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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평행우주 독식-17화 (17/200)

17화 6장.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1.

“영감. 집히는 데라도 있으십니까?”

“군기시 제조가 내 죽마고우일세.”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 친구가 몇 달 전에 신형탄피 개발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어.”

“신형이라면, 무엇을 새롭게 만드는 건가요?”

“조금 황당한 얘긴데, 탄피를 금속으로 만든다는 거네.”

군기시는 조선에서 방위산업청과 유사한 역할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각종 무기를 비롯해 군에 관련된 물자를 조달하고, 생산을 감독한다.

최상민은 친우 군기시 제조 허민이 금속탄피를 개발 중이라는 말을 뇌리에 떠올렸다.

“총알 숫자가 어마어마합니다, 탄피를 금속으로 만들면 비용이 엄청날 건데요. 굳이 그걸 개발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 친구 이야기로는 금속탄피로 만든 총탄 위력이 종이탄피보다 몇 배 강하다는 거야.”

“그런 장점이 있다면 개발할 만하지요……. 아! 설마…….”

박시우는 최상민이 무엇 때문에 금속탄피 이야기를 하는지 깨닫게 됐다.

포도청의 실무를 관장하는 종사관으로 적지 않은 사건을 해결한 수사 본능이 발휘된 것,

“금속 탄피가 비현실적인 공상이라고 여겼네. 그런데 자네 이야기를 들으니 현실에 존재할 가능성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

“그렇군요. 금속탄피를 사용했다면, 탄두 후방에 눌린 자국이 있는 것이 설명됩니다.”

“그리고 자네가 탄피를 발견하지 못한 이유와 범인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것도 설명되지.”

“영감. 수사를 확대해야겠습니다. 월랑부대 사체가 있던 장소에서 100장(303m)까지 수색을 넓히겠습니다.”

“그리하게. 오후에는 나도 현장에 나갈 테니, 그때 이야기를 더 함세.”

좌포도청에 종사관이 3명 있지만, 그중에 박시우가 가장 선임이다.

좌포도청의 1인자와 2인자는 아주 작은 단서를 가지고, 월랑부대 처단 사건의 실체 파악에 한 걸음 다가섰다.

* * *

- 후비적

‘누가 내 욕하나? 왜 이리 귀가 가려워?’

좌포도청에서 수사에 박차를 가할 때, 창수는 한양에 남아 있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거점에서 푹신한 에어 매트에 누워 꿀잠을 자다가 방금 깨어났다.

북한산 기슭과 인접한 거점은 중부형 전통한옥과 형태를 가지고 있다. 안방과 건넌방 사이에 대청이 있고, 안방 아래 부엌이 위치한 구조다.

전통한옥과 차이점은 단열과 방풍이 잘돼있어, 방에 외풍이 들지 않는다고 따뜻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난방이 전통 온돌 방식이지만, ‘황탄’이라는 특수한 연료를 사용한다. 석탄의 1/4 동일한 화력을 나타내고 일산화탄소 배출이 거의 없다.

조선이 전반적으로 한국보다 과학기술이 떨어지지만, 황탄은 한국에서 판매하는 어떤 연료보다 진보된 성능을 가지고 있다.

어제 거사를 치르고 거점으로 돌아온 창수는 포근한 안방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월랑부대 놈들이 상태가 어떨까? 인터넷이 안 되니 답답하네.’

조선이 뒤떨어지는 분야의 하나가 정보통신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안 되는 건 물론이고, 텔레비전도 없다.

라디오가 전국적으로 방송된 것도 불과 5년 전이다.

창수는 월랑부대원 몇 명이 사망했는지, 그리고 송본귀금속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궁금했다.

‘시장을 돌아다니는 건 너무 위험해. 그러면 인의방을 찾아갈까? 아니야. 지금은 인의방이 더 위험할 수 있어.’

수많은 정보가 오가는 시장이라면, 월랑부대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거다. 문제는 대형사고가 터진 다음 날이라, 창수의 행적이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그렇다고 정보단체 인의방에 찾아가는 건 구렁이 입안으로 들어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들이 월랑부대와 관련된 정보를 창수에게 팔기는 했지만, 대량 살상이 일어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거다.

지금 창수가 벌인 대형사고에 적잖이 당황하고 있을 터.

창수를 만나면 과도한 추가 비용을 요구하거나, 포도청에 고변할 가능성이 있다.

당분간 인의방과 거리를 둬야 한다.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는군. 잠잠해질 때까지 서울에서 호캉스나 할까?’

