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5장. 독하지 않으면 사내가 아니다
1.
사랑하는 약혼자가 있던 창수는 VIP바를 사적으로 찾지 않았다. 그러나 태국에서 잘나가던 여행사 대표였기에, 부득이 큰손 고객과 함께 몬테에 자주 들렀다.
몬테는 소위 2차라고 말하는 성매매가 불가한 곳이다. 손님과 푸잉의 성향에 따라 약간의 신체 접촉이 있기는 하지만, 창수는 그런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플러이는 빠르게 머리를 돌려 창수의 취향에 맞는 푸잉을 찾았다.
그리고 푸잉 두 명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안내했는데, 그것이 창수를 놀라게 만들었다.
“저 친구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요.”
태국 VIP바는 제한이 많다. 게다가 비용이 많이 든다. 그런데도 손님이 끊이지 않는 건 특별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빼어난 미모.
[태국 미녀는 VIP바에 다 모여 있다]라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지금 창수 눈에 들어온 푸잉들도 마찬가지, 두 명 모두 하얀 피부에 날씬한 몸매를 가지고 있어, 한국에 가서도 ‘미녀’ 소리를 듣기 충분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 창수의 눈에 든 건 복숭아색 원피스로 단정한 차림을 한 푸잉이었다.
“호호호. 역시, 눈썰미가 좋으시네요. 드라마에서 조연으로 나온 까오예요.”
“그렇군요. 낯이 익다 했어요.”
“까오. 괜찮죠?”
“그럼요.”
‘특별히 신경 쓴 거군. 호의이니 받아야지.’
창수는 플러이가 자신을 위해 에이스 중에 에이스 푸잉을 배치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 창수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몬테를 방문했다. 돈 잘 쓰는 큰손 고객과 함께.
코로나가 진정 국면에 들어섰으나, 몬테는 아직 과거처럼 성세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관광객이 적기 때문이다.
플러이에게 창수는 부유한 관광객의 상징이다. 게다가 매너가 좋아 푸잉들에게 집적거리지도 않는다.
그래서 가지고 있는 최선의 패를 꺼낸 거다.
- 창!
“촌깨오! 사장님. 한잔하시죠!”
“촌깨오! 시원하게 드세요.”
촌깨오는 잔을 부딪치자는 말로 건배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촌깨오는 정말 친한 사람들 사이에서 행한다는 것.
쁘라슥의 옆자리에 앉은 푸잉은 까오 정도는 아니지만, 어디 가도 눈에 띄는 미녀였다. 그는 기분이 업된 상태에서 연신 싱글벙글하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저 양반 일내겠네. 왜 저러지?’
창수는 쁘라슥의 주량이 강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가끔 직원회식 자리에서 술 마실 때 쁘라슥은 항상 도수가 약한 맥주를 마셨다.
그런데 오늘 쁘라슥은 연거푸 독한 양주를 들이켜고 있다. 무언가 사달이 날 좋지 않은 조짐.
- 스슥!
“이러지 마세요.”
‘저럴 줄 알았어. 술이 들어가니 나쁜 손버릇이 나오는구만.’
양주 7잔을 순식간에 마신 쁘라슥이 눈이 풀린 상태에서 과도한 스킨십을 시도하자, 창수의 눈에 짜증이 몰아쳤다.
과거 고객과 함께 VIP바를 방문했던 기억이 난 것.
손님 대부분은 술자리에서 매너를 지키지만, 그중 진상을 부리는 손님도 있었다.
한국을 떠나 남의 눈치 안 보는 상태에서 20대 미녀 옆에서 술을 마시니, 순간 이성을 잃는 것.
창수는 진상들이 폭주하는 걸 막으면서 업계에서 높은 평판을 받았다.
“선장님! 그만하시죠! 여기는 VIP바입니다! 평소에 점잖던 분이 왜 이러세요?”
“사장니임~ 오늘같이 좋은 날, 정색 안 해도 됩니다.”
“정색하는 게 아니죠. 선장님이 실수할까 봐 그러는 겁니다. 이러는 거 부인이 알면 어떨까 걱정도 되고요.”
“마……. 마누라 얘기는…….”
- 히끅!
쁘라슥은 부인을 매우 두려워한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남편이 아내에게 져주는 척한다는 수준이 아니다. 열 받으면 주먹질에 몽둥이질까지 하는 부인의 폭력 행사를 두려워하는 거다.
그렇다. 쁘라슥은 소위 ‘매 맞는 남편’이다.
