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평행우주 독식-12화 (12/200)

12화 4장. 위기는 기회다

4.

“너. 황금의 가치를 낮잡아보는구나.”

“그런 건 아닙니다. 하지만 아무리 금이라도 국제시세보다 더 비싸게 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낭비니까요.”

창수는 상식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금이 귀해도 다른 곳에서 정상가에 살 수 있는데, 비싼 가격으로 구매하는 건 비상식적 거래 행위다.

“국제시세대로 사면, 매매 내역이 외부에 유출될 수밖에 없지. 그건 과중한 세금을 부르는 거고, 경우에 따라서 국가와 권력에게 금을 수탈당하는 처지에 놓일 수 있어.”

“설마. 아무리 막 나가는 국가라도 그런 게 가능할까요?”

“설마가 아니야.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중심이라는 미국에서도 국가가 개인 금을 강탈한 적이 있어.”

“정말 그런 일이 있었어요?”

“스마트폰으로 포탈사이트에 가서 ‘루스벨트 행정명령 6102호’라고 쳐봐.”

김근홍이 금융전문가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 개인소유의 금을 빼앗았다는 말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창수는 김근홍이 알려준 문구로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헐……. 1933년에 루스벨트가 적성국교역법을 가져다 붙여 개인 금 소유를 제한하고, 그게 1970년대까지 이어졌네요.”

“바로 그거야. 미국과 같은 나라도 금 앞에서 비정상적인 행동을 수십 년간 자행했어. 다른 나라는 오죽하겠냐?”

1932년 대선에서 루스벨트가 선거인단 89%를 차지하며 역대급 표 차이로 당선되자, 미국 금융가는 루스벨트의 금융정책에 회의를 품고 우려했다.

이것이 뱅크런으로 이어졌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보유금이 61%나 줄어드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루스벨트는 취임한 뒤 한 달이 지난 1933년 4월 5일, 금화, 금괴, 금증서 등……. 금과 관련된 모든 것을 개인이 소유할 수 없도록 행정명령을 내렸다.

개인소유가 가능한 것은 총액 100달러 이하 기념품에 불과했고, 행정명령을 어기면 징역 10년에 처해졌다.

많은 미국인이 어쩔 수 없이 미국 정부에 소유한 금을 팔아야 했다.

개인 금 소유 제한이 풀린 건 1971년 닉슨이 금본위제도를 포기한 이후다.

“그러면 국가의 간섭을 피하려는 부자들을 찾으면 되는 거군요.”

“맞아. 태국을 비롯해 빈부 격차가 큰 동남아시아 국가 대부분과 과세가 심한 선진국 상당수에 잠재적인 구매자가 있는 거야. 그리고 진짜 큰손이 따로 있지.”

“큰손이라……. 러시아를 말하는 거예요?”

“아니, 중국이야.”

“확실히 중국인들이 금을 좋아하기는 하죠.”

“좋아하고 아니고 문제가 아니야. 생존이 달린 문제야. 시쩌뚱이 집권한 이후 정치적 반대 세력을 숙청하면서, 해외로 자금을 옮기려는 부유층의 움직임이 급증하고 있어.”

“중국 부자들이 재산을 금으로 바꿔 해외로 빠져나가려 하는 거군요. 그렇다면 금을 중국으로 가져가야 하는 건가요?”

“아니야. 금은 여기에 있고, 중국인 자금이 태국으로 들어오도록 만들어야지.”

“쉽지 않은 일이군요.”

“잘못되면 시쩌뚱 세력과 충돌할 수도 있어. 하지만 리스크 없이 수익을 얻을 수 없지.”

‘와……. 이거 보통 복잡한 일이 아니구나. 선배님을 찾아온 게 탁월한 선택이야.’

창수는 마법자루를 손에 넣은 뒤 은을 250kg까지 나를 수 있게 됐다. 이건 10냥짜리 금덩이 310개를 한번 거래에 얻게 됐다는 걸 의미한다.

수익이 10배 상승하니 좋은 일이나, 한국 금은방을 돌아다니는 방식으로 소화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대두됐다.

창수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 중 돈에 대해 가장 해박한 지식을 가진 김근홍을 찾아, 금 매각에 도움을 받으려 했다.

그리고 그 결정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김근홍은 전문가답게, 금의 가치와 매각 방법, 그리고 후폭풍까지 염두에 두는 종합적인 처리 구상을 보여 줬다.

투명망토와 마법자루를 사용한다면, 창수도 김근홍이 하는 일을 못 할 리 없으나, 거래 완결에 몇 배의 시간이 소모되고 위험에 휘말릴 수 있다.

