량 포함해 항암 효과가 높고, 면역력을 강화하며, 성인병 예방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러시아에서는 16세기부터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돼, 건강식품으로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암 치료제로 사용하기도 한다.

차가버섯은 북위 40도 이상 냉대기후 지역 자작나무에 자생하는 것을 최상품으로 여긴다. 그리고 그 주산지가 연해주다.

자연산 송이버섯은 한반도 특산품이라 불릴 만큼 한국산 품질이 좋다. 그리고 러시아에서는 한반도와 연결된 두만강 하류에서 송이버섯이 다량 채취된다.

한국산보다 저평가받지만, 가성비 면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목청 역시, 한국산과 비교해 품질이 유사하면서 가격이 크게 낮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물론, 연해주 특산물을 수입한다고 해서 돈 번다는 보장이 없다. 하지만 외투법인을 세우는 근거로 활용하기 충분하다.

창수에게 필요한 자금을 한국으로 무리 없이 들여오는 통로. 설령 사업이 지지부진해도, 경쟁에서 밀렸다고 평가받을 거다.

‘고순도 은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매입하면 되겠군.’

금-은 재정거래를 잠정적으로 중단했으나, 99.99% 은 매입을 중단한 것은 아니다. 평행우주 조선과 금나라에서 사용할 재화를 마련하기 위해 고순도 은이 필요하니까.

창수는 무영금속에서 꾸준히 은 그래뉼을 매입하고 있다. 장기간 한국을 떠나 있을 때도, 1주일에 500kg을 확보하기 위해 선금을 지급하고 물량을 잡았다.

하지만 지난달 거래부터 은 그래뉼 매입에 이상기류가 나타났다. 1주일 공급량이 300kg으로 줄어든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유통할 수 있는 은 물량에 한계가 보입니다.]

무영금속 대표 이진수는 갈수록 은 공급량이 줄어들 거라 말하며, 창수에게 다른 대안을 찾아보라고 권했다.

무영금속이 어렵다면 다른 업체도 마찬가지일 터. 창수는 한국을 벗어나 태국에서 고순도 은을 구매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제 대안이 생겼다. 러시아는 세계 4위 은 생산 국가다. 게다가 기초과학 기술이 탄탄해 고순도 은을 쉽게 구할 수 있다.

‘이참에 뱌프에게 연락해서 블라디보스토크에 거점을 만들까?’

뱌체슬라프(뱌프)는 창수가 블라디보스토크를 2번째 방문했을 때 알게 된 고려인 3세.

코로나 사태가 아니었다면, 블라디보스토크에 여행사 지점을 열었을 것이고, 지점장에 뱌체슬라프를 기용했을 거다.

그렇다고 당장 여행사를 만들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연해주 특산물 수입과 고순도 은 구매 장소로 블라디보스토크가 중요해졌다. 근거지를 만들 필요가 있다.

* * *

<야! 뱌프! 왜 전화 늦게 받아?>

<참 나! 창수 형! 나에게 월급 줬수? 무슨 직원 다루듯이 해요?>

<꼭 월급을 줘야 빠릿빠릿 움직이냐?>

<당연하죠. 돈도 안 되는 사람 전화 칼같이 받아서 무슨 소용이에요?>

<얼쑤? 이놈 보소? 아주 날 불청객 취급 하네.>

<사실이 그렇잖아요. 내가 창수 형 때문에 얼마나 손해 봤는지 아세요?>

근 일 년 만의 통화가 반갑다. 뱌체슬라프의 툭툭거리는 반응을 보는 것도 즐겁다.

그리고 창수가 뱌체슬라프에게 피해를 준 건 부정할 수 없는 팩트. 코로나가 원인이지만, 지사장 시켜 준다고 헛바람 불어넣은 것이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켰다.

창수만 바라보고 생업을 소홀히 했던 뱌체슬라프에게 큰 타격을 준 것.

솔직히 말하면, 뱌체슬라프가 욕설을 퍼붓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다.

