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2화
172. 172화
진성은 성현이의 어깨를 잡고 그의 몸을 돌렸다.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의 친구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의 표정을 보는데 소름이 돋았다.
뭐지 이 기분은?
“환영한다……. 강진성.”
친구의 입에서 환영한다는 말이 나오면서 주변 환경이 일그러지면서 바뀌어 갔고, 그 자리에는 성현이 아닌 다른 인물이 서 있었다.
그는 씩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의 공연에 온 걸 다시 한번 환영한다. 강진성!”
그러곤 일산 호수공원 전체가 폭발에 휩싸였다.
진성은 폭발에 휘말린 것이다.
콰과광-
큰 폭발 소리와 함께 호수공원 전체가 불바다가 되었다.
진성은 이정도 데미지로는 다치지 않는다.
하지만 사방에서 일어난 폭발 덕분에 호수공원에서 산책을 즐기던 시민들은 비명을 지르거나 도망치기 바빴다.
시민을 죽이지 않는 걸 보니 불필요한 희생을 좋아하지 않는 악당인가 싶었다.
“하하하.”
그자는 확실히 성현이가 아니었다.
그럼 누굴까? 이자도 군주와 관련된 자일까?
“이곳이 네 무덤이다. 강진성!”
처음 보는 인물이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
“대체 누구……?”
“나를 모른다고?”
진성은 진짜 그가 누군지 몰랐다.
그는 어설프지만 성현의 목소리를 흉내 냈고, 성현이라 착각했기에 그의 말에 따라 호수공원까지 왔다. 하지만 전혀 안면이 없는 자였고, 그자는 자신을 죽이려 하고 있다.
“그래…… 강진성. 너로서는 나를 몰라볼 수도 있지.”
그자는 계속해서 영문 모를 소리만 해대고 있었다.
“너는 나를 몰라도 나는 너를 굉장히 잘 알고 있다! 그러니 각오해라, 강진성!”
“진짜 누구인지 모르는데……. 당신, 누구죠?”
“그거까지 말해야 한다니……. 그럼 좋다, 말해 주지. 난 군주 가로쉬 님의 부하 황보준이다. 직업은 마법사이지.”
황보준? 가로쉬 부하 중에 저런 인물이 있었나? 저렇게 개성이 있는 부하는 남궁현을 제외하고는 못 본 거 같은데.
진성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가로쉬와 싸웠던 그 날에 저자는 없었다.
“아……. 그걸 안 말해 줬군. 이전 일산 호수공원 싸움 때는 내가 없었다. 하필 파견을 나가 있는 동안에 네놈이 우리들의 군주 가로쉬 님을 쓰러뜨렸고, 그에 파견 나가 있던 동료는 어둠의 힘을 잃어서 모두 약해지고 말았다.”
자신이 가로쉬를 쓰러뜨리자 가로쉬의 부하들이 어둠의 힘을 잃고, 그 과정에서 잡히거나 자수해서 경찰들에게 잡히게 된 케이스 같았다.
어쨌든 악당인 것은 분명했다.
비록 현재 일산 호수공원에 있던 시민을 죽이진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화염을 다루는 마법사인 듯하니, 위험한 건 마찬가지다.
그러기 전에 빨리 처리하고 진짜 성현이를 찾아봐야 할 것 같았다.
“후후후, 머리를 굴리는 소리가 들려오는군…….”
그자가 자꾸 혼잣말을 해대서 정신이 이상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방심은 전혀 하지 않았다.
일산 호수공원 전체 면적을 불태울 만한 능력이 있는 걸 보면 최소 AAA랭크 헌터라는 소리였다.
왠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지금 자신뿐만 아니라 친구, 그리고 가족들까지 전체 습격을 당하고 있진 않을까, 하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흐흐흐. 강진성, 네가 이곳을 빠져나간다고 해도 이미 계획은 시작되었다.”
그자는 그 자리에서 크게 웃었다.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거지, 당신들은?”
“무슨 일이냐고? 복수다! 군주님의 복수도 포함되지만, 사회에 대한 복수지.”
“무슨…….”
“자, 그러니 나와 싸움을 시작해 보자!”
그는 그 말이 끝나자마자 화염의 구체를 수십 개를 만들어 진성에게 날려 보냈다.
진성은 사방에서 날아오는 구체를 피하면서 빈틈을 찾았지만, 전혀 보이지 않아 고민에 빠졌다.
이곳에서 시간을 지체하면 자신보다는 친구와 가족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아빠!”
주변에서 세린이의 목소리가 들리자 진성은 화염의 구체를 피하면서도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진성의 옆에 생긴 작은 블랙홀에서 세린이가 빠져나왔다.
진성은 세린에게 소환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왔느냐는 질문을 했다.
“아빠가 위험한 것 같아서 공간을 비틀어서 날아왔어요!”
