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9화
209. 209화
남궁현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목소리는 달랐다. 그는 피에 적셔진 검을 들고 웃고 있었다.
“제시카…….”
주원은 자신의 또 다른 동료인 제시카가 죽어가자 무표정인 그의 무표정에 점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분노가 피어오르고 있던 것이다.
“뭘 그리 화를 내? 에레보스.”
시스템은 다른 세계의 벌레만도 못한 존재가 죽은 걸로 화내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주원의 몸에서 엄청난 마력이 방출되자 시스템조차 놀랐다.
“감히…….”
“주……원, 화내지 말아요.”
제시카는 피를 많이 흘리는 와중에도 주원을 진정시키려고 하고 있었다.
“왜……지?”
“알잖아요……. 저희의 목숨은 주원이…… 살려주었다는 것을…….”
“후후후, 동료애인 건가요?”
시스템은 계속해서 옆에서 쫑알거리기 시작했다. 정말 듣기 싫었다.
“어차피……. 이렇게 될 운명이었어……요.”
쿨럭 소리와 함께 제시카의 몸이 차가워지고 있었다.
“지금…… 상황으로는 시스템을 이기지 못할 거에요……. 그러니…….”
제시카는 눈을 감기 전에 뭔가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주원은 그녀가 무슨 짓을 하는지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멈추라고 말했다.
“힘을 줄게요…….”
주문이 멈췄고 제시카는 죽었다. 그리고 그녀의 모든 힘이 주원에게 계승되었다. 주원은 더욱 강력해진 것이다.
“제시카…….”
디아나는 슬픈 표정이었다. 제시카도 결국 떠나 버렸고, 이제 주원과 자신만 남았다.
주원은 차가운 눈으로 시스템을 노려보았다.
“하하하, 그렇게 노려봐도 무섭지 않다고요. 저의 핵을 못 찾은 이상 당신들은 모두 끝이니까.”
시스템은 크게 웃었다. 그리고 이 세계를 파멸시키기 위해 아까 빙의로 연결해 둔 모든 헌터들을 폭주시켰다.
그들이 폭주해서 터진다면 여기 있는 이들은 모두 죽을 것이다. 빙의로 연결된 이들이 괴로워하며 하나둘 쓰러져 고통을 호소하였고, 그들의 팀원들은 동료를 살리기 위해 애를 썼다.
“이제 끝내자고요.”
시스템은 그 말을 한 뒤 모든 마력을 개방했다. 강력한 힘으로 주원과 싸움을 시작했다. 서로 치고받고 피가 터지는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그 와중에 진성은 시스템의 핵을 찾아 달려왔고 주원을 도와 참전했다.
“후후후, 비겁하군요. 2대1이라니.”
“죽어라, 시스템.”
“시스템……. 난 너를 믿었는데.”
“후후후, 어쩌라고요? 저를 믿은 게 잘못이죠. 진성 님.”
압도적인 힘을 가진 주원과 시스템의 힘을 일부 받은 진성은 시스템에게 밀리고 있었다.
시스템의 무력은 강력했다. 둘이 밀릴 정도였다.
“강진성……. 방법이 하나 있다. 네가 시스템의 움직임을 잠깐 멈출 수 있나?”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넌 알 필요 없다……. 그러니 잠깐 10초만 멈추면 된다.”
박주원이 뭘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진성은 그를 믿기로 했다. 그러곤 세린과 아이린 하멜 등 모든 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최대 전력으로 그의 움직임을 멈추게 하자고.
그에 몬스터들과 싸우는 A급 헌터들을 제외하곤 모든 이들의 공격이 시스템에게 쏟아졌다.
“이제는 벌레들끼리 나를 공격하네, 하하하.”
시스템은 벌레들이 아무리 뭉쳐봤자 자신을 못 이긴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디아나는 주원이 뭘 하려고 하는지 파악했다. 목숨을 바쳐 시스템을 소멸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주원. 제시카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말아줘.”
디아나는 그 말을 한 뒤, 잠깐 멈춘 시스템을 향해 박쥐들을 모두 불러 시야를 방해했고 자기 몸으로 시스템의 움직임을 완전히 봉인하였다.
“후후후, 디아나 여기서 죽을 셈이군요.”
“시스템. 죽어간 내 동료들의 복수야.”
