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5화
185. 185화
“조금 먼 거리군……. 조장님, 어떻게 할까요?”
“그들보고 마을 입구까지 올 수 있는지 물어보게.”
“네, 알겠습니다.”
부조장은 바로 무전기에 대고 마을 입구까지 올 수 있냐고 물었고, 무전기 너머에선 긍정의 답이 돌아왔다.
“그럼 마을 입구에서 보세.”
-네……. 빠르게 가겠습니다.
11번대 무전 이후,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나서 연락이 두절 되었던 12번대 생존자 9명과 13번대 생존자 11명 등에게 연락을 받아 마을 입구까지 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살아남은 길드원들이 하나둘 무전기 신호를 받아 간신히 마을 중앙의 건물에 모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멀리서 큰 폭음이 들려왔다.
차현도는 폭음의 진원지가 강진성의 밭이라는 것을 알았다.
“저쪽도 이제 시작하나 봅니다.”
부조장의 말에 현도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우리는 우리대로 여기에 머무르며 다친 이들을 최대한 치료한다!”
“네, 조장님!”
부조장은 각 지역에서 살아남아 도달한 이들 중 멀쩡한 대원들을 따로 분류해서 건물을 지키게 하였고 나머지 다친 이들 치료에 전념하였다.
* * *
“우오! 이것이 그 녀석의 위력이군.”
조은성은 강진성의 밭에서 무한 대기 중이었는데, 10분이 지나도 공격이 시작되지 않아 재촉을 하였다. 다니엘은 위력이 더 큰 것을 날려주겠다는 말로 시간을 더 끌었다.
얼마 후, 다니엘은 기다린 보람이 있도록 엄청난 화력으로 보답을 해 주었다.
그의 원거리 저격 위력에 방벽은 물론, 방벽을 방패삼아 공격하던 수십 명의 드워프와 엘프들까지 무너졌다.
“구멍이 뚫렸다! 들어가라!”
용병 조장들의 외침에 사기가 부쩍 오른 용병들이 뚫린 방벽 안으로 쳐들어가기 시작했다.
쓰러지지 않은 엘프와 드워프, 수인족이 뚫린 방벽을 막으며 사력을 다했지만, 수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다니엘, 수고했다. 약속대로 한국에서 뜨게 해 주지.”
-그 약속 지켜라, 조은성…….
“걱정하지 말라고. 난 약속은 지키는 남자니까.”
-그럼 믿고 일단 기다리겠다. 떠날 비행기가 준비되면 전달해라!
조은성은 다니엘의 전화를 끊은 후, 방벽으로 진격하는 용병대 인원들을 보며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주춤거리며 서 있던 남은 고구려 길드원들에게 모두 죽이되, 엘프 일부는 생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길드장님! 조은성 헌터가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래……. 알고 있다. 다들 가자!”
고구려 길드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주춤거리던 길드원들도 돌격을 감행하였다.
이제 이 방벽을 지나 남은 녀석들을 처리하면 진짜 끝이다. 큰돈을 받았지만, 고구려 길드가 받은 피해가 너무 커, 이번 작전이 끝나면 대통령에게 더 큰 돈을 요구할 생각을 했다.
“와아아아!”
“모두 죽여라!”
엄청난 수의 적들이 방벽 안으로 진입하였고 닥치는 대로 베어나가고 있었다. 진성의 밭을 지키던 이들이 하나둘 무너져 갔다.
정령들도 사력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 고라니 일족을 이끄는 고강한도 힘을 쥐어짜고 돌격을 감행해서 수십 명의 용병을 다치게 하였다.
“고라니가 사람을 친다!”
“저거 몬스터 아니여?”
“몬스터까지 부리다니……. 죽은 그 강진성이라는 녀석은 대체?”
‘정령에 고라니까지? 대체 죽어 버린 그 녀석 정체가 뭐지? 마치 소설 속에 나오는 먼치킨이라는 존재인 것인가?’라는 생각이 든 원강율이었다.
“후후후 이제 다 끝났네요. 아이린.”
슈리엘과 아이린은 아직도 대치 상태였고 슈리엘의 부하들은 엘프를 죽이거나 생포하는 데 동참하고 있었다.
“슈리엘…….”
“얼굴이 일그러진 모습, 보기 좋네요.”
아이린은 인상을 쓰고 있었다. 자신의 일족이 다크 엘프와 헌터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거나 치욕스럽게 붙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 포기하세요. 아이린……. 그러면 아픈 꼴은 안 당할 거랍니다?”
“왜 이렇게 변한 건가요? 슈리엘!”
“그걸 말이라고 하시나요? 당신과 엘프 일족이 저희를 이렇게 만든 겁니다. 그리고 증오스러운 시스템…….”
