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5장. 독하지 않으면 사내가 아니다
2.
“대금은 창고 열쇠를 받을 때 절반을 송금하고, 물건을 확인한 뒤 나머지를 보내겠습니다.”
“지금 절반을 받고 열쇠를 받을 때 완납하는 것이 거래 룰입니다.”
“다음번 거래는 그런 방식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첫 거래에서 물건도 보지 못하고 전액을 지급하기가 껄끄럽군요. 그리고 창고 밖에 그쪽 병력이 대기할 거라고 봅니다. 아닌가요?”
“음…….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저 혼자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서요.”
알렉산더의 무리한 주장은 합리적인 창수의 대응에 번번이 파탄 났다. 창수가 자기 상대가 아니라고 판단한 알렉산더는 상부에 보고한 뒤 지시를 기다렸다.
“좋습니다. 이번만 그렇게 하시죠. 그러나 다음번에는 우리 거래 룰을 따라야 합니다.”
알렉산더가 상부로부터 지시를 받는 데 걸린 시간은 30분.
창수는 피가 마르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도, 애써 침착한 자세를 유지했다. 알렉산더의 조직원이 자신을 감시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니까.
로스토프 온 돈은 우크라이나 동부 국경선과 불과 80km 떨어져 있다. 이곳을 거점으로 러시아 무기가 우크라이나 동부 분리독립세력에게로 넘어간다.
창수가 무기를 구매하려고 접근한 조직은 그 무기의 일부를 매각해 현금을 마련하고 있다.
즉, 갱스터 조직이라기보다는 준국가 차원의 조직이다.
이런 조직에 약한 모습을 보이면,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당할 수 있다.
만약, 창수가 투명망토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이런 모험을 하지 않았을 거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열쇠는 언제 도착하나요?”
“주문한 장비에 재고가 있어, 오늘 밤 안으로 처리 될 겁니다.”
“오늘 밤에 열쇠를 받고, 내일 오전에 창고에서 물품을 수령하는 걸로 이해하면 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그럼. 다음에 뵙지요.”
‘일단 오늘 일은 순조롭게 마무리됐군. 문제는 내일이야.’
돈을 가지고 있어도 무기를 손에 넣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창수는 긴장을 끈을 놓지 않고 미리 준비한 계획을 다시 점검했다.
* * *
11일 밤 9시 30분, 알렉산더의 말대로 창수가 지정한 무인 사물함으로 창고 열쇠가 도착했다.
창수는 열쇠를 챙기고, 즉시 대금의 절반 5만 달러를 알렉산더 조직 계좌로 송금했다.
그리고 다음 날 오전 10시, 창수는 알렉산더가 지정한 창고로 승용차를 타고 이동했다. 위치는 로스토프 온 돈의 북쪽 변두리.
- 슥!
- 덜컹!
‘주문한 물건은 확실하군. 어서 마법자루에 담아야 해.’
열쇠로 창고를 열고 들어가니 박스 3개가 놓여 있고, 박스 안에 창수가 주문한 무기와 장비가 정확하게 담겨 있었다.
이제 물품들을 챙기고 안전하게 빠져나가야 한다.
창수는 마법자루 안으로 주문한 물품들을 빠르게 집어넣었다.
마법자루는 가로, 세로, 높이 각각 1m의 정육면체 모양의 수납공간을 가지고 있다. AK-201과 장비 그리고, 총탄을 모두 담을 수 있는 충분한 여력이 있다.
‘잔금을 송금해 주면 되겠군.’
15분 만에 수납을 마친 창수는 나머지 대금 50,000 달러를 알렉산더의 조직 로스토프 민병대 계좌로 입금했다.
<조장님. 대금이 입금됐다고 합니다.>
<물건을 어떻게 하고 있어?>
<박스 3개를 모두 트럭에 싣고 있습니다.>
<승용차에는 안 싣고?>
<예. 트럭으로 물건을 운반하고, 바람이라는 자는 승용차를 이용해 이동할 모양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잠시 대기해. 생각 좀 해 보고.>
창수의 예상대로 로스토프 민병대는 창고 인근에 병력을 배치하고, 창수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었다.
이번 거래를 감시하는 로스토프 민병대 제3조장 예고르는 거래대금을 입금받은 뒤 잠시 고민에 빠졌다.
