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1화
181. 181화
“이제 끝내주지. 강진성!”
안드레는 자신은 이제 여기까지라는 걸 생각이 들었다. 그에 대검을 있는 힘껏 휘둘러 위강에게 날렸다.
위강은 간단하게 피하며 갈고리 형태의 클로를 진성의 가슴에 찔러 넣었다.
푸우욱-
“쿨……럭.”
“여기까지군, 강진성. 덕분에 재밌게 싸웠다. 대검을 든 농부라니, 꽤 귀한 경험을 했군. 흐흐흐.”
위강은 강진성을 발로 차 가슴팍에 꽂힌 클로를 뽑아 내고 그의 죽음을 지켜보았다.
안드레는 피를 너무 많이 흘렸기에 점점 몸에서 힘이 빠지고 죽어가고 있었다.
“길드장님. 이제 후퇴하실 겁니까?”
“우리의 임무는 강진성이었으니 가야지.”
“다른 것들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아까 안쪽으로 들어간 용병들하고 슈리엘은 여기 전체를 불태우려고 하는 것 같았는데요.”
“용병들이 알아서 하겠지. 그만 후퇴한다!”
“저기 쓰러져 있는 강진성은 내버려 두고 말입니까?”
“어차피 그는 살아나지 못해. 정확히 심장 쪽으로 찔러 들었으니. 그만 후퇴해라.”
“네, 알겠습니다. 다들 들었지? 후퇴한다…….”
부길드장의 말에 사신 길드원들은 중상을 입은 동료들을 부축한 채 밭에서 빠져나갔다.
위강은 쓰러져 미동도 없는 강진성을 슬쩍 한번 보다가 마지막에 후퇴하였다.
움찔…….
위강이 떠나자 몸을 움찔거리는 안드레였다.
아직 여기서 죽을 수 없던 것이다. 몸에 많은 힘이 빠졌으나 안쪽으로 들어가 도와야 했다.
어떻게든 움직여서 안쪽으로 향하려는 그에게 누군가 걸어왔다.
“어라? 강진성이 아니네.”
아주 익숙한 목소리였다.
안드레는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확인하기 위해 간신히 고개를 들었는데…….
“다, 당신은 흡혈 군주 디아나!”
“후후후……. 너 안드레구나?”
“……?!”
자신의 정체를 단번에 파악해 버린 디아나였다.
역시 군주는 못 속이는 것일까?
“진짜 강진성은 어디 가고 네가 왜 그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거야?”
“쿨……럭.”
“맞혀 볼까?”
디아나는 죽어가는 안드레 앞에서 느긋하게 있었다.
“시스템에 빙의 당해서 쓰러졌으려나?”
“……!!”
“아아, 넌 몰랐구나? 세계수의 정령왕인 그녀가 얘기 안 했나 봐?”
세린이는 진성이 왜 깨어나지 않고 있는지 정확히 말하지 않았기에 디아나의 말에 당황했다.
“안드레. 과거 우리와 싸우던 용사였던 자인데 아쉽네. 여기서 허무하게 죽으니까.”
디아나는 정말 아쉽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안드레에게는 디아나는 수인족들의 원수였다.
그녀의 존재 때문에 다른 세계의 수인족이 전멸 직전까지 갔었기 때문이었다.
“안드레, 걱정하지 마. 곧 다른 녀석들도 너의 뒤를 따라가게 해 줄 테니까. 어때. 나 착하지?”
안드레는 가증스럽게 웃는 디아나의 모습에 치가 떨렸다.
하지만 자신은 그녀에게 일격을 날릴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
“안드레, 마지막으로 할 말 있어?”
디아나가 안드레의 코앞까지 다가가 물었다.
“그……건.”
안드레가 무어라 중얼거리자 디아나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휘이익-
안드레는 죽기 직전 마지막 힘을 쥐어짜 대검을 빠르게 휘둘렀다.
채앵-
“후후후, 마지막 힘을 짜낸 거구나? 그런데 어쩌나……. 막아 버렸는데.”
“……!!!”
디아나는 모든 걸 예상하였기에 안드레의 대검을 한 손으로 막아냈다.
안드레는 자신의 마지막 일격이 허무하게 돌아가자 절망에 빠졌다.
“그렇게 죽길 원한다면 죽여줄게. 안드레.”
푸우욱-
“커헉.”
디아나의 손에 손톱이 길게 자라나더니 안드레의 가슴팍에 찔러 넣었다. 정확히 심장 전체를 노리고 한 공격이었다.
안드레는 그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맞았다.
그 공격을 마지막으로 안드레는 결국 고개를 떨구었다.
“어머나, 죽어 버렸네.”
디아나는 미소를 지으면서 안드레의 시체 주변에 한동안 더 있다가 그 현장을 스르륵 떠났다.
* * *
밭쪽에서는…….
“끼에에엑!”
“뭐, 뭐야, 이 잡것들은?! 이런 식물들이 공격한다는 건 정보에도 없었잖아!”
“우와악!”