아이린은 슈리엘에게서 강렬한 증오심과 분노를 느꼈다.
“여기서 쓰러질 순 없어요!”
“그럼 저를 쓰러뜨려 보세요. 아이린.”
슈리엘은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동안 대치 상태를 유지하느라 지루해 죽는 줄 알았는데, 드디어 각오한 듯, 아이린이 무기를 꽉 쥐었다.
드디어 아이린과 붙게 되었다. 정면에서 싸워서 굴복시킴으로써 복수할 것이다.
물론 아이린은 생포한 후, 이하늘 대통령에게 데려가서 치욕스럽게 당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 * *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에 시체들이 쌓이고 있었다. 세계수의 정령왕 강세린은 모든 힘을 쥐어 짜내 적들을 공격하고 또 공격하였다. 경매장에 다가오지 못하게 전력으로 막아내었다.
정령왕 세린 덕분에 적들은 경매장에 접근을 못 하고 있었다.
“크윽……. 대체 저 정령은 뭐지?”
원강율조차 고전하고 있었다. 방벽을 뚫고 들어온 것은 좋았으나 강력한 정령 한 마리 때문에 더는 진격을 하지 못하고 있다.
고구려 길드와 용병들은 방벽 입구에서 발이 묶여 버렸다.
“고라니 녀석들도 강합니다!”
고강한이 이끄는 고라니 일족 500마리 중 400마리 이상이 헌터들에 의해 죽었고, 남은 일족을 데리고 싸우고 있었는데 고강한의 무력이 워낙 강해 최소 B랭크 헌터 수십 명이 달려들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강했다. 무력뿐만 아니라 이상한 아이템을 던져서 마비시키거나 일부 헌터는 탈모화가 진행되었다.
“고라니가 헌터를 흉내를 낸다고? 웃기지도 않는 광경이군.”
조은성은 고강한과 대치 중이었는데 당한 용병들을 향해 고작 고라니에게 당했다며 웃었다.
사람 흉내를 내는 몬스터 따위를 못 이기다니. 몬스터만도 못한 녀석들이다.
“비키라고! 내가 상대한다!”
쓰러진 용병들과 간신히 서 있는 용병을 제치면서 나온 이는 조은성과 함께 교도소에 갇혔던 일원 중 한 명이었다.
“조은성 헌터. 저 녀석은 내가 상대하겠다.”
“호오? 그렇게 하든가.”
조은성은 비켜섰다.
그는 루마니아에서 유명한 AA랭크 기사, 디미르라는 이름을 가진 헌터였다. 겉모습만 해도 산적 같은 야성미를 가진 남자였다.
“겨우 몬스터 하나 따위에게 쫄아 버리다니. 쯧쯧.”
그는 쓰러진 용병들에게 조롱을 날렸다. 그 말에 용병 몇이 발끈했으나, 그들도 루마니아 헌터를 매우 잘 알았기에 반박하지는 못했다.
“내가 보여 주지! AA랭크의 진정한 힘을!”
조은성과 용병 그리고 고구려 길드는 그를 지켜보았다.
그는 약 2m가 훨씬 넘는 대검을 꺼내 고강한에게 달려들어 휘둘렀다.
까강-
고라니 고강한은 장신의 털복숭이인 남자가 휘두르는 대검을 막아냈는데, 그의 괴력에 조금 밀리고 말았다.
인간 중에서 이렇게 괴력의 남자가 있었다니……. 아까 자신이 상대했던 다른 인간들은 자신보다 약해서 방어하는 데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꽤 강력한 인간이 등장한 것이다.
“고라니 주제에 꽤 하는군!”
디미르는 대검을 자유자재로 휘둘렀다. 그의 강력한 힘에 의해 거대한 대검이 장난감처럼 휘둘러지고 있었다.
강한이 점점 밀리기 시작하자 그 싸움을 지켜보던 수인족 전사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밭에서 주인 강진성과 몇을 제외하고 강한 편인 고라니 일족 족장 고강한이 이렇게 밀리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형님…….”
고강한의 동생은 주먹을 꽉 쥐었다. 형이 밀리는 모습이 꽤 위험해 보인 탓이다.
“우하하하 어떠냐! 몬스터.”
“큭…….”
“고작 몬스터가 사람 흉내를 내? 이 어르신이 한 수 가르쳐 주지. 몬스터는 몬스터일 뿐이라고!”
디미르는 압도적인 힘으로 고강한을 밀어붙였고 강한은 간신히 막는 데에만 급급해 점점 밀려 어느새 자신의 진영까지 왔다.
“겨우 이 정도냐?”
계속해서 도발했다.
“역시 대단하군. 디미르.”
조은성은 그가 고강한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데려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강한과 아이린은 고전을 하고 있었고 세린 또한 긴장감에 몸이 굳어 지쳐가고 있었다.