<그건 정말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말이다. 계속해서 징징거리면, 너 국물도 없어. 내가 요새 잘나가거든.>

<국물 낼 거리라도 있나요? 코로나 끝나려면 아직 멀었잖아요? 그동안 허풍이 많이 늘었네요.>

<허풍 아니야. 그리고 여행사만 사업이냐? 이번에 건강식품 수입하는 사업 할 거야. 네가 도와야겠다.>

<헐……. 창수 형. 설마 차가버섯 이런 거 말하는 거 아니죠?>

<맞아. 차가버섯, 송이버섯, 목청을 수입할 거야. 네가 앞장서서 물건을 확보해야 해.>

<에혀……. 또 헛발질하시네요. 그거 모두 래드 오션 된 지 오래예요. 형처럼 경험 없이 뛰어들다가 100% 망해요.>

뱌체슬라프는 마음이 급한 창수가 무리한 사업을 벌인다고 생각하며 말리려 했다.

뱌체슬라프의 말이 옳다. 연해주 특산물은 이미 한국 시장에서 포화 상태.

차가버섯의 경우 처음 한국에 들여왔을 때 가격이 kg당 300만 원에 달했다. 그러나 지금은 10만 원대로 가격이 대폭 내려갔다.

자연산 송이버섯과 목청은 가격대가 아직까지 좋지만, 수입업자가 증가하면 언제 수익률이 곤두박질칠지 모른다.

‘흠……. 이놈 봐라. 슬슬 열받게 만드네. 어떻게 혼꾸멍을 내 주지? 이거?’

창수도 뱌체슬라프의 생각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어 보기도 전에 딴지를 거는 것에 은근히 화가 났다.

그만큼 뱌체슬라프가 창수를 못 믿는다는 이야기가 되니까.

<야! 헛소리 말고! 네 계좌 열어 봐!>

<계좌요? 그건 왜요? 또 몇 푼 넣어 주고 생색내려는 거예요?>

<잔말 말고! 얼른 열어 봐!>

<알았어요. 잠시만요. 얼마나 보냈기에 큰소리치는지 한번 볼게요.>

코로나 창궐 이전 창수는 뱌체슬라프에게 활동비 명목으로 소액을 몇 차례 송금해 준 적이 있다. 그리고 그 돈을 빌미로 심하게 굴렸다.

뱌체슬라프는 이 돈 받고 무슨 일을 해 줘야 하는지 걱정이 들었지만, 거부할 수 없었다. 지금 그의 형편에 단돈 100루블(한화 1,550원)도 아쉬우니까.

<헉! 천……. 천만 루블이네요!>

<그래. 일단 천만 루블이다. 개인 통장으로 더 보낼 수 없으니까. 블라디보스토크에 회사 설립하고 법인 통장 만들어.>

<형님, 그러면 제 월급은…….>

<네 월급은 20만 루블이야.>

<감사합니다! 형님! 정말 감사합니다!>

<내가 대략적인 계획서를 보내 줄 거니까. 그대로 진행해. 만약에 농땡이 부리면, 러시아 평균 임금으로 대폭 삭감이야. 알겠지?>

<절대 그런 일 없을 겁니다! 맡겨 주세요! 충성!>

통장에 1억 5,500만 원에 상당하는 금액이 찍히자, 툴툴거리던 뱌체슬라프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백번 말하는 것보다, 실천 한번이 중요하다.

통장에 현금 찍어 주고, 그 돈으로 일하라고 하는데 딴지 걸 이유가 없다.

게다가 월급이 엄청나다. 러시아 평균 월급이 5만 루블에 머무르는데, 그보다 4배 많은 20만 루블(한화 310만 원)을 준다고 한다.

뱌체슬라프 나이 28세, 한국에서는 아직 어린 나이로 여겨지지만, 이미 결혼해서 아이가 두 명이다.

간 쓸개를 빼서라도 창수의 비위를 맞춰야 한다.

‘후후후. 역시 건방 떠는 녀석에게는 돈벼락 금융 치료가 최고지.’

창수는 수중에 5조 원에 달하는 거금을 가지고 있는 갑부다.

