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2화
182. 182화
“회관에서도 살아남은 자들은 겨우 26명뿐…….”
“…….”
“그럼 더 구할 인원은 없는 건가요?”
“그건 모르겠구나……. 공격이 감행되고 나서 마을 회관에 꽤 많은 사람이 대피했지만, 다들 가족을 찾으러 나가거나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러 간 인원도 있단다.”
“그들은 모두…….”
“아마 죽었겠지…….”
회장은 가슴이 아파졌다.
오래 살았고 가족 같은 이들이 대부분 죽어 버린 것에 대해 분노를 했지만, 자신은 힘이 부족했다.
예린 또한 많은 이들이 죽은 것이 슬펐다.
“우리를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회장은 예린 옆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루카스에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저희는 친구를 도우러 온 것뿐이니.”
“친구라면, 혹시 태산을 말하는 겁니까?”
“네, 잘 알고 계시는군요?”
루카스가 마치 어떻게 알았냐고 하는 표정으로 회장을 쳐다보았는데, 그 눈빛에서 살기가 느껴져 태산에게 들어본 적 있다는 말로 위기를 넘겼다.
“일단 중앙으로 이동하실 수 있겠습니까?”
회장은 주변을 다시 둘러보았는데 꽤 심하게 다친 이들은 포션과 치료 스킬로 대부분 치료되었고 대부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된 것 같았다.
“네, 가능할 거 같습니다.”
“그러면 움직이죠. 저희가 선두와 후방을 맡을 테니 중간에서 잘 따라오시길…….”
루카스의 말에 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민들과 자경대에게 말을 전달하였다.
회관에서 벗어나 중앙, 즉, 마을 입구 가까이 움직인다는 말에 조금 불안했으나 강력한 이들이 자신들을 보호해 준다는 말에 다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아까 회관에서 방어를 주도했던 인물이 누구입니까? 꽤 잘 버티던데.”
루카스가 회장에게 물어보자 회장이 누군가를 가리켰다.
루카스는 그의 손길을 따라 시선을 돌렸고,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도 아주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저 남자가 이곳에 살았단 말인가?”
그 인물은 바로 초창기 헌터 시대에 활약했다가 은둔한 제임스 리라는 인물이었다.
“아니, 이 마을은 대체…….”
루카스는 제임스 리가 이곳에 있으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 했다.
방어전의 귀재, 제임스 리 헌터가 이런 촌구석에 있다니. 거기에 자신의 친우 태산까지.
이 마을은 정체가 뭘까?
“잠시만요!”
에린의 말에 루카스와 회장이 행동을 멈추고 예린을 바라봤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은 가지 않았지만…….
“그러고 보니 마을 북쪽 상가 쪽에 유명한 셰프 식당이 있는데 거기에도 주민분들이 꽤 대피하지 않았을까요?”
“아! 그렇구나. 맞아, 그가 있었어…….”
회장과 예린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루카스는 의아할 뿐이었다.
“누구를 말하는 겁니까?”
“북쪽 상가에 뷔페를 운영하는 국내에서 유명한 셰프 A랭크 차현민 헌터가 있거든요.”
“아! 차현민 헌터.”
루카스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나름 이름을 떨치는 그 셰프를 잘 알고 있었다. 비록 직업이 셰프라고 하지만 A랭크는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제 부하들에게 이곳 주민들을 인솔하게 하겠습니다. 회장님과 저 아가씨는 저랑 거기로 갑시다.”
“그렇게 합시다.”
“거기, 저도 따라가도 되겠습니까?”
구석에 처박혀서 조용히 있던 제임스 리가 말을 걸어왔다.
루카스는 그의 목소리를 오래간만에 들었다.
미국에 있을 때는 같이 경쟁했던, 나름 전우라 할 수 있는 자였다.
“제임스 리, 당신도 갈 겁니까?”
“그렇습니다. 루카스, 오래간만이군요.”
둘은 눈빛을 주고받았다.
“일단 그럼 출발하도록 하죠.”
루카스는 긴말하지 않고 부하들에게 눈치를 줬고 부하들은 알겠다는 듯이 바로 주민들을 인솔해서 중앙으로 떠났다.
회관에 남은 일행은 루카스, 회장, 예린, 제임스 리였다.
“그럼 갑시다.”
회장의 말에 다들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마을 북쪽 상가 건물은 회관에서 걸어서 18분 거리였기에 경보로 걷는다면 그보다 더 일찍 도착할 것이다.
그들은 서둘러 북쪽 상가 건물로 달려 나갔다.
길가엔 많은 시체가 있었다.
그중 대부분은 이 마을에서 살던 주민들이었다.
일부는 적들의 시체였는데, 몸의 상처를 보아하니 자경대 대원의 공격이거나 또는 상위 헌터의 공격으로 보였다.