용병 헌터들이 작물들에게 공격당하자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그저 밭 안쪽에 있는 드워프나 엘프들만 처리하면 되는 줄 알았더니만 맨드레이크, 사과나무 등이 거침없이 공격해 오자 큰 혼란이 일었다.
“대체 파리지옥은 몇 개나 있는 거야?!”
“피, 피해!”
몇몇 용병은 파리지옥에 잡아먹혀 버렸다.
그리고 황금 사과나무 등의 줄기 공격으로 인해 용병 헌터들이 사방으로 날아다녔다.
“슈리엘 님……. 어떻게 할까요? 적의 저항이 생각보다 강합니다.”
슈리엘은 동료의 말에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마을 소탕 중인 고구려 길드에게 신호탄을 쏘세요.”
“네, 슈리엘 님.”
슈리엘은 자신들의 힘과 용병들의 힘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어쩔 수 없이 고구려 길드를 호출하기로 했다.
슈리엘의 부하는 바로 신호탄을 쏘았고 마을 주민들을 찾아내서 죽이고 있던 고구려 길드원 중 몇 명이 신호탄을 발견하였다.
“길드장님!! 신호탄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으음……. 신호탄? 지원해 달라는 소리겠구먼……. 흐흐흐, 가자.”
“길드장님, 마을 주민 소탕은 거의 끝난 거 같습니다.”
“그래? 잘 되었군. 일단 지원하러 가서 저기부터 쓸어 버린 다음 다시 와 꼼꼼히 수색한다!”
“네, 길드장님!”
“아……. 그리고 길드장님 마을 회관 공격하고 있는 녀석들도 부릅니까?”
“아니, 그들에겐 마무리하고 오라고 해라!”
“네, 알겠습니다. 길드장님.”
고구려 길드장 원강율은 마을 수색에 참여하고 있는 일부 인원을 제외한 채 나머지 인원에게 전달했고 약 500명의 무리가 집결하여 강진성의 밭으로 달려 나갔다.
* * *
그들이 떠나고 마을 건물 잔해에서 살아남은 일부 주민과 자경대, 편의점에 숨어 있던 점장과 한예린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쉬잇……. 아직 적들이 남아 있을지 모르니 조심하거라, 예린아.”
“네, 점장님…….”
“흠, 슬슬 그 녀석이 올 때가 되었는데.”
점장은 아까 지원을 요청했다는 헌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을 중앙에 살아남은 사람들을 모이게 하였는데 다친 사람들을 포함해서 약 50여 명 정도가 남은 듯 보였다.
예린은 자신의 기력을 최대한 짜내 다친 이들을 치료해 주었고 큰 상처를 입고 정신을 못 차렸던 자경대 한 명이 깨어나 이런 말을 하였다.
“마을 회관이…… 위험합니다!”
“거기에 누군가 있나요?”
“회장님과 대피한 주민들 일부가 있습니다……. 구해야 합니다.”
“적들은 이미 다 철수하지 않았을까요?”
“아, 아닙니다. 제가 이곳으로 달려오기 시작했을 땐 공격을 막 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니 도와주십시오.”
자경대 인원은 예린과 점장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흐음……. 나도 큰 도움은 못 되는데.”
점장도 곤란하다는 듯이 말했다.
적이 겨우 3~5명이면 상대할 순 있었지만 이번에 마을로 온 적들이 수백 명이었기에 혼자 갈 수 없는 것이다.
“그거 나에게 맡겨주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리면서 마을 입구에 누군가 들어왔다.
“오오. 왔구먼.”
점장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인물이 드디어 나타난 것이다.
예린은 그가 누구인지 확인하려고 얼굴을 보았는데……. 꽤 유명한 자였다.
“왜 이리 늦었는가? 루카스.”
“하하하, 우리를 가로막는 경찰들을 설득하느라 좀 늦었네.”
“그들을 다 죽인 건 아니고?”
“에이……. 이 나라 경찰들을 죽이면 우리도 문제가 생긴다고…….”
“점장님 이분은……. 설마?”
“호오, 나를 알아보는 아가씨가 있다니.”
루카스는 흥미롭게 그녀를 쳐다보았다.
점장은 예린에게 답변을 해 주었다.
“그래, 네가 생각한 그가 맞다. 미국 CIA 소속이자 길드 가디언즈 부길드장 AAA랭크 레인저 헌터 루카스.”
“그런 유명한 분이 점장님의 지인분이었나요?”
“그래.”
점장은 말을 조금 흐렸다.
“허허허, 아가씨 이 친구 말대로 나는 미국 길드 소속이지만 친구가 위험에 빠졌다고 도움을 요청하길래……. 정예 대원 몇을 데리고 왔지.”
“루카스. 정말로 대가는 필요 없나?”
“물론이지. 친구를 도와주는 데 대가가 필요한가? 한태산…….”
“알았다네……. 그러면 도와주게나, 루카스.”
“좋아. 그러면 내 부하들과 함께 마을 회관에 다녀오겠네. 그럼 안내역으로는 그래, 저 아가씨를 빌려주게!”
“저, 저요?”
