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평행우주 독식-15화 (15/200)

15화 5장. 독하지 않으면 사내가 아니다

4.

“어서 오시오. 젊은 손님. 정말 오랜만이오.”

“그동안 격조했습니다. 명절 잘 보내셨죠.”

“나 같은 늙은이에게 명절이 별거 있겠소, 장사를 못해 따분하기만 하지. 그래 오늘을 은을 얼마나 가지고 온 거요?”

‘아휴. 영감님이 나 오기만 눈 빠지게 기다렸나 보네. 거래해도 숨 좀 돌리고 하자고요.’

창수가 장두호를 마지막으로 만난 건 1월 29일이다. 무려 18일 만에 만나는 거다. 조선이 2월 13일까지 설날 연휴라 어쩔 수 없는 면이 있기는 하지만.

장두호는 창수가 연휴가 끝나면 바로 찾아올 거라 예상하다가, 2일간 나타나지 않자 조바심을 냈다.

혹시 송본귀금속 패거리들에게 당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

“오늘도 250kg입니다. 금은 준비되셨나요?”

장두호의 도움으로 투명망토와 마법자루를 입수한 이후, 창수는 다른 점포와 거래를 중단하고 장두호와 독점 거래하기로 결정했다.

소액이면 분산 매각이 가능하지만, 지금처럼 물량이 많아지면 분산 매각이 오히려 위험하다.

송본귀금속 패거리들에게 추격당한 것이 좋은 예.

게다가 장두호는 창수와 일정부분 비밀을 공유하고 있다. 김근홍 정도는 아니더라도, 장두호는 믿을 만한 인물이다.

관건은 장두호가 한 번에 80억 원 이상 가치가 있는 대형 거래를 지속해서 소화할 수 있는가? 였다.

“물론이오. 충분히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오.”

“대단하십니다. 적지 않은 분량인데 처리하셨군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오. 매일 1,000kg을 가져와도 다 소화할 수 있소.”

“고순도 은이 그렇게 많지는 않고요. 귀한 만큼 물량에 한계가 있습니다.”

“얼마나 가져올 수 있는 거요.”

“일주일에 500kg 정도입니다.”

“음……. 좀 아쉽구려.”

장두호의 능력과 배포가 대단했다. 하루에 은 그래뉼 99.99% 1,000kg을 구매하려면, 대금으로 금 480kg이 있어야 한다.

3,360만 환, 한화 336억 원, 거래일 수를 250일로 잡으면, 연간 거래 금액 8조 4,0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이 나온다.

그중에서 창수는 순이익으로 8조 원을 챙길 수 있다. 금-은 재정거래 하나만으로 재벌 부럽지 않은 부를 쌓을 수 있는 거다.

창수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그러나 세상일이 만만치 않다.

이번에 걸림돌은 은 공급이다.

무영금속대표 이진수는 자신이 공급할 수 있는 은의 양이 주당 500kg이라고 말했다. 그것도 다른 제련공장에서 물량을 받을 때 가능하다고 한다.

부득이 평행우주로 넘어오는 고순도 은의 양도 줄 수밖에 없다.

“지금 분량도 적은 건 아니죠.”

“그렇긴 하오. 얼추 계산하면 1년에 9억 환이 넘으니 대단한 금액이오.”

“그런데 이 물량을 누가 다 사용하는 건가요?”

“누구라고 얘기하기는 곤란하오. 다만 대부분 마법물품을 사용하는 데 들어간다고 보면 되오.”

“마법물품이 그렇게 많은 건가요.”

“사람들이 실감하지 못해서 그러는데, 일상생활 모든 곳에 마법이 사용되고 있소. 그리고 고순도 은은 마법의 효율을 대폭 상승시키는 역할을 하오.”

‘내가 식충이는 아니군.’

돈 버는 건 좋은 일이다. 더 좋은 건 돈벌이가 사회적으로 공헌을 하는 거다.

창수는 자신이 한국에서 운반하는 고순도 은이 조선에 도움이 된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꼈다.

“어른신. 마법물품을 구매하고 싶은데 방법이 있을까요?”

“어떤 물품을 원하시오.”

“금고가 필요합니다.‘

“마법이 새겨진 금고는 두 가지 종류가 있소. 방범 장치만 마법처리 된 것은 가격이 저렴하오. 공간확장 마법이 걸린 건 가격이 만만치 않소. 손님이 가지고 있는 마법자루를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거요.”

