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평행우주 독식-9화 (9/200)

9화 3장. 꿀물에 꼬이는 벌레

5.

“아주머니. 시장통 어깨들인가요?”

만두가게 앞에 찜통이 있고, 그 뒤에 박금래가 만두를 빚고 있다.

손님자리는 박금래보다 안쪽에 위치해서, 만두가게 밖에서 안을 살피기 어렵다. 반대로 안에서 밖으로 보기 수월한 구조.

창수는 건장한 남자 5명이 만두가게를 노려보는 걸 발견하고, 보호비를 뜯어내려는 조폭이라 생각했다.

“아녀라. 처음 보는 왈패지라.”

“외지인이라고요? 혹시 일수 쓰신 적 있으세요?”

“아니지라. 그런 것 안 한 지 5년도 넘었어라.”

‘조폭들은 영역 관리를 철저히 해. 그런데 타지 조폭이 노골적으로 시장에서 활보하고 다닌다고? 저것들이 설마…….’

창수는 낯선 무리가 노리는 대상이 만두가게가 아니라 자신일 가능성을 생각하게 됐다.

현재 창수의 배낭에 금 3,100돈이 있다. 한화 8억 원이 넘는 거금으로 조폭에게 먹음직스러운 사냥감이다.

‘어디서 꼬리를 잡힌 거지? 혹시 아이들……. 그런 생각할 때가 아니야. 지금 급한 건 여기서 빠져나가는 거야!’

창수는 빠르게 기억을 돌려 오늘 행적을 더듬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없다. 평소와 다른 게 있다면 아이들에게 만두를 사준 것뿐.

아이들에게 뒤통수 맞은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이내 털어 버렸다. 근거 없이 아이들을 의심하는 거니까.

“앞문 말고 다른 곳으로 나갈 방법 없나요?”

“밀가루 포대 뒤에 샛문이 있지라.”

- 탁!

“아주머니. 돈은 탁자에 놨어요. 계속해서 만두 만들고 계세요. 저는 샛문으로 나갈게요.”

“알았어라. 골목이 복잡허니, 조심히 가시요. 잉.”

박금래도 수상한 자들이 창수를 노릴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아차렸다.

만두가게를 노려보던 자들이 5명에서 10명으로 늘고 둘러쌓듯 길을 막고 있다. 자신을 겁박할 수준을 아득히 넘은 거다.

그녀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하던 일을 지속했고, 그사이 창수는 조용히 일어나 샛문을 통해 골목으로 빠져나왔다.

“영업 안 혀! 들어오지 말어!”

“아니! 이 아줌마가 간이 배 밖으로 나왔나? 손님에게 이딴 식으로 대해도 되는 거야?”

“내 맘이여! 내 가게에 발만 들여 봐! 뜨거운 물로 확 찌끄러 버릴 탱깨!”

창수가 골목에 들어서 길을 찾을 무렵, 만두가게 입구에서 살강이가 벌어졌다.

가게 안으로 들어오려는 패거리를 박금래가 막아선 것.

‘나를 노리는 게 분명해! 빨리 골목을 벗어나야 해!’

박금래가 적극적으로 막고 있으나, 건장한 남자 10명을 물리적으로 막는 건 불가능하다.

조만간 가게 안으로 진입해 창수가 빠져나온 샛문을 발견할 것이 분명하다.

창수가 할 일은 가능한 한 빨리 이 골목을 빠져나가는 것. 그러나 길이 복잡해 어디로 가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위기가 다가오는데 벗어날 길을 모르는 난감한 상황.

“아저씨. 저를 따라오세요.”

“응? 너 이 동네에서 사니?”

“여기 사는 건 아니지만, 길을 잘 알아요.”

언제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겠다.

조금 전 만두를 사줬던 여자아이가 갑자기 나타나 길 안내를 자처했다.

‘이 아이가 저놈들과 한패라도 별수 없다. 골목에서 갇히면 어차피 잡히는 거니까.’

이판사판. 아무것도 못 하고 당하는 것보다. 위험을 감수하고 탈출을 시도하는 게 현명하다.

창수는 여자아이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체에 대해 미심쩍은 것이 많지만, 다른 대안이 없기에.

* * *

- 사사삭!

아이답지 않게 걸음이 빠르다.

창수는 여자아이를 따라 거미줄처럼 얽힌 골목길을 헤쳐 나왔다. 자신을 추적하는 패거리들의 고함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걸 보면, 제대로 된 길을 가는가 보다.