한예린은 당황했다. 그 유명한 헌터가 자신을 안내역으로 쓰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다친 이들이 많아서 자리를 비우면 위험할지 몰라서 망설였다.
“걱정하지 말게나, 아가씨. 이들은 내 부하가 치료할 테니까.”
“네. 그럼 안내해 드릴게요.”
예린은 마을 편의점에서 일한 지 몇 주밖에 안 되었지만 마을 회관까지는 몇 번 가 본 터라 익숙했다.
“점장님. 그러면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예린아. 조심히 다녀와라.”
“네.”
“자자, 태산. 이따가 보자고?”
루카스는 부하 두 명을 이 자리에 남겨두고 나머지 이들을 이끌고 예린과 함께 마을 회관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회관까지 거리는 20분 거리였기에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마을 중앙에 남은 루카스의 부하 두 명은 치유 스킬로 다친 이들을 정성껏 돌보았다.
“대체 어느 녀석들인지 모르겠지만, 나의 터전을 건드린 대가는 참혹 할 거다.”
편의점의 점주 한태산은 붉게 눈이 충혈된 채 고구려 길드가 사라진 쪽을 노려보았다.
태산은 헌터 시대 초창기에 꽤 유명했던 헌터였다.
하지만 모종의 이유로 헌터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가야리라는 마을에서 편의점을 개점하였다. 이곳 마을 사람들은 외지인인 자신을 환영해 주었고 자신과 친하게 지냈다.
그렇게 2년 동안 평화롭게 보냈는데, 이렇게 평화로운 마을에 참혹한 일이 벌어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태산은 걸음을 옮겨 다친 이들에게 다가가 붕대를 바꿔주는 등 다시 치료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 * *
“여, 여기예요.”
루카스 일행은 그녀의 안내하에 빠르게 마을 회관에 도착했다. 하지만, 마을 회관은 아직도 공격당하고 있었다.
마을 회관을 방어하는 이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꽤 뛰어난 자인 건 분명했다.
“호오? 누군지 몰라도 방어는 끝내주게 잘하는군…….”
“부길드장님, 어떻게 할까요?”
루카스 곁에 있던 부하 한 명이 물어보았다.
“어떻게 하긴. 쓸어 버려라…….”
“네, 부길드장님.”
그는 데려온 멤버 전부를 이끌고 회관을 공격하는 고구려 길드 약 30여 명에게 달려가 무수히 많은 암기를 날렸다.
고구려 길드원들은 갑작스러운 공격에 손도 못 쓰고 하나둘 쓰러져갔다.
“뭐, 뭐야! 너희들은!”
“빨리 무전을 쳐!”
촤아악-
무전기를 누르려던 고구려 길드원 한 명의 손이 잘리면서 무전기가 땅바닥으로 떨어졌고, 무전기를 주우려던 다른 길드원은 목이 잘려 나갔다.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멀리서 그들의 전투를 바라보는 예린의 입이 벌어졌다.
가디언즈 길드의 전투력이 이렇게 강할 줄이야.
적들도 꽤 강한 자들이었는데 그런 자들이 반항을 제대로 못 해 보고 이렇게 전멸한다고?
“후후후, 어떤가. 아가씨. 우리의 전투가.”
“대, 대단하네요.”
“그렇지? 그런데 아직 본 실력은 아니라서 말이야. 겨우 손가락 정도 풀 만한 상대구먼.”
몸이 안 풀린 듯 루카스는 몸을 풀었다.
“자자, 들어가자고. 아가씨.”
“네, 네.”
루카스는 여전히 얼떨떨한 예린과 함게 부하들이 만들어 준 길을 따라 마을 회관으로 들어갔다.
“자, 이제 생존자를 찾아볼까?”
예린은 루카스의 혼잣말에 소름이 돋았다. 같은 편이라 다행이라는 마음도 들었다.
“부길드장님 생존자가 있습니다! 다만 다친 이가 수두룩합니다.”
미리 들어갔던 이가 루카스와 예린을 맞이하며 말했다.
“그래? 그럼 뭐해! 빨리 치료하지 않고!”
“네!”
루카스의 말에 다들 빠릿빠릿하게 움직였고 경계병 두 명만 바깥에 남긴 채 모두 들어가 다친 주민들과 자경대 인원을 모두 치료하기 시작했다.
“오!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을 청년회장은 자신들을 구해 준 인원에게 거듭 감사하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에린이와 루카스에게 다가왔다.
“오, 예린아, 너도 무사했구나.”
“네, 아저씨.”
“바깥은 어떻고?”
“그, 그게.”
예린은 자신들이 겪었던 일을 짤막하게 전달해 주었다.
마을 주민 대부분이 죽고 중앙에도 약 50여 명만 살아남았다고…….
그 말에 청년회장의 안색이 좋지 않게 변했다.
수상한 적들 때문에 가야리 마을이 불타고 마을 구성원 대부분이 죽었으니 안색이 어두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적들은 목표도 정확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저 살육을 위해 온 이들인 게 분명했다.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경찰과 소방관 그리고 구급대원은 마을로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