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평행우주 독식-8화 (8/200)

8화 3장. 꿀물에 꼬이는 벌레

3.

- 슈욱! 칙칙칙!

“다음 정거장은 종각입니다. 내리실 분 준비하세요.”

1월 20일 목요일, 창수는 한양으로 넘어간 뒤 종로로 이동했다. 교통수단은 증기버스.

수유동에서 종각까지 거리는 직전으로 7km, 도로 상으로 10km다.

한국에서 자동차로 이동할 경우 평균 35분이 걸린다. 시내에 속도제한이 있고 교통이 혼잡해서 제 속도를 내지 못하기에 자동차 성능에 비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창수가 올라탄 증기버스는 최고 속력 40km에 불과하다. 하지만 25분 만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속도감을 보여 줬다.

‘한양은 교통체증 없이 길이 뻥뻥 뚫려 있군. 그런데 차비가 너무 비싸네.’

수유동에서 종각까지 10km 구간 동안 증기버스의 질주를 막는 차량이 단 한 대도 없었다.

서울보다 도로 폭이 좁으면서도 교통이 원활한 건 자동차 수가 매우 적은 것이 원인.

그리고 특이한 점은 증기버스 내부에 깔끔한 복장을 갖춘 안내원이 배치돼 있다는 거다.

마치 투어버스를 탄 느낌.

요금은 10환, 한국 돈으로 10,000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돈이 넘쳐나는 창수에게는 소소한 금액이지만, 서민들이 이용하기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부자들이나 승용차를 가지고 있는가 보군. 중산층은 돼야 버스를 탈 수 있고.’

한양의 모습은 서울과 많이 달랐다.

가장 눈에 띄는 건 10층 이상 건물이 매우 드물다는 점이다. 한양의 중심지인 종로에도 고층 빌딩이 3개뿐이다.

5층 건물이 간간이 보이고, 대부분 3층이다.

그다음 눈에 띄는 건 인도에 사람이 많다는 거다. 아마도 중산층 이하 서민들은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못하고 걸어 다니는 것이리라.

- 끼이익!

- 척!

증기버스에서 내린 창수는 행인의 일원이 돼 종로 일대를 돌아다녔다.

‘비까번쩍하네! 강남에 있는 명품매장 뺨 때릴 정도야!’

조선의 과학기술이 한국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지만, 상점의 화려함에서 밀리지 않는다.

고급스러운 물건이 다수 보이고, 신비로운 빛과 조명이 고급스러움을 더욱 부각했다.

‘금은방이 적게 잡아 1,000개는 될 것 같아. 내부는 엄청 화려하고.’

수유동은 변두리였다.

허름한 대광금은방은 말할 가치도 없고, 그나마 상태가 좋았던 수정귀금속도 종로 금은방과 비교하면 초라한 영세 점포에 불과했다.

이건 창수에게 긍정적인 신호다. 종로 인근 금은방과 큰 거래가 가능하다는 걸 의미하니까.

‘좋아. 이제 시장을 들러 정보를 모아보자.’

종로 일대 상권과 금은방 수준을 파악한 창수는 본격적인 정보수집에 들어갔다.

* * *

시장 상인들로부터 금은방을 추천받은 창수는 3번 이상 추천받은 곳 23개를 추려냈다.

그리고 하위권부터 방문을 시작했다. 시간이 많이 소모됐지만, 충분히 가치 있는 투자라 할 수 있다.

“공임 빼주면 안 돼요? 거래량도 상당한데.”

“아휴. 죄송해요. 손님. 하지만 저희 정책상 공임은 반드시 받게 돼 있어요.”

상인들의 평판대로 그가 방문한 금은방들은 매입 가격을 후려치지 않고, 친절하게 창수를 맞이했다.

걸림돌은 금 판매 가격이 1g당 74-75환에 달하는 고가이고, 금송아지와 금두꺼비를 구매하려면 개당 공임 200환을 내야 한다는 거다.

10냥짜리 금송아지의 가격이 28,125환이기에 200환이 큰돈은 아니지만, 수유동에서 공임을 내지 않은 것이 심리적인 장벽으로 남았다.

안 내도 되는 돈을 내면, 왠지 호구가 된다는 생각이 든 것.

창수는 금은방 3개와 거래를 중단하고 빠져나왔다.

그러나 4번째 금은방에서도 공임을 내야 한단다.

“너무 빡빡하시네요. 동대문 쪽 금은방에서는 공임 안 받는다고 하던데요.”

“아닐 거예요. 사대문 인근에 공임 안 받는 데가 없어요. 저 멀리 변두리면 모를까.”

‘헉! 날카로운데!’