태국에 있는 김근홍에게 판매를 맡기는 것이 최선이다.

물론, 이것이 가능한 건 공항 X-선에도 걸리지 않는 마법자루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 선배님께 금을 위탁하면, 언제 대금을 받을 수 있을까요?”

“양이 많아서 최소 일주일은 걸릴 거야. 검증하고 처리해야 할 단계가 있으니까.”

“시간이 붕 뜨네요.”

“쉬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 그리고 시간이 널널하면 보안계좌를 만드는 게 어때?”

“스위스 비밀계좌. 그런 거 말인가요?”

“스위스는 그닥 좋은 선택이 아니야. 보안계좌를 만들 수 있는 국가 명단을 줄게. 그중에서 세 군데를 골라 계좌를 만들어.”

“3개까지 만들 필요가 있나요?”

“나도 파악할 수 없는 보안계좌가 있어야, 네가 안전하고 나도 안전해. 그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최소 3개국에서 컨트롤 가능한 계좌가 있어야 해.”

김근홍은 창수가 어디서 금을 입수했는지 알려 하지 않았다. 그 자체로 자신에게 가해지는 위협이 증가하기에.

그리고 같은 위험 회피 선상에서, 창수가 안전하게 자금을 받는 방법을 알려 줬다.

마법자루를 가지고 있는 창수는 비밀계좌를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김근홍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 마음을 바꾸게 됐다.

김근홍은 금융과 경제 분야에 탁월한 능력을 가진 실력자다.

5.

- 슥!

‘음! 역시 이 맛이야! 태국은 팟카파오무쌉!’

2월 8일 화요일 현지시간 오후 6시 30분, 창수는 방콕 랏차다 롯파이 야시장에서 태국 음식을 즐겼다.

태국을 대표하는 야시장 중의 하나인 이곳에는 다양한 먹거리가 존재한다. 그중에서 창수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팟카파오무쌉 (Pad krapao moosab)이다.

다진 돼지고기와 으깬 마늘, 그리고 바질잎을 기름에 볶은 뒤, 기름으로 양면을 튀긴 반숙 계란을 쌀밥과 같이 먹는 음식이다.

각자 따로 떼어놓으면 별다른 특색 없는 평범한 음식이지만, 섬세한 조합을 만들면 빼어난 맛을 자랑하는 특별한 음식이 된다.

‘일도 좋지만, 먹을 건 먹고 해야지.’

지난 5일 동안 창수는 3개국에서 비밀계좌를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 돌아다녔다. 제대로 된 태국 음식을 맛보지 못한 상황.

이제 강력한 보안을 가진 비밀계좌 시스템을 구축했고, 그 계좌에 700만 달러가 넘는 금 판매 대금이 꽂혀 있다.

느긋한 마음으로 태국 최애 음식을 즐겨도 된다.

“사장님. 여전히 팟카파오무쌉 애호가군요. 다른 음식도 먹어 봐요. 태국에는 맛있는 음식이 많이 있다고요.”

“만나자마자 또 잔소리하시네요. 팟카파오무쌉보다 맛있는 음식이 뭔데요? 선장님이 좋아하는 똠얌꿍? 그거 먹느니 김치찌개 먹는 게 나아요.”

창수가 첫 번째 접시를 비우고 두 번째 접시 절반을 비울 무렵,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태국인이 옆자리에 합석했다.

그는 창수와 용선계약을 맺었던 요트의 선장이자 소유주 쁘라슥이다.

창수가 관광객을 모으면, 쁘라슥이 자신의 배로 파타야 인근 해역 요트투어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그들은 원청과 하청 관계였다.

“김치찌개라니? 평가가 너무 박한 거 아니에요? 똠얌꿍에는 온갖 맛이 들어 있어요.”

“매우면서 시큼한 맛. 달면서 짭짤한 맛. 그게 똠얌꿍 맛 아닌가요?”

“알긴 잘 아시네.”

“그러니까 김치찌개라는 거예요. 묵은김치에 돼지고기 숭덩숭덩 넣고 고춧가루 풀어서 찐하게 끊이면, 그 맛을 똠얌꿍이 따라오지 못합니다.”

“설마요? 저번에 아속역에 가서 김치찌개 먹었는데 전혀 그런 맛이 아니던데요.”

“김치찌개 진짜 잘하는 집은 더 안쪽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지금 같이 가보실래요?”

여행 전문가인 창수는 한국어 이외에 3개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다.

비록 발음과 어휘에서 손색은 있지만,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는 언어가 태국어.