호캉스는 호텔과 바캉스를 합한 말이다. 풀어서 말하면 바캉스를 혼잡한 관광지가 아니라 호텔에서 보내는 것.

호텔에서 잠자리, 음식, 스파, 수영, 헬스 등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 돈만 있으면 아무런 생각 없이 편하게 휴식을 할 수 있는 거다.

최근 창수가 러시아와 한양에서 피나는 혈투를 벌였다는 걸 생각하면, 이쯤에서 휴식을 가지는 것도 좋으리라.

- 주섬 주섬.

창수는 서울로 이동하기로 결심하고, 거점 안방을 정리했다.

‘남자 방이 이 정도면 깔끔하지. 여기에 전자레인지와 냉장고만 들여오면 딱인데, 고기도 좀 채워 넣고……. 어! 잠깐! 그러면 되겠네!’

예상보다 거점이 마음에 든 창수는 아예 살림을 차릴 기세다. 마법자루에 집어넣고 이동할 수 있는 가전제품들을 머릿속에서 리스트업하고, 음식물 구매도 생각했다.

그리고 일련의 생각이 이어지며 불현듯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2.

“소고기 한 근에 얼마인가요?”

“우둔은 3환이고요. 영지는 4환 50전, 등심은 8환입니다.”

“좀 많이 살 건데 배달되나요?”

“얼마나 사실 건데요?”

“우둔, 영지, 등심 1,000근씩 주세요.”

“예!? 얼마라고요?”

“1,000근씩 살 겁니다. 배달됩니까?”

“당연히 되죠! 주소만 말하십시오!”

우둔은 엉덩이 살이다, 지방이 적어 장조림을 만들거나 육포를 만들기에 적당하다. 양지는 복부쪽 살로 지방이 많아 국거리에 좋다. 등심은 갈비뼈 바깥쪽 살이다. 고기가 부드러워 구이용으로 사용한다.

창수는 3가지 부위를 1,000근씩 구매했다. 3,000근이면 1,800kg, 아무리 대식가라도 혼자 먹기는 불가능이다.

푸줏간 주인은 창수가 기껏해야 10근 정도 주문할 거라 생각하고, 배달을 거절하려 했다. 20근 이상 팔지 않으면 배달비를 뽑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3,000근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주소만 부르면 어디든지 갈 태세.

“여기로 배달해 주세요.”

“아……. 여기는…….”

“왜요? 배달이 어렵나요?”

“아닙니다. 이미 대금을 치르셨으니 문제없습니다. 떼일 염려가 없으니까요.”

창수가 배달할 주소를 보여 주자 푸줏간 주인은 잠시 주저하는 반응을 보였다.

고기값 15,500환을 먼저 받지 않았다면, 배달 거부를 했을지도 모르는 장소였다.

* * *

“흐미! 사장님! 귀한 쇠고기와 쌀을 이러코롬 많이 가지고 오셨다요?”

“저번에 나눠드린 거 슬슬 떨어질 때가 된 것 같아서요. 아무래도 명절을 지내다 보면 소비가 빠르지 않겠어요?”

“그라지라! 그라지라! 사장님! 증말 생각이 깊으시구만 요! 잉!”

창수가 소고기 3,000근을 배달시킨 장소는 청계천 판자촌이었다.

그는 싸전에서 쌀 100석도 구매해 배달시켰다. 쌀 한 석은 144kg이다. 100석은 14,400kg에 달한다.

쌀은 중등품이 150환이고, 상등품이 200환이다. 창수가 구매한 건 상등품. 가격 50환 차이에 좋을 걸 사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창수는 소고기와 쌀을 구매하는 데 35,500환을 사용했다. 한화 3,550만 원으로 판자촌 주민들이 한동안 먹을 수 있는 식량을 조달한 거다.

광주 휘발유 박만수는 생면부지 창수가 대량의 먹거리를 기부하자, 고개를 90도로 숙이며 연신 감사 인사를 올렸다.

욕쟁이에 거친 사내지만, 상대방의 선의를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안목을 가지고 있다.

“별말씀을 다 하시네요. 어려울 때 서로를 도와야죠. 그런데 반장님 마을에 송연희라는 아이가 없는 건가요?”

“겁나게 찾아봤는디, 10살짜리 아그만 아니라, 여자 중엔 송연희라는 이름이 자체가 없어부러요.”

창수가 판자촌에 먹거리를 지원한 것은 2022년 1월 29일 이후 지금이 2번째다.

