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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평행우주 독식-10화 (10/200)

10화 4장. 위기는 기회다

1.

- 띠링!

“어서 오시오. 젊은 손님. 오랜만이오.”

창수는 증기버스에 내린 뒤, 서울로 복귀하지 않고 대광금은방을 방문했다.

10일 만에 창수를 본 장두호가 반갑게 맞이했다. 평소 무뚝뚝한 그의 성격을 고려하면 매우 이례적인 환영이다.

“어르신, 투명망토를 구할 수 있을까요?”

“투명망토? 무슨 일이 있었던 거요?”

늙은 생강이 맵다. 창수가 투명망토를 언급하자, 장두호는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는 걸 단숨에 알아차렸다.

“사실은…….”

창수는 처음 장두호의 말을 허황하다 생각하고 투명망토의 존재를 믿지 못했지만, 한양에서 사용하는 마법물품을 접하고 생각이 달라졌다.

그는 추격자에 대응할 수 있는 최상의 장비가 투명망토라고 생각했다. 투명망토를 사용하면, 추적자 패거리들의 눈을 피해 금-은 재정거래를 할 수 있으니까.

창수는 장두호의 협조를 바라며 만두가게에서 벌어진 일을 자세히 설명했다.

“훈련받은 자들이 추적했다라……. 보통 놈들이 아닌데……. 최근 어떤 점포를 방문한 거요?”

“한수귀금속, 정단금은방, 송본귀금속…….”

“잠깐. 송본귀금속과 거래한 거요?”

“예.”

“고순도 은을 얼마나 팔았소?”

“5kg입니다.”

“어허! 승냥이 입에 목을 넣었구려.”

“예!? 송본귀금속이 그렇게 악랄한 곳인가요? 주위 평판은 나쁘지 않던데요.”

“평판은 좋을 거요. 조직적으로 관리를 하니까. 그런데 송본귀금속 배후에 왜놈들이 있소. 아니, 왜놈들 천지지, 조선 사람은 점원 몇 명만 쓰니까.”

“왜놈들이라면 일본사람들을 말하는 겁니까? 일본 국력으로 한양에서 설치지 못할 건데요.”

82년간 왕위를 지킨 광종(광해군)의 위업으로, 조선의 영토는 80만㎢에 달한다. 반면, 홋카이도와 오키나와를 병탄하지 못한 일본의 면적은 29만㎢에 불과하다.

소국 일본이 대국 조선의 수도 한양에서 대낮에 납치극을 벌이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썩어빠진 관리 놈들이 왜놈들과 내통하고 있소. 고순도 은이 나타났는데 무슨 일이든 못하겠소?”

“그러면 관아에 고발해도 소용없는 건가요?”

“그렇소. 그리고 가급적이면 관에 고순도 은을 보이지 마시오. 몰수당하는 건 물론이고, 치도곤당할 수 있소.”

‘헐! 조선! 그렇게 안 봤는데 완전히 헬이구나!’

역사책에 그려진 평행우주 조선은 훌륭한 국가였다.

개국 이후 630년 동안 임진왜란을 제외하고 큰 전란이 없었고, 명나라 못지않은 높은 문화를 가진 아시아의 강국이다.

한양의 종로는 서울의 종로 못지않게 화려했다.

그러나 장두호는 조선을 속이 썩어들어 가 조만간 샌 바람에 부러질 고목이라 말했다.

실망감이 몰려온다.

“투명망토는 쉽게 구할 수 없는 물품이오. 범죄에 악용되기 쉬워 관에서도 개인 소유를 막고 있소.”

“저는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투명망토를 가지려는 게 아닙니다. 공격하는 적을 피하기 위해 사려는 겁니다.”

장두호의 부정적인 말을 창수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르게 생각하면 어려운 방법을 택하면 투명망토 구매가 불가능은 아니라는 의미가 되기에.

“흠……. 하긴 젊은 손님이 범죄를 저지를 이유가 없지. 좋소. 투명망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알려주리다. 하지만 장담은 못 하오.”

“설득은 제가 해야 할 일이죠. 다만 소개서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수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려야 하니까요.”

“알겠소. 잠시만 기다리시오.”

장두호를 의심했던 것이 부끄러워진다.

창수는 자신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 장두호에게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감사 인사를 하고 대광금은방을 나왔다.

* * *

“허! 장단주가 소개장이라? 해가 서쪽에서 뜰 일 이오.”

“그분 소개장 받기가 어려운 일인가요?”

“어렵다마다. 소개장은커녕 칭찬 한번 받기도 어려운 꼰대 중의 상 꼰대요. 아주 꼴통이지. 젊은이 어떻게 구워삶은 거요?”