“어르신이 가지고 있는 금고는 가격이 얼마인가요?”

“1억 환이오. 한양에서도 몇 개 없는 거요.”

“그러면 제가 가지고 있는 마법자루 성능의 금고는 얼마나 나가나요?”

허름한 대광금은방 주인 장두호는 생각보다 더 대단한 거부였다. 한화 1,000억 원 가치를 가진 마법금고의 소유자였던 것.

창수는 장두호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반신반의하면서, 용량을 줄인 마법금고의 가격을 물었다.

“그거 8배 용량이 200만 환이요.”

“적당한 가격이군요. 구매하고 싶습니다. 소개해 주십시오.”

200만 환. 한화 20억 원. 금고 가격으로는 매우 고가지만, 창수의 재력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일반인은 구매할 수 없소. 귀금속을 다룰 수 있는 자격증과 점포를 가지고 있어야 하오.”

“조건이 까다롭군요. 이유가 있나요?”

“악용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오. 탐관오리나 범죄자가 마법금고를 가질 때를 생각해 보시오.”

‘나름 타당한 이유가 있구나. 하지만 그렇게 막는다고 범죄자가 입수를 못할까? 탁상공론 같아.’

정말 퇴치하기 어려운 범죄자는 권력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창수는 마법금고 소유를 제한하는 것에 실효성이 약하다고 생각했다.

“너무 막연한 규칙 아닐까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오?”

“송본귀금속을 생각해 보세요. 일본의 거점 역할을 하면서 악행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범죄 집단도 성능이 좋아 보이는 마법금고가 있더군요.”

“그자들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었소. 그러나 귀금속 거래를 중점으로 보면 큰 문제가 없으니, 허가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이 많았소.”

“고순도 은을 노리고 저를 암습한 것도 정당한 거래라고 보시나요?”

“음…….”

창수는 장두호가 말하는 규칙의 맹점을 예리하게 지적했다.

귀금속-금은방 관련자가 애초부터 범죄를 작정하고 나설 경우, 마법금고 소유를 제한하는 규칙은 의미를 잃게 된다.

게다가 규칙 덕분에 마법금고를 보유한 송본귀금속 같은 범죄 집단이 대항세력보다 상대적으로 득을 볼 수 있는 구조다.

“고순도 은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마법금고가 필요합니다. 투명망토가 필요한 이유와 같은 거죠. 어르신. 도와주십시오.”

“손님 말을 들으니 생각해 볼 여지가 있구려. 알겠소. 내가 한번 나서 보리다.”

장두호가 고리타분한 노인이지만, 완전히 꽉 막힌 벽창호는 아니다. 그는 창수의 주장이 타당하다 여기고, 협조를 약속했다.

5.

‘와! 이거 성능 죽이는데! 영감님이 우려한 이유가 있군!’

2월 19일 창수는 고대하던 마법금고를 손에 넣게 됐다.

겉으로 보기에는, 가로 50cm, 세로, 50cm, 높이 40cm, 특별한 장식 없는 전통수납함이다.

하지만 이 함은 가로 2m, 세로 2m, 높이 2m의 내부 저장 공간을 가지고 있다.

소유자가 아니면 함을 열 수 없고, 강철보다 단단해 억지로 부수기 어렵다. 게다가 지정한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할 수 있다.

안에 물품을 집어넣으면 은행금고보다 안전할 거다.

창수는 범죄자에게 마법금고가 넘어가지 못하도록 제한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일단 총과 장비를 집어넣고, 금하고 은도 채워놔야지.’

창수는 로스토프에서 구매한 AK-201, 소음기, 야시경 각각 8개와 총탄 18,000발을 마법금고에 집어넣었다.

추후 금과 은도 비상용으로 상당량 비축할 예정이다.

이로써 창수는 애초 구상했던 계획보다 더 뛰어난 거점을 가지게 됐다.

* * *

‘아휴 추워. 지형은 같은 데 한양은 왜 이리 춥지? 발열조끼 가져올걸.’

밤 11시, 거점 정리를 마친 창수는 서울로 돌아가지 않고 한양에 남았다.

평행우주 한양의 밤공기는 몸을 얼어붙게 만드는 것처럼 매서웠다. 서울과 비교해 최소 5도는 기온이 낮아 보였다.

따끈한 발열조끼가 간절하다.

마법자루 안에 챙겨 넣지 않은 게 후회된다. 서울과 한양의 기온 차이를 생각하지 못한 탓이다.

