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9장. 비싸게 더 비싸게
3.
김근홍은 창수의 말에 경악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3,106캐럿에 달하는 컬리넌 다이아몬드 원석이 발견된 시기는 1905년. 창수가 판매한 2,255캐럿 다이아몬드 원석과 117년 차이를 가진다.
김근홍은 2,000캐럿이 넘는 대형 다이아몬드 원석이 다시 출현하려면, 적어도 수십 년은 지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창수는 15억 달러에 다이아몬드 원석을 판매한 직후, 그보다 더 큰 다이아몬드 원석이 있다고 말했다.
김근홍이 보인 반응은 지극히 정상이다.
- 슥!
“보세요. 정말입니다.”
“커커커! 너 완전히 미친놈이구나! 참외만 한 다이아몬드 원석을 어디서 따 온 거야?”
기가 차서 헛웃음만 나온다.
천문학적인 가치를 가진 보물을 기르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커험. 출처는 묻지 마세요. 알면 다칩니다. 아실 만한 분이 왜 그러십니까?”
“크크크. 알았다. 알았어. 정색하기는. 좋아. 일단 무게 재고. 기본 테스트 좀 해 보자.”
놀라움의 연속이지만, 지킬 건 지킨다.
김근홍은 자신이 보유한 모든 장비를 동원해, 거대 다이아몬드 원석을 테스트했다.
“진품 다이아몬드고, 3,527캐럿이다. 창수야, 축하한다. 정밀 테스트를 거쳐야겠지만, 넌 이제 지구 역사상 가장 큰 다이아몬드를 소유한 사람이야.”
“이거 얼마나 나갈까요?”
“네 계좌에 남은 돈이 14억 달러가 넘잖아. 팔지 말고 가지고 있지, 그래?”
“아니요. 팔 겁니다. 이런 돌덩이 가지고 있어서 뭐 하게요?”
“무섭다. 무서워. 돈독 오르면 다 이렇게 되냐?”
“돈독 오른 거 아닙니다. 광석을 광석으로 보자는 거죠. 그리고 선배님, 혹시 판로를 못 찾아서 물타기하는 겁니까?”
“어허! 그럴 리가 있냐? 정말 팔고 싶으면 3일만 기다려. 내가 호갱 한 명 데리고 올게.”
“예? 고객이 아니라 호갱이라고요?”
“응. 호갱.”
호갱은 ‘호구 + 고객’을 뜻한다.
호갱이 나타나는 상황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고객이 어수룩한 경우. 둘째, 장사치의 상술이 워낙 교묘해서 고객이 속아 넘어가는 경우.
천문학적인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 고객이 어수룩한 행동을 할 가능성은 낮다. 본인 능력이 떨어져도 조력자들이 도울 가능성이 높으니까.
그렇다면 남는 건 장사치의 농간인데, 창수는 농간을 부릴 생각이 없다.
아니면 김근홍이 중간에 수작을 부린다는 예고일지 모른다.
‘이 양반이 무슨 일을 꾸미려는 건가? 아무튼 3일이라고 하니 기다려 보자.’
김근홍은 언행이 일치하는 사람이다.
호갱을 데리고 온다면 분명히 데려올 터. 하지만 어떤 호갱을 어떻게 데려올지 도저히 감이 안 잡힌다.
궁금하다. 그래도 3일이 지나면 결과가 나올 테지. 조금만 버티면 답을 알 수 있는 거다.
* * *
3월 10일 창수는 김근홍의 자택 지하 회의실에서 ‘호갱’으로 지목된 인물을 만났다.
창수는 상하이방 자금 관리자 아윈을 만났을 때처럼 긴 로브에 황금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반면, 상대방은 이슬람 전통 복장 차림에 맨얼굴이었다.
“커험. 감정사가 7명이나 되는 겁니까?”
“교차 검증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뒷말이 없죠.”
“그 말은 7명 개개인을 완전히 믿을 수 없다는 이야기인가요?”
“그런 건 아닙니다. 그래도 확실한 것이 좋지 않습니까?”
“확실한 걸 넘어 과합니다. 그리고 ‘슈퍼노바’의 존재는 극비입니다. 오늘 여기서 본 것을 절대로 외부에 노출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해야 합니다.”
회의실 자리 배치도 아윈을 만난 때와 동일했다. 그러나 2명이었던 아윈과 다르게 이번 상대는 배석자가 7명에 달했다.
창수는 ‘슈퍼노바’라는 명칭을 부여한 3,527캐럿 다이아몬드 원석의 보안을 강조하며, 불쾌감을 나타냈다.
