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8화
198. 198화
“이제 슬슬 출발할까요?”
진성은 한 번 심호흡을 하고 이한나 팀장에게 말했다.
그녀는 ‘네.’라고 말하며 주변에 몰려 있는 헌터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둘러보았다.
긴장하고 있는 헌터들이 대다수였지만, 한울 기업 소속 헌터들은 이런 일들에 워낙 익숙했던 터라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신참 헌터들만 긴장감에 몸을 떨고 있었다.
“이제 가도 될 거 같아요. 도련님.”
“네. 그러면 가도록 하죠.”
그들은 구출 임무 겸 배후의 원인 중 하나를 제거하러 가는 거였지만, 이 싸움에서 얼마나 죽을지 그리고 얼마나 살아 돌아올지 알 수 없었다.
약 180명에 가까운 인원이 텔레포트 아이템을 사용했고, 대피소에 바글거렸던 인원의 절반이 한꺼번에 사라지자 고요해졌다.
“갔구나…….”
“그러게, 동혁이 녀석, 무사해야 할 텐데.”
대피소에 남은 자들은 다치거나 구출 임무를 포기한 자들이었다.
대부분 자원한 이들만 갔었기에 그들은 떠나 버린 동료들에게 미안함과 걱정이 들었다.
스르륵-
텔레포트 아이템을 쓴 그들은 현성 기업 본사 근처로 도착하였다.
“인원 점검해 주세요.”
이한나 팀장의 말에 다른 기업 소속의 팀장들과 고레벨 베테랑 헌터들이 움직여 낙오된 인원이 있는지 파악에 나섰다.
“도련님, 파악은 좀 걸릴 거 같은데 한번 상황을 살펴볼까요?”
“네. 일단 저희가 어그로를 끄는 입장이니까 아주 화려하고 요란하게 해야 하니까요.”
“네. 그럼 선발로 저와 도련님이 은신 스킬을 써서 접근해 봐요.”
이한나 팀장은 바람의 정령을 소환해서 자신과 강진성의 인기척을 지우고 다른 팀원이 은신 스킬을 써서 그 둘을 가려주었다.
“자, 그럼 가죠?”
“네. 도련님.”
이한나와 강진성은 본대를 놔두고 조심스럽게 현성 기업 본사 정문에 접근하였다.
그런데 점점 다가갈수록 싸움소리 같은 게 들리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일까요?”
“글쎄요…….”
둘은 작은 목소리로 소통하면서 정문에 접근했다. 정문에는 전투 흔적과 쓰러진 헌터 두 명 외에 아무도 없었고 오히려 본사 정문을 지나자 주차장과 1층에서 전투음이 크게 들리고 있었다.
“저희보다 누군가가 와서 공격하고 있는 것 같아요. 도련님.”
“누굴까요?”
“조금 더 접근해 봐요!”
주차장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고함이 더 커졌고, 싸우는 자들의 정체를 파악하려 했다.
그곳엔 청와대에서 봤던 검은 정장을 입은 경호원들과 기동대 복장을 한 경찰들이 조은성의 부하들과 싸우고 있었다.
“1층을 어떻게든 사수해!”
조은성 부하 간부로 보이는 자가 외쳤고 그의 졸개들이 밀려드는 경찰과 경호원을 상대로 버티고 있었다.
수적으로는 조은성 부하들이 꽤 우세했는데 실력으로는 경호원과 경찰들이 유리했다.
하지만 수적 차이로 인해 그들이 강하다 할지라도 1층을 뚫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죠?”
이한나 팀장의 말에 진성은 골치가 아파졌다. 갑자기 난데없이 그들이 왜 조은성을 공격하는지 모르겠지만 이러면 작전이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그냥 밀고 나갈까요? 어차피 경호원분들은 저희 편이나 다름없을 거 같은데……. 잠시만요. 경호 실장한테 전화해 볼게요.”
“네, 도련님.”
진성은 바로 그 자리에서 경호 실장 번호를 핸드폰에 입력하려고 했으나 자신의 명함만 주었지, 그에게서 명함을 받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아……. 번호가.”
“제가 알려드릴게요. 도련님.”
이한나는 강진성의 핸드폰에 경호 실장 개인 연락처를 입력해 주었다.
“고마워요. 이한나 팀장.”
“별말씀을요.”
이한나 팀장이 알려준 덕분에 진성은 바로 연락을 취했다.
뚜르르르-
신호음이 여러 차례 가더니 뚝 소리와 함께 ‘여보세요.’라는 경호 실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경호 실장님. 저 강진성이라고 합니다.”
-아……. 진성 님. 제 번호는 어떻게 알고?
“이한나 팀장이 알려주었거든요. 개인 연락처요.”
-아……. 그렇군요. 무슨 일이십니까?
“네.”
진성은 그에게 간단하게 상황에 대해 설명해 주었고, 구출 임무를 위해 현성 기업 본사에 도달했다고 하자 실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럼 진성 님이 원하는 방향은 뭡니까?
