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3화
183. 183화
아직도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는 강진성의 밭에서는 일부 밭과 작물들이 불타고 있었고, 엄청난 수의 용병들과 고구려 길드 그리고 다크 엘프들이 세계수의 정령왕 세린이와 엘프, 드워프 그리고 수인족들과 함께 싸우고 있었다.
밭에는 이미 수많은 시체가 널려 있었다.
“헉, 헉……. 대체 이 밭, 정체가 뭐야?!”
한 고구려 길드 간부가 외쳤고, 다른 이들도 짜증이 가득하였다.
일반적인 밭인 줄 알았는데, 여기에 있는 모든 작물이 고구려 길드원들을 향해 맹렬히 공격을 퍼부었고 그로 인해 수십 명이 죽어 나갔다.
대체 이 밭은 정체가 무엇이란 말인가? 전세계에서 이런 이상한 밭이 또 있을까? 아니, 없을 것이다. 오직 여기만 존재할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쓰러지는 고구려 길드원들의 수가 많아졌다.
엘프들과 드워프, 수인족들은 잠들어 버린 강진성을 지키기 위해서 죽을힘을 다해 싸우는 중이었다.
“호호호, 아이린. 오랜만이로군요.”
“당신은……. 슈리엘.”
슈리엘과 아이린의 만남이었다. 한때는 같은 동료였지만 지금은 서로가 적이었다.
“이때만을 기다렸습니다. 아이린! 당신의 파멸을 위해…….”
“슈리엘! 당신은 속고 있는 거야.”
“아니요. 저는 진실을 알아 버렸습니다. 시스템과 세계수 때문에 저희 종족이 파멸해 버린 것을요. 그리고 동족인 당신은 저희를 구해 주지 않았죠.”
“슈리엘. 아직 늦지 않았어!”
“늦었어요. 아이린.”
슈리엘은 과거를 회상하는 듯, 음침하게 웃고 있었다.
“슈리엘…….”
아이린은 그녀가 아직도 자신을 원망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게 오해였다.
자신은 그녀들을 도우려고 했었다. 하지만 타이밍이 어긋나 버렸고 결국 이렇게 되었다.
“아이린……. 이제 악연을 끝내죠.”
슈리엘은 흑요석으로 만든 단검을 꺼내 아이린에게 겨누었다. 그녀는 아이린과의 인연을 끝내겠다는 각오를 한 듯한 표정이었다.
“싸움 말고 다른 길은 없나요? 슈리엘…….”
“…….”
아이린과 슈리엘은 한동안 대치 상태를 유지했다. 둘 중 한 명이 움직이는 즉시 누구 한 명은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하기 때문에 슈리엘은 아이린의 빈틈을 찾아내고 있었다.
그 둘이 대치하는 동안 주변 상황은 점점 악화하여가고 있었다.
밭의 절반은 불타고 있었고 사방에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다.
채앵-
무기끼리 부딪치는 소리와 고함과 비명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제기랄……. 이것들 뭐야!”
“빨리 불태워 버려!”
용병들은 맨드레이크 수백 마리와 싸우고 있었는데, 아무리 베어도 재생되어 몰려오고 있었다. 한 용병이 불을 사용해 맨드레이크를 불태우는 데 성공하자 하나둘 불을 사용해서 불태우기 시작했다.
맨드레이크들은 불에 의해 동료가 쓰러지기 시작하자 사력을 다해 불길을 피하면서 적들을 공격하였다.
“끼에에엑-”
“좋아, 한 마리 컷!”
용병이 화염방사기를 맨드레이크 방향으로 쏘았고 불이 온몸에 옮겨붙은 맨드레이크는 고통스럽게 죽어 나갔다.
“모두 불을 사용해서 태워라!”
용병 조장의 말에 용병들은 인벤에서 불과 관련된 아이템과 화염방사기 등을 꺼내 사방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불길에 의해 맨드레이크뿐만 아니라 진성이 열심히 길렀던 작물들까지도 타고 있었다.
고라니 일족들도, 드워프도, 엘프들도 모두가 상처 입고 있었다.
용병들과 고구려 길드원들의 방해로 불길을 진압하기 어려웠다.
이렇게 난리인데 진성은 아직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고, 다들 지쳐가기 시작했다.
밭의 주인이 없어서 그런지 밭의 버프도 제대로 작동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세린 님……. 아무래도 힘들 것 같습니다.”
드워프 하멜은 온몸에 피 칠갑한 채 그녀에게 말했다.
“하멜. 더 버틸 수 있어?”