“이 공격은 자경대의 흔적……인가?”
제임스 리의 말에 마을회장이 적들의 상처를 살펴보았는데 거의 일격에 당한 듯 보였다. 자경대 실력으로는 이런 상처를 내지 못했다.
그들의 실력을 자세히는 모르지만 훈련하는 것을 본 적이 있기에 알고 있었다.
“자경대 일원이 아닐세…….”
“그럼 누군가요?”
마을회장의 답변에 대답한 이는 제임스 리가 아니라 예린이였다.
“아무래도 짐작 가는 인물들이 있기는 한데…….”
마을회장은 북쪽 상가에는 차현민 헌터 이외에 범상치 않은 인물들이 거주하고 있는 걸 기억해 냈다.
아마 강진성이라는 청년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동안 그들이 수상한 짓을 하지 않아서 내버려 두었고 북쪽 거리에서 사망한 적들의 시체는 그들이 처리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북쪽 상가 대피소부터 살펴보시죠.”
제임스 리의 말에 다른 일행들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둘러 상가로 향했다.
그렇게 10분을 달려 나갔을까?
북쪽 상가에도 꽤 많은 시체가 보였는데 다행히도 주민의 것이 아니라 적들의 시체였다.
“대피소가 안전해야 할 텐데…….”
“누군지 몰라도 상당한 실력이군.”
루카스의 중얼거림에 일행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 주민을 보호하고 적들의 공격을 격퇴한 이는 대체 누굴까?
마을회장이야 짐작이 가는 인물이 있었지만, 그들이 아닐지도 몰랐기에 함부로 얘기하지는 않았다.
“일단 대피소는 이쪽이라네.”
마을회장이 한 발짝 옮기려는 순간, 루카스가 외쳤다.
“가만히 계십시오……! 누군가 저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누, 누가?”
“살기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적의 것은 아닌 거 같기도 하고…….”
뚜벅뚜벅,
어딘가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고, 마을회장의 일행과 점점 가까워졌다.
“적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누군지 면상이나 봅시다.”
루카스는 허리춤에 있는 검에 손을 대 제임스 리 또한 인벤에서 방패를 꺼내 꽉 쥐었다.
그들은 발걸음 소리가 나는 방향을 주시하며 노려보았다.
“그렇게 적대 안 해도 돼요.”
마을회장 일행의 앞으로 나온 이는 바로 강진성의 보좌역을 하며 가야리 마을에 머무르고 있는 S랭크 정령사 이한나였다.
“S랭크 이한나 헌터!”
제임스 리와 루카스는 단번에 이한나 헌터를 알아보았다.
“당신이 주민들을 보호하고 있습니까?”
루카스의 말에 이한나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네 저희 팀이 보호하고 있어요.”
“그럼 주변에 있는 이 수많은 적의 시체는 당신들이 처리한 겁니까?”
“네, 맞아요.”
적들의 시체는 70여 구에 가까웠는데, 역시 S랭크 헌터다.
“대피소로 안내 가능합니까? 이한나 헌터.”
“네, 물론이죠. 따라오세요.”
이한나는 앞서 이동하였고 마을회장 일행이 곧바로 그녀를 따라나섰다.
그런데 회장이 알고 있던 대피소를 지나쳐 다른 곳으로 향하자, 의문을 가진 회장이 말을 꺼냈다.
“내가 알고 있는 대피소는 여긴데…….”
“아아……. 거긴 이미 무너졌어요. 저희가 따로 주민들을 보호 중입니다. 따라오세요.”
마을의 원래 대피소를 지나쳐 좀 더 걸어갔고, 길드 사무소 또는 인력 사무소로 쓰이는 빌딩에 도착했다.
루카스는 빌딩 앞을 지키는 헌터들이 범상치 않은 자들인 것에 놀랐다.
역시 이한나의 팀인가.
강한 헌터들로만 구성되어 있었고 꽤 경험이 많은 헌터들인 거 같았다.
“여기 3층과 4층에 주민들을 대피시켜 놨어요.”
“혹시 몇 명 정도인가?”
마을회장은 생존한 인원수가 궁금해졌다.
“제가 일일이 세어보지 않았지만 88명 보호 중입니다.”
“88명이면 꽤 살아남았군. 원래 북쪽 거주자는 112명인데.”
회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생존자가 꽤 많다는 말에 서둘러 3층으로 향했고 루카스와 제임스 리는 잠시 앞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예린이는 회장님의 뒤를 따라 생존자 중 상처를 입은 이가 있을까 하여 걱정되어 들어갔다.
빌딩 3층으로 올라가자 그녀의 말대로 꽤 많은 생존자들이 있었고, 일부 주민은 회장에게 손을 흔들며 반갑게 인사했다.
“회장님!”
“오오, 회장님께서 오셨다…….”
