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5장. 독하지 않으면 사내가 아니다
6.
- 팍!
- 풀썩!
“습격이다!”
“어떤 놈이야!? 모두 반격해!”
총알 한 방에 월랑부대가 아비규환에 빠졌다.
어디서 총알이 날아왔는지 갈피를 잡지 못한 부대원들이 우왕좌왕했다.
“대장님이 쓰러졌어! 어서! 차량 준비해!”
이번에도 가장 먼저 상황 판단을 한 건, 책사 요시다 시로였다. 그는 저격당한 나카무라 켄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지는 걸 보고, 심상치 않은 상황이 벌어졌다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멍청한 놈들이군. 내가 있는 위치를 모르는 건가? 계속 그렇게 해주면 땡큐지.’
창수와 월랑부대의 거리는 150m. 비록 야간이고 창수가 투명망토를 사용하고 있다고 해도, 월랑부대원들이 총소리 위치를 파악하고 대응하는 움직임을 보여야 할 터.
창수는 예상 이하의 대응 능력을 보이는 월랑부대원에게 비웃음을 날렸다.
- 탕!
- 팅!
‘젠장. 이번에는 빗맞았군. 연습을 더 해야겠어. 고작 이 거리에서 실수라니.’
창수는 지난 3일간 한양 북한산 깊숙한 곳에서 사격 연습을 했다.
10년의 공백이 있지만, 그 대신 조준경이 있다. 150m 정도 거리에서 백발백중을 기대했으나, 결과가 실망스럽다.
과거 조준경 없이도 10발 발사해서 9발 명중시킨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퇴로라 할 수 있다.
이건 연습으로 극복할 수밖에 없는 일이리라.
‘뭐지? 진짜 내 위치를 모르는 건가?’
10발을 발사하고 그중 6발이 명중 했다.
난사가 아니라 정조준해서 사격해, 족히 30초는 흘렀다. 그러나 월랑부대원들은 여전히 총이 발사되는 곳을 찾지 못했다.
‘소음기 성능이 좋아서 그런가?’
AK-201은 발사시 165데시벨의 소음을 만든다. 제트비행기 소리보다 크다.
하지만 거리가 멀어지면 소음이 줄어든다. 150m 떨어진 위치에서 총소리는 70데시벨 정도. 70데시벨은 혼잡한 사무실 소음, 그리고 전화벨이 울릴 때 나오는 소음과 유사하다.
창수가 사용한 소음기는 러시아가 최신 기술로 개발한 것으로 AK-201의 발사 소음을 130데시벨까지 낮춰 준다.
그리고 150m 거리에서 이 소음은 50데시벨이 된다. 50데시벨은 조용한 대화에서 발생하는 소음 수준.
월낭부대원들은 예상치 못한 공격에 서로 고함을 지르며 대응을 독려하고 있다. 그 소음에 총소리가 묻히니, 총알이 어디서 날아오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거다.
“츠쿠무네 부대장님! 대장님을 엎고 자동차에 탑승하십시오! 여기서 머뭇거리다가 때를 놓칩니다!”
“알았다! 시로! 여기 지휘는 네가 맡아라!”
요시다 시로는 보이지 않는 적의 공격이 계속되자 전멸 가능성을 떠올렸다.
월랑부대는 엄격한 규율이 있다. 대장의 지시가 없는 한 적의 공격을 피하거나 도주할 수 없다.
월랑부대장 나카무라 켄이 쓰러진 지금, 부대장 츠쿠무네 사네지가 지휘를 해야 하지만, 책임 추궁이 두려워 감히 병력을 철수시킬 수 없었다.
요시다 시로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대장과 부대장을 동시에 전투에서 이탈시키려 하고 있다.
- 치치칙!
- 탕! 탕! 탕!
“크아악!”
“으악!”
‘쥐새끼 놈들! 어디를 도망가려고! 내가 네놈들을 놓칠 줄 알아!’
요시다 시로가 위기 상황에서 최선의 대응을 했으나, 창수의 이목을 벗어날 수 없었다.
창수는 증기자동차가 천천히 움직이는 장면을 목격하고, 차량을 향해 총탄을 난사했다.
총알 11발이 자동차를 가격해 벌집을 만들었고, 차안에 탑승한 3명 모두 절명했다.
- 척!
- 철컥!
‘총알 넉넉한데 자린고비처럼 아낄 필요 없지! 막 갈기는 거야!’
첫 번째 탄창 30발을 다 비운 창수는 마법자루에서 두 번째 탄창을 빼내 갈아 끼웠다. 그가 준비한 탄창은 모두 30개, 총알 900발을 발사 대기 상태로 준비한 것이다.
