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1화
191. 191화
“네,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진성 님이 폭주한 상태로 너무 많이 움직였기에 후유증이 상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죄송합니다, 세린님.”
“후유증을 치료할 방법은 있어?”
“방법은 있긴 있습니다……. 다만.”
“다만??”
시스템이 말하기 어려운지 우물쭈물했다.
대체 방법이 뭐길래 시스템이 저렇게 말하기 꺼리는 것일까?
“말해 봐. 시스템.”
“강진성 님의 몸이 현재 붕괴가 되기 직전이기 때문에 세린 님의 목숨을 조금 나누어 주셔야 합니다.”
“너의 고유 권한으로도 안 돼?”
“네, 안 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몸의 붕괴를 늦추는 것뿐입니다.”
시스템은 완벽하게 연기를 하며 강세린을 속이고 있었다.
강세린의 목숨이 아니더라도 후유증을 없앨 수 있지만 강세린의 힘을 약하게 만들기 위해 목숨을 나누어 달라고 했다.
그런 시스템의 꿍꿍이를 모르는 세린은 아빠의 상태가 매우 걱정되었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 목숨이라도 상관없어. 아빠를 살릴 수 있다면.”
“그러면 제가 안전한 장소에서 빙의를 풀고 후유증을 조금 늦춰보겠습니다.”
“알았어! 시스템. 안전한 곳은 어디가 좋을까?”
“제가 밭으로 들어오면서 밭 전체에 은신 스킬을 걸어 두었습니다. 저희의 모습은 보이지 않을 겁니다.”
“그럼 세계수 앞에다가 빙의를 풀어줘. 시스템.”
“네, 세린님.”
시스템은 세린과 함께 그나마 이 화재 속에서도 멀쩡한 세계수의 앞에 도달하였다.
시스템은 세계수 그늘에 몸을 누이고 빙의를 해제하였다. 그러자 누적된 후유증이 강진성의 몸을 강타했고 강진성은 큰 고통을 느끼는지 눈을 감은 채 격하게 움찔거리며 고총의 신음을 흘렸다.
“크으으으.”
“아빠! 빨리 시스템! 막아줘!”
-네, 세린님.
시스템은 강진성의 몸에 스킬을 걸어 고통과 후유증을 늦추게 하였다. 진성의 몸에 밝은 빛이 나기 시작하자 눈을 감은 채로 인상이 풀어졌다.
“이제 내가 어떻게 하면 돼?”
-세린 님이 생명의 씨앗을 나누어 주면 됩니다.
“생명의 씨앗…….”
-정확히 말하면 세계수의 씨앗이죠.
시스템이 세린에게 원하는 것은 세계수의 씨앗이었다.
어찌 보면 세계수의 씨앗은 세린의 수명과도 같은 것이었고 세계수의 제어권이 달린 문제였는데 시스템은 그걸 노린 것이다.
마치 진성을 위한 것처럼 세린을 속였다.
씨앗이라는 말을 평소에 들었다면 세린은 시스템을 의심하면서 다른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스템이 씨앗 이야기를 꺼낸 건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정말 아빠를 살리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린은 세계수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 방법밖에는 없는 거야? 시스템?”
-다른 방법도 있겠지만…… 진성 님은 위독한 상태입니다. 현재로선 씨앗을 주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알았어.”
-정말 죄송합니다. 세린 님.
“아니야……. 아빠를 살리면서 후유증을 없애는 방법은 이게 유일하니까……. 다른 누구도 아니고 아빠니까 내가 희생할 거야.”
세린은 눈을 감고 왼손으로 세계수의 나무를 만졌다. 그에, 세계수에서 성스러운 빛이 뿜어져 나오며 나무 기둥 속에서 씨앗이 빠져나왔다.
저게 바로 세계수의 씨앗이자 생명의 씨앗이었다.
시스템은 저걸 지켜보면서 자신의 계획대로 돼간다는 생각을 했다.
끝까지 연기해서 모든 이들을 속일 것이다.
“아빠……. 이제 고통스러운 것은 없어질 거예요.”
세린은 씨앗을 반으로 쪼개 반쪽은 다시 세계수 안에 넣었고 나머지 반쪽을 진성의 가슴에 심었다.
씨앗은 아무런 저항이 없이 진성의 가슴에 들어와 심장에 안착되었고, 성스러운 빛이 진성의 몸에 흘러넘쳤다.
“씨앗이 아빠를 치유하려면 적어도 1시간이 걸려……. 그러니 시스템, 아빠를 지켜줘.”
-네, 세린 님.
“그럼 난 밭의 재건을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울게.”
-네, 다녀오십시오. 세린 님.
“그래……. 믿을게. 시스템. 꼭 아빠를 지켜줘야 해!”
-걱정하지 마십시오.
세린은 밭 재건작업을 위해 다른 인원에게 향했다.