점원이 단박에 공임 면제받은 지역을 집어냈다. 식견이 보통이 아니다.

‘흠……. 어쩔 수 없이 내야 하는 비용인가? 하긴,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지. 종로에서 수유동에서 통하는 혜택을 바라는 건 무리야.’

점원이 신통력을 가진 것은 아닐 터. 그런데도 공임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건, 한양 중심부 금은방들에 통하는 암묵적인 룰이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공임은 무시해도 되는 금액이다. 깨끗하게 포기하고 안전한 거래에 집중하는 것이 현명하다.

“귀물을 거래해서 영광입니다. 다음번에도 뵙기를 바라겠습니다.”

“저도 그러기를 바랍니다. 번창하십시오.”

‘예상보다 수월하게 거래가 끝났군. 손해가 조금 있었지만 말이야.’

창수는 5개 금은방에 각각 은 그래뉼 99.99% 5kg을 매각하고 96% 금 11,625g(3,100돈)을 매입했다.

대광금은방보다 375g(100돈) 줄어 아쉽기는 하다. 그래도 서울로 돌아가면 8억 원 이상을 받을 수 있으니, 나쁜 거래는 아니다.

오늘 한양으로 넘어오면서 걱정했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수월하게 금-은 매매를 마친 거다.

이로써 창수는 서울에 이어 한양에서 안정적인 매매 루틴을 가지게 됐다.

이제 이 방식을 반복하며 돈벌이를 하면 된다.

돈 복사기 세팅을 마친 창수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났다.

4.

2022년 1월 28일 금요일, 한양에서 금-은 재정거래를 마친 창수는 종로와 청계천 사이에 위치한 시장으로 들어갔다.

- 우물우물!

- 꿀꺽!

‘캬! 기가 막힌 맛이다. 한국에 이렇게 맛있는 만두는 없어. 아니 홍콩, 대만, 중국에 가도 이런 맛은 없을 거야.’

세계 71개국을 여행하면 수많은 진미를 맛본 창수. 웬만큼 맛있는 음식에 감흥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맛에 대해 눈높이가 높다.

그가 이 정도로 음식을 극찬한 것 5개 정도다.

‘돼지고기와 양고기의 절묘한 조화. 거기다가 김치와 마늘을 적절히 조합해 잡내가 하나도 없어. 이 만두 비법을 알아내서 한국에 가져가면, 가맹점 100개는 단숨에 세울 거야.’

돈벌이가 잘되니 모든 게 돈으로 보인다.

창수는 신중한 거래를 위해, 매일이 아니라 2일에 1번 한양으로 넘어오고 있다. 그래도 2일에 8억 원을 넘게 벌어 현재 보유하고 있는 현금만 45억 원이 넘는다.

2주일도 안 되는 시간에 로또 1등에 2, 3번 당첨돼야 받을 수 있는 거금을 손에 넣은 거다.

재정거래를 지속하면 한 달에 100억 원 이상을 벌 수 있고, 연간 1,200억 원이라는 막대한 부를 쌓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재벌회장 부럽지 않은 삶을 살게 될 터.

‘흠……. 돈이 무섭구나. 없으면 없는 대로 괴롭고, 있어도 더 못 벌어서 안달이고.’

1,000억 원이 아니라, 45억 원이면 충분하다. 여행사를 다시 차릴 필요도 없다.

비교적 안전한 장기 국채를 매입하고, 거기서 나오는 이자만 받아도 연간 9,000만 원에 달하는 추가 수입을 얻을 수 있다.

평생 여행을 다녀도 돈에 쪼들리지 않게 된 거다. 그런데도 돈에 대한 갈증이 풀리지 않는다.

‘정신 차려! 김창수! 절제를 모르면 돈의 노예가 되는 거야! 그리고 맛있는 건 맛있게 먹으면 돼! 거기에 돈을 결부하면 맛까지 잃어버려!’

어이없게도 만두를 먹다가 돈 생각에 빠져 버렸다.

그래도 다행인 건 창수가 샛길로 빠지는 마음을 바로잡을 지혜를 가졌다는 점이다.

언젠가 만두가게 체인점을 열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금은-제정거래에 집중해야 한다.

‘하나 더 먹고, 한 접시 추가로 시키자. 그게 남는 거야.’

그리고 식도락에 충실하자는 생각. 창수가 먹성에 속도를 높였다.

* * *

“저기……. 아주머니…….”

“응? 아가? 만두 사려는 거여?”

“예. 그런데……. 1환어치만 살 수 있을까요?”

“1환? 우리 집 만두는 3개 4환이라, 1환으로는 셈이 안 되는디…….”

창수가 첫 번째 접시를 막 비울 때, 만두가게 주인에게로 10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다가왔다.