“그 점 염려 마십시오. 카타르퍼스트의 이름을 걸고 비밀을 지키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믿어 보죠. 그러면 여덟 분 모두 비밀 엄수 서약서를 작성해 주시기 바랍니다.”
“음……. 꼭 그래야 하는 겁니까?”
“확실한 것이 좋지요. 비밀 엄수 서약서를 쓰지 않을 분은 나가셔도 좋습니다.”
카타르퍼스트는 카타르의 국부 펀드로 글로벌 대기업 다수에 투자하고 있다. 운용 자산은 3,200억 달러에 달한다.
창수와 면담하는 당사자는 카타르퍼스트 대표 자미르로 웬만한 개도국 국가 정상이 만나기도 어려운 귀빈이다.
하지만 창수는 자미르와 수행원 7명에게 비밀 엄수 서약서를 작성하라고 요구했다.
이건 창수가 자미르를 슈퍼노바의 구매자로 확정하지 않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알겠습니다. 서로 확실한 것이 좋겠죠.”
자미르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창수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애당초 감정사를 7명이나 데리고 온 자신이 먼저 무리수를 둔 것이기에, 창수의 요구를 거부할 처지가 못 된다.
“3,527캐럿 다이아몬드 원석이 확실합니다. 투명도는 최상이고, 컬러는 조금 애매하군요.”
“애매하다고요? 구체적으로 말해 주시겠습니까?”
“감정사 4명이 D등급이라 평가하고, 3명이 E등급이라 평가합니다.”
“다수결로 D등급이군요.”
“그렇게 단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임시방편으로 D-등급이라고 해 두죠.”
다이아몬드의 품질을 평가하는 4C 중 Color(색)는 D등급이 최상이고, 그 아래 등급이 E등급이다.
슈퍼노바는 D등급과 E등급 사이.
감정사 7명의 평가가 갈리는 것에 이유가 있었다. 창수는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고자 임의로 D-라는 명칭을 붙였다.
“D-등급이라……. 합리적인 명칭이군요. 그러면 판매 가격을 얼마로 생각하시나요?”
“슈퍼노바는 원석이 아니라 나석으로 판매될 겁니다. 1,500캐럿 하나와 550캐럿 2개를 만들 예정이죠. 그중에서 필요한 것을 고르십시오.”
“550캐럿은 컬리넌I 가격으로 생각하면 되겠군요. 1,500캐럿은 컬리넌I의 5배 가격이라고 보면, 3가지 나석 합계가 3억 8,500만 달러가 됩니다. 번거롭게 나석을 구매하는 대신, 슈퍼노바 원석을 3억 달러에 매입하겠습니다.”
‘3억 달러라고? 호갱이 아니라 손놈이구만.’
협상을 시작하면 유리한 가격을 끌어내기 위해, 무리하게 가격을 후려치는 경우가 흔하다.
자미르도 슈퍼노바의 가격을 깎으려고 일부러 ‘세계 최대 다아아몬드 원석’이라는 걸 무시하며, 3억 달러를 불렀다.
그러나 창수는 바로 3일 전 2,255캐럿 다이아몬드 원석을 15억 달러에 매각한 경험이 있다. 자미르의 노림수에 넘어갈 상대가 아니다.
창수는 자미르가 선을 넘었다고 판단하며 진상 손님이라고 규정했다.
“셈이 이상하군요. 컬리넌I의 가격을 얼마로 책정한 겁니까?”
“5,500만 달러입니다.”
“그건 어떻게 나온 숫자죠?”
“1908년 컬리넌I 가치가 250만 달러였습니다. 올해 가치로 환산하면 5,500만 달러가 됩니다.
“계산을 잘못하셨군요.”
“그럴 리가 있나요? 환산율은 미국 정부 공식 발표입니다.”
“환산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계산 방식이 잘못됐다는 겁니다.”
“어떻게 잘못됐다는 건가요?”
“다이아몬드는 다이아몬드 가격을 바탕으로 계산해야 정확합니다. 달러와 같은 종잇장이 끼어들 자리가 아니죠.”
자미르가 평가한 컬리넌I의 가격은 1908년 달러 가치를 2022년의 달러 가치로 변환한 것이다. 언뜻 보면 타당한 평가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창수는 달러를 종잇장이라고 폄하하며, 자미르의 계산법이 틀렸다고 주장했다.
“솔직히 말해 이해가 안 가는군요.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1908년 당시보다 현재 다이아몬드 가격이 1,000배 높습니다. 따라서 컬리넌I의 가치는 25억 달러가 돼야 합니다. 자미르 청장님의 계산법에 따르면 슈퍼노바 나석 3개의 총가치는 175억 달러가 됩니다.”
