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6장.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5.
“톄쟈방이라면 80리는 떨어져 있어야 하는데, 여기는 어떻게 온 거요?”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손님들이 피하니까, 우리가 먼 거리를 움직인 겁니다.”
“비……. 빌어먹을…….”
당당하던 천진우가 낭패감을 나타냈다. 그도 그럴 것이,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못 막을 상황이 벌어졌으니까.
본래 의주 인근 밀무역은 서쪽으로 30km 떨어진 압록강 하구에서 이루어졌다.
천진우는 하구 지역에 자리 잡은 산적들을 피하고자, 의주 동쪽으로 8km 떨어진 지점에서 압록강을 넘은 거다.
문제는 톄쟈방이 인근에서 가장 악명이 높은 산적이라는 점.
“뭐 그렇게 놀릴 필요 없습니다. 손님이 보호비를 준다면, 아무런 일이 없을 겁니다.”
어르고 뺨 때린다. 톄쟈방 두목 호이파는 특유의 유들유들한 목소리로 재물을 내놓으라고 말했다.
말은 부드러웠지만, 소총과 칼로 무장한 산적 40여 명이 안주상단 전면을 가로막은 상태.
그에 맞서 상단 사람들도 무기를 들고 있다. 행수 천진우의 결정에 따라 피튀기는 전투가 벌어질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얼마를 원하시오?”
“등에 지고 있는 홍삼 절반을 받으면 되겠죠.”
“그건 너무 과하오!”
“4배 장사 아닌가요? 절반을 보호비로 내도 이문이 충분히 남을 겁니다. 아니면 모두 잃고 황천으로 가시던가.”
“말 함부로 하지 마시오! 황천으로 가는 게 누구인지 해봐야 아는 일이오! 그리고 통행료는 통상 3할이오!”
천진우가 호이파와 협상에 들어갔다.
밀무역은 매우 위험한 장사다. 국가의 보호는커녕 발각 시 중형을 면치 못한다. 그런데도 밀무역이 끊이지 않는 건 수익이 통상적인 거래보다 월등히 높기 때문이다.
밀무역하는 상인도 위험을 인지하고 만만치 않은 대비를 한다. 안주상단 역시 소총 10정을 보유하고 있다.
전투를 벌이면 톄쟈방이 안주상단을 이길 가능성이 높지만, 산적 상당수가 죽거나 다칠 것이 분명하다.
“3할은 우리가 가만히 앉아서 손님을 받을 때 이야기고요. 지금 80리를 걸었으니 발품 값은 나와야 합니다.”
“우리 상단이 이쪽으로 넘어오느라, 관에 미리 사용한 비용이 있소. 3할 5푼 정도로 합시다!”
“쓸모없는 똥파리에게 재물을 낭비하셨군요. 좋습니다, 보호비 4할로 하죠.”
“흠……. 알겠소. 4할로 합시다.”
“그리고 다음에는 건너올 자리를 미리 알려 주세요. 2할 5푼으로 해드리겠습니다.”
“그건 좀 생각해 봅시다.”
다소 실랑이가 있었으나, 원만하게 합의를 봤다.
추가 비용이 발생했지만, 안주상단은 여전히 일반적인 거래에 비해 큰 이윤을 남길 수 있다.
그들이 보유한 6년근 홍삼은 모두 2,000근(600kg)이다. 조선에서 홍삼 1근은 200환에 거래된다.
홍삼 1근을 금나라에 팔면 1근에 800환을 받을 수 있다. 남은 1,200근의 가치가 96만 환에 이른다.
원가 40만 환을 계산하고 압록강을 넘으면서 사용한 10만 환을 제해도 46만 환(한화 4억 6천만 원)에 달하는 수익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톄쟈방은 단번에 64만 환을 챙길 수 있게 됐다. 피해 없이 쏠쏠한 수익이 생긴 거다. 흡족한 호이파가 천진우에게 다음을 기약할 정도로 만족할 만한 성과.
- 척!
- 스슥!
합의에 따라 안주상단 사람들이 등짐을 내리고 홍삼을 나누기 시작했다.
줄 건 주고 빨리 떠나자는 생각에 작업이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 * *
- 탕!
- 팍!
“큭! 이놈! 이게 무슨 짓이냐!?”
호이파에게 홍삼 40%를 떼어주고 길을 떠나려던 천진우가 갑자기 날아온 총탄에 맞았다.
다행히 심장을 빗나가 왼쪽 어깨에 맞아 생명에 지장이 없다. 배신당한 천진우는 합의를 어기고 공격한 호이파에게 노호성을 질렀다.
“%^%$$! %#@%!?”