“같이 배후 잡지 않으실래요? 지금 현장을 보니 수적으로 불리하신 거 같아서요.”
-흐음……. 알겠습니다. 현장에서 싸우고 있는 저희 애들한테 얘기해 놓겠습니다
경호 실장은 고민이 되었지만, 상황이 너무 급한 터라 시간을 더 끌면 조은성이 도망칠 것 같아 진성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럼 저희는 준비할게요.”
-네, 진성 님. 파견 나가 있는 팀장들에게 제가 얘기해 놓겠습니다.
“네, 그럼.”
뚝 소리와 함께 통화가 끊겼다.
“다 들었죠? 그럼 저희도 준비하러 가죠.”
“네, 도련님.”
둘은 현장에서 조용히 빠져나와 본사 근처에 대기하는 본대 병력 쪽으로 향했다.
그들은 인원 점검을 끝낸 후 모두 대기 중이었다. 잔뜩 긴장한 채 말이다.
“인원 점검은?”
이한나 팀장이 같이 온 한울 기업 소속 헌터에게 묻자 그는 낙오자 1명도 없이 도착했다는 대답을 했다.
“그럼 정확히 10분 뒤에 전투조는 전방으로, 후방조는 우리가 싸우기 시작한 이후 바로 출발하는 걸로 하죠.”
진성의 말에 다들 알겠다고 말하며 각 기업의 팀장들이 부하들에게 전달하기 시작하였다.
“알았지? 시우야, 성현아.”
“OK! 알겠어.”
“확인.”
성현은 의욕이 넘쳐 보였고 시우 또한 마찬가지였지만 감금되어 있는 아버지 생각에 복잡한 표정이 가득했다.
후방으로 침투하는 조는 성현을 제외하고 전원 현성 기업 헌터들로, 강력한 헌터들이 포진되어 있다.
계획을 전달하는 그 몇 분간 기도를 하는 헌터가 있는가 하면 누구는 가족사진을 꺼내 보며 잔뜩 긴장해 보이기도 했다.
아주 극소수지만 고랭크 헌터들은 긴장하지도 않고 서로 농담을 하기도 했다.
“예린 씨는 어떻게 할 거예요?”
한예린 또한 전투조로 지원했는데, 후발대의 한예린 헌터의 언니인 한소율 헌터가 동생이 전투조에 지원했다는 소리에 강력하게 반대했지만, 결국 동생의 고집에 의해 어쩔 수 없다는 듯 받아들였다.
“전 진성 씨 옆에 붙어 다니면서 싸울게요.”
“아무리 A랭크 성녀 헌터라지만 싸울 수 있겠어요?”
한예린이 싸우는 걸 전혀 본 적이 없는 진성으로선 걱정될 뿐이었다.
“네, 괜찮아요. S랭크 헌터인 언니에게 기본 호신술은 배웠으니까요.”
“위험하다 싶으면 물러나 주세요.”
“네……. 그런데 진성 씨.”
“네?”
“차현민 헌터는 안 부르세요? 그분도 배후를 무척이나 잡고 싶어 했는데.”
“아! 깜빡할 뻔했네요. 잠시만요.”
진성은 빠르게 차현민 헌터에게 전화를 걸어 배후를 잡으려는 계획에 대해 이야기 했고, 지금 당장 텔레포트 아이템으로 현성 기업 본사 앞까지 올 수 있냐고 물었다.
차현민 헌터가 바로 오겠다고 해서 잠시 더 기다리기로 하였다.
“금방 온다고 하니 조금만 더 기다려야 하겠네요.”
“네.”
10분이 넘도록 출발하지 않는 진성의 모습에 이한나 팀장이 다가와 말을 걸었고 진성은 한 명이 더 올 거라면서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전달했다.
이한나 팀장이 알겠다고 대답하며 그 이야기를 다른 팀장들에게 전달하였다.
대기하는 시간이 조금 더 연장되자 대기하던 헌터들이 부랴부랴 무기부터 꺼내 마지막 점검을 하였다. 대피소에서도 점검했지만 불안해서 한 번 더 보는 것이다.
저벅저벅-
누군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나자 대기하던 인원들이 경계하면서 소리가 나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전달받기로는 한 명이 더 온다고 하였는데, 한 명의 발소리가 아닌 것 같아 더욱 경계했다.
그들의 긴장감이 커질 때쯤, 발걸음 소리를 내는 인물들의 얼굴이 드러났다.
차현민 헌터와 루카스 그리고 그의 부하들이었다.
“한 명만 오는 것 아니었나?”
“그러게…….”
다른 헌터들이 중얼거리면서 말했다.
“진성 씨!”
진성은 ‘드디어 차현민 헌터가 왔구나.’란 생각에 그들을 반기려 했다. 하지만 루카스와 그의 부하들까지 보이자 의아했다.
