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10장. 나 이런 사람이야
2.
“볼트22의 장점이 뭔가요?”
“리버스드로우 컴파운드크로스보우 중에서 가장 빠릅니다. 발사한 화살이 초당 167m(602km/h) 속도로 날아갑니다.”
“경쟁 제품과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초당 20m 이상 빠릅니다. 가장 근접한 제품 속도가 초당 143m이니까요.”
‘속도가 빠르면 운동에너지가 증가하잖아. 그걸 설명해야지 뭐 하는 거야?’
창수가 여행 전문가고 여행업에 종사했지만, 대학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이과 출신이다.
그는 앤드류가 볼트22의 물리적 특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생각했다. 만약 앤드류가 자신의 부하 직원이라면, 한 소리 했을 거다.
“연습 사격 해 봐도 될까요?”
“물론이죠! 저쪽으로 가시지요!”
‘이상해. 너무 이상해.’
제품 설명에는 어눌한데, 시험 사격 하겠다니 반응이 빠르다. 볼트22를 판매하는 것보다 성능을 실험하는 것이 더 기뻐 보인다면, 착각일까?
- 쉐에엑!
- 팍!
“성능이 아주 좋습니다. 정확도가 소총하고 큰 차이가 없네요.”
“소총에 근접하도록 만들었으니까요. 사거리 100m까지 명중률은 M-16, AK-47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파괴력은 어떻습니까?”
“이론상으로 운동에너지가 418J입니다. 하지만 실제 위력은 400J 내외일 거라 봅니다.”
“400J이요? 엄청난 위력이군요. 종이탄피를 사용하는 소총과 비교하면 어떤가요?”
“종이탄피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평균적인 운동에너지는 볼트22가 강할 거라 봅니다.”
‘바로 이거야! 이런 식으로 썰을 풀어야 손님이 물건을 살 거 아니야!?’
[종이탄피를 사용하는 소총보다 위력이 강하고, 명중률은 100m 이내에서 현대 소총과 유사하다.]
볼트22를 팔고 싶다면 애초부터 이런 설명을 했어야 한다.
창수는 연습 사격을 통해 볼트22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냈다. 그러나 많은 잠재적 고객이 이 단계로 넘어오기 전에 구매 의욕을 잃고 자리를 박찼을 것이 뻔하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에서 극찬을 받는 볼트22가 실제 판매에서 고전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원인은 최하급 판매 스킬을 가진 회사 대표 앤드류의 존재.
“볼트22 같은 명품이 150년만 먼저 나왔어도 세계 무기 역사가 바뀌었겠군요.”
컴파운드보우는 1973년 처음 시판됐다. 도르래 원리를 활에 적용해, 기존 활이 가진 한계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컴파운드크로스보우는 컴파운드보우를 석궁 형태로 만들어 화살 위력을 강화한 것이다.
그리고 2003년 활대를 거꾸로 만든 형태로 발사하는 리버스드로우 컴파운드크로스보우가 개발됐다.
창수는 볼트22와 같은 리버스드로우 컴파운드크로스보우가 일찍 발명됐다면, 소총이 설 자리를 잃었을 거라 생각했다.
“그건 장담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런가요?”
“볼트22에 사용하는 화살이 무겁기 때문입니다. 가벼운 탄환을 사용하는 소총보다 공격 가능 횟수가 대폭 떨어집니다. 그리고 볼트22는 재장전이 느리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리 있는 지적이야. 화살 떨어진 궁수는 허수아비지. 물론 나는 예외지만. 그리고 볼트22는 기껏해야 1분에 2발 발사할 수 있어. 이건 진짜 취약점이지.’
전쟁터에서 궁수가 화살 30개 이상을 가지고 다니기 어렵다. 보급이 안 되면 궁수는 쓸모없는 애물단지에 불과하다.
하지만 마법자루를 가지고 있는 창수에게 화살 무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걸림돌이 되는 건 재장전과 연사 문제.
볼트22는 앞부분 발 거치대를 밟고 활시위를 당기는 방법과 감는 장치를 돌려 활시위를 끌어오는 방식으로 화살을 장전한다.
어떤 방식을 사용해도 소총에 비해 장전 시간이 길다.
“재장전과 발사 시간을 단축할 방법은 없는 건가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숙련이 되도록 반복 연습 하는 겁니다.”
“아무리 연습해도 빨라지지 않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그렇죠. 그래서 모터를 이용해 재장전 시간을 단축하는 방식을 연구 중입니다.”
“아주 중요한 연구군요. 언제쯤 결과가 나오나요?”
