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평행우주 독식-31화 (31/200)

31화 11장. 잘살아 보세

1.

“우리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

“음…….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볼트22가 우수한 성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11정을 구매하시지 않았나요?”

“이걸로 모자랍니다. 최소 100자루는 있어야 합니다.”

“우리 회사는 부채가 과다해, 인수하셔도 수익을 얻기 어려울 겁니다. 그냥 주문하십시오. 계약금 주시면, 5개월 안에 납품하겠습니다.”

앤드류는 창수가 리버스드로우 컴파운드크로스보우 전문가가 아니라는 걸 대화를 통해 알게 됐다.

창수는 중간 상인일 가능성이 높다. 볼트22를 대량 구매하려는 건 판로가 있기 때문일 터.

앤드류는 비전문가에게 부실 덩어리 윌래스를 매각하는 것보다, 볼트22를 제작해서 납품하는 것이 서로에게 이롭다고 생각했다.

“부채가 어느 정도입니까?”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많습니다.”

“자세히 말해 보세요. 그래야 제가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으니까요.”

“재료 공급 회사에 진 빚이 35만 달러 정도입니다. 그리고 컴파운드크로스보우 애호가들에게 진 빚이 150만 달러 정도입니다.”

‘그것참……. 월래스를 지탱한 것이 고객들이군. 하긴 볼트22 성능이 워낙 좋으니, 망하는 걸 볼 수 없었을 테지.’

한심하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하다.

영업력이 형편없는 월래스가 지금까지 파산하지 않고 버틴 건 골수팬들의 지원 덕분이었다.

“185만 달러는 자산 규모와 매출액에 비해 과도한 부채입니다. 정리하지 않으면 월래스가 회사로서 정상적인 생명을 이어 가기 어려울 겁니다.”

“그 점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 고민입니다.”

“고민한다고 해법이 나올까요?”

“…….”

“제가 부채 185만 달러를 떠안고 깨끗한 상태에서 월래스를 새 출발 시키겠습니다. 고용도 승계하고, 앤드류 대표님에게 지분 20%를 드리겠습니다.”

“그……. 그렇게 해 주신다면 더 좋을 수 없겠죠!”

창수의 파격적인 제안에 앤드류의 눈이 커다래졌다.

사실 창수 이외에 월래스를 인수하려는 골수팬이 여럿 있었다. 하지만 인수 시도는 과도한 부채 때문에 번번이 무산됐다.

부채를 모두 해결하겠다고 말한 건 창수가 처음이다. 게다가 앤드류를 축출하지 않고 지분 20%를 넘겨준다고 한다.

앤드류를 압박하는 모든 것들을 단번에 해소할 수 있는 완벽한 제안.

“그리고 조건이 있습니다.”

“예!? 조건이라면…….”

그러면 그렇지. 유토피아를 꿈꾸는 제안이 있을 리가 있나?

앤드류는 간이 콩알만 해지는 심정으로 창수가 내거는 조건을 경청했다.

“앤드류 대표님은 기술 이사로 자리를 바꾸고 연구 개발과 생산에 전념해야 합니다. 그리고 영업 전문가를 영입해야 합니다.”

“그러면 저는 회사 운영에서 손 떼야 하는 건가요?”

“지분 20%를 가진 대주주로서 회사 주요 결정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경영 전반에 걸쳐 관여하는 건 제한될 겁니다.”

사실상 경영권 박탈. 앤드류는 상실감을 느끼면서 창수의 제안을 받아들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이렇게 5분이 흐르고,

“좋습니다. 월래스를 매각하겠습니다. 부디 좋은 회사로 키워 주시기 바랍니다.”

“현명한 결정입니다.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능력이 안 되는 일에 매달려 봐야 고통과 번뇌만 증가할 뿐이다.

앤드류는 창수가 자신을 물 먹이려는 것이 아니라, 등에 진 무거운 짐을 덜어 주려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창수가 자금을 대고 영업 전문가가 참여하면, 자신은 볼트22 생산과 연구 개발에 집중할 수 있다. 앤드류가 진정으로 원하던 것이 바로 이것.

리버스드로우 컴파운드크로스보우 전문 회사 월래스의 대표 앤드류는 자신이 가진 지분과 부채를 창수에게 넘기고 새로운 출발을 선택했다.