한참을 쭈뼛쭈뼛하던 아이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만두 1환어치를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1환으로는 만두 1개도 사지 못한다.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 꾸벅!

기대했으나 현실은 냉정하다. 1환으로 만두를 살 수 없다는 말을 들은 여자아이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인사를 하고 뒤로 돌아섰다.

- 멈칫!

그리고 여자아이의 눈에 슬픈 눈으로 지켜보는 작은 남자아이가 들어왔다.

“동생인가 보구나. 잉?”

“예…….”

“에그……. 짠한 것. 어여 이리 와. 만두 하나 팔 거니께.”

“감사합니다! 아주머니!”

마음 약한 만두가게 주인은 차마 곤궁한 아이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만두 하나를 내줬다.

비록 하나지만 어른 주먹만 한 크기의 왕만두라 어린아이 두 명이 나누어 먹어도 될 듯해 보였다.

- 슥!

“아가. 너는 안 먹고 동생만 주면 어뜩 혀?”

“아니에요. 저는 배불러요.”

만두가게 주인이 만두를 잘라 접시 두개에 반개씩 담아줬지만, 여자아이는 자기 몫을 먹지 않고 7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에게 밀어줬다.

말로는 배가 부르다고 하는데, 여자아이의 배에서는 꼬르르 소리가 난다.

홀몸으로 4남매를 키운 50대 만두가게 주인 박금래. 그녀가 이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모를 리 없다.

만두를 하나 더 줘야 할까? 고민이 깊어진다.

그리고 바로 그때.

“아주머니. 만두 3접시 추가요.”

“아. 예. 포장이지라?”

상념에 빠진 박금래를 깨운 사람은 창수였다.

근래 자주 찾아와 단골손님이 돼가는 상인.

2일 전에도 3접시를 포장해 갔으니 오늘도 그럴 거다.

“아닙니다. 제가 한 접시 더 먹을 거고요. 아이들에게 한 접시씩 나눠주세요. 셈은 모두 제가 할 겁니다.”

“흐미! 사장님! 멋져 부리네요! 잉! 야들아 뭐 하냐? 사장님께. 인사혀야지!”

- 꾸벅! 꾸벅!

“감사합니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자. 자. 인사는 그만하고, 만두 맛있게 먹어.”

8환. 한국 돈 8,000원. 크지 않은 돈이다. 그러나 1환으로 만두를 사려던 아이들에게 너무도 큰돈이다.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90도로 고개를 숙이며 연신 창수에게 감사인사를 했다.

인사가 부담을 느낄 정도로 반복되자 창수가 만류할 정도.

‘1환이라도 돈을 낸 건 단순히 동정만 바라는 아이가 아니라는 거야. 동생을 위해서 만두 반쪽을 양보한 것도 기특하고.’

창수가 방문한 71개국 상당수가 빈곤한 국가였다. 섣부르게 가난한 사람을 동정하고 도와줬다가 낭패를 당한 경험한 것이 여러 번이다.

그러나 창수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선의를 악의로 갚는 부류가 있는 반면, 작은 도움이라도 절실한 극빈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관건은 도움을 줄 사람과 피해야 할 사람을 어떻게 구분하느냐?

시행착오를 통해 창수는 가난한 사람을 돕는 데 기준을 세웠다.

받은 도움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사람.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챙기는 이타심을 가진 사람.

타인의 도움에만 기대지 않고 스스로 일어서려고 노력하는 사람.

창수의 기준에 여자아이는 완벽하게 부합한다. 남자아이는 너무 어려 판단하기 어렵지만.

* * *

“사장님. 쪼개 기다려야 하겠구만요.”

“괜찮습니다. 바쁘지 않으니 천천히 하세요.”

아이들이 만두를 먹고 간 뒤에도 창수는 가게에 남아 있어야 했다. 만두 3인분을 포장하려는데, 미리 만들어 놓은 것이 다 떨어졌기 때문이다.

박금래는 보통 5, 6인분 정도 미리 여유분을 만들어 놓는다. 그런데 창수가 2인분을 먹고, 아이들이 2인분을 먹었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 아이들 손에 만두 2인분을 들려줬기에 일시적으로 재고가 바닥난 것이다.

박금래는 손님을 기다리게 하는 것을 미안하게 여겼으나, 창수는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내일부터 실질적으로 설날 연휴에 들어간다.

한국은 2월 2일까지, 조선은 2월 9일까지 연휴다.

당분간 거래가 없으니 조급해야 할 이유가 없다.

“흐미. 웬 작것들이 꼬여든댜?”

느긋하던 창수의 귀에 갑자기 박금래의 걱정스러운 말이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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