“움직임을 봉인하고 나서 어떻게 하려고 하시나요? 방법이 없을 텐데 말이죠.”
“재밌는 거 알려줄까?”
“……?”
디아나가 다음 말을 하는 것을 여유롭게 기다리는 시스템이었다.
“너의 핵, 어디 있는지 알아.”
그녀의 작은 목소리에 여유롭던 시스템은 다급해졌다. 그녀가 안다는 것은 주원과 강진성도 안다는 이야기였다.
“이거 놓으시죠!”
시스템은 자신을 완벽하게 봉인하고 움직임을 막는 디아나를 계속해서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며 벗어나려고 했다.
디아나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면서도 그의 몸을 단단히 잡고 움직임을 막았다.
“그러다가 당신도 죽는다고요!”
“후후, 뭐가 급해?”
“미치겠군요……. 빨리 이거 놔!!”
존댓말을 쓰던 시스템은 주원이 다가오자 반말을 써가면서 그녀를 계속해서 때렸다.
강력한 주먹과 발차기에도 이를 악물고 그녀는 시스템을 막았다.
빠각-
디아나는 시스템에게 제대로 맞아 비틀거렸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인지 시스템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원.”
“수고했어! 디아나……. 미안하다.”
주원은 성마검으로 시스템이 점거한 남궁현의 심장에 검을 찔러넣었다. 그녀와 같이 말이다.
“크아아아악! 박주원!!”
시스템은 엄청나게 괴로워하며 발버둥을 쳤다. 디아나는 미소 지은 채로 미동이 없었다.
“나도 곧 따라가마…….”
어느새 다가온 진성은 그 현장을 목격하고 주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악……마.”
“악마라고? 그래 너에겐 그렇게 보이겠지……. 강진성, 마무리는 너에게 맡긴다.”
주원은 뭔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마치 시스템처럼 허공에다가 어떤 창을 띄우고, 뭔가 조작하는 것처럼 보였다.
진성은 시스템을 끝내기 위해 삽에 마력을 집중시켰는데 평소의 마력이 아니라 세계수에서 흘러나오는 밝은 빛이 삽과 진성의 전신을 집어삼켰다.
“비켜!!”
시스템은 직감적으로 알았다. 저 빛을 맞으면 자신이 진짜로 소멸한다는 것을. 그래서 발버둥을 치며 도망가려고 했다.
“시스템…… 할 말은?”
“웃기지 마!!!”
푸우욱-
삽으로 그의 심장을 찌르자, 핵이 점자 잘게 부서지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악.”
시스템은 괴로워하며 사방을 부쉈다. 난동을 피우고 있었지만 위력은 약해지고 있었다.
“겨우 인간 따위에게……. 내가…… 내가!!”
“추하군……. 닉스.”
주원이 다가와 말했고 죽어가는 시스템에게 창을 하나 띄웠다.
“혼자 외롭게 죽지 않게는 해 주지. 넌 영원히 내가 봉인한다.”
“안 돼!!!”
주원은 시스템을 붙잡고 남은 육체도 파괴했다.
큰 소리가 들린 후,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끝……난 건가?”
진성은 주원과 시스템의 소멸한 자리를 보았다. 주변에 시스템의 잔재가 있는지 살펴보았지만,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이제는 진짜 소멸한 것이다.
“세린아.”
“아빠, 모든 게 끝났어요.”
“진짜 이걸로 끝이니?”
“시스템은 소멸했으니까요…….”
진성은 혹시 몰라 상태 창을 펼쳤는데, 아직 시스템창이 떠 올랐다.
“본래 그것도 없어져야 하는데…….”
세린도 이상함을 느꼈다. 시스템이 소멸하면 그가 만든 것들도 소멸해야 옳았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걸까?
다들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진성……. 덕분에 시스템은 내가 봉인했다. 앞으로도 지구와 다른 행성에 간섭하지 못할 거다.
“박주원……?”
-그래……. 본래의 내 위치로 돌아간 것이지. 사실 내가 진짜 시스템이었다.
“그럼 아까의 그 시스템은?”
-정확히 말하면 형제라고 말해야겠지…….
“아…….!”
-이제 모든 것이 끝났고 개인적인 감정은 지워 버릴 것이다. 이제 진짜 시스템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주원의 말에 진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이제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니 걱정 말아라. 강진성…….
“박주원 당신은 왜 나를……. 이렇게까지?”