재장전 개선 방안을 연구 중이라는 말에 눈을 번쩍 뜨는 창수. 볼트22의 파괴력에 연사력이 더해지면, 평행우주 세상에서 활동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음……. 그것이…….”
“왜요? 문제가 있는 건가요?”
“사실은 자금이 부족해서 연구가 지지부진합니다. 언제 연구가 끝날지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습니다.”
‘알 수가 없는 게 아니지. 이 상태로는 평생 가도 연구 결과가 나오지 않을걸.’
돈벌이는 시원치 않고, 이곳저곳 벌인 연구에 돈 들어갈 곳은 많고, 어떤 계기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앤드류가 재장전 개선 연구를 마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볼트22 개선 연구에 비용이 얼마나 들어가나요?”
“적어도 100만 달러가 필요합니다. 제대로 연구하려면 자금이 더 많아야 하고요.”
‘큼. 연구 계획이 확정되지 않으면, 자금을 지원해 봐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야.’
창수에게 100만 달러는 소소한 푼돈이다. 하지만 마스터플랜 없는 연구에 자금을 투입하다가 정신적 내상을 입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재장선 속도 개선 연구에 투자할 생각을 하고 있던 창수의 뇌리에 빨간불이 켜졌다.
일단 한발 뒤로 물러나는 것이 현명한 일.
“볼트22를 구매하겠습니다. 지금 몇 개 구매가 가능한가요?”
“판매가 가능한 건 모두 11정입니다.”
“11자루 모두 주십시오.”
“예!? 11정 모두요? 가격이 만만치 않을 건데요.”
“자루당 3,000달러, 총 33,000달러 아닌가요?”
“그……. 그렇죠.”
- 척!
“현금으로 33,000달러입니다. 확인해 보십시오.”
“…….”
평범하게 보이는 아시아계 손님이 큰손이었다.
앤드류는 창수가 기껏해야 볼트22 한 자루를 구매할 거라 예상했다. 하나만 팔아도 3,000달러가 들어오니 급한 살림에 숨통이 트일 거라 기대했는데, 결과는 기대치를 아득히 넘는 싹쓸이 완판.
게다가 자금 유입에 시간이 걸리는 신용카드도 아니고 체크(미국 개인 수표)도 아니다. 무려 현금.
빳빳한 달러 뭉치를 든 앤드류의 손이 눈에 보일 정도로 흔들렸다.
“이봐! 잭! 브롱스! 하던 일 멈추고 볼트22 11정 포장해!”
잠시 멍하던 앤드류가 급하게 해야 할 일을 깨닫고, 직원들을 불렀다.
큰손의 생각이 바뀌기 전에 빨리 매매를 종결하려는 판단.
“앤드류! 바쁜 사람 왜 불러? 포장은 네가 전담하는 거잖아?”
“브롱스, 제발 투덜거리지 말고 빨리 포장하자. 고객님이 기다리고 있잖아.”
앤드류는 대표로서 권위도 없었다.
껄렁한 차림을 한 직원 브롱스는 포장하라는 대표의 지시를 따르기는커녕 도전적인 말투로 질타했다.
그런데도 앤드류는 싫은 소리 못 하고, 협조를 애걸하는 상황.
‘어휴. 속 터져. 저런 걸 직원이라고 두고 있네. 회사가 거의 막장이라는 의미구만.’
월래스가 탄탄한 회사라면, 앤드류가 아무리 무능해도 직원이 건방진 자세를 보일 수 없다.
브롱스는 월래스라는 회사 자체에 미래가 없다고 여기고, 대충 시간이나 때우면서 다른 직장을 알아보는 중일 가능성이 높다.
“어!? 그 돈 뭐야!?”
“판매 대금이야. 당분간 돈 걱정 안 하게 됐어. 그러니 빨리 포장하자.”
“시팔! 돈 생겼으면, 나에게 먼저 줘야 할 것 아니야!? 너 혼 좀 나 볼래!?”
“제발! 내 말 들어! 이 돈으로 외상 대금 갚아야 재료를 공급받을 수 있어! 네 욕심 차릴 때가 아니라고!”
“개소리하지 마! 나는 밀린 돈 받으면 그만이야! 이 엿같은 회사 망하든 말든 내가 무슨 상관이야!”
점입가경. 회사는 운영이 어려운 상태고, 직원은 마음에서 회사를 버린 지 오래다.
‘그래도 저 사람은 인간이 됐군.‘
앤드류와 브롱스가 볼트22 판매 대금을 두고 실랑이할 때, 한쪽에 서서 슬픈 눈으로 다툼을 바라본 사람이 있었다.