3주 전 첫 번째 지원을 할 때, 창수는 자신을 도와준 연희가 판자촌에서 산다 생각하고 행방을 물었으나, 누구도 행방을 알지 못했다.

당시 박만수는 시간을 들여서 꼼꼼히 찾아보겠다고 했으나, 3주가 지난 지금도 찾지 못했다. 오히려 판자촌에 송연희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조차 있지 않다고 말했다.

‘연희 차림이 판자촌 아이처럼 보이지 않았어. 따지고 보면 연희는 자기가 여기 산다고 말하지도 않았지.’

연희가 판자촌에서 산다는 건 창수가 지레짐작한 거다. 청계천과 판자촌 지리를 잘 알고 있기에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판단한 것.

[정 돈을 주시려면 여기 사람들에게 나눠주세요] 라는 말을 그때 흘려들었으나, 이 말은 연희가 판자촌 아이가 아니라는 걸 나타낸다.

‘주위가 잠잠해지면, 만두가게와 시장 근처를 살펴봐야겠어.’

창수는 은원이 분명하다. 은혜는 은혜로 갚고 원수는 원수로 갚는다.

연희에게 큰 도움을 받은 이상, 반드시 찾아내서 보답하겠다는 것이 그의 의지다.

* * *

“사장님. 막걸리 한잔 하이소.”

“고맙습니다.”

“아휴. 그런말 하지 마이소. 고마운 걸로 치면, 이런 막걸리는 택도 없스예.”

‘크크크. 욕쟁이들이 엄청 친절하군. 만약 내가 그때 숨어서 이 사람들 욕질하고 연장질하는 걸 못 봤다면, 깜빡 속았을 거야.’

판자촌 사람들은 자신들이 창수에게 도움을 준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저 월랑부대가 자신들의 거주지를 침입해서 쫓아냈을 뿐, 월랑부대가 쫓고 있던 사람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은 것.

창수도 불필요한 정보가 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자신이 쫓기던 사람이라는 걸 판자촌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판자촌 사람들의 인식에 창수는 인정 많고 부유한 상인이다.

“충무로 쪽에서 큰일이 벌어졌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어떻게 된 일인가요?”

“마. 그 월랑부대 왜구 놈들 잘 디짔다 아임니꺼.”

“죽은 사람이 우리 조선인이 아니군요. 천만다행이네요.”

“하모요. 이번에 디진 왜구가 27명이라 카더라 예. 속이 훤하게 뚫렸심더.”

‘흠……. 음식점 안으로 도주한 놈 말고, 두 놈이 더 살았군. 완벽하지 않지만, 이 정도면 선방한 거지. 사격연습을 더 해야겠어.’

창수는 월랑부대에 관한 정보를 모으기 위해, 오늘 판자촌에 먹거리를 지원했다.

본래는 2월 말에 도움을 주려 했으나, 거점 안방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가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

판자촌 주민들은 월랑부대와 정면충돌했었다. 월랑부대와 관련된 소식이 민감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창수의 예상은 맞아 들어갔다. 술과 고기로 든든하게 배를 채운 판자촌 주민들이 정보를 술술 풀었다.

“왜놈들은 누가 처단했다고 하던가요?”

“포청에서도 아직 깜깜이라 하더구만 유. 누구인지 몇 명인지도 모른대유. 정말 신출귀몰 하대유.”

“일요일이라 수사가 느린가 보군요. 내일부터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될까요?”

“아니에유. 울 집사람이 포교집에서 일 보는데유. 오늘 비상 걸려서 포교가 충무로로 나갔다고 했어유.”

“포도청 인원을 총동원한 건가요?”

“그렇쥬. 27명이나 죽었으니, 포청에서는 흉내라도 내야쥬. 안 그러면 왜구 놈들 뒷배 봐주는 것들이 가만히 안 있을 거구만유.”

‘포도청과 송본귀금속에 내가 노출되지 않은 것이 확실하군. 내일 거래 마치고 당분간 잠수해야겠어. 오늘 여기 들른 거 정말 잘한 거야.’

예상외로 성과가 좋다. 인의방에 100만 환을 지급하고 얻은 것과 비견될 수준의 고급 정보를 고작 35,500환으로 얻었다.

내일은 그래뉼 250kg을 장두호에게 매각하면, 보유한 금 물량이 200kg을 넘어간다. 서울에서 호캉스를 일주일 즐긴 뒤 태국으로 넘어가면 될 터.

대략적인 일정을 결정한 창수는 판자촌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술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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