창수는 오랜만에 만난 쁘라슥과 음식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그러나 둘 다 자국 음식에 자부심이 강해, 쉽사리 결론이 나지 않았다.

“김치찌개는 나중에 하죠. 오늘은 몬테 가서 노는 게 어떨까요?”

“예? VIP바에 가자고요? 요새 경기도 안 좋은데 과소비 아닐까요?”

태국에는 멤버십클럽이라 불리는 고급 술집이 있다. 부유층과 외국인이 주로 찾는 곳으로 화려한 쇼와 미녀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쁘라슥이 말한 몬테는 태국 멤버십클럽에서 활동하는 에이스급 미녀들을 모아 운영하는 최정상급 바다.

몬테에 2명이 가면 최소 300만 원이 나간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태국인 6개월 치 월급에 해당하는 만만치 않은 비용이다.

“돈 걱정 마세요. 오늘 제가 사장님을 모시겠습니다.”

“선장님. 요새 경기가 좋으신가 봐요.”

“벌이가 문제가 아니죠. 오랜만에 사장님을 만났는데 좋은 곳에서 회포를 풀어야죠.”

‘흠……. 수상한데……. 평소에 밥 한 끼 안 사던 양반이 무슨 바람이 분 거야?’

창수는 여행사 폐업 전까지, 쁘라슥과 4년간 계약했었다. 관광객이 몰릴 때는 오전 8시분부터 오후 4시까지 진행하는 정규투어 이외에 일몰 투어와 새벽 낚시 투어도 병행했다.

정규투어 비용이 성인 3,000 바트, 아동 2,600 바트였다. 정원 40명이 다 차면, 평균적으로 11만 바트 수익이 생긴다.

여기서 창수의 몫이 30% 3만 3천 바트, 쁘라슥이 가져가는 금액이 70% 7만 7천 바트(한화 270만 원)였다.

관광 성수기 때, 쁘라슥은 하루 500만 원 이상 수입을 올렸다.

물론, 연료비와 요트 유지비, 그리고 선원 인건비가 있으니, 수입 전부가 쁘라슥의 호주머니로 들어간 건 아니지만.

쁘라슥은 창수와 하청계약을 맺으면서 요트 할부금을 모두 처리하고, 집 한 채를 살 수 있었다.

그런데도 쁘라슥은 4년간 창수에게 접대다운 접대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나에게 바라는 것이 있는 게 분명해. 차라리 잘됐군. 나도 이 양반 도움이 필요하니까.’

티란을 통해 쁘라슥의 소재를 수소문한 것이 창수다.

쁘라슥이 창수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오히려 잘된 일이다. 창수가 하려는 일에 도움이 될 가능성이 크니까.

창수는 VIP바로 가자는 쁘라슥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랏차다 롯파이 야시장을 떠났다.

* * *

“대표님. 오랜만이에요.”

“플러이는 여전하군요. 아니, 시간이 거꾸로 가는 것 같습니다.”

“호호호. 한동안 안 보이시더니 말솜씨가 좋아지셨네요.”

“하하하. 그런가요?”

몬테는 저녁 8시에 문을 열고 새벽 3시에 닫는다.

창수와 쁘라슥이 8시에 맞춰 몬테에 도착하자,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던 30대 여성이 창수를 알아보고 반가워했다.

태국 멤버십클럽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푸잉의 나이는 21세에서 29세. 30세가 넘어가면 직접 손님을 상대하지 않고 20대 푸잉 관리를 한다. 이런 사람을 마마상이라고 부른다.

플러이는 한때 멤버십클럽의 레전드라 불릴 정도로 유명했고 지명도가 높았다. 30대에 접어들자, 이곳저곳에서 마마상으로 영입하려고 노력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중간 관리자인 마마상이 아니라 직접 VIP바를 차리고 경영자가 됐다. 높은 인기와 뛰어난 안목이 있기에 가능한 일.

“같이 오신 분은 처음 뵙는 것 같아요.”

“쁘라슥 선장님입니다. 우리 여행사와 요트투어 프로그램을 함께했었죠.”

“아. 그러시군요. 그러면 메인 요리를 어떤 것으로 할까요?”

“이 양반. 똠얌꿍 매니아입니다.”

몬테가 유명한 이유 중의 하나는 빼어난 음식이 나온다는 것이다. 대형 호텔 주방에서 근무하던 요리사를 영입해, 전문점 못지않은 음식을 만든다.

플러이는 태국인으로 보이는 쁘라슥의 취향을 알아낸 뒤 상차림에 들어갔다.

- 사삭!

‘헐! 저 여자가 왜 저기에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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