* * *

“영업 이사는 모리스 씨가 좋을 듯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보다 볼트22의 장점을 더 잘 알고 있더군요.”

월래스 인수를 빠르게 마친 창수는 볼트22 골수팬을 대상으로 화상 면접을 실시했다.

앤드류는 처음 창수의 발상에 의구심을 가졌지만, 면접을 마치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다.

월래스를 위해 호주머니 돈까지 내놓은 골수팬들의 지식과 열정이 예상을 크게 앞섰기 때문이다.

창수는 면접 지원자 중에서 가장 명확하게 볼트22의 장점을 설명한 모리스를 영업 이사로 낙점했다.

앤드류는 면접에 참가한 7명 중 누구를 데려와도 자신보다 우월하기에 창수의 선택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생산 인력과 연구 인력 확충은 어떻게 되고 있나요?”

“면접과 실기 테스트를 동시에 진행 중입니다. 그런데…….”

“무슨 문제가 있으면, 말씀하세요.”

“갑자기 생산 인력을 30명으로 늘리면, 회사 재정이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모리스 씨가 합류해도 당분간 재고가 엄청나게 쌓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건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생산 물량 모두 제가 소화할 수 있습니다.”

“외부 판매를 안 하실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외부 판매를 않으려 했다면, 모리스 씨를 영입할 이유가 없죠. 다만, 생산량을 늘려도 재고가 남을 위험이 없다는 걸 말하는 겁니다. 참고로 제가 사들이는 볼트22 가격은 일반 도매상 납품가와 동일합니다.”

이전까지 월래스의 생산 인력은 앤드류, 잭, 브롱스 3명이었다. 브롱스의 역할이 사실상 보조에 그쳤다는 걸 생각하면, 실제 생산 인력은 2.5명 정도.

앤드류는 갑자기 인력이 10배 이상 증가하면, 볼트22의 생산량이 급증해, 회사가 휘청거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창수에게는 계획이 있었다. 생산량이 얼마가 되든 일반 판매망으로 소화하고 남은 분량을 창수가 인수할 거다.

“그러시다면, 직원가로 할인을 받으십시오. 비용을 30% 아낄 수 있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구매할 양은 전체 생산량의 70% 이상이 될 수 있습니다. 할인받으면 회사 경영에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아……. 생각이 깊으시군요.”

과거부터 월래스 관계자가 볼트22를 구입할 때 30% 할인을 받았다.

앤드류는 관성적으로 창수에게 할인 혜택을 말했으나, 곧바로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창수가 바라보는 시야는 자신과 차원이 다르게 넓고 높았다.

“볼트22 기능 향상 태스크 포스팀 구성은 어떻습니까?”

“현재 5명으로 구상 중입니다.”

“10명까지 늘리세요.”

“예산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당장 매출을 만들 수 없는 분야라서요.”

“독립적으로 1,000만 달러 예산을 투입하겠습니다. 그 정도면 되겠죠?”

“물론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최우선입니다. 인원을 확충하면서 인성을 중심적으로 보세요. 정보 유출의 가능성을 원천부터 막아야 합니다.”

“보안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볼트22에 대한 비즈니스 플랜을 결정한 뒤, 창수는 연구 개발에 추가로 1,000만 달러를 투입하겠다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규모가 큰 회사에서 1,000만 달러는 별거 아닌 금액이지만, 얼마 전까지 직원 2명에 불과한 월래스에는 천문학적인 자금이다.

앤드류는 창수가 무슨 이유로 거금을 투입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자신이 가장 잘하고 자신 있는 분야가 연구 개발이기에, 반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어쩌면 창수는 앤드류가 꿈에서 찾고 있던 최고의 보스인지도 모른다.

“태스크 포스팀이 갖춰지면, 언제쯤 재장전 속도 개선이 이루어질까요?”

“1단계 목표가 10초 간격으로 화살을 발사하는 것입니다.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올해 안에 결과가 나올 거로 생각합니다.”

“좋습니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1분에 6발이면, 드라이제 발사 속도보다 빠르군. 쓸 만하겠어.’