“혼자 오는 게 아니었나요?”
“그게, 저분들도 같이 오기를 희망했습니다. 도와주겠다고 하면서요.”
차현민 헌터의 말에 진성은 루카스를 쳐다보았다.
“궁금증이 가득한 표정이로군. 그래. 설명을 잠깐 해도 되겠나?”
“네, 급하지 않은 사안이니까요.”
사실은 급한 상황이었지만 몇 분 정도는 시간을 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사실 나도 구경만 할 셈이었는데 가야리 주민 중에 우리와 관련된 자가 있었던 게 문제지.”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정확히 말하면 가야리 사망자 중에 미국 시민이 있다는 말이라네.”
“네?”
“조은성 헌터 부하들에 의해 두 명이나 죽었네. 그래서 자네를 도우라는 상부의 명령일세.”
“그런 상황 때문에 차현민 헌터와 같이 온 거군요?”
“그렇지……. 일단 명령이 내려온 이상 도와주겠네.”
“그러면 저희야 감사하죠. 앞에서 어그로 끌며 관심을 돌리는 일인데……. 화려하게 가능한가요?”
“후후후, 화려하게라. 그건 우리 길드가 전문이지. 맡겨만 주게.”
“네. 그럼 이제 다 올 사람은 다 온 거 같으니까 슬슬 가죠.”
루카스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길드의 부길드장이었다.
진성은 전투조를 한데 모아 말했다.
“다들 자원해서 왔지만 우리는 대한민국의 전국을 어지럽히는 배후를 잡으려고 왔습니다. 이 싸움을 끝내고 각자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 보죠.”
진성의 짧은 연설에 그들의 마음속에 긴장은 사라지고 눈에 의욕이 되살아났다.
살아남아서 가족에게 돌아가야겠다는 말이 더욱 와닿았다.
“그럼…….”
진성이 먼저 삽을 들고 은신을 풀고 뛰어나갔다.
그에, 전투조의 150명이 넘는 인원이 함성을 지르며 돌입하였고 후방 침투조는 그 자리에 기다렸다.
“뭔 소리지?”
갑자기 들려오는 거대한 함성에 조은성 부하들은 크게 당황하였다.
이미 경호 실장에게 전달받은 경호원들과 경찰들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드디어 원군이 왔다는 생각에 더욱 힘을 내서 적들과 싸웠다.
“화려하게라. 후후후.”
루카스는 자신이 데리고 온 가디언즈 최정예 대원 일부와 함께 전장에 들어섰다.
조은성의 부하들은 대부분이 루카스를 몰라보고 덤볐다.
루카스는 달려오는 적들을 공격하지 않았는데, 계속해서 쓰러지자 조은성의 부하들은 크게 당황했다.
그중 B랭크 헌터 일부가 루카스를 알아보고 심하게 덜덜덜 떨면서 말했다.
“저, 전장의 사신 루카스!!”
그 말에 용병 헌터들이 모두 두려움에 떨었다.
조은성의 부하들은 헌터보다는 일반 조폭 출신들이 많았기에 루카스를 몰라보는 게 당연했지만, 용병 헌터들은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임무를 수행했기에, 헌터 세계를 잘 아는 자들이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가디언즈 길드의 부길드장이 이 전장에 나왔으니, 승산이 없는 전투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도망가야 한다.’
그런 마음들이 용병들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다.
“미친……. 저걸 어떻게 상대해?”
“이젠 개죽음이라고!”
이미 용병 헌터들 대다수는 전의를 상실했다. 그의 존재감으로 절반 이상의 적들이 흔들리고 있던 것이다.
“대체 정체가 뭐예요?”
진성은 적들이 루카스를 보며 무서움에 떨자 루카스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가디언즈 길드에 대해서는 뉴스에서 떠드는 걸 들었지만 자세히는 몰랐고, 루카스가 어떠한 존재인지도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나 말인가? 그저 흔한 헌터라고, 후후후.”
분명 적은 전장의 사신이라고 말하며 내뺐다. 그러면 엄청 대단한 헌터라는 것인데…….
“일단 저희는 계속해서 어그로를 끌면 됩니다.”
진성은 루카스의 존재감으로 다 이긴 싸움이라고 생각하여 주변 헌터들을 격려하자, 긴장하던 헌터들도 기운을 내서 적들에게 각종 어그로를 끌기 시작했다.
용병 헌터 대다수는 조금씩 물러섰고 조은성 부하들은 루카스를 모르는 터라 닥치는 대로 돌진하였다.
전장은 루카스와 그의 부하들에게 정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용병 사이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호오? 가디언즈 부길드장 나리가 왔다고?”
오렌지색의 복장을 한 자였는데 죄수 번호가 적힌 거로 봐선 교도소에 갇혀 있던 헌터 같았다.
“오랜만이군. 제이콥.”
“그래, 오랜만이야. 루카스.”
서로를 알아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