아빠가 자신의 곁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가 큰 듯, 몸이 두 배로 빠르게 지쳐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빠…….”
세린은 아빠가 어서 빨리 깨어나기를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 * *
한편, 강진성은 경매장 2층에 잠들어 있는데, 꿈이라도 꾸는지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진성 님, 이제 깨어날 시간입니다.
시스템이 잠든 진성에게 말을 건네었고 그 말에 반응이라도 하는지, 깨어나려고 몸부림을 치기 시작하였다.
세린과 아이린, 하멜 그리고 밭에 있는 모든 종족이 밭의 주인 진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모여 진성에게 들려 왔다.
* * *
콰쾅!
고강한이 날아가 벽에 부딪히는 파공음이 울렷다.
결국 대검의 소유자, 루마니아 AA랭크 헌터에게 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아이린도 생포되었다.
“으하하, 역시 몬스터는 상대가 안 되는군.”
“좋아, 수고했다. 디미르.”
“이제 강한 적은 없나 보군.”
“이제 이 밭은 더는 볼일이 없지……. 그러니 모두 불태워라!”
조은성의 말에 용병들은 미리 준비해 둔 화염병을 사방으로 던지고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일반 화염병이 아닌 군주가 직접 제조한 어둠의 화염병이기 때문에 잘 꺼지지 않았다.
“이제 강진성도 끝났으니……. 흐흐흐.”
조은성은 기분이 매우 좋았다. 강진성을 직접 처리하진 않았지만 사신 길드 녀석들이 잘해 주었기 때문이다.
강진성의 밭이 다 타고나면 군주에 대항할 녀석은 이제 없을 것이다.
쓰러진 고강한과 다른 녀석들을 무시하고 사방에 불을 질렀다. 세린은 막으려고 했으나 모든 기력이 소진되어 쓰러지고 말았고, 남은 고라니 일족 등이 세린을 데리고 후퇴하였다.
그들은 경매장에 있는 강진성의 존재를 생각하지 못하고 세린만 데리고 후퇴하였다.
“아까 경매장을 필사적으로 지키던데, 저기에 뭐가 있는지 확인하실 겁니까?”
한 용병의 말에 용병 조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용병 몇과 함께 경매장 건물로 향했다.
조은성은 불타는 밭을 뒤로하고 밭을 나왔고 뒤를 따라 고구려 길드장도 후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경매장에 진입한 용병 10여 명은 이곳저곳을 뒤져 보았고, 각종 무기와 아이템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오오! 이 무기는 B랭크 무기 아닌가?”
“조장님! 여기에 돈도 있습니다!”
“그래, 모두 챙겨라!”
그들은 신나게 1층에 있는 모든 물건을 인벤에 챙겼다. 그리고 한 용병이 구석에 있던 계단을 발견하였고 2층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조장님! 여기 2층으로 가는 계단이 있는데요?”
“그럼 2층까지 털고 가야지!”
“네, 조장님!”
인벤이 덜 찬 용병 몇을 위로 올려보냈고 인벤이 꽉 찬 용병들은 동료들이 내려올 때까지 1층에서 대기하였다.
불길이 언제 경매장 건물로 옮겨 올지 몰라 빠르게 처리하고 떠날 셈이었다.
2층으로 올라온 용병 6명은 각 방을 수색하며 물건을 챙겼고 마지막 방에 진입하기 전이었다.
“이제 여기만 수색하면 끝입니다!”
“그럼 빨리 털고 가자고! 언제 불길이 여기를 덮칠지 몰라.”
“네!”
용병이 문을 열자마자 어떤 인물이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뭐지? 다친 녀석인가?”
“모르겠습니다.”
“그냥 내버려 두고 갈까요?”
“물건만 챙기고 나간다. 어차피 잠들어 있는 녀석은 불길에 타죽겠지. 뭐.”
“네, 알겠습니다.”
그들은 잠들어 있는 진성을 무시하고 그 방에 있던 아이템을 몽땅 챙기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이 건물을 수색해서 다행이라며 각종 아이템을 신나게 챙겨 넣었다.
그때, 진성은 몸을 꿈틀거리며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잠들어 있었기에, 몸이 조금 뻐근했다. 그리고 왁자지껄한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았는데, 밭을 태우고, 이 건물까지 털어 간다는 내용이었다.
자신이 잠든 사이에 무슨 변고가 생긴 것이 틀림없었다. 의식은 아까 회복하였고 이제 일어나기만 하면 되었는데, 너무 오랫동안 잠들어 있어서 움직이기 힘들었다.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조금씩 몸을 움찔거리고 있는데, 용병들은 진성이 깨어나는 줄도 모르고 물건을 챙기기에 정신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