‘빌어먹을 월랑부대! 오늘 끝장을 내주마!’

창수가 추위에 떨고 있는 이유는, 자신을 추격했던 패거리들 응징하기 위해서다.

그는 자신에게 투명망토를 판매한 체탐인 기철민에게 송본귀금속에 대해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현역에서 은퇴한 기철민은 자신은 무리라고 말하며, 후배들이 운영하는 정보단체를 소개해 줬다.

인의방이라 불리는 정보단체는 의뢰비로 100만 환(한화 10억 원)을 요구했다. 송본귀금속이 만만치 않은 힘을 가지고 있어 위험 수당이 높다고 설명하며.

창수에게 100만 환은 아무것도 아니다.

문제는 시간. 탄탄한 조직력을 가지고 있기에, 실체를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렸고, 20일 만에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창수는 자신을 추격한 패거리가 송본귀금속의 전위대 역할을 하는 월랑부대라는 걸 알게 됐다.

응징에 나서는 건 당연한 일이다.

- 꺼억!

“요시! 오늘 기분이다! 2차 가는 거다!”

“와! 역시! 대장님!”

월랑부대 총원 30명이 오랜만에 회식 시간을 가졌다.

부대장 나카무라 켄은 짐짓 허세를 부리며 부하들의 사기를 올리려 했다.

사실 요새 월랑부대 사정이 좋지 않다. 창수를 납치하는 데 실패하면서 송본귀금속 수뇌부로부터 심한 질책을 받았기 때문이다.

“대장님! 오늘 하꼬방으로 쳐들어가서 다 불살라 버리죠!”

“그렇습니다! 우리 부대원이 모두 모인 김에, 건방진 조센징 놈들을 모조리 쓸어야 합니다!”

나카무라 켄이 사기를 올려 주자, 여기저기서 응징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들에게 창수를 놓친 것보다 청계천 판자촌 주민들에게 물리력으로 밀렸다는 것이 더 굴욕적이다.

소총은 아니더라도 칼과 몽둥이만 가지고 있어도 판자촌 사람들에게 수모를 당하지 않았을 터.

한양 도심이라 완전히 맨손으로 나섰던 그때와 달리, 지금 소총도 준비해 놨다.

“칙쇼! 멍청한 소리 하지 마라! 조선 포졸 놈들이 깔려 있다는 걸 모르나!?”

조선 고위 관리 상당수가 송본귀금속이 제공하는 뇌물을 먹고, 월랑부대의 패악질을 눈감아왔다.

그런데 이번은 다르다.

창수를 습격한 이후, 청계천 인근은 물론이고, 종로 인근에 포졸들이 다수 배치돼 있다.

월랑부대가 포졸을 우습게 여기기는 하지만, 한양에서 대놓고 포졸과 충돌할 수 없는 일이다.

청계천 이야기만 나오면 경기를 일으키는 나카무라 켄은 상황 파악 못하는 부하들의 한심한 말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

“대장님. 진정하십시오. 조만간 응징할 날이 올 겁니다. 조선 포졸들이 저러는 거 잘해야 한 달입니다.”

“맞아! 바로 그거야! 머리 돌아가는 건 시로 군 자네밖에 없어!”

월랑부대에서 책사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요시다 시로는 포졸의 움직임이 일시적일 거라 판단했다.

한양에 포졸의 수가 한정돼 있기에, 비교적 치안이 잘 유지되는 종로 일대에 많은 인력을 장기간 배치하기 어렵다.

더구나 송본귀금속 수뇌부가 조선 고위 관리를 상대로 지속해서 압력을 넣고 있다.

3월이 되면 종로에서 포졸들이 사라질 것이 분명하다.

나카무라 켄은 요시다 시로가 정세 판단을 잘한다 여기고, 목소리를 높여 칭찬했다.

“어이! 모두 일어나! 유우카쿠로 가자!”

요시다 시로의 말을 듣고 기분이 풀린 나카무라 켄은 부하들에게 이동 명령을 내렸다.

이런저런 잡생각을 없애고 사기를 진작하는 데 유흥만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 우르르!

대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월랑부대원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음식점 밖으로 나온 부대원들이 양옆으로 늘어서자, 나카무라 켄이 뒷짐을 지고 거만한 모습으로 걸어 나왔다.

비록 30명에 불과한 작은 조직이지만, 의전은 웬만한 국가 원수급이다.

그리고 바로 그때.

- 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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