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8장. 10캐럿은 너무 가볍다
1.
“마적단에 현상금이 걸려 있나요?”
“그렇습니다. 이번에 습격한 자들은 와르카 마적단으로 수년간 열차 통행을 방해한 악질 범죄자들입니다. 당연히 현상금이 걸려 있죠.”
“그자들이 정말 마적단인가요? 무기와 장비를 보면 웬만한 군대보다 강할 것 같더군요.”
“약탈을 통해 마법물품을 빼앗아 강해졌습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와르카 마적단에 힘을 보태 준 것이 우리 열차입니다.”
‘흠. 이제 마적들이 방어구를 착용한 이유를 알겠군. 승객들을 보급병으로 삼은 거야.’
물리방어력을 높이는 마법방어구는 금나라에서 구하기 어려운 중급 마법물품이다.
창수는 마적단이 귀물을 다량 보유하고 있는 것을 의아하게 여기고, 뒷배에 강력한 권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애쿠렌의 말을 들으니 이해가 됐다. 마적단이 주기적으로 열차를 공격해, 승객들이 보유한 마법물품을 지속적으로 갈취했고, 그것을 자양분 삼아 강해진 것이다.
“와르카 마적단의 수가 얼마나 되는 건가요?”
“정확한 숫자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300명은 족히 넘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 습격한 자들이 전부가 아니군요.”
“그렇습니다. 대략 마적단 절반이 이번 기습에 참가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마적을 처단하는 것 못지않게, 마법물품을 챙기는 것이 중요한 일이겠네요.”
“맞습니다. 그래서 마법물품 확보할 인원을 이미 보냈습니다.”
마적단의 습격이 있었어도 선양행 열차는 멈추지 않았다. 촌각을 다투는 급한 일을 가진 승객이 존재할 수 있고, 매복한 마적단에게 2차 공격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쿠렌은 마적단 시체에서 마법물품을 회수할 목적으로 열차 밖으로 병력을 보냈다.
“위험하지 않을까요? 마적단도 마법물품을 챙기려 들 텐데요.”
“마적단의 피해가 심해서 정비에 시간이 걸릴 겁니다. 그리고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와르카 마적단의 힘을 약화할 절호의 기회니까요.”
“음……. 이건 또 다른 전투군요.”
“그렇게 봐야죠. 그래서 양해를 구할 것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마적단으로부터 확보한 마법물품의 소유권을 고객님께서 양보해 주시기 바랍니다.”
갑자기 애쿠렌이 훅 치고 들어온다.
금나라의 불문율은 [승자가 패자의 모든 것을 가진다]이다. 그에 따르면 창수가 처단한 마적 82명이 가진 물품은 모두 창수 소유가 돼야 한다.
애쿠렌은 창수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포기하라고 말하고 있다.
“열차 내에서 죽은 마적들의 마법물품은 어떤가요?”
“그건 당연히 고객님의 소유물입니다.”
“좋습니다. 열차 밖에서 죽은 마적들의 물품은 모두 포기하겠습니다.”
‘열차 밖에서 총탄에 죽은 마적들은 방어구가 없는 졸개들이 분명해. 영양가 없는 거 포기하는 게 낫지, 그리고 물품 챙기는 사람들에게도 떨어지는 게 있어야 하잖아. 목숨을 거는 건데.’
돈만 있으면 하급마법 물품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중요한 건 마법방어구 같은 중급 마법물품이다.
창수는 RPG게임에서 인벤토리 무게만 채우는 잡템을 버린다는 생각으로 애쿠렌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흔쾌한 양보 감사합니다. 그러면 현상금은…….”
창수가 받은 현상금 총액은 금 2,990냥이었다. 이것은 금 112kg 한화 78억 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와르카 마적단이 보유한 마법물품의 가격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은 금액이지만, 일반적인 마적단 현상금보다 10배 이상 높은 금액이다.
이런 고가의 현상금이 나온 것은 창수가 처단한 크루카가 와르카 마적단의 부두목이었기 때문이다.
‘고위험 고수익이라는 건가? 어쨌든 보유 자금이 늘어서 다행이군.’