“이, 이제 산 건가?”
다들 꽤 큰 상처 없이 3층과 4층에 머물러 있었다. 그 88명 중 마을 자경대 헌터 11명도 생존해 있었다.
“자네들, 괜찮은 건가?”
“하하하, 괜찮습니다. 회장님.”
“아직 거뜬합니다!”
자경대 헌터들의 대답에 회장은 한숨을 내쉬며 안심하였다.
“어떻게 된 건가?”
“그게……. 저희가 북쪽 주민분들의 대피를 유도하고 있었는데 꽤 많은 적들이 저희를 습격하였고 바리케이드가 무너지고 절체절명의 순간에 이들이 나서서 모두 전멸시켰습니다. 그리고 저 헌터들이 저희와 주민들 모두를 보호해 주셔서 이곳까지 대피할 수 있었습니다.”
자경대 헌터의 말에 회장은 ‘다행이군. 다행이야.’ 중얼거리면서 자경대와 같이 주민들에게 얼굴을 비추었다.
마을회장까지도 살아 있자 다들 기운이 난 듯 회장 곁으로 다가가 여러 가지 말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예린아, 주민들에게 상처가 있는지 확인해 주렴.”
마을회장은 곁에 있던 예린에게 부탁하였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을 주민 중 상처가 있는 이들을 찾아 치유 스킬을 쓰기 시작하였다.
C랭크 헌터치곤 꽤 많은 치유력을 소모했는데도 아직 멀쩡해 보였다.
그런 그녀를 보고 자경대 성직자 헌터 한 명이 이렇게 말했다.
“저 사람 대단하네.”
“뭐가 말이야?”
다른 자경대 동료가 말하자 그 성직자 동료가 말했다.
“보통 C랭크 성직자라고 하면 마력을 다 소모한다 해도 하루에 정해진 치유가 10번뿐이거든. 즉 10명만 치료할 수 있는 건데. 봐봐, 벌써 20명 이상을 치유했잖아.”
그의 말에 다른 동료가 예린을 쳐다봤다.
예린의 치유 스킬은 일반적인 치유 스킬이 아닌 광역 치유 스킬이었던 것이다.
“광역 스킬?”
“그래, 광역 스킬은 A랭크 성직자 헌터도 가지고 있을까 말까 한데. 저 귀한 스킬을 가진 그녀가 부러워.”
모든 성직자가 꿈꾸는 스킬이라는 것이다.
광역 스킬을 가지고 있는 헌터는 분명 많지 않았다.
광역 스킬은 사용하려면 마력이 꽤 많이 들기 때문에 광역 스킬이 있다고 해도 많이 사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스킬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사용하는 예린의 모습에 자경대 인원들은 그녀가 대단하다고 생각이 되었다.
예린은 자경대가 자신을 보며 수군거리는 줄도 모르고 다친 이들을 최선을 다해 치유해 주었다.
30분이 지났을까? 치료가 모두 끝났고 예린은 그제야 조금 쉴 시간이 생긴 것이다.
“이봐, 아가씨. 수고했어.”
자경대 헌터가 그녀에게 시원한 생수를 건네주었다.
예린은 생수를 받아 들고는 그에게 감사 인사를 하였다.
“방금 광역 치유 스킬이었지?”
“네…….”
“부럽네……. 나도 너와 같은 성직자 헌터거든. 그런데 광역 스킬은 없어.”
“아, 그런가요?”
“그래. 광역 스킬은 정말 희귀하거든. 그런 스킬을 얻은 네가 부러워.”
그 자경대 헌터는 진심으로 부러워하는 표정이었다.
예린은 그의 표정이 조금 부담스러워 머리를 긁적였다.
* * *
“크음. 아직 적들이 남아 있는 거 같으니 이곳에 있어야 하는 것인가…….”
“네, 그러니 일단 저희와 같이 있으세요.”
이한나 헌터는 그들을 철저하게 보호하고자 하였다.
비록 강진성을 보호하고 그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파견되었지만 가야리 마을에 있는 동안 평화로움을 느꼈고 그들을 도와주고 싶었다.
그녀뿐만 아니라 그녀와 같이 파견된 직속 부하들도 마찬가지였다.
“아! 그나저나 자네, 강진성 청년과 아는 사이였지?”
“네.”
“아까 아는 자경대 인원한테 들어보니까 많은 적들이 강진성 청년에게 몰려간 것으로 아네.”
“아마 무사하실 겁니다. 강진성 님은 강하니까요!”
마을회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답변한 한나였다.
회장은 한나가 그의 실력을 매우 잘 아는 것처럼 말했기에 더는 물어보지 않았다.
대단한 실력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많은 병력을 상대할 수 있을지 조금 걱정이 되었으나…… 한나의 말을 믿고 기다려 보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