장두호의 소개를 받고 찾아간 사람은 체탐인으로 근무했던 기철민이다. 체탐인은 적진에 침투해 정보를 빼 오고, 때에 따라 적을 암살하는 첩보부대.

기철민은 사람에 대한 평가가 박한 장두호가 보낸 소개장 내용을 보고 깜짝 놀랐다.

[매우 중요한 인물이니, 가능한 한 협조하라.]

기철민이 알고 있는 장두호는 절대로 이런 내용을 쓸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소개장의 필체는 장두호의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몇 명만 알아볼 수 있는 비밀표시마저 돼 있다.

“귀금속 거래를 꾸준히 하다 보니 신뢰가 생긴 것 같습니다.”

“역시 돈인가? 하긴 돈만큼 정직한 게 없지.”

“그렇죠. 저는 어르신과도 신뢰를 쌓고 싶습니다.”

“신뢰 좋지. 그런데 정말 왜놈들 피하려고 투명망토를 구하는 거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목적이 더 있습니다. 저를 공격한 자들을 응징하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오! 요즘 젊은이답지 않게 화통하구만! 아주 마음에 들어!”

장두호의 소개장 때문일까?

의외로 기철민과 대화가 순조롭게 흘러갔다.

“내가 체탐인으로 근무한 게 40년이오. 그동안 죽을 고비만 20번을 넘겼소. 그런데 퇴직하고 내 꼬라지가 어떤 줄 아시오? 그지도 이런 상그지가 없어!”

“조선을 위해 분골쇄신한 분들을 잘 모시지 못하는 건 큰 잘못입니다. 이러니 삿된 왜구 놈들이 한양에서 설치는 거죠.”

“백번 맞는 말이오. 10년 전만 해도 나라 꼴이 이 정도는 아니었소. 금상이 너무 어리고 대비가 정신 못 차리니 이 모양 이 꼴이 된 거요.”

없는 자리에선 나라님도 욕한다. 기철민은 한번 물꼬가 터지자, 조선 관리와 일본인은 물론이고, 왕과 대비까지 비판했다.

창수는 적당한 추임새를 집어넣으며, 기철민의 화풀이성 비방을 부추겼다.

“투명망토는 내 밥줄이나 마찬가지요. 이걸 팔고 난 뒤에 가족 생계가 어떻게 될지 걱정이 된단 말이오.”

비방을 시작한 지 30분이 지났을까. 어느 정도 분이 풀렸는지 기철민이 투명망토 거래에 대해 운을 띄웠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르신 살아생전은 물론이고, 아드님 대까지 먹고살 만큼 값을 치르겠습니다.”

“오호! 역시 화끈한 젊은이군! 그래 얼마를 생각하고 있소.”

“황금 10관입니다.”

“헉! 젊은이 농이 과한 것 아니오!?”

1관은 3.75kg이다. 10관은 37.5kg으로 260만 환(한국 돈 26억 원)을 넘는 거금이다.

기철민은 자신이 생각하는 금액보다 월등히 높은 가격을 말하는 창수에게 불신의 눈길을 보냈다.

사실이기에 너무 좋은 조건이라 생각한 것.

- 척! 척! 척!

“이게 다 황금이오?”

“그렇습니다. 황금 3관입니다. 계약금으로 드리겠습니다.”

“좋소! 투명망토를 젊은이에게 팔겠소! 이렇게 후하게 셈을 치르는데 안 팔 수가 없지!”

말보다는 현찰. 현찰보다는 황금이다.

기철민은 창수의 말을 믿지 못하다가, 금덩이 30개를 보고 급격히 자세를 바꿨다. 이 정도만 해도 기철민이 평생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거금이다.

투명망토가 귀하다고 하지만, 범죄를 저지르는 데 사용하지 않으면, 밥벌이도 어렵다.

부유하고 관대한 임자가 있을 때 파는 것이 현명하다.

- 척!

“망토를 쓰고 여기를 누르면 투명하게 되오. 해제하려면 저기를 누르면 되고. 지속시간은 4시간이오. 마나석이 있으면 갈아 끼우면 되는데, 없으면 하루를 기다리면 자동으로 충전되오.”

기철민은 잔금을 받기도 전에 투명망토를 창수에게 건네줬다. 설령 금 7관을 받지 못한다 해도 상관없다는 의미.

기철민은 투명망토 사용법까지 자세히 알려주며 거래를 마무리하려 했다.

- 슥.

- 슉!

“어르신? 황금을 어디에 넣으신 건가요?”