총알이 충분한 상황. 창수는 부족한 사격술을 난사로 커버하려 했다.
- 탕! 탕! 탕!
- 팅! 팅! 팍!
“우아악!”
물량에 장사가 없다.
창수가 난사를 시작하자, 명중률이 줄었으나, 월랑부대원들이 쓰러지는 속도가 월등히 빨라졌다.
“모두 후퇴해! 여기 있다가 개죽음이야! 적은 가공할 무기를 사용하고 있어!”
“요시다 시로! 무슨 소리냐! 대장님 명령 없이 도주할 수 없어!”
“츠쿠무네 부대장님으로부터 지휘권을 받았다! 내 말 들어!”
“개소리 하지마! 츠쿠무네 따위가 뭐라고 너에게 지휘권을 넘겨!”
일본에도 총이 존재한다. 임진왜란에서 조총을 사용한 이후 430년이 지나는 동안 나름대로 개량도 했다.
하지만 AK-201과 비교하면 조악한 장난감 수준이다. 탄창 없이 단발 볼트액션 방식이라 연사 속도가 느리다. 게다가 기술부족으로 총구 에너지가 권총보다 낮은 200J에 머문다.
요시다 시로는 창수가 사용하는 총기의 위력이 상상 이상이라는 걸 알아보고, 살기 위해 도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월랑부대원들은 그의 말을 무시했다. 초탄에 대장 나카무라 켄이 쓰러진 것이 월랑부대에게 치명적인 악재가 된 것이다.
- 타다닥!
“살고 싶으면 문 안으로 들어가!”
말이 안 통한다고 생각한 요시다 시로는 설득을 포기하고, 음식점 문 안으로 뛰어갔다.
- 덜컹!
- 탕! 탕! 탕!
- 팅! 팍! 팅!
“큭!”
요시다 시로가 문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창수가 발사한 총알들이 날아왔고, 그중에 하나가 오른쪽 허벅지에 맞았다.
요시다 시로는 달리는 힘에 앞으로 꼬꾸라지면서 문 안으로 빨려가듯 사라졌다.
‘흠. 한 놈 놓친 건가? 운 좋은 놈이군.’
창수는 요시다 시로를 죽이지 못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하지만 음식점 안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가까이 다가가 확인 사살할 수는 없는 일이다.
‘보이는 놈들만 한 방씩 확인하고 자리를 뜨자.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했어. 여기서 오래 머물 수는 없지.’
창수는 총탄을 아낌없이 사용해 월랑부대 30명을 제압했다.
전원에게 최소한 총알 한 방씩을 선사했으니 오늘 작전은 대성공이라 할 수 있다.
요시다 시로처럼 사각지대에 떨어진 자는 어쩔 수 없다 해도, 시야에 보이는 적이 살아날 기회를 줄 수 없다. 확인 사살을 해야 한다.
창수의 행동이 언뜻 잔인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먼저 싸움을 걸었던 건 월랑부대.
적에게 독하지 않으면 사내가 아니다.
7.
“뭐라고? 월랑부대가 공격당했다고?”
2월 20일 오전 0시 15분, 송본귀금속 대표 노리오카 히가시에는 자택을 방문한 비서 미츠무라 카츠히라로부터 충격적인 보고를 듣게 됐다.
“부대원 전원이 회식하는 도중에 매복에 당했다고 합니다!”
“얼빠진 놈들! 진중하게 지내라고 했는데, 내 명령을 무시하고 술이나 퍼먹어!?”
“대원들 사기가 너무 떨어져…….”
“칙쇼! 변명하지 마!”
월랑부대는 노리오카가 막대한 자금을 들여 키운 정예부대다. 그동안 자신의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여 총애했다.
그러나 고순도 은을 가지고 있는 창수를 납치하는 데 실패했고, 청계천 판자촌 주민들에게 모욕당했다는 사실을 안 뒤, 인식이 바뀌었다.
너무 오냐오냐해 기강이 빠졌다고 생각한 것.
그래서 군기를 잡고 근신하라고 지시했는데, 자신의 명령이 먹히지 않은 것이다.
“대표님. 변명이 아닙니다. 그리고 월랑부대 피해가 너무 큽니다.”
“피해가 크다고? 죽은 놈이라도 있다는 거야?”
“그것이…….”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나카무라 부대장을 포함해서 27명이 사망하고, 중상자가 3명입니다!”
“뭐……. 뭐라고!?”
전멸에 가까운 피해. 너무 놀라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월랑부대를 잃는다는 건, 노리오카가 가지고 있는 무력의 절반 이상이 사라진 걸 의미한다.