툴툴거리는 뱌체슬라프와 입씨름할 이유가 없다. 돈다발로 후려치면 될 일.

4.

2022년 4월 21일 목요일, 창수는 외투법인 설립과 관련된 초기 작업을 마치고, 서울에서 평행우주 한양으로 이동했다.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사장님, 겁나게 오랜만이네요. 잉.”

“일이 있어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잘헌 일이네요. 바쁜 게 좋은 거지라.”

“그런데 저번 달에 들렀는데 안 계시더군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창수는 오랜만에 시장 만두가게에 들렀다. 조선에서 가장 맛있는 만두를 먹은 지 7주가 지났으니, 입이 당기는 건 당연한 일.

그리고 한편으로 만두가게가 문 닫았던 이유와 박금래 신상에 어떤 일이 생긴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왔다.

“보증금하고 월세가 겁나게 올라 부러서요. 고거 맹글려고 며칠 가게 문을 닫았지라.”

“그런 일이 있었군요. 어떻게 돈은 마련하셨어요?”

“암만해도 가게 접어야겠어라. 돈 나올 구녕이 없어 부리네요.”

설날 연휴가 끝난 뒤, 가게 주인이 보증금과 월세를 2배 인상한다고 통보했다. 딸에게 옷 가게를 열어 줄 요량으로 임차인 쫓아내기를 시전한 것.

상도를 넘는 가게 주인의 횡포에 박금래가 강하게 항의했으나 소용없는 일이다. 조선은 임차인에 대한 보호가 허술한 나라다.

힘없는 박금래가 돈을 만들려고 백방으로 뛰었으나, 가게 주인의 요구를 맞추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가게 그만두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별수 있당가요? 행상이라두 해야것죠.”

“아주머니 연세가 있는데, 행상하면 힘들지 않겠어요?”

“아따. 그란 말씀 마시쇼. 잉. 나가 여그 오기 전까졍 행상하문서 하루에 3바구니씩 팔아 부렀당께요.”

뾰족한 대책이 없다. 박금래는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바구니에 찐만두를 담아, 길거리를 배회하며 팔 생각이다.

하지만 40대 초반의 체력과 50대 후반의 체력이 같을까?

‘흠……. 아주머니 사정이 딱하군. 도움을 드려야 할 텐데, 어떻게 돕는 것이 최선일까?’

월랑부대가 창수를 습격할 당시, 박금래가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았다면, 큰 낭패를 당했을 것이 분명하다.

박금래에게 큰 빚이 있다. 창수는 지금이 그 빚을 갚을 때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어떤 방법으로 도와야 하는가이다.

“아주머니, 일단 만두 2인분 주시고요. 10인분 포장해 주세요.”

“흐미. 우리 사장님 손이 크시네요. 잉. 금방 맹글어 드리겠어라.”

할 수 있는 것을 먼저 행하자.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까지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만두를 먹으면서 여유를 두고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그리고 단번에 48환 매출을 올려 주면, 침울한 박금래의 사기도 북돋을 수 있을 거다.

아니나 다를까. 축 처져 있던 박금래의 목소리에 생기가 돌아왔다.

앞날이 절망적이라도, 당장 들어오는 수입에 연연할 수밖에 없는 것이 가난한 상인의 현실.

‘아주머니 혼자서 만두가게를 운영하니, 능률도 안 오르고 힘에도 부치는 것 같아. 이 일을 계속하도록 하는 것이 오히려 아주머니를 해치는 게 아닐까?’

만두가게에서 일하는 인원은 박금래 혼자뿐이다.

돼지고기와 양고기, 그리고 김치를 넣고 만두소를 만드는 복잡한 과정. 밀가루를 반죽해 만두피를 만들고, 만두를 빚는 과정. 그리고 찜통에 넣고 익히는 과정 모두 박금래 혼자서 해야 한다.

창수는 자신이 주문한 수량을 맞추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박금래의 모습을 보며, 이 상태로 가게를 유지하는 것에 회의를 느꼈다.

“아주머니, 저와 동업하실 생각 있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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