창수를 소개한 러시아인은 무기 밀매업계에 영향력이 있는 인물로, 만약 로스토프 민병대가 거래를 파토 낸다면, 보복을 당할 수 있다.
약속한 대금을 완납 받은 상황에서 감시를 중단하는 것이 올바른 일이다.
하지만 돈이 궁한 처지에 손쉽게 보이는 창수를 이대로 보내 주기 아까웠다. 핑계 대고 무기를 회수하던지, 아니면 창수를 납치한 뒤 몸값을 받아내려는 것이 예고르의 흉심.
- 부르릉!
- 트르륵!
<조장님. 차들이 창고를 빠져나가려 하고 있습니다.>
<일단 움직이게 나눠. 추격하면 되니까.>
<중간에 트럭과 승용차가 갈라지면 어떻게 합니까?>
<야르게니. 네가 트럭을 추적해. 내가 승용차를 맡을 거니까.>
창수가 탄 승용차와 박스가 실린 트럭이 어디로 움직일지 모르는 상황.
예고르는 자신을 포함한 4명이 승용차를 담당하고, 부조장 야르게니 쪽 4명이 트럭을 담당하도록 지시했다.
‘흠 이것들이 장난치려 하는군.’
창수는 트럭을 북쪽으로 보내고, 자신은 승용차를 몰아 도심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미리 설치한 소형 카메라에서 자신과 트럭을 나눠서 추적하는 수상한 자동차를 보게 됐다.
알렉산더의 조직이 적대적인 행위를 하는 것이 분명하다.
‘어쩔 수 없어, 플랜B로 가는 수밖에.’
믿음이 없는 세상이 씁쓸하다.
창수는 이번 거래가 원만하게 마무리되면, 로스토프 민병대와 장기 거래를 하려 했다. 그러나 배신이 확인된 상태에서 그 구상은 이제 물 건너간 이야기.
<조장님. 트럭을 세울까요?>
<트럭이 혼자 움직이고 있는 거야?>
<예. 다른 패거리 없이 단독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좋아. 다 잡은 먹이군. 하지만 여기서는 안 돼. 우리가 아니라 다른 조직이 건든 것처럼 꾸며야 해.>
<알겠습니다. 계속 추적하면서 기회를 보겠습니다.>
지금 벌이는 일은 로스토프 민병대 수뇌부의 허가를 받지 않은 독단적인 행동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처단당할지도 모르는 위험한 짓.
예고르는 판매했던 무기를 회수하면, 큰 처벌이 없을 거라 여겼다.
야브게니의 보고에 따르면 무기 확보는 기정사실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창수만 납치하면, 큰돈을 만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 부우응!
- 획!
<뭐 하고 있어! 저놈이 눈치채고 도망가잖아! 빨리 추적해!>
도심으로 가던 창수의 승용차가 갑자기 방향을 바꿔 골목으로 들어가자, 예고르는 자신의 미행이 탄로 났다는 걸 알아차리고 분통을 터트렸다.
마치 창수가 얌전히 인질이 돼줘야 할 의무라도 있는 것 같은 뻔뻔한 태도.
<승용차가 앞에 보인다! 뒤에 바짝 붙여!>
골목길을 한참 헤매다가 창수의 승용차가 정차된 걸 발견한 예고르는 잃어버린 지갑을 다시 찾은 듯한 반응을 보였다.
- 끼이익!
드디어 창수의 자동차 뒤에 도착한 예고르는 차 문을 열고 뛰어나가려 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 탕! 탕! 탕!
- 탕! 탕! 탕!
“으악!”
“크아악!”
예고르와 수하들이 탑승한 차량으로 총탄이 발사됐다.
무방비 상태에서 총격을 당한 예고르와 로스토프 민병대원들은 아무런 반격도 못 해보고 그대로 절명했다.
‘쓰레기 같은 놈들! 내가 만만하게 보였겠지! 어떠냐? 대한민국 병장의 힘이?’
예고르와 수하들을 사살한 건 창수였다.
창수는 승용차를 세워두고 투명망토를 사용해 매복한 다음, 로스토프 민병대로부터 구매한 AK-201로 배신자들을 응징했다.
총기 사용 경험이 없는 민간인이 창수처럼 과감한 작전을 할 수 없을 거다. 그러나 창수는 그냥 민간인이 아니다.
한국군은 징병제도를 택한 국가 중에서 상위권에 속하는 강도 높은 훈련을 하고 있다.