그의 부인은 180cm 키에 체중 90kg(자기주장, 실제로 100kg 넘음)에 이르는 우람한 덩치를 가지고 있다.
반면, 쁘라슥은 신장 165cm에 마른 체형이다. 둘이 같이 서 있으면, 고목나무에 매미가 붙은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쁘라슥이 20대 미녀에게 행한 과도한 신체 접촉을 그의 부인이 알게 된다면, 손모가지를 자른다고 나설 가능성도 있다.
쁘리슥은 창수가 아내를 언급하자, 너무 놀라 딸꾹질을 하지 시작했다.
“촘프. 선장님에게 물 따라 줘요. 진정 좀 하시게.”
“예. 대표님.”
창수는 신체 접촉의 피해자였던 푸잉 촘프에게 쁘라슥을 도와주라고 말했다.
촘프는 물을 건네주면서, 쁘라슥의 벌벌 떠는 모습을 보고,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그녀의 눈에 쁘라슥이 진상 손님이 아니라, 초라한 궁상으로 보인 것.
“선장님. 진정 좀 하셨어요?”
“예. 예. 이제 괜찮습니다.”
“그러면, 제게 하고 싶은 말 하시죠. 이곳에 그냥 술 마시러 온 게 아니라고 봅니다.”
“그……. 그게…….”
“비밀이야기인가요? 푸잉들 자리 비워 달라고 할까요?“
“그건 아니고요. 일자리를 좀 주셨으면 해서요. 이번에 사무실 다시 여신다고 들었습니다.”
“일자리요? 선장님은 집도 있고 월세 나오는 상가도 있지 않나요?”
살짝 당황하는 창수.
쁘라슥은 코로나 사태를 걱정하지 않는 부류에 속한다.
창수와 용선계약을 맺은 이후, 부채와 요트 할부금을 모두 갚았다. 최근에는 요트를 팔아 방콕에 상가를 구입한 뒤 월세를 받고 있다.
이제 편히 월세만으로 살아도 될 상황에서 일자리를 찾는 이유가 무엇일까?
“제가 아니라, 아들 일자리를 부탁드리는 겁니다.”
“아들이요? 선장님 딸만 3명이잖아요? 언제 아들을 낳아서 직장에 보낸다는 거죠?”
이야기가 갈수록 산으로 간다.
창수가 직원 집안 속사정을 세세히 아는 건 아니지만, 매년 연말 직원과 가족들을 초청해 송별회를 했기에, 가족 구성원 정도는 알고 있다.
4년간 협력한 쁘라슥의 가족도 송별회에 4번이나 참가했다. 아들이 있다면 모를 리 없다.
만약, 창수가 여행사를 접은 뒤 낳은 아들이라면, 이제 고작 2살인데 무슨 일자리를 구한다는 건가?
이것도 말이 안 된다.
“어머! 끽이군요!”
“끽? 설마…….”
쁘라슥이 창수의 추궁에 답을 못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까오가 불현듯 한마디를 던졌다.
끽은 배우자 이외의 이성 친구를 말한다.
태국에서는 친구보다는 가깝고 연인보다는 먼 사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체는 육체적인 관계를 가지는 불륜 상대.
까오는 쁘라슥이 끽을 통해 낳은 아이를 취직시키려고 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20살 된 아들이 있습니다. 사장님. 허드렛일이라도 좋으니 거두어 주십시오.”
“놀랍군요. 부인께서 보통 분이 아닌데, 어떻게 20년이나 숨긴 겁니까?”
“애 엄마가 능력이 있어, 제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됐습니다. 그런데 코로나가 창궐하면서 애 엄마가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코로나 사망자 가족을 직접 볼 줄이야……. 하긴 코로나로 죽은 사람만 공식적으로 450만 명이 넘어, 어떻게 든 연관이 될 수밖에 없지.’
창수는 사생아의 일자리를 부탁하는 쁘라슥이 뻔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코로나 창궐의 피해자라는 걸 알고 마음이 누그러졌다.
“알겠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죠.”
“감사합니다! 사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창수의 말은 확답과 다를 바 없다. 말귀를 알아들은 쁘라슥은 연신 고개를 숙여 창수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 * *
창수와 쁘라슥은 몬테에서 영업이 끝나는 새벽 3시까지 술잔을 주고받았다.
몬테를 나온 두 사람은 인적이 끊긴 인근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장님. 비용까지 계산하시다니, 정말 죄송해서…….”