창수는 160km에 불과한 기차여행(?)이 생각보다 위험했다는 걸 알게 됐다. 만약 투명망토가 없었다면, 꼼짝없이 마적단에게 당했을 터.
크루카도 마찬가지. 단순히 성질 급한 돌격대장 정도로 생각했으나, 마적단 두목의 친동생이자 부두목이었다.
창수 혼자서 상대할 등급이 아니었다. 독검을 사용하는 타무의 조력이 있었기에 크루카를 처단할 수 있었다.
자칫 작은 실수와 스탭이 조금만 꼬여도 생명을 잃었을 상황. 실패를 가정해보니 모골이 송연해진다.
그런데도 위안이 되는 건, 현재 확보한 금이 189kg에 달한다는 점. 게다가 창수는 쉽게 구할 수 없는 마법방어구를 손에 넣게 됐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오늘 같은 수익이 있다면, 창수는 망설이지 않고 모험에 도전할 거다.
2.
“어서 오십시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금강석을 구매하러 왔습니다.”
“어떤 용도로 사용하실 건가요?”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할 겁니다. 제가 찾는 건 결정이 큰 금강석입니다.”
선양에 도착한 창수가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금나라에서 가장 큰 광산업체 호리가이광업이었다.
다이아몬드는 보석으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채광된 다이아몬드 원석의 25%만 보석용으로 가공되고, 나머지 75%가 공업용-산업용으로 사용된다.
석재를 자르고 연마하는 절삭기, 금속을 정밀하게 성형하는 도구, 외과수술을 위한 칼, 그리고 대형굴착장비의 톱날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금나라에서 다이아몬드를 보석으로 취급하지 않지만, 여전히 다양한 분야에 쓰임이 있다.
호리가이광업의 영업담당자는 창수에게 어떤 일에 필요한 다이아몬드를 찾는지 물었으나, 창수는 용도를 얼버무린 채 크기만을 강조했다.
- 슥!
“이쪽으로 가시죠. 큼직한 금강석 원석을 모아놓은 곳입니다.”
‘오! 이 사람 영업 잘하네. 대충 이야기했는데도 착착 잘 알아듣는구만.’
느낌이 좋다. 영업담당자가 말귀를 잘 알아들으니까.
간혹 미숙한 영업사원은 고객이 원하지 않는 정보를 시시콜콜 가르쳐주거나, 불필요한 것을 캐묻는 경우가 있다.
창수가 원하는 건 무조건 큰 다이아몬드다. 영업담당자 이바하는 그걸 단번에 캐치하고, 큰 원석이 있는 곳으로 창수를 안내했다.
“흠……. 이게 제일 큰 건가요? 더 큰 건 없나요?”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데 채 1분이 걸리지 않았다. 창수의 눈에 들어온 다이아몬드 원석은 대부분 14mm 크기였다. 무게를 재보면 얼추 10캐럿이 될 정도.
한국에 가져가면 이것도 큰돈이 된다. 그러나 창수는 만족할 수 없었다. 원석이 최소 20캐럿은 돼야 세공 후 10캐럿 다이아몬드를 만들 수 있으니까.
“웬만한 건 다 이 크기로 해결될 겁니다.”
“아니요. 이거보다 더 큰 금강석 원석이 필요합니다. 더 큰 거 있나요? 없나요?”
창수는 말을 돌리는 이바하에게 조금 짜증이 섞인 말투를 사용했다. 그의 말을 다 들어주면, 언제 자신이 원하는 답을 들을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있기는 있습니다. 하지만 채굴된 건 모두 계약을 마쳐서 판매할 수가 없습니다.”
“언제쯤 추가분이 생기나요?”
“아……. 그것이……. 10년간 장기계약이 돼 있어서요. 당분간 판매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큼! 장기계약이라……. 돈 될 만한 거에 침을 발라놓은 자가 있군.’
뒤통수가 얼얼하고, 가슴이 싸하다. 마치 보물지도에 표시된 장소에 가보니, 다른 사람이 보물상자를 이미 파간 느낌.
“언제 장기계약을 한 건가요?”
“작년 말부터입니다.”