그가 아마도 잭이라 불리는 직원일 터.
브롱스가 난리 치는 내용을 들어 보니, 한참 동안 직원 급여가 밀린 것 같다. 그렇다면 잭의 급료도 밀렸을 거다.
하지만 잭은 브롱스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겁먹은 듯 다툼을 말리지 못했으나, 빨리 실랑이가 멈추고 볼트22 포장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눈치.
잭은 월래스라는 회사의 미래에 일말의 기대감이 있는 듯하다.
- 팍!
“크악!”
- 우당탕!
실랑이는 말로 끝나지 않았다. 앤드류가 돈을 주지 않으려 하자, 브롱스가 주먹을 날리기 시작한 것.
앤드류는 바닥에 쓰러지면서도 손에 돈을 움켜쥐고 놓지 않았다. 이 돈을 줘 버리면, 재료가 떨어진 월래스가 파산할 수밖에 없으니까.
“이 새끼야! 내 돈 내놓으라고 했지!?”
분노한 브롱스는 쓰러진 앤드류 위에 올라타고, 본격적으로 주먹질을 시작할 태세였다.
- 척!
“큭! 뭐야! 당신 뭔데! 남의 일에 끼어들어!?”
“남의 일이 아니지. 현금 주고 물건 구입했는데, 너 때문에 인수 못 하고 있잖아.”
“뭐라고!?”
브롱스의 폭행을 막은 것은 창수였다. 그는 앤드류의 관자놀이를 향해 내려가던 브롱스의 오른손을 중간에서 낚아챘다.
브롱스는 강력한 악력으로 자기 오른팔을 죄어 오는 창수에게 개입하지 말라고 으르렁거렸으나, 창수의 차가운 대답에 겁을 집어먹고 말았다.
“너 돈 받을 게 얼마냐?”
“오……. 오만 달러다!”
“급료가 오만 달러나 밀렸다는 거냐?”
“특근을 많이 해서 그래. 내가 졸라게 열심히 일했거든!”
- 슥!
오만 달러면 일 년 가까이 급료를 받지 못했다는 걸 의미한다. 창수는 브롱스의 말을 믿기 어려워, 앤드류를 바라봤다. 브롱스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
엔드류가 대답을 못 했다. 브롱스가 받을 돈이 오만 달러가 맞는가 보다.
“이봐! 브롱스! 네가 무슨 일을 해!? 회사에서 놀고 잠자고 시간만 때운 거잖아!”
“회사에 있으면 뭘 하든 근무한 거야! 법도 모르면서 주둥이 놀리지 마! 잭!”
참다못한 잭이 나섰다.
브롱스가 말한 야간 근무는 오갈 데 없으니 작업장으로 나와 시간만 보낸 거다.
실질적으로 지금까지 작업은 거의 앤드류와 잭이 도맡아 했다.
“이거 구제 불능 인간쓰레기구만! 좋게 말로 하려고 했더니, 안 되겠는데!”
“뭐! 뭐야!?”
“닥쳐! 주둥이 더 놀리면! 혓바닥 자르고 사막에 묻어 버릴 거니까!”
“…….”
자초지종을 파악한 창수가 험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브롱스가 임금 체불 피해자라면, 조금 거칠게 나와도 이해할 측면이 있으나, 실상을 알고 보니 생양아치였다.
양아치에게는 양아치다운 대우가 필요한 것.
브롱스는 무지막지한 완력과 입담을 보이는 창수가 두려워 입을 다물어야 했다.
“너 하는 꼬락서니 보니 회사에 정떨어진 지 오래지?”
“그……. 그렇다.”
- 꽉!
“그렇습니다! 제발 살살하세요!”
양아치의 취약점이 더 강한 폭력에 무기력하다는 것이다.
기세등등하던 브롱스는 창수에게 쓴맛을 보자, 양순한 양으로 변했다.
“이만 달러로 퉁치고 회사를 나가든지? 아니면 나에게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맞든지? 둘 중의 하나 선택해.”
“이……. 이만 달러 받겠습니다!”
브롱스는 주저 없이 이만 달러를 선택했다. 회사가 망하기 일보 직전인 상황에서 그 정도라도 건지는 것이 다행이라 여긴 것.
창수는 브롱스에게 계약서, 서약서, 확인서를 차례로 작성하게 한 뒤, 이만 달러를 주고 쫓아 버렸다. 월래스 인근에 얼쩡거리면, 사막에 묻어 버린다는 경고와 함께.
“뭐라고 인사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김창수 님은 월래스의 영웅이십니다.”
“영웅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예?”
“월래스의 주인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