“선장님이 9만 바트(한화 315만 원)를 사용한 걸 부인이 알면, 집안이 난리 날 겁니다.”
“하긴 그렇죠…….”
“선장님의 비밀 지켜드리죠. 그리고 아들 일자리 마련해 주겠습니다. 대신 저에게 도움을 주십시오.”
“뭐든지 말씀하십시오!”
창수에게 9만 바트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미미한 돈이다. 반면, 쁘라슥에게는 자칫 부부싸움이 일어날 수도 있는 큰돈.
창수는 카드 결제하려는 쁘라슥을 만류하고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 대신 결재했다. 쁘라슥이 창수에게 가진 호감과 부채 의식이 천장을 뚫을 기세다.
이 시점을 놓치지 않은 창수가 본론을 말하기 시작했다.
“소총을 구하려 합니다. 가능할까요?”
“사제 소총을 원하십니까?”
“아니요. 군에서 사용하는 제식소총이 필요합니다.”
창수와 용선계약을 맺기 전, 쁘라슥은 요트 할부금을 내기 위해 무기 밀매에 가담했다가 구속당한 적이 있다.
무기 밀매가 태국군부 고위층과 연관돼있어, 사건이 흐지부지됐지만, 그 일로 창수는 쁘라슥과 계약해야 할지 고민했었다.
이제 상황이 바뀌어 과거의 고민이 현재의 고민을 해결할 단초가 되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음……. 지금 단속이 심해서 우리나라에서는 구하기 어렵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가능한가요?”
“무기를 취급하는 러시아 친구를 한 명 알고 있습니다. 사장님께서 원하는 걸 손에 넣을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선장님이 그렇게 말해 주시니, 든든하군요.”
아들의 일자리와 가족의 평화가 창수의 손에 달려 있다. 쁘라슥은 창수의 요청이 쉽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반드시 해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만약, 창수가 돈으로 구슬렸다면 거부했을 거다. 그러나 이제 목줄이 잡힌 상황에서, 쁘라슥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 * *
- 척!
“알렉산더라고 합니다. 앨이라고 불러주십시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앨. 바람이라고 부르십시오.”
2022년 2월 11일 금요일, 창수는 러시아 북코카서스 지역의 최대도시 로스토프 온 돈에서 알렉산더라 자칭하는 남자와 만났다.
알렉산더는 고대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드로스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러시아에서 가장 흔한 이 이름을 가명이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
창수도 그에 맞춰 ‘바람’이라는 가명을 썼다.
“바람이라……. 독특한 이름이군요. 아무튼, 러시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장비를 원하신다고요?”
“그렇습니다. AK-201, 소음기, 야시경 각각 10개씩 필요합니다. 그리고 총탄 2만 발이 있어야겠죠.”
“AK-201 1정에 2,500달러입니다. 소음기는 쓸 만한 것으로 개당 1,500달러고, 야시경이 7,000달러입니다. 총알은 개당 2달러죠. 다 합하면 15만 달러입니다.”
“AK-201 1정에 2,000달러, 소음기 개당 1,000달러, 야시경은 5,000달러가 정상가죠. 총알은 개당 1달러. 총액 10만 달러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알렉산더는 평상시 판매하는 것보다 50% 가격을 높였다. 창수를 초보자로 본 것. 그러나 미리 시세를 알아본 창수는 정상 가격을 말하며 응수했다.
“정보를 많이 준비하셨군요. 하지만 그건 검증된 VIP 가격입니다.”
“저는 VIP 대역으로 여기에 온 겁니다. 제가 50%나 비싼 가격으로 물품을 구매하면, 여러 가지 잡음이 생길 겁니다.”
“12만 달러로 하죠. 첫 거래부터 신경전 할 필요 있나요?”
“앞으로 더 큰 거래를 하려면 신뢰가 중요합니다. 정상가 10만 달러로 거래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습니다.”
“큰 거래라고요?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건가요?”
“이번 거래가 이상 없이 마무리되면, 10배 이상 거래 규모를 늘릴 겁니다.”
“허허허. 큰손이시군요. 큰 거래는 언제든지 환영이죠. 그런데 어디서 전쟁이라도 하시는 건가요?”
“글쎄요.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군요.”
“이런. 실례했습니다. 호기심이 많아서요. 좋습니다. 10만 달러로 하죠.”
알렉산더는 창수의 정체를 알기 위해 탐색에 들어갔다. 하지만 창수는 노련하게 알렉산더의 접근을 차단하며, 정상가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결국, 무리수를 던졌던 알렉산더는 창수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