-그건 알 필요 없다…… 그저 해야 할 일이었으니, 그렇게 한 것이다.
진성은 그 말에 더욱 궁금증이 생겨 질문하려 했으나, 갑자기 전체 텔레포트가 되어 대피소로 이동되었다.
진성은 박주원을 불렀으나 더는 말이 없었다.
대피소로 돌아온 헌터들은 가족 또는 친구들에게 돌아가며 모든 게 진짜 정상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장에 남은 군주 부하들이었던 이들은 강진성과 그 일행을 원망했으나 최측근이었던 아멜리아 헌터가 그들의 움직임을 막았고 군주의 유지를 이어받아 시스템을 숭배하며 지내기 시작했다.
아멜리아처럼 주원에게 구원을 받은 이들은 언젠가 돌아올 박주원을 위해 자리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희망 사항일 뿐…….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버린 그가 돌아올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저 그들은 박주원을 잊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군주님…….”
스티븐은 군주님을 잘 보필하지 못해 군주님이 대신 죽은 거로 생각하며 자책했다. 그런 그를 동료들이 위로해 주었다.
“스티븐. 너무 자책하지 마라……. 주원 님은 원래부터 희생할 생각을 가지고 계셨으니까.”
아멜리아 헌터가 자책하는 스티븐을 위로했다. 오직 주원을 모시면서 그림자처럼 다니던 그녀가 이렇게 말하자 다들 숙연해졌다.
“이제 주원 님은 시스템 일부다. 그러니 우리대로 살아가면 돼.”
아멜리아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박주원이 언젠가 자신들의 곁으로 다시 돌아올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짜 시스템이 무너진 후, 끝까지 도시에 숨어서 버티던 범죄자 헌터들도 군대에 무너져 항복하고, 사회는 점차 정상적인 기능으로 돌아왔다.
군주와 시스템을 막아낸 헌터들은 모두 국가에서 표창장을 받았고 피해를 본 사람들은 보상을 받았다.
아팠던 시간이 지나가고 점점 그 사건은 잊혀져 가기 시작했다. 오직 현장에 있었던 헌터들만 그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을 뿐…….
* * *
어느덧 시간이 흘러 3개월 후…….
“아빠!”
세린과 진성은 밭과 집의 복구를 끝내고 여느 때와 같이 농사를 지으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후우후우, 힘드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일하는 진성과 그를 도와주는 세린과 그리고 예린이었다.
진성은 시스템이 주는 퀘스트를 받아 열심히 밭을 복구했고 확장하여 어느새 규모가 커진 밭을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사건 이후, 예린하고는 더욱더 친해졌고 세린은 그 둘 사이를 이어주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다.
“예린 씨, 이제 쉴까요?”
“네, 진성 씨.”
세린은 예린과 대화를 나누며 잠시 물을 가지고 온다며 자리를 떠났고 진성은 잠시 쉴 겸 세계수로 걸어왔다. 그늘에서 쉬려고 하는 것이다.
“벌써 3개월이나 지났구나…….”
진성은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시스템이 복구되었고 퀘스트를 받고 보상을 받아가며 열심히 농사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진성은 잠시 과거를 회상했다. 적인 줄 알았지만, 나중에 시스템과 함께 소멸한 박주원을 생각했다.
그는 결국 시스템이 되었지만, 자신이 아무리 불러봐도 그저 딱딱한 대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박주원의 감정은 남아 있지 않은 것일까? 그는 진짜 시스템이 된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며 그늘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박주원……. 고맙다.”
진성은 중얼거렸고 그에게 작은 소리로 뭔가 들렸다.
-나도 고맙다, 강진성.
“……?!”
분명 박주원의 목소리였다. 진성은 다시 한번 주원을 불러보았지만 더는 들려오지 않았다.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일까?
진성은 속으로 다시 한번 박주원이라고 외쳤으나 시스템에게선 이렇다할 반응이 돌아오지 않았다.
“잘못 들은 걸까?”
진성이 잠시 의아해하는데, 저 멀리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물을 가지고 오는 세린과 예린이 손을 흔들며 진성을 불렀고 진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에게 다가갔다. 세린과 예린의 대화를 들으며 진성은 웃고 있었다.
그런 진성에게 시스템이자 박주원이 한마디를 남겼다.
-열심히 살아라, 강진성…….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