드라이제는 1836년 개발된 프로이센의 제식소총이다. 최초의 후장식 소총으로 오스트리아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당시 오스트리아군은 전장식 소총을 사용해 분당 발사 속도가 1~2발에 불과했다. 반면, 드라이제는 분당 4~5발을 발사했다.

프로이센군은 포병 화력이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드라이제 소총을 사용해, 오스트리아군에 대승을 거뒀다.

평행우주 너머 조선과 금나라에서 사용하는 소총이 드라이제와 유사한 발사 속도를 가지고 있다.

1단계 개선만 이뤄져도 볼트22의 발사 속도가 소총보다 빠르다.

그렇게만 되면 월래스에 투입되는 2,000만 달러가 아깝지 않으리라.

2.

볼트22 생산과 개선에 관련된 여러 가지 일을 마친 창수는 2022년 4월 17일 한국으로 돌아왔다.

‘우편물이 쌓여 있군, 이제 슬슬 거처를 옮겨야 할까?’

고작 3주간 자리를 비웠음에도 우편함 인근이 어지럽다. 계속해서 밀려오는 우편물을 우편함의 한정된 공간이 담아내지 못해 발생한 일.

창수는 반지하 집을 벗어나 더 큰 집으로 옮길 생각을 가지게 됐다.

‘주택을 구매하려면 큰돈이 나가. 그렇다고 월세를 얻으면 여기보다 낫다는 보장이 없고.’

수유동 주택 가격은 5억 원에서 10억 원 사이. 창수가 가진 재력으로 1,000채도 거뜬히 살 수 있다.

다만 껄끄러운 것은 한국에서 창수가 백수라는 점이다. 소득이 없는 상태에서 억대 자금을 사용하면, 불필요하게 주목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평행우주 이동 통로인 북한산 바위와 거처가 인접해야 하기에, 쓸 만한 월세방을 구하기도 어렵다.

‘선배님 말대로 법인을 설립해야 할까?’

김근홍은 창수에게 외국인투자법인(외투법인)을 설립하라고 충고했다. 외국인이 1억 원 이상의 자금을 가지고 사업하면, 외투법인 자격을 받을 수 있다.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창수가 마련한 외국인 신분과 비밀계좌를 활용해서, 어렵지 않게 설립할 수 있다는 것이 김근홍의 설명.

외투법인 한국 지사 대표를 창수가 담당하면, 백수 상태를 면하는 건 물론이고, 회사 자금으로 부동산 매입도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쪼들리면서 살 수 없지. 법인을 설립해야겠어. 그러면 업종을 무엇으로 해야 하지? 볼트22 매장을 열까?’

외투법인을 만든다고 해서 아무거나 설립할 수 없다. 신고한 업종에 맞는 영업 활동을 해야 안전하다.

창수의 뇌리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월래스사에서 공급받을 수 있는 볼트22.

‘하지만 판매량이 제한돼 있어. 그걸로 큰돈을 사용하기 어려워.’

크로스보우는 총포류로 분류돼 있고, 총포 소지 허가를 받아야 개인 보관 할 수 있다.

더구나 컴파운드크로스보우는 특수한 연구 목적 이외에는 소지 허가도 나지 않는다. 한국에서 개인이 컴파운드크로스보우를 구매하는 건 매우 어렵고 번잡한 일이다.

즉, 외투법인 사업 아이템으로 볼트22를 선택해 봐야 매출이 거의 없다는 거다. 그리고 매출이 적다 보니, 비밀계좌를 통해 한국으로 많은 자금을 들여오기 어렵다.

매출이 적으면서 대량의 자금을 사용하는 외투법인이 있다면, 위장 법인으로 표적이 될 수 있으니까.

‘아이템을 뭐로 해야 할지 답이 안 나오는군. 출출한데 일단 먹고 생각해 보자.’

한참을 생각해도 뾰족한 해법은 안 나오고 배가 고파졌다. 창수는 마법자루를 열고 캘리포니아에서 사 온 먹거리를 꺼냈다.

던지니스크랩, 미국 서해안에서 주로 잡히는 갑각류로 게살이 달고 버터향이 난다.

창수는 샌프란시스코 인근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던지니스크랩 전문점에서 찜과 볶음을 대량으로 구매했다.

당분간 미국 서부 해안에서 나오는 별미로 배를 채울 요량.

‘아! 맞아! 그게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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