“헉! 말도 안 되는 가격입니다.”
“어떤 부분이 말도 안 된다는 건가요?”
“다이아몬드 가격 상승률로 계산하는 걸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금 가격 상승률로 계산하는 현재 금 시세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건가요? 1908년 온스당 20.67달러였던 금 가격이 현재 2,177달러입니다. 하지만 자미르 청장님의 계산 방식이라면, 454달러가 돼야 합니다. 이것이 정확한 계산법인가요?”
“그……. 그것은…….”
창수는 자미르가 선택한 계산 방식의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했다.
미국 달러의 가치 변동은 114년간 22배. 반면, 금은 같은 기간 동안 104배 상승했고, 다이아몬드는 1,000배 상승했다.
달러를 바탕으로 금과 다이아몬드의 가치를 평가하면, 현저한 저평가가 된다.
금 1온스를 현재 시세보다 낮은 454달러로 매입할 수 없듯이, 컬리넌I의 가치를 5,500만 달러로 평가할 수 없다.
자미르는 창수의 논리적 반론에 할 말을 잃었다.
“카타르퍼스트에서 슈퍼노바 나석을 모두 구매하기는 어려울 것 같군요. 1,500캐럿 나석의 가격은 125억 달러입니다. 550캐럿 나석은 각각 25억 달러고요. 경제적인 여유가 되는 대로 고르십시오.”
“너무 큰 금액이라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3일만 여유를 주십시오. 답을 가지고 오겠습니다.”
“3일은 너무 늦고 2일로 하죠.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서 슈퍼노바를 보신 모든 분이 서약서대로 비밀을 엄수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것은 염려하지 마십시오.”
자미르는 10억 달러 선에서 슈퍼노바를 매입하려 했다. 협상을 편하게 하려고 3억 달러로 후려친 것이 175억 달러까지 가격이 급등하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카타르퍼스트 자산이 3,200억 달러라고 하지만, 175억 달러라는 거금을 단독으로 처리할 수 없다. 윗선의 결단이 필요한 상황.
자미르는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김근홍의 저택을 떠났다.
* * *
“선배님, 카타르가 175억 달러를 지불할까요?”
“절대로 못 하지. 그 돈을 썼다가 무슨 욕을 먹으려고.”
“하하하. 그러면 가격 책정이 과도한 거군요. 제가 악덕 장사치가 된 겁니까?”
“악덕 장사치는 아니지만, 과도한 가격은 맞아. 컬리넌I의 시장 가치가 4억 달러야. 자미르가 평가한 방식으로 슈퍼노바의 가치를 계산하면 28억 달러가 나와.”
“차이가 크군요. 이유가 뭡니까?”
자미르가 떠난 뒤 김근홍은 슈퍼노바 나석 3개의 시장 가치가 예상외로 낮다고 말했다.
창수가 계산한 것보다 147억 달러 적은 금액. 창수는 이론과 실제가 차이 나는 원인을 알고 싶었다.
“1캐럿처럼 매매가 빈번한 다이아몬드의 가격은 1908년보다 1,000배 상승한 것이 맞아. 그러나 컬리넌I처럼 매매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다이아몬드는 추정으로 가격을 매길 수밖에 없어. 그리고 그 추정이 과도한 상승을 막는 거지.”
“아하. 환금성이 떨어지는 것이 영향을 미치는 거군요.”
“바로 그거야. 매매가 적으면 가격도 떨어져.”
환금성은 자산을 현금화할 수 있는 정도를 말한다.
금의 경우 환금성이 매우 높다. 게다가 현금으로 바꾸지 않고도 직접 대금으로 결제하는 예도 있다.
반면, 다이아몬드는 높은 가치에 비해 현금화하는 것이 매우 느리고 어렵다.
다이아몬드 투자에서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경우가 있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낮은 환금성이다.
“카타르가 슈퍼노바 가격을 얼마로 책정할까요?”
“자미르가 호갱님 한 덕분에 25억 달러 이하로는 못 부르겠지. 네가 흥정을 잘하면 35억 달러도 받을 수 있을 거야.”
“예상보다 수입이 좋군요. 하긴 자미르가 슈퍼노바 나석 가격을 컬리넌I의 7배로 정했으니, 카타르도 어쩔 수 없겠습니다.”
“크크크. 겉보기에는 멀쩡한데 완전히 허당이지. 우리가 상대하기는 가장 좋은 VIP 고객이고.”
자미르가 매입 가격을 낮추려고 최선을 다했으나, 결과적으로 최저가만 확정해 버린 꼴이 되고 말았다.
한 단어로 표현해 호갱.
창수와 김근홍은 협상에서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카타르퍼스트의 반응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