-후후후, 계획대로군요. 세계수의 정령왕도 저렇게 잘 속다니. 역시 연기를 잘한다니까.
시스템은 일이 이렇게 잘 풀리자 너무 좋아졌다. 다만 온전한 세계수의 씨앗이 이식된 게 아니어서 아쉬웠다. 자신이 세계수를 제어하는 건 조금 어렵겠지만 그래도 수고할 만한 가치는 있었다.
세계수의 제어권이 자신에게 온전히 들어온다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강진성의 몸 제어권만 넘어오면 될 듯한데…….
시스템은 명백히 강진성의 몸을 노리고 있다.
-뭐……. 조만간 넘어 올 듯하니까 좀 기다려야지.
시스템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강진성의 몸에서 성스러운 빛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 지켜보았다.
그렇게 1시간이 지났을까?
성스러운 빛이 점차 사라지고 진성의 심장에 씨앗이 완전 이식이 되었는지 몸이 조금씩 움찔거렸다. 깨어나려고 하는 것이다.
-이제 일어나려나 보네. 다시 연기를 시작해 볼까?
움찔-
“어……. 여긴 어디?”
-진성 님. 깨어나셨습니까?
“……나 어떻게 된 거야? 빙의 이후로 기억이 전혀 없어.”
-저에게 빙의 되신 이후로 모든 적은 제가 격퇴했고 몸에 무리가 온 진성 님을 안전하게 밭으로 텔레포트 시켰습니다.
“그렇게 된 거구나…….”
빙의는 처음이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시스템이 꽤 고생한 듯 보이자 진성은 고맙다고 말했다.
-아닙니다. 진성 님. 그것보다, 잡혀간 엘프 아이린은 어쩌실 겁니까?
“아이린……. 구해야지. 배후가 누군지도 알아봐야 하고.”
진성은 아이린도 구해야 했고, 거기에 밭과 자기 집을 재건해야 했다. 또 가야리 마을까지도 불태워져서 아무래도 한동안 시끌시끌할 듯하였다.
적들은 정확히 자신을 노린 것이었기에 자신 때문에 마을주민들이 꽤 큰 피해를 입은 것 같아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일단 밭부터 정리하자…….”
-아직 조금 쉬셔야 합니다. 진성 님. 깨어난 지 얼마 안 되었고 세린 님이 큰 힘을 쓰셨습니다.
“큰 힘이라니……?”
-그게…….
시스템은 진성에게 세계수의 씨앗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진성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내가 쓰러지고 나서 후유증이 밀려왔나 보구나. 세린이는?”
-밭에서 살아남은 드워프, 엘프, 수인족과 함께 밭을 수습 중입니다.
시스템의 말에 진성은 벌떡 일어나 사방을 다시 둘러보았다.
밭은 세계수를 제외하고 모든 게 잿더미로 변해 있었다. 자신이 크게 고생하면서 일군 밭의 모든 것이…… 없어져 버렸다.
“배후가 정확히 누군지 모르겠지만……. 용서할 수 없어.”
-일단 진성 님은 조금 쉬셔야 하며, 주변을 수습한 이후에 상황 판단하는 게 좋을 듯 보입니다.
“알았어……. 시스템.”
진성은 시스템이 쉬라고 권유했지만 지친 몸을 이끌고 세린이가 있는 곳으로 걸어 나갔다.
세린이는 날아다니며 정령들과 맨드레이크 등을 지휘하여 사망자를 수습하고 있었다.
세린은 인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빠!”
“세린아…….”
“이제 괜찮아요?”
“응. 덕분에 괜찮아졌어…….”
“좀 더 쉬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괜찮아. 사망자 수습 중인 거니?”
“네……. 아빠.”
세린은 슬픈 표정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이가 목숨을 잃은 것이다.
그중 고라니 일족 족장이었던 고강한의 시신과 수인족의 족장, 안드레의 시신이 나란히 누워 있었다.
“안드레와 고강한까지 죽어 버렸어요. 아빠.”
“그 둘이…….”
안드레는 뒤늦게 합류한 수인족이었지만 언제나 밝은 녀석이었다. 고라니 고강한 같은 경우는 사사건건 자신의 밭에 찾아와서 침을 뱉고 도주하였고 어느 순간 자신을 도와주며 밭에 정착한 녀석이었다.
그런 그들이 알 수 없는 자들에 의해 제거된 것이다.
그 둘 뿐만 아니라 꽤 많은 수의 사람이 자신의 밭에서 목숨을 잃었다.
“아빠. 이들이 죽은 지 4시간 정도 흘렀어요.”
“……그렇구나.”
진성은 수많은 사망자 시체들 앞에 슬픈 눈으로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자신과 밭을 위해 싸우다가 죽은 것이다.