서로에게 만족한 거래를 마치고 헤어지려는 순간, 기철민이 복대 크기만 한 자루를 열고 금 11.25kg을 집어넣었다.

“마법자루요. 수납 공간을 늘려주고, 무게를 1/10로 줄여주지. 무거운 것 들고 다니기에 딱 좋다오.”

‘헐! 대박! 공간확장 마법과 무게 감소 마법이 걸린 자루라고!?’

창수가 하루에 거래하는 은 그래뉼은 25kg이다. 더 무거우면, 창수의 체력으로 운반하기 어렵다.

기철민이 가지고 있는 마법자루를 사용하면, 단숨에 거래량을 10배로 증가시킬 수 있다.

창수의 입장에서 투명망토보다 마법자루가 더 필요한 마법물품일 수 있다.

“어르신. 그 주머니도 사고 싶습니다. 황금 10관 드리죠.”

“그 정도 비싼 건 아니오. 황금 3관으로 합시다.”

“그래 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곳간에서 인심 난다.

이미 평생 먹거리를 확보한 기철민은 마법자루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넘겼다.

만약 빈곤함이 남아 있다면, 자진해서 가격을 깎아 주는 일이 없었을 거다.

창수는 오늘 거래로 확보한 금 3관을 가지고, 투명망토와 마법자루를 손쉽게 확보하는 성과를 올렸다.

은 그래뉼 99.99% 25kg의 원가가 3,000만 원이 안 된다는 걸 생각하면, 대박 거래가 이뤄진 하루가 분명하다.

* * *

“대표님. 설 명절에 불러내 미안합니다.”

“허허허. 별말씀을 거래로 만나는 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2022년 1월 29일 토요일, 창수는 무영금속을 방문해 대표 이진우와 만났다.

설 연휴는 1월 31일부터 시작하지만, 주 5일 근무가 정착된 한국에서 실질적으로 오늘부터 설 연휴가 시작된다.

창수는 휴일을 방해한 것에 사과했으나, 이진수는 상관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 툭! 툭!

“구매대금 2억 3,460만 원입니다. 확인하시죠.”

“현금 동원 능력이 확실하군요.”

무영금속은 직원 수 23명에 불과한 영세업체다.

이진수 같은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설과 추석 같은 명절이 돌아오는 것을 두려워한다. 직원에게 보너스를 지급하거나 선물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

창수는 시장가보다 2% 높은 가격으로 은 그래뉼을 매입한다. 이번 거래로 2억 3,460만 원에 달하는 유동자금이 들어오고, 추가 수익이 4,692,000원 생긴다.

자금 압박을 받은 이진수에게 가뭄에 단비 같은 귀중한 자금.

오늘 창수의 호출은 예정된 것이 아니지만, 이런 종류의 호출을 마다할 리 없다.

- 드르륵!

“정확하게 2억 3,460만 원입니다. 분석실로 가시죠.”

“그러시죠. 그런데 은 그래뉼 분석 끝나고 다른 것도 분석할 수 있을까요?”

“그럼요. 가능합니다.”

무영금속은 첨단 X-선 분석기를 가지고 있다. 이 기기는 금과 은은 물론이고 보석의 성분과 중량을 분석할 수 있다.

대금을 받고 은 그래늄 200kg을 검사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무영금속에서 판매하는 제품 이외 물품에 분석기를 사용하는 건 문제의 소지가 있다. 고가의 장비에 무리가 갈 수 있기에.

그런데도 이진수는 창수의 무리한 청을 거부하지 못했다. 사소한 일로 VIP 고객과 좋은 관계를 해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 지이잉!

“은 함량 90%입니다.”

“쯥. 어쩐지 색이 좀 이상하다 했더니 순은이 아니군요.”

“분석 장비 없이 맨눈으로 구별하기 어렵죠. 전문가도 은수저 세트 거래에 실수할 때가 있습니다. 수업료 냈다고 생각하세요.”

“아무튼, 분석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설 명절 잘 보내십시오. 대표님.”

“예. 즐거운 명절 보내십시오. 다음에 뵙겠습니다.”

분석에 들어간 은 수저 세트 4벌이 예상보다 순도가 떨어지자, 창수가 혀를 차는 소리를 냈다.

이진수는 창수가 은 거래에서 손해 본 것이라 생각하며 창수를 위로했다. 분석 장비가 부실한 개인 투자에 종종 발생하는 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

이진수에게는 기억에 남지도 않을 사소한 일이리라.

그러나 이진수는 창수가 은수저 전에 중요한 테스트 했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첨단 X-선 장비가 마법자루 속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는군. 쓸모가 아주 많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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