“세린아. 혹시 밭은 괜찮니?”
“네! 아직은 괜찮아요. 그러니 같이 돌아가요!”
“그래, 그래야지.”
진성은 자신의 밭은 괜찮다는 말에 전의를 가다듬고 화염의 마법사를 쳐다보았다.
그는 조금 당황했다. 갑자기 강진성의 옆에 작은 블랙홀이 생겨 정령이 나왔기 때문이다.
대체 저건 뭐지?
“정령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다 함께 정리해 주마! 각오해라!”
그가 또 화염의 구체를 만들어 내려고 하자 세린이가 수많은 작은 블랙홀을 만들어 냈다. 그 안에서 식물의 줄기들이 튀어나와 그자를 공격하였다.
그는 줄기들의 공격으로 인해 주문을 끝까지 외우지 못했다.
“크아악!”
줄기들은 그를 매섭게 쳤고 마지막으로 세린이의 앙증맞은 주먹에 턱을 맞고 날아가 버렸다.
세린이에게 이런 힘이 있을 줄이야…….
줄기 소환이야 처음 본 게 아니라서 이런 힘이 있는 건 알았지만, 저 작은 주먹으로 적을 한 번에 날려 보내다니.
“아빠! 저 잘했죠?”
“응. 세린아.”
진성은 세린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세린이는 아빠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걸 매우 좋아했다.
“그나저나 사방이 불바다인데……. 세린아, 이거 어떻게 하지? 방법이 있니?”
“원래대로 돌릴 방법이요? 있어요! 아빠.”
“그러니?”
“잠시만 기다리세요. 아빠!”
세린이가 주문을 외우자 세린이의 날개에서 푸른색 빛이 하늘로 올라갔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저건 뭘까?
푸른빛이 비가 되어 쏟아지자 불길이 점차 진화되어 갔다.
물방울은 아닌 것 같은데 신기하였다.
“세린아. 이건 뭐니?”
“비밀이에요, 헤헷.”
세린이 비밀이라고 한 건 처음이었기에 더는 물어보지 않았다.
단 5분 만에 사방의 불이 꺼졌다.
멀리서 신고를 받고 달려온 소방차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불을 끄려고 하였지만, 어떤 빛에 의해서 불길이 전부 진화가 되자 당황해하는 표정들이었다.
“세린아, 일단 나를 따라올래? 아무래도 친구들하고 가족도 습격당한 거 같아.”
“네, 아빠! 같이 가요. 세계수 있는 곳은 괜찮아요. 혹시라도 그곳이 습격당하면 저한테 알림이 오거든요.”
“그럼 먼저 가족들이 있는 곳부터 가자.”
“네, 아빠!”
진성은 근처의 텔포 시스템을 이용해서 부모님께서 계시는 판교로 가려고 하였는데 텔포가 작동이 되지 않았다.
기계가 오류인 걸까? 아니면 어떤 전파 간섭 때문에 막힌 것일까?
텔포 기계 앞에는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이 말하는 것을 귀를 기울여보니…….
“아, 텔포는 왜 작동하지 않는 거지?”
“그러게 말이야……. 아까 친구한테 연락이 왔는데 지금 대한민국 전역의 텔포 기계가 다 작동이 안 된다는데?”
“뭐야……. 대체.”
그들은 호수공원에 있다가 갑작스러운 불길에 대피한 시민이었는데 텔포를 타고 각자 집으로 가려고 했지만, 기계가 전혀 작동하지 않아 발이 묶인 것이다.
“아빠. 아무래도 텔포는 안 될 것 같아요.”
“한시가 급한데……. 일단 차 타고 가자.”
“네! 아빠.”
세린과 진성이 주차장으로 향했다.
호수공원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주차장에 주차된 차량이 꽤 많았는데, 다들 불길을 피하기 위해 도망간 건지 주차장에 주차된 차가 거의 없었다.
“나갈 때는 빠르게 나갈 수 있겠네……. 일단 전화부터 걸어보고…….”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봤지만, 전혀 받지 않으셨다.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진성과 세린은 빠르게 차에 탑승해 안전띠를 매었다.
“빨리 가야 해…….”
진성은 가족들이 걱정되었다.
진성이 판교로 향하고 있을 때쯤…… 진성의 불안감이 현실이 되었다.
* * *
성현이와 시우는 각자 다른 곳에 있다가 습격을 당한 것이다.
성현이는 영등포 공방에 있다가 공방으로 쳐들어온 정체불명의 용병 집단에 의해 연금술사들과 함께 격전을 치르고 있었고, 시우 쪽은 산하 기업 사찰 중에 범죄자로 보이는 이들에게 습격당하고 있던 것이다.