“개천으로 내려가야 해요.”

“청계천을 넘어가자는 거니?”

“아니요. 개천가에 조용히 움직일 길이 있어요.”

종로 뒤편 골목길을 빠져나온 여자아이는 창수를 청계천으로 이끌었다.

정비가 잘된 서울과 다르게 평행우주 한양의 청계천에는 판자집들이 즐비했다.

골목길보다 복잡해 보이는 판자촌 안으로 들어간다는데 부담감을 느끼는 창수. 하지만 여자아이 덕분에 골목길을 빠져나왔으니 이번에도 믿어 본다.

“여기서 잠시 기다려야 해요.”

“그것보다 저 징검다리 건너는 게 좋지 않을까?”

“청계천 너머에도 아저씨를 쫓는 사람이 있을 수 있어요.”

“흠……. 그렇구나…….”

창수를 추격하는 자들은 집요했다. 골목길을 지난 판자촌까지 따라온 것.

여자아이는 개천가를 150m 정도 이동한 뒤, 은폐가 잘되는 장소에 숨어 있자고 말했다.

창수는 1초라도 빨리 청계천을 벗어나고 싶었으나, 냉철한 여자아이의 말을 듣고 생각을 바꾸게 됐다.

작정하고 자신을 추적하는 패거리들이 인근에 인원을 배치하지 않았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이 아이에게 큰 도움을 받는구나. 그런데 언제까지 여기에 있어야 하지? 맞아! 해가 떨어지면 움직일 수 있을 거야. 그때까지 버티면 돼!’

현재 시간 오후 3시 55분, 오늘 한양 일몰 시간이 오후 5시 52분이다. 앞으로 2시간 기다리면 어둠이 온다.

창수는 피 말리는 2시간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간절히 바라며 숨죽이고 몸을 숨겼다.

- 팡!

- 트르득!

그러나 추적자들은 만만치 않았다. 어느새 20명으로 불어난 패거리들이 판자촌을 뒤지면서 창수가 숨어 있는 인근으로 다가온 것.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이대로 잡힐 수 있다.

- 슥

‘응? 뭐지? 아이 얼굴이 너무 평온한데?’

뾰족한 대안이 없어 전전긍긍하던 창수는 무의식적으로 여자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너무도 침착한 얼굴.

마치 자기 생각대로 일이 풀린다는 표정을 하는 여자아이의 모습에 창수의 마음도 저절로 안정됐다.

10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 나이지만 의지가 되는 아이다.

“머선일이고! 으잉!”

“이보게. 동상. 머땀시 그러는가?”

“행님! 외간 놈들이 우리 동네를 들쓰시고 다닌다 아입니꺼!”

“머시라고라! 어떤 개상여러 색끼들이! 여기서 설쳐! 대굴빡을 조사 버려야 쓰것네!”

추격자들이 창수가 위치한 곳 위쪽에 다다랐을 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험악한 인상에 걸쭉한 욕설을 달고 다니는 주민들이 나서기 시작한 것.

손에 죽창, 몽둥이는 물론이고 포졸들이 사용하는 삼지창까지 들고 나와, 그들의 주거지에 무단으로 침입한 패거리들을 향해 위협을 가하기 시작했다.

“사람을 찾고 있다. 그놈만 잡고 물러갈 거다. 방해하지 마라.”

“어야! 이 싸가지 없는 새끼! 말하는 꼬라지 보소! 나가 광주 휘발유여! 우리 동네에서 네깟 놈들이 설치는 거 놔둘 줄 알어!”

“간나 새끼들! 창아리를 조져서 회쳐먹어야 함매! 여기가 어딘 줄 알구 깝죽대는 기야?”

추적하는 패거리의 우두머리가 제법 점잖게 위협을 가했지만, 조선 전역 욕쟁이들이 모인 듯한 판자촌 주민들에게 전혀 통하지 않았다.

“조져버려! 씨부랄 놈들!”

- 획!

- 슉!

“으악!”

“크악!”

주민들은 말뿐이 아니었다. 손에 든 무기를 휘두르며 추격자 패거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예상하지 못한 기습에 추격자 패거리들은 이렇다 할 대응도 못 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뭣들 하는 거야! 막아! 우린 정예부대야! 고작 판자촌 놈들에게 당할 거야!”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빠져나가야 합니다!”

추적자 패거리는 전문 훈련을 받은 실력자다. 정상적으로 전투를 벌이면 판자촌 주민들에게 밀릴 리 없다.