“네……. 일단은 버텨보겠습니다. 세린 님, 큰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드워프 하멜은 지쳐 있는 부하들에게 다시 한번 명령을 내렸고 제일 피해가 심한 지역으로 달려 나갔다. 생각보다 적들이 숫자가 많고 강했기에 하멜조차도 고전하고 있던 것이다.
“와라! 도적 같은 녀석들!”
드워프 하멜은 큰 도끼를 휘둘러 고구려 길드원 수십 명을 날려 보냈다.
“크아악!”
“너, 너무 강해!”
길드원은 하멜의 강력함에 질려 버렸다. 처음 보는 종족이었지만 너무도 강했기에 접근조차 못 하고 있었다.
하멜의 관심 끌기 덕분에 많은 이목이 쏠린 가운데, 아이린과 슈리엘은 여전히 대치 상황이었고 세린은 진성 대신에 밭에 있는 모두를 지휘하기 시작하였다.
잠든 진성을 지키는 이는 고라니 고강한과 몇 마리의 고라니뿐이었다.
“비켜라……. 겨우 저놈 하나 상대하지 못하다니.”
보다 못한 고구려 길드 간부 한 명이 하멜의 앞으로 나섰다.
“문 조장님!”
“약골들은 빠져라……. 저 녀석은 내가 상대한다!”
검은색으로 칠해진 갑옷을 입고 나타난 이는 고구려 길드 간부 중 나름 강한 문인찬이라는 자였다.
그는 성기사 헌터로, A랭크를 넘어서고 있었다. 언월도라는 무기를 사용한다.
“호오? 강한 적이로군…….”
하멜은 그와의 싸움이 어려울 것을 직감하였다. 싸움에 꽤나 익숙해 보이는 자였기 때문이다.
“다른 자들은 가서 도와라. 여기는 내가 맡는다.”
“넵, 문 조장님!”
하멜을 상대하던 60여 명의 길드원은 후퇴하였다.
그 자리엔 하멜과 문인찬만 남게 되었다.
“이름이 뭐냐?”
문 조장은 드워프 하멜에게 물어보았다.
“이름이라……. 난 드워프 족장 하멜이다!”
“하멜. 좋은 이름이군.”
드워프라는 종족이라…….
“내 이름은 문인찬이다. 하멜.”
문 조장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단숨에 거리를 좁혀 하멜의 앞까지 달려왔다. 하멜은 예상했다는 듯이 피했다.
“감이 좋군…….”
문 조장은 아무래도 싸움이 어려워질 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드워프 하멜이라는 자가 강하기도 했지만 노련함이 보였기 때문이다.
하멜과 문 조장이 목숨을 건 혈투를 하고 있을 때, 호수 중앙에서는 드워프 일족과 엘프 일족 그리고 수인족들이 모여 방어를 하고 있었다.
이곳이 뚫리면 경매장이었는데 그곳에는 진성이 있었기에 다들 필사적으로 막았다.
“대체 저기 건물에 뭐가 있길래 저렇게 필사적이지?”
“그러게, 말이야……. 저기에 보물이라도 있나?”
잠깐 대치 상태인 용병 두 명의 대화였다.
고구려 길드원들과 용병들은 호숫가에 쌓아 올려진 방벽을 뚫기 위해 공격을 퍼부었다.
“아빠…….”
세린이는 경매장 건물로 돌아와 잠든 진성의 손을 꼭 잡고 그의 상태를 파악했다.
상황이 난장판이 되었음에도 깨어나지 않아 조금 초조해진 것이다.
“시스템……. 아빠를 지켜줘.”
-네, 세린 님. 알겠습니다.
세린은 시스템을 별로 믿지 않았지만 현 상황에서는 잠든 아빠를 지켜줄 수 있는 건 시스템뿐이었다.
자신은 완벽히 지켜낼 수 없었다. 자신의 힘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세린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갔다 올게요. 아빠.”
세린은 경매장 건물에서 나왔다. 호수 중앙에 방벽을 쌓고 버티는 모든 이들을 보았다.
몸이 성한 이는 거의 없었고 다들 여기저기 큰 상처를 입고 앓는 소리를 내며 겨우겨우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상황은 아주 안 좋았다.
“세린 님…….”
수인족 전사 한 명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안드레는?”
“안드레 님은 여전히 실종 상태입니다. 입구에서 연락이 끊긴 지 오래입니다. 아무래도 그쪽 싸움이 격렬해서 이쪽은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하는 거 같습니다.”
“그럼 하멜은?”
“드워프 족장 하멜 님은 적 중 강한 이와 아직도 전투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이린 님은 다크 엘프와 대치 상태입니다.”
수인족 전사의 말에 세린은 상황을 파악해 보았다.
핵심 인력인 아이린과 안드레, 하멜이 빠진 상태에서 이곳을 제대로 지휘할 능력이 있는 인원은 자신뿐이었다.