“시우 도련님……. 아무래도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시우를 보좌하는 시리우스 팀, 서길수 팀장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쳐들어온 범죄자들이 정확히 시우만을 집요하게 노리며 공격했기 때문이다.
서길수 팀장은 다른 기업의 사주이거나, 생각하지 싫지만 이진호의 계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기업의 공격이거나…… 아니면 이진호 팀장이…….”
“그만! 아무리 그래도 형이 그렇게까지 할 것 같진 않아요. 그러니 형의 이름은 꺼내지 마세요. 서길수 팀장.”
“네, 알겠습니다. 도련님.”
“일단 이 범죄자들부터 처리하고 본사로 돌아가죠.”
“네, 도련님. 다들 들었지? 빠르게 처리하고 본사로 돌아간다!”
“네!”
“알겠습니다, 팀장님.”
시리우스 팀은 신속하게 움직여 건물에 침입한 그들을 무참히 쓰러뜨렸다.
하지만 워낙 숫자가 많은 터라 다 정리하고 가려면 최소 2~3시간은 걸릴 듯하였다.
“크아악!”
“너, 너무 세!”
범죄자 몇몇은 그 장소에서 벗어나 입구로 도망치려고도 했지만, 입구에 대기하고 있던 이에게 잔인하게 몰살당했다.
“도망칠 공간은 없다.”
입구를 지키던 이가 조용히 말했다.
그를 맨 앞에서 마주한 범죄자 몇몇이 그에게 죽었고, 뒤따르던 범죄자는 공포심이 들어 도망치기를 포기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내가 들어가야겠군.”
입구를 지키던 그는 종로 교도소 위험구역에 있던 17인 중 한 명이었는데 검 사냥꾼, 박도현이라는 자였다.
그는 헌터들이 가진 검들을 수집하는 걸 좋아했는데 일반적인 방법으로 구하는 게 아니라 강해 보이는 헌터들을 죽여서 검만 미친 듯이 수집하는 것이다.
도현은 등과 허리에 맨 검 몇 자루 중 한 자루를 꺼내 들어 도망치는 범죄자들을 죽여나갔다.
그러자 후퇴하던 이들은 죽기 살기로 시우 쪽 일행에게 덤벼들었다. 도망치다 박도현에게 죽는 게 더 무서웠던 것이다.
그렇게 박도현은 종로 교도소의 악몽 중 하나였다.
“자아……. 재밌는 전투를 해 보자고!”
도현은 악마처럼 웃으며 검을 땅으로 내린 채 질질 끌었다.
그 소리에 겁먹은 범죄자들은 더욱 앞으로 나아갔다.
시리우스 팀 이외에 이 건물을 지키는 경비 헌터들은 범죄자들에게 당해 쓰러져 나가고 있었다.
범죄자 중에 헌터들도 있었기에 경비쯤은 간단히 쓰러뜨릴 수 있었다.
“도련님, 저자가 지휘관인 모양입니다.”
시우를 근거리에서 밀착 경호하는 한소율이 검을 질질 끈 채 걸어오는 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그를 쓰러뜨려 주세요. 한소율 부팀장.”
“네, 도련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한소율은 비장한 마음으로 검을 끌며 다가오는 도현에게 검을 날렸다.
휘이익- 깡!
하지만 도현은 한소율의 검을 가볍게 쳐냈다.
“호오? S랭크 헌터 한소율이군. 마침 붙어보고 싶었는데 잘 됐어. 흐흐흐.”
“빠르게 쓰러뜨려 드리겠습니다.”
“어허! 그건 내가 할 소리라고?”
도현과 한소율의 검 공방전이 시작되었다.
둘은 빠르게 검을 휘두르며 싸워나갔다.
한소율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도현의 모습에 시우는 긴장하였다.
한소율은 경험이 많은 S랭크 헌터인데, 그런 헌터를 어렵지 않게 막아서는 저 인물은 대체 어떤 인물인가?
“저자는 박도현이라는 인물입니다. 도련님.”
서길수 팀장은 그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는 듯하였다.
“검 사냥꾼, 박도현인가요?”
“네, 도련님.”
“그를 잘 아나요? 서길수 팀장.”
“네. 정확히 말하면 제가 아카데미 교관으로 있을 때의 제자 중 한 명입니다.”
“아카데미인가요?”
서길수 팀장은 시리우스 팀을 이끌기 이전에 아카데미로 잠시 파견되어 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었다.
정식 교관은 아니었지만, 헌터 업계에서도 워낙 유명했고 강했기에 사방에서 요청이 들어와 회장의 허가 승인 아래 1년 정도 아카데미에 파견된 적이 있었다. 학생들에게 던전과 기술을 가르치는 교관이었는데 그중 몇 명이 그에게 열정적으로 배웠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바로 그 제자 중 한 명이 검 사냥꾼, 박도현이었던 것이다.