“누가 계약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죄송합니다. 그건 회사 규정에 어긋나는 일이라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큰 금강석이 정말 필요해서 그렇습니다. 호리가이광업에서 안 된다면, 독점 계약한 사람에게서 되사기라도 해야 합니다.”
“되사기가 만만치 않을 겁니다. 시가의 두 배로 장기 계약했거든요.”
보물을 놓쳤지만, 포기는 없다. 창수는 금강석 장기계약자의 신원파악에 집중했다. 이바하는 정보제공에 난색을 보였으나, 창수의 끈질긴 질문에 적지 않은 정보를 내놔야 했다.
* * *
“어떻게 오셨습니까?”
“금강석을 구매하러 왔습니다.”
“예? 우리 회사는 금강석을 판매하는 곳이 아닙니다.”
2022년 2월 26일 오전 9시, 창수는 묵떤산업이라는 이름을 가진 회사에 방문했다.
영업담당 차호아는 금강석을 사고 싶다는 창수의 말에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채굴 장비를 제작하는 회사라는 것 알고 있습니다. 금광석을 많이 확보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요.”
창수는 어제 호리가이광업을 방문한 데 이어, 메이저급 광산업체 4곳을 추가로 방문했다. 그리고 묵떤산업이 10캐럿 이상 크기의 다이아몬드는 독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걸림돌의 정체를 알게 된 창수는 회사에 대해 정보를 모았다.
묵떤산업은 한국에서 사용하는 TBM(Tunnel Boring Machine)과 유사한 대형 굴착기를 만들었다.
TBM은 최대 직경 14.3m에 달하는 거대한 원통구조를 가지고 있고, 전면에 공업용 다이아몬드가 박힌 톱날이 장착돼 있다.
묵떤산업이 제작하는 대형 굴착기는 직경 7m 수준이다.
“음……. 어떤 말을 듣고 오셨는지 모르지만, 우리 회사는 금강석을 사기는 해도, 팔지는 않습니다.”
“채굴 장비에 소모되는 금강석보다 2배 많은 재고를 가지고 있지 않나요? 남아도는 금강석을 파십시오. 묵떤산업이 구매한 가격에 2배를 지불하겠습니다.”
“그……. 그것은…….”
창수가 묵떤산업의 내부사정을 파악한 뒤 치고 들어오자, 차호아가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예상치 못한 공세에 당황한 것.
“어차피 묵떤산업으로 금강석이 계속 들어올 것 아닌가요? 남는 재고를 이윤 받고 파는 게 회사 이익에 도움이 될 거라고 봅니다.”
“이건 제가 결정할 사안이 아닙니다.”
“그러면 누구와 이야기를 해야 하나요?”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기업은 기본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조직이다.
차호아는 처음 창수가 진상 방문객이라 생각했으나, 구체적인 내용을 들어보고 마음이 달라졌다.
창수 말대로 묵떤산업은 선양에 근거를 둔 메이저 광산업체 5곳과 장기독점 공급 계약을 맺고 있다.
남아도는 금강석을 2배 가격으로 되파는 것이 회사 이익에 부합한다.
차호아는 창수에게 양해를 구하고 윗선에 보고하러 갔다.
* * *
“금강석 구매를 원한다고요? 혹시 우다운공업에서 왔습니까?”
“우다운공업이요?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
차호아가 자리를 비운 뒤 20분 정도 지나고,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창수를 찾아왔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고 다짜고짜 우다운공업을 거론했다.
창수는 생소한 업체 이름이 나오자, 사실 그대로 모른다고 대답했다.
- 쾅!
“이봐! 지금 나하고 장난하자는 거야!? 선양에서 우다운공업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너 첩자지!?”
갑자기 거칠어지는 분위기.
40대 남자는 창수가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자,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허허허! 이거 개 싸가지가 한 마리 있었네!”
“뭐……. 뭐라고!?”
“너!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매타작 한 번 당하고 싶냐?”
묵떤산업의 간부로 보이는 40대 남자는 상대를 잘못 골랐다.
악명 높은 와르카 마적단 82명을 처단한 인간병기의 성질을 건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