“&^%#&! &^^$! $#%%!”
그러나 호이파는 천진우에게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총알을 발사한 산적에게 만주어로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방금 벌어진 총격이 호이파의 뜻이 아니라는 증거.
족히 신장 2m는 돼 보이는 거대한 체구를 가진 산적은, 호이파의 질책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맞고함을 질렀다.
톄쟈방 내부에 내분이 일어난 것이다.
- 사사삭!
산적들이 2패로 나뉘었다. 10명이 호이파쪽으로 모이고 나머지 30여 명이 거구의 산적 근처로 모였다.
순식간에 톄쟈방 권력이 거한에게로 옮겨진 상황.
“조선 놈들! 살고 싶으면 모든 걸 내려놔! 퉁기야 다 가진다!”
자신을 퉁기야라고 말한 거한이 어눌한 한국말로 협박을 시작했다.
“헛소리하지 마! 네놈을 어떻게 믿고 물건을 줘!?”
“그럼 죽어라!”
악에 받친 천진우가 전의를 불태우자, 안주상단 사람들이 전투 준비에 들어갔다. 이제는 죽든 살든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퉁기야는 안주상단의 결의를 보고도 히죽 웃으며 무시했다.
호이파와 달리 퉁기야는 산적에게 피해가 얼마가 가든 욕심만 채우자는 생각을 가진 자였다.
단순히 재물을 빼앗는 것보다, 피를 보고 사람 죽이는 것을 좋아하는 잔인한 성품을 가지고 있다.
- 탕! 탕!
- 팍! 팍!
“컥!”
“우아악!”
하지만 퉁기야는 산적다운 모습을 오래 유지하지 못했다. 기습적으로 날아온 총알에 머리가 뚫리면서 그대로 즉사한 것.
그리고 총알은 계속해서 날아와 퉁기야 편에 섰던 산적들을 쓰러트렸다.
일부 반응이 빠른 산적들이 총알이 날아온 방향으로 반격을 시도했으나, 바위에 막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산적 놈들! 쓸어버려!”
- 탕! 탕! 탕!
퉁기야 패거리가 우왕좌왕하자, 기회를 잡았다고 판단한 천진우가 공격 명령을 내렸다.
안주상단이 보유한 소총 10자루가 일제히 총알을 발사하자, 산적 5명이 땅바닥에 꼬꾸라졌다.
‘시선이 분산되는군!’
퉁기야를 처단한 건 창수였다.
창수는 천진우가 호이파와 협상을 시작할 때, 투명망토를 가동하고 조용히 뒤로 빠졌다. 협상이 무산 될 때를 대비해 플렌B를 가동한 것이다.
그는 40m 후방에 있는 바위를 엄폐물로 삼은 뒤, 협상 과정과 홍삼 나누는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호이파와 천진우가 일종의 상행위를 하고 있다 여긴 것. 호이파에게 조금 호감이 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산적은 산적이었다. 퉁기야가 두 집단의 합의를 어기고 패악질을 벌이자, 응징에 나섰다.
창수는 초반 공격으로 6명을 쓰러트렸으나, 산전수전 다 겪은 산적들의 반격이 빨라 추가 공격을 중단하고, 바위 뒤에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안주상단이 공격을 시작한 뒤, 창수를 향하는 총탄의 수가 줄자 한숨 돌리게 된 것.
‘좋아! 자리를 이동하자!’
- 사사삭!
산적들이 사용하는 총기는 종이탄피로 만든 총알을 한 발씩 집어넣고 사용하는 볼트액션 소총이다.
발사 후 재장전에 시간이 걸린다.
모든 공격이 창수에게 집중됐다면 창수가 움직일 수 없지만, 안주상단의 참전으로 틈이 생겼다.
- 탕! 탕!
- 팍! 팍!
“크아악!”
“우악!”
15m 떨어진 두 번째 바위로 이동한 창수가 공격을 재개하자, 산적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시작했다.
10명이 넘는 병력 손실이 있는 상태에서 공격 대상이 첫 번째 바위와 안주상단으로 분산되니, 창수를 향해 날아오는 총알 수가 급격히 줄어든 것.
“그만하시오! 총을 거두시오!”
창수가 14명, 안주상단이 8명, 퉁기야 패거리 22명이 쓰러진 시점에서, 호이파가 전투 중단을 외쳤다.
“사격 중지!”
호이파에 호응해 천진우도 공격 중단 명령을 내렸다.
- 행수님! 이참에 산적들을 쓸어버려야 합니다!
- 맞습니다! 상도도 모르는 산적들을 이대로 놔둬서는 안 됩니다!
- 지금 놔주면, 다음에 또 배신할 겁니다!