“대표님. 본부에 보고하셔야 합니다.”
“누구 짓이야?”
“예?”
“월랑부대를 괴멸시킬 정도면, 대규모 병력이 동원됐을 거 아니야? 누가 이런 짓을 저질렀어?”
“그게 이상합니다.”
“이상하다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아……. 아닙니다! 대표님! 살아남은 요시다 시로 말로는 단 한 명이 공격한 것 같다고 말합니다!”
“요시다 시로가 그런 말을 했다고…….”
월랑부대는 어디에다 내놔도 빠지지 않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노리오카는 이렇게 믿었다.
그런데 30명이 한 명에게 당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말이라면 거짓말하지 말라고 호통을 쳤을 거다. 그러나 요시다 시로가 말한 거라면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노리오카의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 * *
2022년 2월 20일 일요일 오전 9시, 좌포도대장 최상민의 자택에 좌포도종사관 박시우가 방문했다.
“영감. 어젯밤에 대량 살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월랑부대 일이라면 이미 알고 있네. 수사는 어느 정도 진척이 있는가?”
“걸음마 상태입니다. 밤새도록 당직자들과 현장 조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흔적이 없습니다.”
“수십 명이 죽었는데 단서가 없다는 말인가?”
“예. 총기에 의한 살인인데 어디서 발사했는지 찾지 못했습니다. 살인 용의자가 몇 명인지도 확실치 않고요.”
조선의 핵심적인 치안 기관 포도청은 좌우 2개로 나눠져 있다.
좌포도청은 한양 동부-중부-남부와 경기좌도를 관할하고, 우포도청은 한양 서부-북부와 경기우도를 담당한다.
창수가 월랑부대를 처단한 장소가 한양 중부에 속하기에 수사 관할권이 좌포도청에 있다.
당직을 맡은 박시우가 사건을 보고받은 건 22일 0시 20분. 그는 즉시 가용할 수 있는 좌포도청 인원을 모두 모아 사건 현장으로 달려갔다.
동원한 인력이 수사에 능한 베테랑이라 손쉽게 사건의 전모를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정보 절벽을 맞이해야 했다.
현장에는 월랑부대 사체 27구가 놓여있었고, 수백 개에 달하는 총탄 자국이 있었다.
그러나 월랑부대를 누가 어디서 어떻게 공격했는지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탄피라도 남아 있을 것 아닌가?”
“종이탄피가 발견된 건 월랑부대 사체 인근뿐이었습니다. 주위 40장(121.2m)을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조선을 비롯해서, 평행우주의 과학기술은 한국보다 100년 이상 뒤쳐져 있다. 후장식 소총을 사용하지만, 아직 금속탄피를 개발하지 못하고 종이탄피를 사용하고 있다.
종이탄피는 종이에 기름을 먹여 화약을 넣고 탄두를 감싼 것이다. 종이가 변형되기 쉽기에 후방 뇌관을 제대로 고정하기 어렵다.
이로 인해 불발탄과 오 격발이 늘어났고, 사용 도중 공이가 망가지는 일이 빈번했으며, 유효사거리는 100m에 불과했다.
좌포도종사관 박시우는 21m를 더 넓게 잡고 종이탄피를 수색했으나,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것참 희한한 일이로군. 월랑부대를 살해한 범인이 탄피가 없는 전장식 총을 사용했다는 건가?”
“그것도 염두에 두고 살폈습니다. 하지만 발견된 탄두들은 후장식 소총탄이 분명합니다. 모양이 생소하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전장식 소총은 총구쪽으로 화약과 탄두를 넣고 발사하는 방식이다.
탄두는 크게 둥근 원형, 미니에형, 로렌츠형이있다.
미니에는 탄두 후방 내부를 종처럼 안쪽으로 깎은 것이다. 총이 발사되면 가스팽창으로 탄두가 총열과 밀착하게 돼 파괴력이 증가하는 원리를 가지고 있다.
로렌츠는 탄두 후방 외부에 깊은 홈이 있다. 격발하면 홈이 찌그러져 탄두가 압축된다. 이때 탄두 속도가 빨라지고, 탄두가 목표물을 타격한 뒤 회전하는 효과를 만든다.
“생소하다고?”
“탄두가 길고 날카로웠습니다. 후방이 파인 것도 아니고 홈도 없습니다. 그리고 탄두 뒤에 무언가에 물린 자국이 있었습니다.”
“잠깐만……. 뒤에 물린 자국이라고?”
박시우의 설명을 듣던 최상민의 뇌리에 무언가 번뜩하고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