하지만 지금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적진이라 할 수 있는 판자촌 깊숙이 들어왔고, 변변한 무기가 없는 상태에서 판자촌 주민들이 휘두르는 연장(?)의 쓴맛을 봐야 했다.

게다가 추적자 패거리의 행패가 무서워 잠자코 있던 주민들이 일제히 나서서 공격해 오니, 갈수록 상황이 어려워지고 있다.

“젠장할! 철수해! 어서!”

- 후다닥!

- 다다닥!

집단 공격을 버틸 재간이 없다.

결국, 득의양양하게 창수를 추적했던 패거리들은 피를 철철 흘리며 도주해야 했다.

“정말 고맙구나. 덕분에 위기를 넘겼어.”

- 슥.

추적자 패거리가 판자촌을 빠져나가자, 언제 그랬냐는 듯 주위가 조용해졌다.

불과 10분 만에 벌어진 일에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창수는 송연희라고 이름을 밝힌 여자아이에게 감사 표시를 잊지 않았다.

가기고 있던 현금 2만 환을 건네준 것.

이제 창수의 호주머니에는 2백 환 만 남아 있다. 수유동으로 갈 차비를 생각하면, 가지고 있는 현금 전부를 준거라 해도 과장이 아니다.

“아저씨에게 도움을 받았으니 보답한 거죠. 그리고 돈은 필요 없어요.”

“어른이 주면 받는 게 예의야.”

“아니에요. 저는 정말 돈 필요 없어요. 정 돈을 주시려면 여기 사람들에게 나눠주세요. 겨울이라 많이 어렵거든요.”

2만 환은 한국 돈 2,000만 원에 해당한다. 빈궁한 집안 살림에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하다.

그러나 연희는 한사코 받기를 거부했다. 대신 추적자 패거리를 응징한 판자촌 주민에게 주라고 말했다.

‘연희가 동네 전체에 도움을 주기 바라는구나. 좋아. 현금을 좀 더 마련한 뒤 다시 와야겠어.’

연희의 생각이 옳다.

창수를 위기에서 구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건 여자아이지만, 판자촌 주민의 무력도 큰 도움이 됐다.

물론, 주민들이 창수 도울 목적으로 나선 것이라 할 수 없으나, 창수가 도움을 받은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창수는 다음을 기약하고 연희와 헤어졌다.

* * *

- 스슥.

‘이 정도면 날 알아보기 어렵겠지.’

창수는 비상시를 대비해 가지고 다니던 두루마기를 옷 위에 걸친 뒤 판자촌을 나왔다. 머리에 털모자를 쓰고 목도리로 얼굴을 가리니, 조금 안심이 된다.

추적자 패거리들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행인들 사이에서 창수를 발견하는 건 쉽지 않을 거다.

- 칙칙칙!

- 스응!

긴장하며 정류장까지 이동한 창수는 증기버스가 오자마자 재빨리 올라탔다.

‘휴……. 다행이군. 버스 안에 수상해 보이는 사람은 없어.’

창수와 같이 버스에 올라탄 사람이 3명, 이전에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이 5명이다.

8명 중 60세가 넘어 보이는 노인이 5명이다. 1명은 10대 여학생이고 나머지는 엄마와 아기다.

긴장을 완전히 풀어서는 안 돼지만, 한숨은 돌릴 수 있는 상황.

‘가능한 한 빨리 서울로 돌아가 대책을 마련해야 해. 이대로 당할 수 없어.’

아생연후살타. 내가 먼저 산 뒤에 적을 공략한다.

추적자의 마수로부터 탈출한 창수는 그다음 단계를 생각했다.

뜬금없는 공격을 받았다. 평행우주 한양으로 넘어온 뒤 누구에게 피해를 준 적이 없다.

조선의 역사에 개입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은을 팔고 금을 구매했을 뿐.

창수는 누군가가 자신의 돈벌이를 막고 평화로운 삶을 망치고 있다는 것에 강한 적개심을 가지게 됐다.

‘컴파운드보우를 사용하면 그놈들을 처단할 수 있어. 사제 공기총 구매도 알아봐야 해. 검방복도 필요하고.’

창수는 폭력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을 공격한 적에게 몇 배로 갚아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는 클래식한 소음을 내며 달리는 증기기차 안에서 응징을 구상했다.

‘어! 그게 있었지!’

증기버스가 수유동 정거장에 근접한 순간, 창수는 기억에서 잊어버렸던 무언가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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