천진우의 명령대로 총격을 멈췄지만, 독이 오른 안주상단 사람들은 산적들과 끝장을 보자는 각오를 보였다.
배신자에게 응징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중론.
“자네들 심정 알고 있네. 하지만 톄쟈방 두령은 나름대로 합의를 지킨 걸세. 만약 두령이 공세에 합세했다면, 우리 상단 여럿이 죽었을 거야.”
“그건 그렇지만…….”
퉁기야 패거리와 교전으로 4명이 부상당했으나, 모두 어깨와 팔에 총탄을 맞았다.
목숨이 위태로운 중상자 없는 이유는, 호이파와 그를 따르는 산적들이 전투에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거친 산사람들이라 물욕을 제어하기 힘들었습니다. 여기는 우리가 정리할 테니 갈 길 가시지요.”
오늘 동원된 톄쟈방 인원은 모두 43명이다. 부하에게 배신당하고 절반이 넘는 병력 손실을 봤음에도 호이파는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그는 톄쟈방의 전력이 급속히 약해진 지금, 가능한 한 빨리 안주상단과 멀어져야 한다고 판단한 뒤, 천진우에게 이동하라고 종용했다.
“잠깐! 세상을 너무 만만하게 보는 것 아니오? 홍삼 내려놓고 몸만 빠져나가시오! 그래야 셈이 맞소!”
“어디서 오신 귀인인지 모르지만, 욕심이 과하시군요. 본인은 합의를 지켰습니다.”
“당신은 합의를 지켰는지 모르지만, 톄쟈방은 지키지 못했소! 게다가 부하 단속을 못 한 당신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지!”
호이파의 수작을 가로막은 사람은 창수였다.
창수는 집단과 집단의 합의가 깨졌다는 걸 지적하며, 호이파의 주장이 가진 맹점을 공략했다.
“음……. 체탐인 이십니까?”
“그건 당신이 알 것 없소. 중요한 건 내가 능히 당신들을 상대할 수 있다는 거요. 믿을 수 없다면, 시험해 봐도 좋소.”
“심계도 뛰어나고, 무력도 뛰어나고, 상대하기 싫은 사람이군요. 좋습니다. 톄쟈방은 몸만 빠져나가겠습니다.”
호이파는 창수가 체탐인일 가능성을 생각했다. 금나라로 잠입하는 체탐인은 뛰어난 장비와 실력을 가진 정예요원이다.
가능한 한 피하고 싶은 상대.
호이파는 창수가 자신의 힘을 월등히 넘는 강자라는 걸 알아보고 인정했다.
설령 창수가 체탐인 아니라도, 강자가 목숨을 살려준다고 할 때, 물러나는 것이 현명하다.
- 척! 척!
-저벅! 저벅!
호이파는 홍삼을 내려놓고 떠났다. 총알에 맞아 쓰러진 22명 중 죽지 않은 자가 5명. 그중에서 걸을 수 있는 3명은 부축해 가고, 걸을 수 없는 2명은 처단하는 과단성까지 보여줬다.
* * *
“정말 감사하오! 자칫하면 우리 상단이 여기서 무너질 뻔했소! 이 은혜 잊지 않겠소!”
“같은 조선 사람으로서 응당해야 할 일을 한 겁니다.”
톄쟈방이 눈앞에서 사라진 뒤 천진우가 창수에게 감사 인사했다. 목숨을 구원받았으니 당연한 일이리라. 그리고 동시에 보답 받은 것 이기도 하다.
천진우가 친근하게 대하지 않았다면, 창수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목숨은 구해 줬겠지만, 홍삼까지 되찾아 주지는 않았을 터.
“그런데 정말 체탐인이오?”
“행수님. 서로 알아서 좋을 일 없다고 생각합니다.”
“커험. 하긴 그렇소.”
서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지켜야 한다.
천진우는 창수의 말을 알아듣고 강렬한 호기심을 차갑게 식혔다.
“빨리 금창약하고 붕대 가지고 와서 부상자 치료해! 나머지 인원은 사주 경계하고!”
천진우는 부상당했지만, 행수로서 책무를 잊지 않고 사고 수습에 나섰다.
- 척!
- 슥!
안주상단이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창수는 죽은 퉁기야 패거리의 총기와 물품을 수거했다. 금나라 무기 수준을 파악하고 물품을 통해 정보를 얻기 위해서.
천진우를 비롯한 안주상단 사람들은 창수의 행동을 보고 체탐인이라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
‘어! 이건 뭐지? 혹시…….’
퉁기야가 가지고 있던 주머니를 열어본 창수는 달빛에 비친 오묘한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라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