창수는 만기 제대한 한국 육군 예비역 병장이다.
고작 30m 떨어진 목표물은 눈감고도 맞힐 수 있다.
- 웨에엥!
- 삐뽀! 삐뽀!
로스토프 온 돈은 인구 110만 명을 가진 대도시다. 도심과 가까운 지역에서 총격 사건이 벌어지니, 경찰과 대테러부대가 즉각 출동했다.
그리고 그들이 발견한 건 벌집이 된 채 사체 4구가 놓여 있는 차량과 버려진 승용차였다.
로스토프 사법당국은 테러사건이라 여겨, 즉시 공항을 폐쇄하고 도로와 항만에 대한 검문검색을 강화했다.
수색에 동원된 경찰과 군인의 수가 2,000명을 넘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3.
‘마음이 편안한데! 역시 집이라는 건가?’
2022년 2월 15일 화요일. 창수는 3박 4일간 긴 여정을 거쳐 수유동 집에 도착했다.
허름한 반지하지만, 그 어디보다 포근한 장소.
‘화물선에서 긴장하며 보낸 걸 생각하면, 여기는 천국이지.’
로스토프 사법 당국의 대처는 생각보다 빨랐다. 창수가 비밀계좌를 만들면서 함께 마련한 여권을 사용했음에도, 동아시아 출신이라는 걸 빠르게 알아냈다.
대도시지만 동아시아인 거주자가 많지 않은 로스토프에서 창수가 머무를 수 있는 장소는 극히 제한됐다.
공항은 전수조사를 하기에 투명망토를 사용해도 안심할 수 없었다.
창수는 상대적으로 검문이 약한 항구에 잠입한 뒤, 화물선에 올라탔다. 투명망토 지속 시간이 4시간이기에 여객선을 피한 것.
그는 화물선 선원들의 눈을 피해 새우잠을 잔 뒤, 간신히 로스토프 지역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누구까지 배신에 가담한 거지?’
창수는 태국을 거치지 않고, 싱가포르를 들른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정보를 수집할 수단이 없어, 로스토프 민병대의 배신을 누가 주도했는지? 그리고 누가 알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했다.
‘쁘라슥 선장이 배신했을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그래도 조심해야 해. 러시아 쪽은 다 한통속일 거고. 일단 추이를 지켜보자.’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섣부른 행동은 금물이다.
창수는 무기 구매에 관련된 모든 사람을 요주의 인물로 설정했다.
쁘라슥의 아들은 예정대로 채용하기로 했다. 로스토프에서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 행동하면, 어떤 움직임이 보일 거다.
‘선배님 덕분에 위기를 넘겼는데 그래도 안심할 수 없어. 이 집도 위험할 수 있어.’
김근홍의 충고가 없었다면, 창수의 정체와 행적이 단번에 드러났을 거다. 그를 만나러 간 것이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플렌B를 항상 계획해야 한다는 충고도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귀중한 말씀이다.
만약 반지하 집이 추적당한다면, 창수가 가진 많은 것들을 잃어버릴 수 있다.
‘어디에 거점을 만들어야 하지?’
반지하와 완전히 분리된 장소이면서, 동시에 창수가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지역에 거점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어디에 그런 장소가 있을까?
주택이나 오피스텔을 추가로 얻는다 해도 추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아! 거기에 만들면 되지! 쉬운 걸 어렵게 생각했구만!’
한참을 고심하던 창수는 결국 해결방안을 찾아냈다.
* * *
“단언하건대, 한양에서 여기처럼 조용하고 공기 좋은 곳이 없습니다.”
“학문에 정진하기에 안성맞춤이군요.”
“그렇죠. 고향으로 가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정리하지만, 참 아까운 집입니다. 좋은 성과 있으시기 바랍니다.”
“덕담 감사합니다.”
2022년 2월 16일, 창수는 한양으로 건너가 주택을 구매했다.
주택의 위치는 평행우주 이동 통로인 바위에서 동남쪽으로 700m가량 떨어진 곳이다. 북한산과 바로 붙어 있어 이동이 편리하다.
반면, 산 아래에서 이곳까지 올라오려면 복잡한 골목을 거쳐야 하기에, 접근이 어렵다.
주택을 판 전주인은 공부하기 좋은 장소라고 했으나, 창수에게는 부를 지키기 위한 최적의 거점이다.
‘거점은 마련했고, 이제 영감님을 만나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