-진성 님. 세린 님.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죽은 자들을 애도하고 있을 때 시스템이 갑자기 세린과 진성에게 말을 걸었다.
-죽은 이들을 모두 살릴 순 없지만, 안드레와 고강한 등 일부는 살릴 방법이 있습니다
“그런…… 방법이 있어?!”
진성은 그 말을 듣자마자 보이지 않는 시스템에게 외쳤다.
-네. 마침 가야리 마을 생존자 중에 특이 스킬을 가진 자가 있습니다. 그를 찾아 데려오면 제가 다음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어떤 스킬인데?”
-대규모 광역 치유 스킬입니다.
“그런 사람이 가야리 마을에 있다고?”
-네. 심지어 진성 님이 몇 번 본 사람입니다.
“그게 누군데……?”
진성은 시스템의 말에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자신과 가야리 마을에서 마주친 사람이라…….
차현민 헌터 이외에 청년 회장님. 그리고 일부 주민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누군지 짐작이 가질 않았다.
-C랭크 성직자 헌터이자 편의점……이라고 하면 아시겠습니까?
“아! 한예린…… 그 사람을 말하는 거야?”
-네. 진성님. 죽은 이들 일부를 살리려면 그녀가 필요합니다. 빨리 가야리 마을로 향해서 그녀를 찾아주시길 바랍니다.
“알았어……. 세린아, 잠시 여길 부탁해. 가야리로 갔다 올게.”
“아빠. 조심하세요. 적들이 모두 대피한 게 아닐 수도 있어요.”
“응, 괜찮아. 아무리 지친 몸이지만 아직 싸울 수 있거든.”
“그래도 조심하세요. 아빠……. 아빠의 몸은 완전한 게 아니니까요.”
“알았어…….”
-진성 님. 이들을 살리려면 서둘러야 합니다. 영혼의 잔재가 육신에 머물고 있지만 언제 떠날지 모릅니다
시스템의 독촉에 진성은 알았다면서 황급히 준비해서 지친 몸을 이끌고 밭에서 나왔다. 세린은 아빠를 걱정하면서도 밭의 수습을 위해 움직였다.
진성은 정신없이 밭에서 나왔고 불타 버린 자기 집을 지나 가야리 입구까지 내려왔다.
“처참하네…….”
가야리의 건물들은 대부분 불에 타 멀쩡한 건물이 거의 없었다.
“어디 있을까? 편의점 안에는 아무도 없는 거 같은데.”
편의점 근처 건물을 수색해 봐도 가끔 적들의 시체나 주민들의 시체만 보였다.
“북쪽 상가 쪽으로 가볼까?”
-아무래도 그러는 게 나을 거 같습니다.
진성은 북쪽 상가부터 찾는 게 나을 거 같아 그쪽으로 향했다.
그쪽으로 갈수록 사방에 시체가 넘쳐났다. 불에 타죽은 시체들도 상당히 있었다.
대체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생명이 죽었을까? 자신의 존재 때문에 마을주민들도 상당히 희생당한 거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
“배후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잔인해.”
-그 말에 저도 동감합니다.
“슬슬 북쪽 상가가 나올 텐데…….”
불태워진 건물들 사이로 온전한 건물이 몇 채 보이기 시작했다. 이곳은 차현민 헌터의 식당과 다른 식당 여러 개가 몰려 있는, 가야리 마을의 소비 중심지이다.
“여기는 그나마 온전하구나.”
진성은 적이 언제 튀어나올지 몰라 인벤에서 삽을 꺼내고 꽉 쥔 채 사방을 둘러보며 조심스럽게 상가 건물로 향했다.
휘이익-
진성이 북쪽 상가 대피로 입구까지 향하자 뭔가 날아와 경고를 하였다.
“화살?”
아무리 봐도 화살이었다. 헌터들이 쓰는 화살이었기에 진성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는 적이 아닙니다……. 이 마을주민이에요.”
진성은 자신에게 화살을 날려 보낸 이가 왠지 적이 아닐 거라는 생각에 큰 소리로 외쳐 보았다.
적이었다면 다짜고짜 화살을 자기 몸에 날렸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을 맞히지 않고 위협 사격으로 날린 것을 보아하니 적은 확실히 아니었다.
저벅저벅-
진성의 앞에서 나타난 이는 진성이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마을주민이라고요?”
“네.”
“이름이 어떻게 되죠?”
“강진성입니다.”
그는 진성의 이름을 확인한 뒤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
-그래, 무슨 일이지?
“네. 팀장님. 마을주민이라고 하는 이를 북쪽 대피소 근처에서 찾았는데 확인 부탁드립니다. 이름은 강진성이라고 한다는데요?”
-잠시 확인해 보겠다.
“네. 팀장님.”
그는 전화하면서도 진성을 경계하고 있었다.
진성은 공격할 의사가 없다면서 삽을 인벤에 넣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