싸움에 나설 수 있는 이는 드워프 전사 44명, 수인족 전사 103명 엘프 전사 31명뿐이었다. 그 외는 모두 다치거나 그들을 치료하는 인원이었다.
아주 적은 숫자로 적들을 막아내야 하는 것이다.
적들도 아마 꽤 큰 피해를 보았을 것이다. 현재 이 방벽을 공격하는 적들의 숫자는 300명이 조금 넘었기에, 아마 적들은 400명 정도가 남아 있을 것이다.
이 밭에 쳐들어온 적이 약 800명이었는데 그중 절반은 해치운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절반 정도가 남아 있었기에 불안함이 가시질 않았다.
“세린 님,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수인족 전사가 불안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여기가 최후의 보루야……. 그러니 버텨야 해.”
“알겠습니다. 전사들에게 전달하겠습니다.”
수인족 전사는 다른 동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그 자리를 떠났다. 아무래도 자신들의 최후는 여기까지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세린은 그 자리에 서서 복잡한 머리를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했다. 상황이 매우 불리했기에 뾰족한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이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아진 것이다.
“저 방벽, 단단하군.”
고구려 길드장이 맨 앞에 서서 방벽 앞에 서 있었다.
이 방벽을 뚫으려면 압도적인 힘이 필요할 것 같은데, 그러기 위해선 공성 무기라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없다.
앞으로 몇 시간이면 동이 틀 것이고 시간이 점점 흐를수록 자신들만 불리해진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고구려 길드장은 방벽 앞에 서서 고민했다.
“어떻게 하긴. 박살 내야지…….”
길드장은 난데없이 들린 목소리에 깜짝 놀라 쳐다보았다. 어느새 조은성 헌터가 다가와 있었다.
“조은성 헌터?”
“그래. 나다. 아직도 여기서 쩔쩔매는 거냐? 고구려 길드장, 원강율.”
비꼬듯이 말하는 조은성의 말투에 조금 짜증이 났지만, 시간을 끈 것은 맞았기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고구려 길드의 힘이 겨우 이 정도라니……. 정말 실망이야.”
“시비 걸러 왔나?? 조은성 헌터.”
“시비라……. 그건 딱히 아니고, 힘들어 보이길래 도움을 주려고 왔지. 저 방벽, 무너뜨리고 싶지?”
“방법이라도 있는 건가?”
“당연히 방법이 있으니 내가 이렇게 왔지.”
“무슨 방법이지?”
“자자, 기대하라고……. 흐흐흐.”
조은성 헌터의 알 수 없는 말에 원강율은 짜증이 났다.
방법이 있으면 당장 알려주든가……. 저렇게 시간을 끌다니. 정말 짜증이 나는 녀석이었다.
“15분만 기다려달라고. 원강율.”
겨우 15분 만에 방벽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대체 무슨 방법인지 모르겠지만……. 15분이면 된다고?”
“충분하지……. 으흐흐.”
조은성은 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고, 원강율에게 들으라는 듯이 큰소리로 통화하기 시작하였다.
“너의 힘을 보여 주라고……. 다니엘.”
-알았다. 이 일만 잘 처리되면 난 한국을 뜬다.
“걱정하지 말라고. 다 처리해 줄 테니까. 다니엘.”
다니엘이라는 헌터는 원거리 포격형 헌터였는데 방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뭔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다니엘?”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 조은성 헌터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다니엘이라고 들어는 봤냐? 원강율.”
“이름이 익숙하기는 한데…….”
“힌트는 원거리 저격.”
“설마……. 그 다니엘인 건가?!”
그는 미국에서 원거리 저격수로 이름을 떨치는 헌터였는데 단순한 저격수가 아니라, 좌표만 있으면 정확히 그곳에 탄환을 날릴 수 있는 스킬을 가지고 있다. 비록 스킬 쿨타임이 3일에 한 발뿐이지만, 모든 마력을 압축한 탄환을 날리기에 위력이 엄청났다.
이렇게 사기적인 스킬임에도 다니엘이 잘 쓰지 못하는 이유는 모든 마력을 압축하는 탄환을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에 몸에 큰 무리가 오기 때문이다.
“그래, 그 다니엘이 맞아……. 으흐흐.”
“미X놈. 다니엘을 섭외해서 데려오다니. 역시 보통이 아니었군. 조은성……. 넌 미쳤어.”
다니엘의 마력탄은 핵폭탄급 위력이었기에 몸값도 비쌌고, 국가에서도 그를 대접하는 편이었다. 그가 앙심을 품고 공격할 경우, 그곳이 쑥대밭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